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에서 ‘한 입으로 두말하기 없기’ 원칙만 지켜져도 걱정할 일이 획기적으로 줄어들 게다. ‘한 입으로 두말하기 없기’는 법률용어로 ‘금반언(禁反言) 원칙’에 해당한다. 신의성실 원칙의 한 갈래다. 소송에서는 자신이 이미 한 언행을 바꿀 수 없는 금반언 원칙이 엄격하게 적용된다. 국제법에서도 금반언 원칙은 중요한 요소다.


 말 바꾸기의 달인들이 모인 정치세계에서는 ‘내로남불’이 금반언 원칙을 쓰레기처럼 만들어놨다. 금반언 원칙의 훼손은 여야가 바뀌는 상황에서 특히 심각하다. 어느 쪽이든 야당 때 하는 말과 여당 때 하는 말이 180도 달라지는 경우다. ‘한 입으로 두말하기’의 문제는 남의 잘못을 지적하고 비판하더라도 지적자가 이미 똑같은 잘못을 저질러 진정성을 의심받게 된다는 점이다.


 최근 재정 건전성과 직결되는 국가채무비율이 논란거리로 떠오른 것은 대통령의 야당 대표 시절과 정반대되는 발언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코로나19 상황 이전인 지난해 5월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국가채무비율 40%의 근거가 무엇인가”라고 물으면서 정부의 건전재정 원칙을 뒤집었다. 올해 4차 추가경정예산을 기준으로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이미 43.9%다. 다음 정부 때인 2024년엔 이 비율이 58.3%까지 치솟을 것으로 전망된다는 느슨한 재정준칙을 기획재정부가 발표했다.

                                                                               


 문 대통령은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때 국가채무비율 40%를 넘어선 박근혜정부의 2016년 예산안을 가혹하게 비판했다. 당시 문 대표는 “국가채무비율이 사상 처음으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40% 선을 넘어 재정 건전성을 지키는 마지노선이 깨졌다”고 경고했다. 문 대표는 외환위기 속에서 출범한 김대중정부가 흑자로 전환해 노무현정부에 넘겼고, 노무현정부도 흑자재정을 만들어 이명박정부에 넘겼다는 점을 유독 강조했다.


 정치에서 ‘한 입으로 두말하기’는 특정 개인을 넘어 정당의 공식 입장도 해당한다. 국민의힘 전신인 미래통합당은 ‘현역병에 매달 2박3일 외박 제공, 예비군 동원훈련수당 5배 인상’을 4.15총선 ‘1호 공약’으로 내세웠다. 2018년 국방부가 병사 복지·병영 문화 개선 방안을 발표하자 당시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대변인은 “대한민국 군대를 수학여행 온 놀이터쯤으로 만들 것인가”라는 논평을 낸 바 있다.


 비리 의혹으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을 각각 탈당한 국회의원들을 둘러싼 비난 논쟁은 전형적인 내로남불 사례의 하나다. 비슷한 시기에 이상직·김홍업 더불어민주당 의원, 박덕흠 국민의힘 의원이 특권과 공정성 의혹에 휘말리자 소속 정당은 제 식구에게 관대한 태도를 보였다.


 당시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비리특권 수호경쟁이 점입가경”이라며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서로를 향한 내로남불 삿대질은 초록은 동색이란 것만 확인해 줄 뿐”이라고 꼬집었다.

                                                                        


 금반언의 원칙은 사회의 공정성과 직결되는 사안이다. 내로남불이 자신에게 관대하고 남의 잘못에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이중성이기 때문이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내로남불이 심각한 사회문제의 하나라는 조사결과가 나온 적도 있다.


