1999-03-03

베트남 전쟁의 승패는 군이 아니라 지도층과 공직자들에 의해 결판이 났다는 진단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사회주의 체제하의 북쪽 베트남 지도자와 공직자들의 수범(垂範)이 남쪽 베트남의 부패한 지도층과 국민을 스스로 무너지게 만들었다. 지도층과 국민이 고통을 분담하면서 치른 전쟁에서 북쪽 베트남이 승리한 것은 당연한 귀결인지도 모른다. 하노이의 호치민주석 묘소와 생가를 찾는 국민들이 줄을 잇는 까닭은 현장을 찾아가 보면 더욱 생생하게 체감할 수 있다. 그런 베트남의 아름다운 전통은 「도이모이」(쇄신)란 이름아래 개혁과 개방을 추진하는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레 카 퓨 공산당서기장을 비롯한 베트남 지도층 공직자들은 관저(官邸)없이 사는 경우가 많다. 사저도 부자동네나 특정지역에 자리잡고 있지 않다. 보통 마을의 보통 집에서 갑남을녀들과 희로애락을 나누며 산다. 생활 자체가 근검한 것은 더 이를 데 없다.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라는 이름의 「경제전쟁」을 치르고 있는 우리나라 고위공직자들의 눈에는 이런 모습이 어떻게 비칠지 궁금하다. 지난주말 발표된 3부(三府)의 고위공직자 재산변동상황만 봐도 솔선수범은커녕 IMF체제의 고통분담과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느낌을 준다. 1억원 이상의 재산증가자만 엄청난 숫자에 이르는 사실은 2백만명에 육박하는 실업자와 수많은 저소득층 국민에게는 허탈감이라는 말로 설명이 끝나지 않는다. 편법, 변칙까지 활개를 쳤다는 점 때문에 분을 삭이지 못하는 국민도 적지 않다. 켕기는 게 있어선지 지면이 줄어들고 이튿날 휴간신문이 많은 주말을 택해 발표하는 「잔머리 굴리기」는 한층 얄미움을 사고 남는다.

노.사.정 위원회에서 뛰쳐나간 노동자들에게는 또 무슨 구실을 대며 설득할 것인지 아득해진다. 지나친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이들에게 「국민의 정부」의 고위공직자=「국민의 공직자」라는 등식을 실제로 성립시키지 않는 한 치명적인 갈등국면을 피하기 쉽지 않아 보인다. 김대중대통령이 엊그제 3.1절 기념식에서 『 정부가 서민과 중소기업을 위한다는 확고한 신념을 갖고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다짐을 거듭했으나 어느정도 국민의 가슴에 와 닿을지 걱정스럽다.

병주고 약을 줘도 고울 리 없는데 병주고 약마저 주지 않는다면 어떤 심정일지 헤아려보는 체라도 해봤을까. 우리 고위공직자와 정치인들은 정책의 오류와 시류에 휩쓸리는 인기전술로 IMF체제라는 중병을 국민에게 옮겨주고 나서도 「약만 올리는」 냉혈한과 다름없는 모습이다. 좋은 공직자란 동서와 고금을 막론하고 전체의 3%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한 일본학자의 지적이 한국에서도 적용된다면 우리 국민을 또한번 안타깝게 한다.

우리의 공복(公僕)들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전통인 「승관발재(昇官發財)」의 잔재를 여전히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지 다시 살펴보게 된다. 관료로 등용돼 권력의 일부에 끼여드는 것을 정상적인(?) 축재방법으로 여기는 사고방식은 본고장이었던 중국에서조차 혁파의 대상이 된지 오래다. 아직 고시를 과거시험쯤으로 여기고 있는 고위공직자들이라면 송나라 악비전(岳飛傳)의 한 구절을 상기시켜 주고 싶다. 「문신(文臣)이 돈을 사랑하지 않고 무장(武將)이 죽음을 아끼지 않는다면 천하는 평화롭다」
명실상부한 실사를 통해 공직자 재산의 투명성을 높이고 법을 어길 때 처벌을 강화하는 등 각종 제도를 보완하는 것은 고통분담과는 또다른 차원의 문제다. 대만에선 총통과 행정원장을 비롯한 고위공직자들이 재산신고법에 따라 강제로 신탁관리에 맡기는 제도를 이미 3년여전부터 시행하고 있을 만큼 엄격하다. 대만의 고위공직자들은 전 재산을 일단 변호사와 공인회계사에 위탁, 관리하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줘왔던 대만의 제도를 참고함직하다.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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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01-13
지난 세기말 이후 한반도 사람들은 어느 한해, 어느 순간에도 미국.일본.중국.러시아 등 네 나라를 일컫는 「주변 4강」을 의식하지 않고 살아온 적이 없다. 새로운 세기의 차원을 넘어 새로운 천년을 눈앞에 둔 올해라고 예외일 순 없을 것이다. 끊임없이 4강의 움직임을 주도면밀하게 살피고 따져 슬기롭게 대처해야 하는 까닭은 자명해진다. 수난과 치욕의 역사가 웅변해 주고 있음을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이들 4강국이 아직 올해 대외정책을 구체적으로 천명한 것은 아니지만 특징적인 공통분모를 찾는다면 「공세적 외교」가 아닐까 싶다. 강대국의 속성이 공격적이게 마련이긴 하다. 그렇지만 탈냉전 이후 유일한 초강대국으로 불리는 미국을 제외하면 이들 나라가 경제적 측면에서든 국가안보적 측면에서든 방어개념에 비중을 두어왔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 4강국이 올들어 한결같이 공세적 대외정책을 시사하고 나선 것이 각기 다른 배경과 전략전술을 한자락씩 깔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미국을 보자. 빌 클린턴 대통령이 상원의 탄핵심판이라는 수렁에 빠져 있어 전선을 나라 밖으로 돌릴 것이라는 예상이 어렵잖게 나온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 정권의 대외 무역공세는 불가피하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어느 나라나 선거가 경제성적표에 좌우되는 추세여서 클린턴 대통령과 그 후임을 노리는 앨 고어 부통령이 빼들 카드는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어 보인다.

