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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톺아보기-칼럼

신도 악마도 디테일에 있다

 

“신은 디테일에 있다.(God is in the details.)” 20세기 세계 최고 건축가 가운데 한 사람인 루트비히 미스 반 데어 로에가 성공 비결에 관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빼놓지 않고 하는 대답이다. 발터 그로피우스, 르 코르뷔지에와 더불어 근대 건축의 개척자로 꼽히는 로에는 볼트와 너트 하나까지 꼼꼼히 챙기는 설계로 명성이 자자했다. 아무리 거대한 규모의 아름다운 건축물이라도 사소한 부분까지 최고의 품격을 지니지 않으면 결코 명작이 될 수 없다는 게 그의 신념이다.

 

   르네상스 시대의 거장 미켈란젤로도 흡사한 일화를 남겼다. “이 부분을 손 보았고, 저 부분도 약간 다듬었으며, 여여기는 약간 부드럽게 만들어 근육이 잘 드러나게 했습니다. 입 모양에 약간 표정을 살렸고, 갈빗대는 좀 더 힘이 느껴지게 바꿨죠.” 미켈란젤로가 자세하게 설명하자 의뢰자가 이렇게 물었다. “그건 어디까지나 사소한 부분이잖아요.” 미켈란젤로가 답했다. “완벽함은 결국 사소한 부분에서 나옵니다. 완벽은 결코 사소한 문제가 아니지요.”

                                                                                           

                                      <6월9일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당국회담 실무회담에서 대표들이 악수하고 있다.>


 ‘신은 디테일에 있다’는 말에서 파생된 게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Devil is in the details)’는 협상 격언이다. 총론은 공감하지만 각론으로 들어가면 첨예하게 의견이 갈릴 때가 많다는 뜻이다. 오는 12일 서울에서 열릴 예정인 ‘남북당국회담’도 디테일에서 악마를 발견할 개연성이 작지 않다. 6년 만에 열리는 고위급회담인데다 그동안 남북 간 신뢰관계에 금이 가는 사태를 여러 측면에서 겪었기에 한결 그렇다. 9일 판문점에서 열린 실무접촉에서도 특유의 ‘밀당’(밀고당기기)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사실 남북관계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시지프스의 바위굴려올리기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바위를 산꼭대기까지 굴려 올려놓으면 예외 없이 다시 산 밑으로 떨어지는 형벌처럼, 남북관계는 정상 궤도에 오르는 듯하다가도 원래 자리로 돌아오는 것을 끊임없이 반복하고 있는 형국이다. 7·4 공동성명, 남북기본합의서, 북미 제네바합의, 남북정상회담과 6·15공동선언, 10·4 정상선언,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흐지부지된 6자회담 같은 예를 보면 그걸 절감하게 된다.


  그럼에도 우리는 시지프스처럼 끊임없이 바위를 굴려 올려야 하는 숙명을 지녔다. 실로 오랜만에 살린 대화의 불씨인 만큼 꺼지지 않도록 남북한 당국이 세심하게 관리해나갈 필요성이 절실해졌다. 관계악화의 상당부분이 북측에 책임이 있고 북한이 수세적인 국면에 처해 있지만, 우리 측이 사안에 따라 유연성 있는 전술을 보여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 장거리 로켓발사와 잇단 핵실험 같은 고비용 베팅이 북한에게 자충수로 작용한 면이 있지만, 대화국면에서 길들이기나 지나치게 압박하는 모양새는 지혜로운 전략이 아닐 수도 있다. 그동안 쌓인 현안을 짚어나게되 북한의 마지막 체면은 살려주는 슬기가 발휘되면 좋겠다.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 이산가족 상봉 등 북한이 제의한 의제 외에 핵문제와 천안함, 연평도 포격사건 같은 문제를 이번 남북당국회담에서 제기할 수는 있겠지만 별도의 회담이나 단계적으로 접근하는 방안도 고려해 볼만하다. 상대적으로 접점을 찾기 쉽고 화급한 개성공단 재개에 집중과 선택의 역량을 우선적으로 투입하는 방법도 검토함직하다. 금강산 관광재개는 장애물이 적지 않아 개성공단 문제보다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디테일은 명품을 만드는 요건이면서도 악마가 서식하기 좋은 적소이기도 하다는 점을 상기해 보면 고도의 전략이 요구된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성공신화를 쓰려는 박근혜정부는 ‘대관세찰’(大觀細察)하는 자세로 접근하려 할 게 분명하다. 크게 보되 작은 것도 세밀하게 살피는 전략이야말로 원칙적인 길이기 때문이다. 다만 디테일 속의 악마와 싸우느라 기회마저 날리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대화에 나선 북한의 궁극적인 의도는 좀 더 지켜봐야할 것 같긴하다.


   북한도 버릇처럼 남북관계의 선순환 구조를 허물어뜨리려 해서는 안 된다. 남북관계에서 더 이상 시지프스 신화나 악보의 도돌이표가 회자되지 않도록 예측불허의 국면을 조성하지 말아야 한다. 남북 관계와 대화는 논리의 싸움이 아니라 마음의 문제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