 금반언의 원칙은 위선의 정치를 추방할 수 있는 수단이기도 하다. ‘한 입으로 두말하기’를 법으로 처벌하기란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럼에도 정치윤리적 제재를 검토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국회의원과 고위당직자, 행정부 고위공직자 등이 금반언의 원칙을 명백하게 어겼을 경우 중립적인 정치윤리위원회의 결정을 거쳐 주의나 경고 같은 윤리적 제재를 가하는 방법을 검토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정당의 금반언의 원칙 위반 사례도 마찬가지다. 그 결과를 유권자들이 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홈페이지에 낱낱이 기록하고, 언론이 보도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금반언의 원칙을 현저하게 어긴 정치인이나 고위공직자가 다음 선거에 나설 경우 선거관리위원회의 기록에 담는 것도 검토해봄 직하다. 정치인들의 속성으로 보면 실천에 옮길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들지만, 그만큼 중증을 앓고 있는 건 분명하다. 금반언의 원칙을 지켜 내로남불만 줄여도 선진 K-정치에 한걸음 다가설 수 있지 않겠는가. 국회 차원에서 금반언 원칙 선언이라도 나오면 좋겠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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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나무의 상징어는 ‘직절허심(直節虛心)’이다. 순서를 바꿔 ‘허심직절(虛心直節)’이라고도 한다. 속이 비고 곧아 절개가 있는 나무여서다. 대나무가 소나무와 더불어 송죽지절(松竹之節)의 짝을 이루는 것도 차디찬 겨울을 견디며 푸른 잎을 굳건히 간직하기 때문이다. 속이 빈 것은 헛된 마음을 버려서이고, 부러질지언정 굽히지 않는 건 정절을 지키기 위한 표상이다.


 겨우내 잎이 푸른 것은 고결한 기품을 잃지 않겠다는 각오로 읽힌다. 고산 윤선도는 ‘오우가’에서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 곧기는 누가 시킨 것이며 속은 어이 비었는가/ 저렇게 사계절 푸르니 그를 좋아하노라’라고 대나무를 상찬했다.


 대나무는 땅 밖으로 싹이 나기 전 땅속으로 먼저 자란다. 대나무 씨앗은 1년은커녕 2~3년이 지나도 아무런 소식이 없다. 그곳에 대나무가 있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릴 즈음, 5년째 되는 해에 딱딱한 땅을 뚫고 죽순을 내밀기 시작한다. 죽순을 틔우기 전에 4년 간이나 뿌리를 십수미터까지 뻗는다. 땅속의 영양분과 수분을 충분히 빨아올릴 수 있도록 촘촘하게 뿌리를 뻗어 나간다. 대나무밭에 다른 식물이 자라지 못하는 까닭이 여기 있다. 태풍이 불어도 쓰러지지 않는 바탕이 여기서 길러진다.

                                                                             


 죽순이 올라오기 시작하면 하루에 무려 30~65㎝씩 성장한다. 이렇게 석달이면 16~26m를 자란다. 약 5주 만에 울창한 대나무숲을 이룬다. 줄기와 잎을 만들기 훨씬 전부터 뿌리를 튼튼히 해놓은 준비성 덕분에 대나무는 가뭄이 심하고 맹렬한 추위가 닥쳐도 죽지않는다.


 대나무는 60~120년의 평생 단 한번 꽃을 피운다고 한다. 그것도 하루 만에 피고 곧바로 지고 만다. 대나무는 줄기가 시들어갈 무렵 꽃이 핀다. ‘대꽃처럼 귀하면서도 아픈 꽃이 없다’는 말이 생겨난 것은 이런 연유에서다. 생의 마지막에 후손을 위해 꽃대를 밀어올리고선 그 자리에서 모두 말라죽는다. 한 나무가 꽃을 피우면 너도나도 따라 한다. 같은 뿌리에서 나온 줄기는 나이에 상관없이 같은 해에 꽃을 피우고, 어느날 갑자기 대나무숲이 한꺼번에 사라진다.