더구나 10년 가까이 호황을 누려온 미국경제의 기상예보는 이제 「맑음」을 벗어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부쩍 많아졌다. 미국은 일본, 유럽, 중국 등과 한바탕의 무역전쟁을 벼르고 있다. 여진(餘塵)이 한국에도 떨어질 것임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게다가 공화당이 주도하는 미 의회가 정해준 시한폭탄의 초침까지 움직이고 있다. 북한 핵시설 의혹을 풀어야 하는 시계가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햇볕정책을 시험하면서 5월말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이다.

일본은 유로화의 성공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면서 새해 벽두부터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총리가 유럽순방에 나서는 등 이미 경제적 공세정책을 예고했다. 여기에다 북한이 지난해 일본열도를 가로지르는 장거리미사일 발사능력을 과시한 이후 한반도문제에 극도로 민감해진 게 일본이다. 그들은 최근 내각정보회의를 신설하게 된 빌미도 북한에서 찾고 있다.

중국쪽에서는 미국과 일본을 향한 강경 외교노선을 정했다는 보도가 심심찮게 흘러 나온다. 클린턴 대통령의 입지가 약화되면서 미국내 대중(對中) 강경세력이 득세해 미.중관계에 문제가 생길 것에 대비, 미리 선수를 치겠다는 계산인 것 같다. 알게 모르게 군사력을 증강하는 일본에 대한 중국의 경계심과 공세도 결코 느슨하지 않다.

그 좋던 시절을 그리워하는 러시아가 자존심에 엄청난 상처를 입고 와신상담(臥薪嘗膽)하는 모습은 처절하기까지 하다. 침몰하는 경제로 말미암아 마땅한 지렛대가 없어진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미국과 이라크간의 갈등상황 이후 이 북극곰의 목소리는 「불만의 계절」을 실감나게 한다. 최근 몇년 사이에 한국에 대한 감정이 쌓일대로 쌓인 러시아가 꺼내들 수 있는 북한카드도 한두가지가 아니다.

주변국들이 내분이나 국내문제 해결에 여념이 없을 시기에 한반도가 상대적으로 평화로웠던 역사의 거울에 비춰보면 4강국 모두 공세적 대외정책을 내비친 것은 긴장감을 더해주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한국에 올해가 경제위기 극복에만 전념해도 상관없었던 지난해와 다른 점은 경제안보 못지않게 포괄적인 국가안보의 시험이 추가됐다는 사실이다.

4강의 공세적 대외정책에 어떻게 대응하느냐는 것이 외교정책당국자들의 몫만은 아니다. 국난을 앞장서 극복하기는커녕 자초하곤 해온 정치인들이 이런 바깥세계의 상황변화를 알기나 하고 제 밥그릇 챙기는 싸움질에 여념이 없는지 답답해 하는 국민들만 언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것 같다.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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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12-18


”90년대 초반 세계의 거의 모든 전문가들이 아시아·태평양시대의 도래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던 순간에도 미국 MIT대의 석학 레스터 서로 교수는 21세기를 유럽이 주도할 것이라고 우기다시피했다.

그는 특히 미국, 일본, 유럽의 경제전쟁에서 승산은 유럽에 있다고 자신있게 주장했다. 서로는 문명의 중심이 유럽에서 미국으로, 그리고 아시아 대륙으로 옮겨 간다는 이른바 「문명서진설(文明西進說)」을 단호히 배격했다.

그는 「세계경제전쟁」이라는 명저를 펴낸 직후인 92년 10월 기자와 인터뷰할 때도 아시아 경제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여러 각도에서 진단하면서 특유의 탁견을 펼쳐 보였다.

유럽의 경제적 통합에 대한 회의론이 여전히 짙게 드리워져 있을 당시 그가 유럽의 저력을 그처럼 높이 산 데는 나름대로 근거가 있었음은 물론이다. 21세기의 승자로 유럽을 꼽는 이유로 미국과 견줄 수 있는 거대한 인구, 그것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른 지역에 비해 양질의 교육을 받았다는 점을 첫번째로 들었다.

둘째는 수많은 호조건을 지닌 나라들이 하모니를 이루면 이상적인 상호보완관계를 이룰 수 있다는 사실이다. 독일은 생산 측면에서 세계 최강이며, 이탈리아는 세계의 디자인을 선도하는 나라이고, 프랑스는 패션과 기술 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며, 영국은 세계자본시장을 주도하는 것이 좋은 예다. 경쟁력의 핵심인 과학기술적 측면에서도 독일은 산업기술, 프랑스는 대형복합기술, 영국은 기초과학이 강한 점 등을 꼽을 수 있다.

유럽이 자랑할 만한 또하나의 장점은 더 말할 것도 없이 경제적 통합이다. 아시아·태평양지역을 앞서는 이유로 서로는 이 통합을 내세웠다.

아직 속단하긴 이르지만 그의 선견지명은 서서히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느낌을 준다. 유럽의 기업들이 지난 수년간 뼈를 깎는 고통을 감내하며 구조개편과 경영쇄신의 노력을 기울인 결과가 이미 나타나기 시작했다.

