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리 알려지지 않은 고사성어 ‘노량작제’((魯梁作綈)는 오늘날 중국의 대외전략을 이해하는 열쇳말의 하나가 됨직하다. ‘노량작제’란 두꺼운 비단 옷감을 무기 삼아 노량 나라를 제나라 영토로 만들었다는 뜻이다. 참된 우정을 상징하는 ‘관포지교’(管鮑之交)의 주인공 가운데 한 사람인 관중(管仲)이 지은 책 ‘관자’(管子)에 나오는 일화다.
춘추전국시대 제나라의 환공(桓公)은 이웃나라 노량 땅에 잔뜩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 환공은 어느 날 재상 관중(管仲)에게 비책을 물었다. 관중은 전쟁 없이 노량을 차지하는 계책을 세워 아뢰었다. “우선 공께서 먼저 제견(두꺼운 비단 옷)으로 갈아입으신 후 신하들도 모두 입게 하십시오. 그러면 백성들이 따라 입게 될 것입니다.” 제견은 노량에서만 나는 특산품이었다. 관중은 그 뒤 노량의 상인을 따로 불렀다. “제견 1천 필을 가져오시오. 황금 3백 근을 주겠소. 앞으로 우리 제나라에서 제견의 수요가 엄청나게 늘어날 테니 그리 아시오.” 그러자 노량 나라 사람들은 신이 났다. 온 나라가 농사를 포기한 채 제견만 생산하기에 이르렀다.
<세계 1위 생산국 노르웨이산 연어>
1년쯤 지나자 관중이 환공에게 경과를 보고했다. “이제 됐습니다. 노량은 전하의 손에 들어온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제견을 벗고 얇은 비단옷을 입으소서. 노량과 교역도 끊으십시오.” 세월이 다시 열 달쯤 흐르자 노량에서는 온통 난리가 났다. 제견을 생산하느라 농사를 돌보지 않아 온 나라가 굶주리고 있었다.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던 제견은 쓸모없이 창고에 잔뜩 쌓였다. 제나라에서 10전밖에 안 하는 곡물이 노량에서는 1000전을 주고도 살 수 없었다. 2년 만에 노량 영토의 6할이 제나라로 넘어왔다. 3년을 버티다 노량의 임금이 직접 찾아와 항복하고 말았다.
세계 연어 생산 1위 국가인 노르웨이의 중국 연어 수출이 급감하고 있다는 최근 보도는 ‘노량작제’ 전략을 떠올리게 한다. 노르웨이가 2010년 노벨 평화상을 중국 반체제 인사 류샤오보(劉曉波)에게 주자 중국은 소리소문 없이 노르웨이산 연어 수입을 급격하게 줄였다. 노르웨이의 연어 수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2010년 92%에서 올 상반기 29%로 내려앉은 것은 중국의 정치적 보복조치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노르웨이와 중국이 몇 년째 진행해 온 무역 협상도 지지부진하다고 한다. 중국 국민과 소비자들이 이런 정치적 관계를 눈치 채지 못하고 있는 것도 노량작제 일화와 닮았다.
중국이 막강한 구매력을 정치적으로 휘두른 사례는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2008년 12월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를 접견하자 중국은 프랑스와 진행 중이던 에어버스 항공기 구매 협상을 중단해버렸다. 영국은 지난해 5월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가 달라이 라마를 국빈 대접했다는 이유로 중국으로부터 1년 가까이 경제·외교적 보복을 당하고 있다. 올 4월 예정됐던 캐머런 총리의 중국 방문이 무산된 것은 물론 경제적 손실이 줄잡아 13조원에 이른다는 영국 언론보도가 이를 실증한다.
중국은 필리핀과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이 일어나자 지난해 필리핀산 바나나 수입을 제한하는 방법으로 엄청난 타격을 가했다. 중국은 수출제한을 무기로 삼는 일도 적지 않다. 2010년 9월 동중국해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둘러싼 영유권 분쟁 때 일본이 중국 선원을 구금하자 중국은 일본에 대한 희토류 수출금지라는 경제적 압박으로 백기항복을 이끌어냈다. 최고지도자 덩샤오핑(鄧小平)이 생전에 “중동에 석유가 있다면 중국에는 희토류가 있다”고 했던 바로 그 자원이다.
유별난 중국이 아니더라도 현실세계에서는 정치와 경제가 밀접하게 연계되어 움직이기 십상이다. 지금 한·중관계는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국가주석 시대를 맞아 어느 때보다 밀월관계를 유지하고 있어 다행이긴 하다. 하지만 중국이 정치·외교·안보적 필요성 때문에 한국과의 경제관계를 이용할 수 있는 지렛대가 점점 길어지고 있는 점은 늘 잊지 않고 있어야 한다. 중국이 가벼운 기침만 해도 한국 경제는 독감에 걸리는 시대다. 노량은 코앞의 이익에 눈이 멀어 적국의 책략을 읽지 못해 나라까지 잃어야 했다.
이 글은 내일신문에 실린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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