 일생에 단 한번 피는 흰꽃이 지면 씨앗은 떨어져 땅속으로 들어간다. 엄마 대나무는 살아서 정성껏 광합성 작용을 해 자신이 쓰는 것이 아니라 훗날 아기 대나무를 위해서 땅속에 자양분을 저장해둔다. 성장속도가 보통 나무의 수백배에 이르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한번에 쑥쑥 자라나버리니 나이테도 없다. 대나무는 나이테가 없는 유일한 나무다. 대나무 줄기는 비어 있으므로 자신을 단단하게 보호한다. 중간중간 매듭을 짓고 자라기 때문에 강풍에도 쓰러지지 않는다. 사람도 성찰하면서 성장하고 발전해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

                                                                            


 ‘대쪽같다’는 말은 예부터 절개와 정절을 표상하는 인물에게만 붙여졌다. 부정과 불의에 타협하지 않고 지조를 지킨다는 뜻이다. 오랫동안 ‘원칙주의자’로 불렸던 국가 지도자는 어느새 스스로 설정한 정의와 공정의 원칙을 무너뜨리고 말았다는 비판을 비켜나지 못한다. 얼마 전 청와대에서 열린 제1회 청년의 날 기념식에서 ‘공정’이란 단어를 37회나 언급했지만,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시민이 더 많은 것 같다.


 법치주의의 보루인 검찰에서는 ‘대쪽검사’들이 사라지고, ‘애완견검사’ ‘어용검사’들로 채워졌다는 한숨소리가 들린다. 떡검(떡값 받는 검사), 섹검(성추행 검사), 벤츠검사, 스폰서검사, 정치검사 같은 말들이 상징처럼 됐던 시절을 벗어나는 듯하지만, 또 다른 수식어가 자리잡는다.


 ‘전관예우를 거부하고 로펌도 마다한 대쪽검사’로 소개됐던 검사는 여당 국회의원으로 변신했다. 권력에 휘둘리지 않는 ‘대쪽같은 공직자’라고 떠받들던 인물들은 축출대상으로 전락했다. ‘한국의 피에트로’(이탈리아의 추상같고 깨끗한 검사)라는 별칭이 붙는 청렴강직 검사는 검찰 역사서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이름이다.


 살아 있는 권력에 더 관대한 판결을 내린다는 의구심을 받는 사법부의 판사들도 ‘대쪽’이란 수식어를 그리워지게 한다. 지나치게 대쪽 같아서 악명이 자자했던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미국 연방대법원 판사의 타계 소식이 전해진 후 대쪽 법조인에 대한 그리움은 커진다. 민족 최대의 명절 한가위를 앞두고 문득 떠오른 단상이 ‘대쪽같은’ 공직자에 대한 그리움이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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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 좌파 철학자 베르나르 앙리 레비는 조 국 전 법무부장관이 좋아하는 지식인 가운데 한 사람이다. 레비는 대표작 ‘인간의 얼굴을 한 야만’에서 인간에 대한 사랑과 전체주의 비판을 바탕으로 한 ‘신철학’을 주창한 참여지식인이다.


 조 전 장관은 오래 전 한 칼럼에서 레비의 다른 저서 ‘그럼에도 나는 좌파다’의 제목을 빌려 좌파임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조 전 장관은 이 글에서 “설사 누가 나를 ‘좌파 부르주아’라고 부르며 폄훼할지라도, 나는 의식적으로 왼편에 서서 나의 존재에 대한 ‘배신’을 계속하고자 한다”고 다짐했다. 그는 장관 인사청문회에서도 “나는 사회주의자다”라고 했다.


 ‘우울한 좌파’라는 별명을 지닌 레비는 이 책에서 “오늘날의 좌파는 인권, 자유와 평등, 진보와 성장, 분배와 복지 등 좌파가 중시했던 가치를 잊어버렸다”고 슬퍼했다. 그는 이런 말로 자신이 속한 좌파를 통타했다. “불의가 아무리 사소하고 대수롭지 않을지라도, 혹은 그것을 바로잡는 데 아무리 많은 비용이 든다 할지라도 좌파에게 중요한 건 도덕이다.”

                                                                       

         
 여전히 진행형인 ‘조국사태’와 추미애 현 법무부장관 아들 군복무 특혜의혹을 다루는 진보정권과 팬덤의 행태는 레비를 소환하기에 충분하다. 두 전·현직 법무장관에 대한 무리한 옹호는 한국 사회의 정의와 상식의 기준을 파괴한다. 집권여당에서는 현직 법무장관 아들 의혹이 불거지면서 조 국 옹호 움직임까지 다시 일고 있다. 내년 당 대표 선거를 앞두고 친조국 표를 얻으려는 계산에서 나온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유력하게 나온다.