경제적 통합작업과 경쟁력을 가속화할 단일통화 유로의 공식출범을 눈앞에 둔 유럽은 지난날의 고질적인 「유럽병」을 치유해 나가면서 한층 자신감을 갖고 용틀임을 하고 있는 모습이 완연하다. 유로화는 국제통화질서를 독주하다시피 주도해온 미국의 달러에 대한 결정적인 견제세력으로 떠올랐다고 누구나 인정하게 됐다.

그 뿐만 아니다. 이른바 「제3의 길」로 일컬어지는 유럽의 사회적 자본주의 모델은 미국의 순수시장적 자본주의에 바탕한 신자유주의 모델에 대항마로 나섰다. 유럽 자본주의는 일부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미국 자본주의에 비해 휴머니즘이 담겨 있어 「인간의 얼굴을 가진 자본주의」라고도 불린다. 유럽은 이밖에 여러 분야에서 세계의 유일 초강대국인 미국에 도전장을 던지고 있다. 미, 일, 유럽이 펼치는 세계 경제 삼국지에서 한때 미국과 일본의 싸움으로 좁혀졌다고 여겨지던 경제전쟁은 확실히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음에 틀림없다.

이런 유럽의 움직임에 대응하는 우리의 시각과 자세는 심각성과 진지성이 부족한 듯하다. 정부나 민간 모두 말로는 유로화 출범에 대비한다면서도 행동은 주도면밀하지 않다. 당장 발등에 떨어진 경제위기라는 불끄기에 여념이 없다는 점을 민·관이 공통적으로 실토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미국과 일본에 더 익숙해져 있는 우리의 경제는 유럽과는 상대적으로 덜 친숙하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사실 때가 늦었다.

이제 우리는 유로화에만 대비할 게 아니라 「유럽의 부활」이라는 한 차원 높은 곳에 초점을 맞춰 접근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정부의 외교와 기업의 투자·교역전략에 변화가 요구되는 것은 물론 연구기관과 인력의 확충 등 종합적인 검토가 뒤따라야 할것 같다.

온갖 회의론을 비웃기라도 하듯 다른 민족끼리 통합을 이뤄가는 유럽은 남북통일을 일궈내야 하는 우리에게 또다른 측면에서 시사점을 던져준다.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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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11-25
특정분야에서 우수한 상대를 목표로 삼아 뒤떨어지는 부분을 개선하는 「벤치마킹전략」이 얼마전까지만해도 지구촌에 유행처럼 번졌다. 주로 기업같은 조직에 먹혀들었던 이 전략이 여전히 위력을 떨치고 있는 곳이 적지 않다.

다소 성격이 다르긴 하지만 국가경영이나 정치에서도 이 전략이 원용되곤 한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가장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고 싶어하는 나라는 독일이 아닌가 싶다. 김대통령이 모방하려는 국회의원 선거제도가 우선 독일식 정당비례대표제다. 지역감정을 없애는데 안성맞춤이라는 이유를 내걸고 있지만 국민회의가 불모지인 영남지역에 뿌리를 내리기 위한 최선의 방편이라는 판단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게 정치권의 일반적인 분석이다.

「국민의 정부」가 성공사례의 하나로 꼽는 「노·사·정 위원회」의 모델도 바로 독일이다. 한국의 노·사·정 위원회는 지금까지만 보면 모델인 독일보다 뿌리가 잘 내리고 있다는 평가를 받아도 손색이 없을 듯하다.

김대통령이 대선과정에서 세대교체론에 맞서면서 내놓은 맞불작전카드 역시 독일에서 빌려왔다. 넬슨 만델라 남아공대통령과 더불어 콘라트 아데나워 초대 서독총리를 공세차단의 방패로 활용한 것이다. 김대통령처럼 70세가 넘은 나이에 최고지도자가 된 아데나워는 국민의 숭앙을 한몸에 받는 건국의 아버지여서 「사표(師表)로서의 설득력」을 지니기에 충분조건을 갖췄다. 김대통령이 통일의 교훈으로 삼으려는 나라가 독일이라는 사실은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같다. 김대통령이 벤치마킹으로 삼고 싶은 독일의 장점은 어디 그뿐이겠는가.

하지만 정작 김대통령이 가장 강도 높게 따라 배워야할 독일의 장점은 뒷전에 밀려 있는 느낌을 떨쳐버리기 어렵다. 환경정책이 그것이다. 독일이 세계에서 가장 앞선 환경정책을 입안하고 실천하는 나라라는 것쯤은 이제 환경전문가가 아니라도 안다. 한달전 사상 처음으로 녹색당이 연정에 참여한 이후 독일 환경정책의 강도는 과격하다 싶을 정도로 높아질 개연성이 많다.

독일은 한국인의 눈으로 보면 환경보호의식의 과잉으로 비칠 만큼 많은 환경규제의 올가미로 가득하다. 규제완화를 미덕으로 여기는 독일이지만 환경관련규제만은 7,000여가지에 이른다니 입이 벌어질 정도다. 우리의 실상은 이런 독일과는 반대로 달리는 열차처럼 보인다. 김대통령과 국민회의는 주무부처인 환경부를 도와주기는커녕 도리어 훼방을 놓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환경부가 마련한 「상수원 특별법안」에 반대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팔당 상수원지역 주민의 이기주의를 극복하려는 노력보다 인기에 영합하는 듯한 모습이 역력하다. 백년대계보다 눈앞의 지역정서나 멀지 않아 있을 선거만 염두에 두고 있는 듯한 환경정책은 수없이 많다. 그린벨트의 대폭 해제, 접경지역 개발, 국립공원구역 재조정 등 하나같이 녹지를 훼손할 수밖에 없는 것 뿐이다. 바로 엊그제 발표된 여론조사 결과만해도 국민 대다수가 그린벨트를 완화하지 않기를 원하고 오히려 늘려야한다는 견해도 적지 않았다.

