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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톺아보기-칼럼

역사교과서의 왜곡·편향·자존망대

 

 미국에서 정직의 가치를 학생들에게 가르칠 때 자주 들려주는 일화의 하나가 ‘조지 워싱턴과 체리나무 이야기’다. 조지 워싱턴 초대 대통령이 어렸을 때 아버지로부터 손도끼를 생일선물로 받았다. 워싱턴은 정원에서 손도끼를 가지고 놀다가 아버지가 아끼는 체리나무를 잘라버렸다. 다음날 아침, 워싱턴의 아버지는 화가 잔뜩 나 “누가 체리나무를 베었느냐”며 범인색출에 나섰다. 한동안 아무도 얘기를 꺼내지 못했다. 워싱턴은 용기를 내어 고백했다. “아버지, 제가 실수로 체리나무를 잘랐어요.” 그러자 아버지는 워싱턴을 야단치기는커녕 칭찬했다. “조지, 내가 오늘 나무 한 그루를 잃었지만, 정직한 아들을 얻었구나. 네가 진실을 말하는 것이 나무 천 그루보다 더 소중하단다.”


  흥미로운 것은 이 에피소드를 활용한 실험 결과다. 캐나다 맥길대 발달심리학과 빅토리아 탤워 교수는 몇 년 전 아이들의 거짓말 줄이기 연구결과 보고서를 냈다. ‘늑대와 양치기 소년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을 때 거짓말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그냥 정직하게 말하라는 다짐을 받았을 때는 거짓말이 25%정도 줄어들었다. ‘조지 워싱턴과 체리나무’의 이야기를 들려주자 남자 아이의 경우 75%나 거짓말이 줄어들었고, 여자 아이의 경우엔 50%가 감소했다.


  ‘조지 워싱턴과 체리나무 이야기’는 위인전에도 실려 있지만 사실이 아니다. 미국 역사가들은 후대에 지어낸 얘기라고 한결같이 증언한다. 건국의 아버지인 워싱턴 대통령이 양심을 속이지 않는 인물이어서 어릴 때부터 착했다는 ‘신화’를 만들어내려는 의도가 담겼다고 학자들은 분석하고 있다. 워싱턴이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지역에는 체리나무가 없었다는 주장도 나온다.

                                                                                     

                                                                <논란이 일고 있는 교학사 역사교과서>

                                                    
  버몬트대 사회학 교수였던 제임스 로웬 박사가 미국 역사교과서 왜곡을 비판한 책 ‘선생님이 가르쳐준 거짓말’에는 한 여학생의 편지를 소개하고 있다. “내 학생 중 한 명이 체리나무를 자른 조지 워싱턴의 이야기를 배웠다고 편지를 보내왔다. 놀랍게도 이 학생은 ‘오랫동안 그렇게 소중하게 간직했던 이야기가 거짓말임을 훗날 알았다. 거짓으로 조지 워싱턴의 이미지를 심어주었던 어린 시절의 선생님에게 배반당했다는 쓰라린 감정을 가졌고 이전에 배운 모든 것에 의문을 갖게 됐다’고 이 여학생은 털어놨다.”


  우리 교과서는 북극 탐험에 가장 먼저 성공한 인물로 미국인 로버트 피어리라고만 써놓았다. 사실 북극을 밟은 첫 번째 사람은 피어리도 아니고 그의 조수인 아프리카계 미국인 매튜 헨슨도 아니다. 그들이 탐험 내내 의지해온 이누이트족 안내인 여성과 남성 네 명이다. 어느 교과서도 이들의 도움을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서구인 정복자만 기억하게 할뿐이다.


  국사편찬위원회 최종 검정을 통과한 뉴라이트 계열 저자들의 한국 역사교과서도 분칠한 영웅만들기와 왜곡·편향이라는 점에서는 그리 다르지 않다. 여기에 표절논란까지 곁들여져 온통 상처투성이다.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 지배와 친일 인사, 이승만 정권, 5·16 군사쿠데타 같은 친일·독재 미화는 ‘역사의 승자 논법’과 다름없다. ‘제주 4·3 폭동론’은 현 정부의 시각과도 배치된다. 국가권력에 의한 민간인 희생을 추념해온 정부 공식 입장과 달라 심각한 왜곡으로 받아들여진다.


  명백한 오류로 드러난 일본군 위안부 관련 기술은 이 교과서의 신뢰를 결정적으로 훼손한다. ‘식민지 근대화론’은 일본이 반색하며 표정관리에 들어가게 했다. 은근한 일본 언론 반응이 이를 입증한다. 영자신문 제팬 타임스는 지난 주 ‘한국 교과서, 일본의 식민 지배를 찬양하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이 기사는 ‘이 교과서가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통해 한국의 도시와 교통시설, 신교육을 받은 여성들의 등장 등으로 산업화가 이루어졌다고 기술했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일본의 식민지배가 한국의 근대화를 촉진시켰다는 이론에 근거하고 있다는 배경설명을 빼놓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을 소리높여 비판해온 우리 정부의 입장이 무색해 보인다.


  로웬 박사가 ‘왜곡된 역사에서 풍요로운 백인 어린이가 자신의 과거에 대해 편안함을 느끼기보다는, 불편하더라도 다문화적 역사를 올바로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 결론은 뉴라이트 계열 역사교과서 저자들에게 그대로 전해도 좋을 듯하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