 지난달 나온 ‘조국백서’의 조 전 장관 옹호는 상식을 벗어난 것이라는 비판이 뒤따랐다. 조국백서는 조 국 딸의 입시 비리 의혹을 ‘견강부회’하기에 여념이 없다. ‘자녀 입시와 관련한 이 사건은… 사회적 연줄망 안에서 작동하는 우리 사회의 평균적 욕망 실현 방식과 비교하면 특별히 부도덕하다고 할 수도 없을 것이다.’ 사모펀드에 대해서도 이렇게 두둔한다. ‘재테크와 관련해서는 투자에 안목이 있는 친인척이나 지인, 하다못해 은행창구 직원의 도움이라도 받는 게 상식이다.’


 문재인정부 198명의 고위공직자 가운데 사모펀드에 가입한 사람이 조 전 장관 외에 왜 아무도 없는지는 무시해버린다. 고위공직자 비위를 감시하는 최고책임자 청와대 민정수석이 이처럼 무심해도 되는가 싶은데도 말이다. 필진은 조 전 장관이 오랫동안 설파하면서 명성을 쌓은 철학과 정반대의 논리를 펴면서도 부끄러움을 모른다.

                                                                       


 조국백서의 결정적인 위선은 개혁 인물에겐 잘못이 있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궤변적 발상이다. ‘예부터 지배세력 내 개혁 운동가들은 한편으로 자기존재 자체에 주어진 혜택을 받으면서 다른 한편으로 자기 존재를 부정하려는 이율배반적 면모를 보이곤 했다. 이런 존재와 의식의 불일치를 비난하면 개혁은 불가능하다.’


 추미애 법무장관 아들의 ‘군 휴가 미복귀’ 의혹사건은 “소설 쓰고 있네”라며 일축해온 장관 자신이 일을 더 키우는 부작용을 불러왔다. 뒤늦게, 그것도 페이스북을 통해 송구하다는 뜻을 밝혔지만 흠집난 도덕성은 회복하기 쉽지 않을 것 같다.


 이를 무마하려는 집권여당의 비상식적 벌떼 대응은 논리가 꼬여 도리어 사과하고 자책골을 넣는 희극을 낳았다. 공익제보자의 실명을 공개하고 범죄자로 매도하는 황 희 의원의 언행은 국회의원 자질이 의심스럽다는 역풍을 불러왔다. 박근혜정부 때 우병우 민정수석 아들의 ‘꽃보직 스캔들’을 일제히 비난했던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호위무사처럼 방어하는 모습이 희극 같다는 게 평범한 시민들의 반응이다.


 공교롭게도 정의와 공정을 주 업무로 삼는 두 전·현직 법무장관의 처신은 위법 여부를 넘어서는 도덕적 중대 사안이다. 국민의 평범한 삶에 좌절과 상처를 주는 특권과 반칙의 시대는 반드시 끝내겠다고 약속한 문 대통령의 다짐에 금이 가게 한 일이다. 소시민들은 여전히 법무장관 추미애의 공정과 정의는 무엇인지 물을 것이다.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는 “도덕성이 살아야 정의도 살 수 있고, 무너진 원칙도 다시 바로 세울 수 있다”고 했다. 여기에 뭘 덧붙인다면 사족이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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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에게 생색나는 개혁을 해보고 싶으면 몽골제국 칭기즈칸의 책사 얘기를 먼저 떠올려 보면 좋겠다. 촉나라 유비의 제갈량에 비견된다는 야율초재는 칭기즈칸의 셋째아들인 2대 황제 오고타이가 개혁 방안을 자문하자 명언을 들려준다. “한가지 이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은 한가지 해로운 일을 없애는 것만 못하고, 한가지 일을 만들어내는 것은 한가지 일을 줄이는 것만 못합니다.” “아버지가 이룩한 대제국을 개혁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없겠느냐”고 오고타이가 물은 데 대한 답변이었다.