김대통령의 환경정책을 의심하게 만드는 좋은 사례 가운데 또하나는 서울 여의도광장의 시민공원조성 반대였다. 여의도 시민공원이 자신에게 등을 돌린 조순(趙淳) 전 서울시장의 작품이라는 점이 반대의 속내였는지 모르지만 도시의 녹지공간은 많을수록 좋다는 사실에 비춰보면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그러잖아도 우리의 금수강산은 가는 곳마다 흉물스런 러브 호텔, 음식점, 시멘트 고층아파트로 가득 차고 온갖 공해물질로 뒤덮여 몸살을 앓고 있는 모습이 신문과 TV에 등장하지 않는 날이 하루도 없는 지경이다. 국제통화기금관리체제를 구실삼아 눈앞의 이익에만 급급한 우리 국민의 환경의식도 문제지만 근시안적인 국민의 뜻에 영합하는 「국민의 정부」가 더 문제가 아닌가 싶다.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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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10-14

일본이 숨기고 싶어하는 치부(恥部) 가운데는 이런 것도 있다. 2차 세계대전 패전 직후 일본 정부가 가장 먼저 손 댄 일의 하나가 미군을 위한 국가공인의 매춘조직과 시설을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히로히토(裕仁) 일왕의 항복 방송이 있은지 불과 3일만인 45년 8월18일. 일본 경시청은 화류(花柳)업계 대표들을 불러 진주군을 위한 위안시설 마련에 관해 협조를 요청한다. 일본 정부는 이날중 내무성 경보국장 이름으로 각 부·현에 「진주군 특수위안시설에 대해서」라는 제목의 무전을 보낸다. 곧 이어 8월28일에는 화류계 업자들에 의한 「특수위안시설협회」가 만들어진다. 이들은 국고보조금을 받아 대대적으로 미군 위안부를 모집한다. 「전후 처리의 국가적 긴급시설, 신 일본여성을 구한다」는 신문광고는 물론 길거리 간판까지 등장한다. 의식주 보장이라는 조건만 믿은 여성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순진무구한 이 여성들은 긴자(銀座), 오모리(大森), 다치카와(立川) 등에 만들어진 위안 시설로 보내진다.

일본 정부 수뇌부가 왜 이런 짓을 했는지는 어렵잖게 읽혀진다. 일본군이 동남아의 전쟁터에서 얼마나 무자비하게 여성들을 폭행하고 욕보이는 만행을 저질렀는지 그들이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군이 진주하면 「이번에는 일본여성이 당할 차례다」라고 직감했으리라.

당시 관계자의 얘기를 들어보면 일본정부의 의도는 한결 분명해진다. 『평화적 진주인데다 군율이 엄하다는 미군 병사들이므로 무모한 폭행사건 같은 일이야 생기지 않겠지만 주둔기간이 길어지면 미군병사의 성 문제를 고려해 줘야만 할 것이다. 그것은 오히려 금욕으로 인한 폭거를 억제하는 역할도 하며 일반 부녀자의 위험을 방지하는 일도 된다』
이처럼 도덕성을 잃은 일본정부가 기세등등했던 전시에는 어떠했으리라는 것쯤은 새삼 거론할 필요가 없다. 뒤늦게나마 식민지 지배에 대해 사과하는 일본정부가 군대위안부 문제만큼은 아직도 해결할 기미를 보이지 않는 까닭은 그 알량한 도덕성마저 상처를 받는 게 두려워서가 아닌가 싶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이번 방일 때도 두 나라는 이 민감한 사안을 매듭짓지 못한 채 숙제로 남기고 말았다. 김대통령은 정상회담에서 언급하지 않은 대신 비공식 모임에서 일본정부에 해결을 촉구하는 우회적인 방법을 선택했다. 적지 않은 방일 성과에도 불구하고 정상회담의 분위기를 해칠 것을 걱정해 두 나라 과거사의 핵심현안 가운데 하나인 이 문제를 형식적인 외곽 때리기로 그친 사실은 유감스럽기 그지없는 일이다. 우리 국내에서도 일본정부에 강요할 것이 아니라 그들의 선택에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견해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일본의 태도를 감안하면 군대위안부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도록 맡기려는 발상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현 오부치 내각의 나카가와 쇼이치(中川昭一) 농수상이 취임후 첫 기자회견에서 일제의 군대위안부 강제연행을 부인하는 발언으로 물의를 빚었던 게 불과 얼마전의 일이다.

군대위안부 문제는 이제 두 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유엔인권위원회 차별소위원회가 이른바 맥두걸보고서를 통해 일본군의 만행을 「강간센터」 「노예제도」라고 명백히 규정했을 만큼 전세계적인 현안이 됐다. 일본이 국가책임을 인정해 정중히 사과하고 「강간센터」 설치에 관여한 군인들을 찾아내 단죄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국제사회의 「객관적 해법」으로 채택된 일이다. 군대위안부 문제를 어물쩍 넘기는 한 일본이 국제사회의 떳떳한 일원이라고 자부하기 어렵게 돼 있다.

일본정부가 유엔 인권위의 권고를 빠른 시일 안에 받아들여 피해자에 대한 법적인 책임을 이행해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군대위안부 문제 해결은 일본정부 뿐아니라 우리 정부에 남겨진 숙제이기도 하다. 과거사문제를 무조건 빨리 매듭지으려는 것만이 능사는 아닐 듯하다. 국제부장


Posted by 김학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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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dr.buybeatsbydrdrexb.com/ beats by dre 2013.04.03 19: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세계를 놓고 말하면 당신은 한 사람이지만,단 한사람을 놓고 말하면 당신은 그라삼의 세계입니다.

