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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톺아보기-칼럼

박 대통령, 클린턴을 닮아라

  불통·고집·독선 논란을 빚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의 임기 초반은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때와 닮은 점이 공교로울 정도로 많다. 필자가 워싱턴 특파원으로 일할 당시 백악관을 출입하면서 20년전 이 무렵에 썼던 기사와 취재노트를 들춰보면 박 대통령이 벤치마킹할만한 게 적지 않다.


  클린턴 대통령은 1993년 1월20일 취임하자마자 연이은 두 명의 법무장관 지명자 낙마, 백악관 여행담당 직원교체 번복 파문을 일으킨다. 클린턴은 자신의 호화 이발 추문, 동성애자 군입대 허용 논란 같은 개인 스캔들과 정책적 반발을 거의 동시에 불러와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인사실패 사례만 보면 박 대통령은 클린턴과 비교조차할 수 없을 만큼 사상 최대의 낙마 사고를 겪었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더욱 치명적인 것은 새 대통령과 언론 간의 전통적인 밀월기간이 사라진 점이다. 박 대통령이 그렇듯이 클린턴은 언론과의 불화를 자초한 데다 휘발유까지 끼얹었다. 40대 중반의 젊은 대통령은 갓 서른 한살인 조지 스테파노폴로스를 백악관 대변인으로 앉혔다. 혈기만 믿은 스테파노폴로스는 수십 년간 여러 대통령을 취재했던, 경륜 있는 출입기자들까지 ‘관리’하려 들었다. ‘대통령을 때려잡는 질문만 해댄다’고 여긴 스테파노폴로스는 브리핑 때마다 “아직 최종 결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며 앵무새 같은 말만 남발해 기자들의 화를 돋웠다.


  클린턴 자신도 기자들과 접촉을 꺼려 국민을 직접 상대하려 했다. 동성애자 입대 문제를 6개월간 연기한다는 사실을 발표하기 위해 클린턴이 취임 후 처음 백악관 기자실에 들렀을 때도 정식 기자회견이 아니라, 이 문제에 대한 질문 몇 개만 받고 퇴장해 버려 기자들이 외려 열을 받고 말았다. 클린턴은 회견 대신 ‘타운미팅’이라는 형식을 빌려 국민과 직접 대화하고 호소하는 전략을 썼다. 박 대통령이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원안 그대로 통과시켜줘야 한다며 비장한 얼굴로 대국민연설을 한 것과 흡사했다.

  야당인 공화당은 물론 여당인 민주당 안에서도 클린턴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졌던 일은 새누리당 간부들까지 박 대통령에게 쓴소리를 하는 지금의 상황과 비슷하다. 자연히 클린턴의 국정수행 지지율은 36%로 곤두박질할 수밖에 없었다.
                             

  궤도수정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한 클린턴은 체면과 자존심은 아랑곳하지 않고 독선과 고집·불통을 내려놓기로 마음먹었다. 가장 먼저 내린 결단이 백악관 홍보팀을 바꾸는 일이었다. 취임 100일 만에 자신의 의중을 전하는 ‘입’을 경질하는 것은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스테파노폴로스는 클린턴이 애지중지하며 대통령 집무실 바로 옆방까지 내줬던 인물이다.

 

  스테파노폴로스를 무임소 보좌역으로 돌리고 적군인 공화당 출신의 데이비드 거겐을 공보담당 고문으로 영입했다. 노련미를 자랑하는 거겐은 리처드 닉슨, 제럴드 포드, 로널드 레이건 등 3명의 공화당 대통령을 보좌했던 베테랑이었다. 클린턴이 선거기간 중에는 물론 취임 이후에도 강도 높게 비판했던 레이건의 경제정책을 국민들에게 ‘판촉’했던 인물을 자신의 1급 참모로 발탁한 것은 아이러니다.
                                                                                              

                                                                       <데이비드 거겐>

 

  출입기자들의 쌍수환영을 받은 거겐의 기용과 클린턴의 스타일 수정은 지지율을 끌어올리는 특효약이 됐다. 독선과 고집을 꺾고 소통하는 대통령으로 바뀐 클린턴은 재선에 성공한 것은 물론 40명이 넘는 역대 대통령 가운데 열손가락 안에 꼽히는 유능한 지도자로 평가받는다.


  박 대통령은 지난 주 여당 의원들과 가진 만찬 자리에서 “내가 불통이니, 소통이 안 된다는 건 다 유언비어”라고 말했다. 조윤선 여성가족부 장관은 바로 전날 박대통령의 불통 스타일을 “여성과 남성의 차이”라고 지원사격했다. 불필요한 해명은 변명으로 비치기 십상이다.

 

  정치는 사실 여부를 가리는 게임이 아니라 인식의 게임이라고 한다. 국민의 인식이 불통이라면 불통인 것이다. 실수를 인정하는 건 체면 깎일 일이 아니다. 밀리면 안 된다는 극우세력의 이상한 논리에 휘말리는 것이야말로 패착이다. 박 대통령은 클린턴이 고집을 버린 뒤 소통의 귀재가 되고,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성추문이라는 엄청난 악재를 극복하며 성공한 대통령으로 평가받은 까닭을 반드시 톺아보면 좋겠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