 4.15총선에서 민주화 이후 유례없는 180석을 얻은 여권이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신임대표 체제 출범과 때맞춰 성찰할만한 지혜의 하나가 아닐까 싶다. 총선 이후 민주당과 문재인정부는 시간에 쫓기는 듯 개혁을 명분삼아 독주를 거듭해왔다. 국회 상임위원장을 독식하고, 부동산 법안을 비롯한 각종 의안을 일방 처리했다. 충분한 검토없이 통과된 개혁 법안들이 서로 모순되는 일이 벌어진다는 비판까지 받아 정당 지지율이 추락한 것은 업보였다.


 하지만 특정 교회와 8.15 광화문집회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이 확산해 지지율이 다시 반전되자 여당은 말 폭탄과 손봐야 할 특정인의 이름을 딴 법안을 쏟아내고 있다. 민주당 의원들은 ‘전광훈방지법’ 5건과 함께 ‘박형순금지법’까지 발의해 총공세에 나섰다. 정청래 의원은 재난으로 인해 피해를 보거나 피해 발생이 우려되는 사람에 대한 개인정보 제공 요청에 불응하는 경우 처벌 수위를 높이는 재난안전관리기본법 개정안을 냈다.

                                                                      


 김성주 이원욱 오영환 전용기 의원도 각각 감염병의 예방·관리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다. 사실 강화된 감염병 관련법은 얼마 전에 개정됐다. 최고위원 후보였던 이원욱 의원은 광화문집회를 허용한 판사를 ‘판새(판사 새X)’라고 비하하며 그의 이름을 딴 ‘박형순금지법’(집회시위법 및 행정소송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정청래 의원은 ‘가짜뉴스’(허위조작정보)를 보도한 언론사에 대해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시정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언론중재법 일부 개정안도 대표로 냈다. 언론·출판의 자유, 표현의 자유 침해 논란의 소지가 커 보인다. 모든 법안의 취지는 이해할 수 있지만 처벌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이다. 철학자 스피노자는 “법으로 모든 것을 규제하려는 것은 악덕을 교정하기보다 도리어 일으킨다”고 일침을 놓았다. 최종 통과할 확률이 높아 보이지는 않으나 정치적 함의는 분명하다.


 부동산 3법이 전격적으로 통과돼 시행되고 있음에도 부작용이 우려되자 민주당 의원들이 너도나도 새로운 보완법안을 쏟아내고 있다. 검토되지 않은 일부 부동산 대책 법안들이 ‘반헌법’ 논란을 빚자 김태년 원내대표가 “정책위원회 검토를 먼저 받으라”며 제동을 걸어야 할 상황이라고 한다. 개별 의원이 발의한 부동산 관련법들이 당의 공식적인 입장으로 보도되면서 시장에 혼란을 준다는 이유에서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끊이지 않는 논란성 언행과 검찰 인사는 검찰개혁의 목적을 점점 더 의심스럽게 만든다. 추 장관의 언행은 ‘인성’의 문제로 비약했다. ‘사람의 성품은 역경을 이겨낼 때가 아니라 권력이 주어졌을 때 가장 잘 드러난다’고 한 에이브러햄 링컨의 철언을 입증하듯이 말이다. 민주당 대표를 지낸 추 장관의 처신은 편파수사 지침을 광고하는 것이나 다름없어 보인다.


 정부가 추진 중인 공공의과대학(공공보건의료대학) 문제도 시기와 공정성 시비를 낳는 신입생 선발 요강 의혹 등으로 선의(善意)를 훼손한다. 의료계의 이기주의가 비난받아 마땅하더라도 이를 여론전으로 손보려고 의도적으로 코로나19와 사투를 벌이는 시점을 택한 게 적절했는지 생각해 볼 여지가 있는 것 같다.