  2. Favicon of http://op.lisseurghdve.com/ ghd france 2013.04.09 03: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모든 사람은 죽는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진정한 삶을 사는 건 아니다.

  3. Favicon of http://vru.gencbeyin.net/ oakley sunglasses outlet 2013.04.10 03: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삶의 목표는 너무 많은 아니라, 계속 한 것은, 투자 관심과 열정을 찾아, 당신은 성공합니다.


1998-09-16
날씨마저 제정신을 잃어버린 요즘 우리는 나라 안팎에서 일어난 가치관의 처연한 일탈(逸脫)장면을 참담한 가슴으로 체험한다. 더 말할 것도 없이 입에 담기도 거북스런 세계 최강국 지도자의 성추문과 보험금을 타기 위해 아들의 손가락을 자르는 것조차 주저하지 않은 우리네 아버지의 비정한 모습이 그것이다.

두 사건은 가장 원초적 욕망인 성(性)과 돈의 노예가 된 인간의 벌거벗은 원형을 더없이 극명하게 보여준다. 둘은 동·서양 덕목의 동반타락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서양을 표상하는 근대적 시대정신인 청교도 윤리와 동양의 대표적인 철학이자 신앙인 유교정신의 몰락을 의미한다. 또 다른 측면에서 두 사건은 유행어가 되다시피한 「자본주의의 위기」의 한 단면을 드러내는 공통점을 지녔다.

청교도정신은 막스 베버가 서구 자본주의의 기원을 찾으면서 찬양해 마지 않은 반면 유교가 중국의 자본주의 발전에 걸림돌이 됐다하여 비판을 서슴지 않았던 서양의 최후 보루나 다름없다. 이런 청교도정신이 이를 가장 기리고 가꾸어야 할 인물의 한 사람인 미국 대통령에 의해 처참하게 짓밟히고 말았다는 것은 역설이 아닐 수 없다. 동양의 덕목을 타매한 베버에게 『도덕(유교)과 경제는 원래 손을 잡고 함께 걷도록 되어 있다』면서 반기를 든 일본 근대자본주의의 대부 시부사와 에이이치(澁澤榮一)가 지하에서 반색을 하고 벌떡 일어날 법하다.

사실 「정치와 포르노」는 유사이래 떼놓을 수 없는 쌍두마차이자 만고불변의 토픽으로 자리잡아온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빌 클린턴 대통령의 섹스스캔들은 정치와 성적(性的) 판타지에서 에너지를 충전받는다는 인터넷에 의해 세계인들에게 사이버 정치의 위력을 한층 충격적으로 보여줬다. 자본주의의 위기와 함께 세계 지도력의 추락을 동시에 몰고온 클린턴 대통령의 성 중독증은 「세기말 증후군」 가운데 하나인지도 모른다.

그런 클린턴이 이달 하순 토니 블레어 영국총리 등과 함께 「자본주의도 사회주의도 아닌 제3의 길」을 본격적으로 찾아나서기로 예약돼 있는 것도 아이러니에 속한다. 사회주의의 몰락 이후 자본주의의 승리를 가장 소리높이 외쳐온 미국의 지도자가 자본주의의 위기를 스스로 가중시켜 놓고 제3의 길을 모색하는 선봉에 나섰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지도력을 상실한 클린턴의 프로그램이 계획대로 굴러갈지 의문스럽다.

나라 안에서 한결같이 보험금을 노려 아들의 손가락을 자른 아버지, 요구르트에 독극물을 넣어 아들을 죽인 혐의를 받고 있는 아버지, 남편을 살해한 아내 등 엽기적인 사건의 주인공이 잊을 새도 없이 나타나는 것도 유교윤리의 실종이자 자본주의의 위기가 낳은 병리현상인 셈이다.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이후 돈 때문에 생겨나는 가정과 가족윤리의 파괴는 가속도가 붙은 느낌이다. 모두가 돈을 위해서는 인륜까지 배반하는 배금주의 사상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성공이데올로기의 만연이 낳은 치명적인 파생물이다. 하기야 카를 마르크스가 자본주의를 적대시하며 사회주의를 풍미하게 만든 것도 경제적인 이유 때문이라는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의 분석까지 있고 보면 경제적 어려움이 초래한 자본주의의 동요가 이해될 만하다. 병과 영양실조에 시달리던 가족을 거느리고 뉴욕 헤럴드 트리뷴지의 런던 특파원으로 일하던 마르크스가 끈질기게 요구한 월급인상만 해주었더라면 현대사가 바뀌었을 것이라는 게 케네디의 가정법적 발상이다. 결국 한국적 자본주의의 위기도 모든 것을 돈으로 연결짓고 도덕불감증을 퍼뜨린 이른바 「사회지도층」의 실종에 귀책사유가 있다. 철새·해바라기·불법정치자금 수수 정치인은 그만두고라도 가장 존경받는 지도층 인사로 꼽혀왔던 대학총장의 고액 불법과외에 이르기까지 속절없이 무너지는 지도층의 재구축이야 말로 우리사회의 급선무다. 미국인들의 불행을 동정할 정신적 여유조차 우리에겐 없다.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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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08-05
유권자들의 분노가 극에 달하면 때론 상식을 훌쩍 뛰어넘는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부근에 있는 조그만 읍인 「수놀」의 주민들은 지난 83년 견공(犬公)을 읍장으로 뽑았다. 사람 읍장에 오죽 넌덜머리가 났으면 그랬을까. 요즘 우리 정치인들을 보면 이해가 가고도 남는다. 자신을 위해(危害)하지 않는 한 결코 주인을 배신하지 않는 개의 품성에서 암시를 얻은 유권자들이 1회성 시위 정도로 시작했다가 무려 여섯차례나 연임시켰다.