 만리장성 축조보다 어려웠다는 거대 토목공사 싼샤댐의 설계자 장샤오형은 극심한 반대를 고마워한 것으로 널리 알려졌다. 그는 1997년 싼샤댐이 완공됐을 때 “반대한 사람이 없었다면 위대한 일을 결코 이룰 수 없었을 것이다. 반대파들이 집요하게 반대했기 때문에 완벽하게 완성할 수 있었다”고 했다. 촛불정부의 상당수 개혁정책이 자부심과 달리 삐걱거리거나 부작용이 만만찮은 까닭을 찬찬히 곱씹어보면 좋겠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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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하는 국회’를 표방한 21대 국회에 첫발을 들여놓은 초선의원들의 ‘처음’은 명암이 엇갈린다. 몇몇 야당의원들은 낡은 관행을 깨고 산뜻한 바람을 일으켰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이나 열린민주당 소속 초선의원들은 심상정 정의당 대표의 표현처럼 ‘거수기’라거나 정부 방패막이라는 조롱을 들어야 했다. 심 대표는 임대차 3법 처리 과정을 보면서 “초선의원 151명(전체의 과반)이 처음으로 경험한 임시국회 입법과정에서 여당 초선의원들은 생각이 다른 야당과 대화와 타협보다 힘으로 밀어붙이는 것을 배우지 않을까”라고 쓴소리를 냈다.


 조정훈 시대전환당 의원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조정훈 의원만큼만’이라는 상찬을 얻을 정도로 ‘지극히 당연한’ 신선미를 풍겼다. 범여권인 더불어시민당 소속으로 당선한 조 의원은 문재인정부의 핵심 정책인 ‘한국판 뉴딜’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조정훈 의원>

  그는 한국판 뉴딜의 일자리가 ‘쓰레기 같다’며 예의를 갖춰 경제부총리를 몰아붙였다. 국무총리에게도 목청을 높이지 않은 채 ‘8월 17일 임시공휴일’이 중소기업 직원, 일용직에는 실효성이 없다고 따져 갈채를 받았다. 조 의원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호칭 혁명’을 단행해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보좌관들에게 ‘의원님’ 대신 ‘정훈님’이라고 부르게 한 것이다. 호칭을 수평적으로 바꾼 것은 특권 누리기에 여념이 없던 국회 관행을 부수는 첫걸음과 같다.

                                          
 윤희숙 미래통합당 의원의 국회 본회의 5분 발언은 ‘따라하기 증후군’을 낳았다. 윤 의원의 연설은 저격수로 명성을 날리는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통합당이) 이제야 제대로 한다”고 칭찬했을 만큼 독보적이다. 야당이면 무조건 목소리를 높여 장관들을 강하게 몰아붙여야만 잘한다는 게 지금까지의 틀이었다. 그의 견해가 정답이냐는 논란이 있으나 색깔론과 막말 없이도 논리적이고 호소력 있게 정부 정책을 비판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21대 국회 최연소 류호정(28) 정의당 의원은 ‘국회 복장 관례’를 깨부순 공로가 작지 않다. 사실 류 의원이 붉은색 계통 원피스를 입고 국회 본회의장에 나온 게 국회 권위에 맞지 않는다며 비난을 퍼부은 민주당 지지자들은 그의 ‘박원순 전 서울시장 조문 불가’ 발언에 대한 불만을 겨냥한 것이었다. 그는 일반인들의 출근복인 청바지 차림으로 등원하기도 했다. 국회 안에선 남성 중심의 국회 관례에 경종을 울렸다는 걸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분위기다. 의원 배지를 거의 달지 않고, 사무실에도 보좌관들보다 먼저 나온다. 첫 법안으로 ‘비동의(非同意) 강간죄’ 발의 준비를 마쳤다고 한다.

                                                                    

<윤희숙 의원>


 이들과 달리 조 국 전 법무부 장관을 옹호하는 이른바 ‘조 국 키즈’ 초선의원들은 윤석열 검찰총장 퇴출이나 추미애 법무부 장관 호위대 같은 언행으로 시선을 끌었다. 최강욱 열린민주당 의원은 대정부 질문 때 추 장관을 향해 “연일 노고가 많으신데 저까지 불편을 드려 송구하다”라고 했다.


 최 의원은 추 장관의 ‘법무부 공지 사전유출’ 사건으로 제2국정농단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그는 당선 일성으로 “세상이 바뀌었다는 것을 확실히 느끼도록 갚아주겠다”고 검찰과 언론에 으름장을 놓았다. 김남국 민주당 의원은 법사위에서 통합당 의원들이 추 장관에게 공세를 펴자 “예의를 갖춰 질문하라”며 ‘호위’ 역할을 자청했다. 김용민 의원도 흡사했다.
 이소영 민주당 의원은 경제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통합당을 공격해 ‘정부 호위대’ 논란을 일으켰다. 이 의원이 행정부를 견제하고 감시하기 위한 대정부 질문 취지와 다른 발언을 이어가자, 고성과 삿대질이 오가며 본회의장이 난장판이 됐다. 김상희 국회부의장까지 나서 “대정부 질문에 맞는 질의를 해달라”고 요청했을 정도다.


소주 ‘처음처럼’은 글씨 저작권자인 진보지식인 신영복 선생보다 훨씬 대중적으로 됐다. ‘우리 시대의 스승’이란 수식어가 붙은 고 신영복 성공회대 교수는 “서민들이 즐기는 대중적 술에 내 글씨가 들어간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다”라면서 선뜻 브랜드 이름 사용을 승낙했다. 선생은 ‘처음처럼’이란 잠언집 ‘여는 글’에서 수많은 ‘처음’이란 결국 끊임없는 성찰이라고 했다. 거대여당 독주라는 따가운 시선을 받는 것도 모자라 새내기 의원들까지 더 낡은 행태를 보이는 것은 환골탈태를 내세운 국회를 무색하게 만든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


Posted by 김학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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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수만 하고 끝나는 G7, G20 정상회의는 그만두고 경제성장과 민주주의를 동시에 이룬 10개 나라 회의체 D10(Democracies10)으로 바꿔라.’ 2013년 미국 일간지 월스트리트저널과 시사주간지 타임이 잇달아 이런 주장을 들고나왔을 때는 그리 주목받지 못했다. 그때 D10은 미국 독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캐나다 일본 호주 한국에 유럽연합(EU)을 포함한 것이었다. 한국이 회원국으로 언급됐으나 당시 박근혜정부나 한국 언론은 관심을 두지 않았다.


 월스트리트저널은 그해 6월 북아일랜드에서 열린 G7+러시아 정상회의를 앞두고 ‘G8은 잊어라. 이제는 D10시대’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G8보다 더 단단한 민주주의 동맹체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정치·경제적 갈등이 혼재하는 G8이 한계에 봉착했다는 이유를 댔다. 타임은 그해 9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직후 D10 회의체를 제안했다. 경제 규모와 민주주의 성숙도에서 격차가 큰 G20은 화급하고 민감한 정치·군사적 국제 현안에 대해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실패를 반복한다는 게 대안의 사유다.

                                                                   


 7년 전 조명받지 못하던 D10의 실현 가능성에 한층 무게가 실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오는 9월로 연기된 G7 정상회의에 한국 호주 인도 등을 초청하고 싶다는 뜻을 천명한 게 첫번째 계기가 됐다. 폼페이오 장관도 23일 캘리포니아주 리처드 닉슨 대통령 도서관 연설에서 ‘생각이 비슷한 민주주의 국가들의 새로운 동맹체’가 필요하다는 점을 역설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D10을 직접 말하지는 않았으나 D10 구성의 필요성을 주창해온 지도자들과 언론의 논리를 그대로 들고나왔다.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는 지난달 ‘G7은 잊어버리고, D10을 만들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 책임 공방, 홍콩 국가보안법 갈등, 중국의 소수민족 인권 탄압 등 현안에 대해 G7과 G20이 아무런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들었다. ‘D10은 민주주의의 가치와 세계평화에 대한 신념을 공유하는 신뢰 동맹체여서 새로운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내다본 것은 7년 전의 주장과 거의 같다. 다른 점은 회원으로 EU 대신 인도가 들어간 것이다.