읍장으로 선출된 보스코 보스 라모스란 이름의 이 사냥개가 유권자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더없이 충직했기 때문임은 물론이다. 4년 전인 지난 94년 천수(天壽)를 다할 때까지 11년간이나 자신의 임무에 일로매진(一路邁進)했다. 비록 인구가 1,000여명밖에 되지 않는 작은 지역의 장이었지만 국제적인 명성까지 얻은 견공 읍장은 TV에 출연해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국제부장

격노한 유권자가 동물을 대표로 뽑은 실례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지난 59년 10월4일에는 브라질에서 코뿔소 1마리가 무려 5만표라는 압도적인 득표로 상파울루 시의회 의원에 당선된 적이 있다. 한낱 해외토픽 같은 얘기로 돌리기엔 그곳 주민들이 너무나 진지했다.

우리 유권자들은 심하게는 「식물국회」니 「뇌사국회」니 타매(唾罵)하면서도 여전히 차가운 이성보다 감성만 앞세우는 2중성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게 한계다. 여름잠을 자던 국회가 66일만에 시답잖은 국회의장을 뽑느라 진통을 치렀을 뿐 유권자의 뻥 뚫린 가슴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싸움박질만 하고 있는데도 한번쯤 분통을 터트리거나 『너희들끼리 잘 먹고 잘 살아라』 하며 냉소하는 것으로 그만이다. 그럴수록 주인인 국민의 뜻은 견공만큼도 헤아리러들지 않는 국회의원들만 은근히 즐길 뿐인 데도 말이다.

우리 정치인들은 이제 말로만 개혁하라고 다그쳐 봐야 어디 개가 짖느냐는 투가 된지 오래다. 타박하는 강도가 좀 거세지면 시늉만 하다가 마는 꼴도 진절머리가 나도록 잦다. 여기에다 대고 자율적인 정치개혁을 주문하는 자체가 소극(笑劇)이다. 개혁은 그만두고라도 제발 월급(세비)값이나 해달라고 애원조로 사정해야 할 판이다.

다만 한줄기 청량한 바람이 불기 시작해 후텁지근한 정치 무더위를 식혀줄 실낱같은 희망으로 바뀌지 않을까 일단 기대를 걸어보게 한다. 마침내 유권자들의 의분(義憤)이 극단적으로 분출하려는 조짐이 엿보이는 것인지도 모른다.

국회의원이 일하지 않은 기간의 세비를 가압류하고 의무를 다하지 않아 국민이 본 피해에 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낸 단체가 지금에야 등장한 것은 아쉬움이 있지만 때는 늦지 않다.

의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철저히 감시하고 점수까지 매겨 발표하겠다는 본격적인 시민감시단체가 나타난 것은 한걸음 더 나간 것으로 평가해도 좋지 않을까 싶다. 그것도 실직자들이 중심이 됐다니 전시용은 아닐 듯하다. 참여민주주의와 정치개혁을 위한 시민운동의 작은 싹을 우리는 소중하게 키워가야 할 때다.

하지만 그것으로 먹혀들 우리네 국회의원이 아니라는 것쯤은 누구나 눈치채고 있을 것이다. 막상 선거때만 되면 의정활동 성적은 표와 무관하다는 것을 국회의원들이 더 잘 알기 때문이다. 서글픈 것은 바로 이런 우리 유권자들이다. 막 움튼 시민운동의 싹이 반갑기 그지없으나 여기에 그쳐서는 수확은 기대난일 수밖에 없다.

심한 얘기일지 모르나 개만도 못한 국민의 대표를 혼내주기 위해서는 우리도 견공을 국회로 진출시키는 것과 흡사한 극단의 조치까지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다. 우리 유권자가 선거때만이 아니라 언제나 잊지 않아야 할 사실은 「정치인들은 유권자들의 엉성한 기억력을 먹고 산다」는 점이다.


Posted by 김학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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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07-15
한나라의 포괄적 건강상태를 단숨에 읽어내는 수단으로 증권시장을 능가하는 것이 없지 않을까 싶다. 정치·경제적 민심 감지에는 더욱 그렇다. 한결같이 경제적 위기에 시달리는 아시아국가들의 경우 외환시장을 추가하면 그만일 듯하다.엊그제 끝난 일본 참의원 선거결과에 대한 일본 국민의 생각도 주가와 엔화에 거의 그대로 투영됐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집권 자민당의 참패 직후 주가가 떨어지기는커녕 반등세를 나타냈다. 엔화 역시 초기엔 약세를 면치 못하다 회복세로 돌아섰고 하루가 지난 뒤엔 좀 더 강세로 접어들었다.

하루 이틀만 보고 모든 걸 판단하기 어려운 점도 부인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일본 정국은 단기적으로 여전히 불투명하다. 다만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총리의 사임 발표가 국민에게 기대감을 높여준 것만은 틀림없다.

물론 일본 정치와 경제의 함수관계가 외환위기로 말미암아 정권교체까지 이뤄진 다른 아시아국가들과 똑같다고 보기는 어렵다. 자민당의 참의원 선거 참패만으로는 당장 정권교체가 실현되는 것도 아니며 한때 세계 최고였던 일본의 경제나 정치상황이 외환위기를 겪고 있는 다른 나라들에 비해 양적으로나 질적인 면에서 모두 차이를 보이고 있는 탓이다. 보편성과 특수성을 동시에 가진 셈이다.

하지만 일본 선거결과가 주는 귀감(龜鑑)은 어느 나라에나 적용된다해도 무리가 아니다. 요즘처럼 개방사회에서 경제를 망치면 국민의 지지를 지켜내기 힘들다는 사실은 한국을 비롯해 태국,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에서 먼저 실감나게 입증됐다. 나라밖에서 인기가 있고 외교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국내 경제정책에서 실패하면 국민이 참을성을 보여 주지 않는다는 사실이 유감스럽지만 하시모토총리에게도 들어맞았다.

보다 중요한 것은 꼼수를 쓰거나 구렁이 담 넘어 가듯 하려는 정치 지도자가 깨어 있는 국민에게 통하지 않는다는 교훈이다. 이번 선거에서 뜨거운 감자 가운데 하나였던 이른바 「영구감세(永久減稅)」를 둘러싸고 하시모토총리가 보여준 2중적인 태도는 선거에 관심조차 없었던 「잠자는 유권자들」을 깨어나게 하는 정도를 넘어 격노(激怒)를 사고 말았다. 영구감세문제를 놓고 고민하던 하시모토와 자민당은 당초 선거 때만 얼렁뚱땅 넘겨 보겠다는 얕은 꾀를 썼던 것이다.

선거 막바지에서야 세 불리를 깨닫고 영구감세추진방침을 전격 발표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도리어 국민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진정한 경제개혁에 주저하는 하시모토의 내심을 꿰뚫고 있었다.

하시모토는 그런 민심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국민의 정치 무관심으로 인한 낮은 투표율이 자신에게 유리할 것으로만 알고 표를 오산(誤算)한 것에 다름 아니다.

일본 국민의 하시모토 후임에 대한 관심도 누가 참된 개혁노선을 갖고 있느냐에 쏠려 있는 것은 선거결과를 보면 너무나 당연하다. 일본보다 더욱 철저한 개혁이 절실한 우리나라 지도자들이 가장 눈여겨 봐야할 대목은 바로 이 부분이다.

더구나 요즘엔 정치에서도 「복잡계 이론」의 한 예인 「나비효과」가 거론돼야할 만큼 작지만 중요한 징후들을 알아채기는 힘들다. 남미에서 펄럭이는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북미대륙에서 태풍을 일으킬 수 있다는 나비효과가 과장이라고만 치부할 수 없고 보면 정치의 어려움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간다.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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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04-22
앨버트 고어 미국 부통령 부자의 선각(先覺)은 무릎을 치게 만드는 우연의 일치부터 우선 이채롭다. 그 성격은 다르지만 미국이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으로 온존하는 데 한몫을 하는 「고속도로」와 공교로운 인연을 맺고 있다. 고어 부통령의 아버지인 앨버트 고어 1세는 연방 상원의원으로 활약하면서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효율적인 고속도로망을 구축하는 일에 선구적인 역할을 했다. 미국의 자동차도로가 광대무변한 국토를 사통팔달하는 고속도로망으로 거듭난 것은 앨 고어 1세의 선견지명 덕분이라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1956년 제정된 미국의 「고속도로법」은 대부분 그의 남다른 생각에서 비롯됐다.

그런 아버지를 닮아선지 고어 부통령은 미국이 지난 93년 세계에서 처음으로 최첨단 「정보초고속도로」 건설을 추진하는 한편 방대한 「지구촌 정보초고속도로(GII)」 구축계획의 주역이 된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깜짝 놀란 일본과 유럽이 이에 뒤질세라 「아시아정보초고속도로(AII)」 건설을 위한 「신사회 간접자본 구축계획」과 「유럽 정보고속도로(TEN)」 구상을 각각 발표한 것은 말할 나위가 없다. 고어 부통령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지난 14일엔 현재의 인터넷보다 1,000배나 빠른 차세대 인터넷 구축을 진두지휘하고 나섰다. 미국의 야심은 정보화전략을 통해 21세기에도 세계의 헤게모니를 빼앗기지 않겠다는 것이다. 카를 마르크스가 오늘날 다시 태어났다면 「자본론」이 아닌 「정보론」을 썼을 게 자명하다는 유추전망까지 나올 정도이고 보면 정보화의 긴요성은 새삼 들출 필요가 없다.

고어 부자의 탁견(卓見)은 정치지도자들의 앞선 생각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실감나게 예증한다. 우리나라 지도자들이 이에 자극받아 흉내라도 낸 것까지는 그나마 다행이다. 지난 94년 김영삼 전 대통령이 2010년까지 초고속 국가정보통신망, 2015년까지 초고속 공중정보통신망 건설계획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김대중 대통령도 정보통신의 중요성을 누구 못지 않게 역설하곤 한다. 지난 주말 정보통신부의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45조원이라는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가는 우리의 계획은 경제위기로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는 처지다. 우리의 기술력과 자본력으로 정보선진국을 따라잡기는 지난(至難)해졌다. 정보화의 국제질서에도 마태(Matthew)효과로 불리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점점 짙어지고 있다.

더 큰 문제는 거기에 있지 않다. 우리 정부와 정치지도자들의 정보마인드에 대한 실상을 알고 나면 한숨이 나오다가 놀라 멈춰설 지경이다. 수십억원을 쏟아부어 어렵사리 구축해 놓은 정부청사의 근거리통신망(LAN)조차 컴맹인 장관과 고위공직자들 때문에 낮잠을 자고 있다는 실상이 밝혀진 게 바로 김대통령이 업무보고를 받기 직전의 일이다.

LAN을 활용하고 있는 곳은 주무부처인 정보통신부의 몇몇 부서에 불과하다. 어떤 부처는 설치후 단 한번도 전자결재에 이용한 적이 없다고 한다. 쓰지도 않는 애물단지에 드는 유지비만 수억원에 달한다. 말로만 정보화를 떠드는 국회의원들은 한술 더 뜬다. 홈페이지를 개설해 놓고 있는 의원은 전체의 5분의 1에도 못미치는 50여명에 그치고 있다. 이들 대부분이 2년전 15대 총선을 앞두고 만든 낡아빠진 홈페이지를 그대로 방치했다가 들통난 것 역시 바로 지난 주말이다. 「전자민주주의 연구회」라는 그럴 듯한 이름으로 포장한 뒤 「정보화시대를 앞서 간다」고 이미지 관리나 하려는 얄팍한 술책에 다름 아니다. 얼마전에 저명한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가 방한했을 때는 대통령부터 국회의원에 이르기까지 몇마디 대화를 나누고 증명사진이나 찍기에 바빴다. 그런다고 정보화가 절로 되는 것은 아니다. 고어의 얘기대로 정보화도 실행이 없으면 의미가 없다. 오늘 정보통신의 날을 맞아 정보입국(情報立國)과 전자정부 수립이 허울좋은 정치구호에 지나지 않는 우리의 현주소를 보노라면 씁쓸하기만 하다. 국제부장


Posted by 김학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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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04-08
역사에 길이 남는 건국엔 으레 걸출한 지도자와 그에 버금가는 1등공신이 존재하게 마련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신생국 가운데 모범생으로 일컬어지는 싱가포르의 발전과정에서 가장 흥미로운 인간관계는 리콴유 초대총리와 고갱쉬 전제1부총리다.

두 지도자의 관계는 찾기 힘들 만큼 특이하다. 그들은 함께 손을 맞잡고 나라를 일으켜세운 주역이면서도 인간적인 친근함은 나눠갖지 못했다. 1인자와 2인자 사이였던 두 사람은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부인 콰걱추를 제외하고는 리콴유의 행동을 제어할 수 있었던 사람은 고갱쉬가 사실상 유일했다.

고갱쉬는 다른 모든 사람들이 동의한 리콴유의 정책결정에 도전하거나 수정을 강요할 정도였다. 그렇지만 리콴유는 화를 내거나 무시하지 않았다. 그만큼 고갱쉬의 생각은 리콴유를 설득하고 남음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는 리콴유 총리의 대역을 할 때도 많았다. 그는 총리가 되고 싶었을 법하지만 결코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두 사람은 생각이 달랐지만 상호보완적인 장점을 살려 오늘날의 싱가포르를 일궈낸 것이다.

서독의 초대 총리였던 콘라트 아데나워와 2대 총리를 지낸 루트비히 에어하르트 초대 경제장관의 관계도 몇가지만 빼면 「리콴유와 고갱쉬의 사이」와 흡사하다. 아데나워와 에어하르트는 서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관계다.

특정정당에 속하지 않았지만 자민당 계열에 가까웠던 에어하르트를 끌어들이지 못했던들 기민당 소속의 아데나워가 정치적 입지는 물론 국부(國父)로 숭앙받지 못했을 것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아데나워는 「라인강의 기적」이 에어하르트의 작품으로 표상되는 것을 싫어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에어하르트가 자신의 후임자가 되는 것도 마지막까지 훼방을 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데나워는 경제문제만은 에어하르트에게 맡겨 철저한 역할분담을 했다. 실제로 에어하르트는 독일 경제부흥의 물꼬를 튼 획기적인 조치들을 독자적으로 취해 나갔다. 에어하르트가 만든 기민당의 경제강령을 아데나워는 손하나 대지 않고 받아들였다.

경제성장, 완전고용, 통화안정, 대외균형을 뼈대로 하는 이 강령은 오늘날 독일경제의 기틀로 면면히 이어져 오고 있다.

두가지 사례의 공통점은 한결같이 개인관계는 좋은 편이 아니었지만 일에서는 환상적인 상호보완 관계를 형성, 탁월한 업적을 남겼다는 사실이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 김종필(金鍾泌) 총리서리의 관계도 이들과 닮은 점이 적지 않다.

이념과 정치노선이 달랐던 두 사람이 정치적 목적에 따라 한 배를 타고 숙명적인 1인자와 2인자 사이가 된 것부터가 그렇다. 용어 자체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상황논리로만 따지면 지금은 「제2의 건국」이나 다름없는 노력이 필요한 때다. 새정부를 더불어 출범시킨 지 달포가 거의 다 된 시점에서 보면 두 지도자는 끊임없이 「협력적 긴장관계」를 이어가는 모습이다.

때로는 모양새를 갖춰주기도 하지만 엊그제까지 김대통령은 과거의 관례를 깨고 국무회의를 대부분 자신이 직접 주재하는 것을 비롯해 총리의 입지를 은연중에 압박하고 있다. 이에 맞서 김총리서리 역시 겉으론 예우를 하면서도 무언의 시위를 벌이곤 한다.

국민회의와 자민련의 세력확장을 둘러싼 신경전도 그 연장선상에서 파악된다. 국민이 관전하고 싶은 것은 이들의 개인적인 권력게임이 아니라 국정에서 얼마나 서로의 장점을 살려 나락에 떨어진 우리 경제를 다시 일으켜 세우느냐는 것이다. 「정치수완의 비밀은 역사속에 있다」는 윈스턴 처칠의 충고는 김대통령과 김총리서리에게도 통한다. 국제부장


Posted by 김학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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