 이보다 앞서 존슨 영국총리는 지난 5월 말 중국 화웨이를 대신하는 5세대 이동통신(5G) 장비 공급업체를 찾기 위해 ‘D10 동맹’ 구성을 제안했다. 영국이 주도하는 5세대 이동통신용 D10은 기술적인 협의체이지만, 공교롭게도 트럼프 대통령의 G7 추가 초청 발언과 같은 날 발표돼 사전 교감이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무성하다. D10은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누가 당선하든 상관없이 진전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이미 7년 전부터 한국이 D10 회원국으로 거론된 것은 종합적인 국력 평가에 바탕을 두고 있음이 분명하다. 세계 대국이 되기 위한 3가지 필수요소로 생존력, 발전력과 더불어 국제적 영향력이 꼽힌다. 머지않아 한국은 선택의 순간을 맞아야 한다. 세계 주류 정치의 흐름을 타지 않으면 퇴보를 각오해야 한다. 글로벌 차원의 경쟁력은 동맹체를 떠나서는 축적되기 어렵다. 한국을 포함한 G7 확대 개편에 일본이 견제구를 던지고 있으나 끝내 막지는 못할 게다.


 한국의 고민은 D10이 궁극적으로 민주국가 진영의 중국 견제를 지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포린폴리시는 D10이 반중국전선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으나 미국의 속내는 이미 드러나 있다. 폼페이오 장관은 “새로운 민주주의 동맹이 중국 공산당의 패권 전략에 맞서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의 급격한 부상으로 세계는 이미 ‘경제 냉전’으로 접어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계적인 경제학자 그레고리 맨큐 하버드대 교수가 말하는 경제 제1법칙은 ‘모든 선택에는 대가가 따른다’는 말이다. 중국은 이미 반(反)화웨이 전선에 대응해 맨큐의 제1법칙을 경고장에 담았다. 5G 선택도 국가 간 문제를 배제할 수 없지만, 세계 최고 지도자들의 회의체인 G7과 G20을 대체하려는 D10은 차원이 다르다.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을 선택할 수 있는 만만한 카드는 없다. 국익을 사안별로 나눠 원칙을 정해 일관성 있게 대응하는 방법이 가장 현명할지도 모른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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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권과 시민운동의 상징이 맞은 비극적인 결말은 지독한 아이러니다. ‘박원순’이라는 이름은 인권과 시민운동을 빼놓고 호명할 수 없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인권변호사로 첫발을 내디뎠다. 암울하고 참담했던 1980년대 인권변호사로서 부천경찰서 권인숙 성고문, 박종철 고문치사 같은 야만적 인권 유린 사건의 피해자 변론을 맡아 민주주의 수호에 앞장섰다. 참여연대·아름다운재단·희망제작소 같은 시민단체를 주도적으로 세워 시민운동의 씨앗을 뿌리고 가꾼 것도 박원순의 몫이었다. 낙천·낙선 운동, 소액주주 운동을 비롯한 혁신적 프로그램은 시민운동의 차원을 높이고 영역을 넓혔다. 3차례 연임한 서울시장으로서도 균형발전 도시재생 복지 등 실질적인 생활 행정으로 승화시켰다.


 무엇보다 그는 평생토록 여성 인권 옹호자로 기억돼왔다. 1993년 한국 1호 성희롱 사건인 ‘서울대 신모 교수의 우 조교 성희롱 사건’의 무료 변론을 맡아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이 사건은 성희롱도 명백한 범죄행위임을 각인시킨 한국 최초의 직장 내부 성희롱 소송으로 유명하다. ‘성희롱’(sexual harassment)은 저명한 페미니스트 법률가 캐서린 매키넌 미시간대 로스쿨 교수가 1979년 만든 새로운 개념이다. 박 변호사는 이후에도 여러 성폭력 사건을 맡아 피해자를 도왔다.


 서울시장 재임 때도 모든 정책을 성평등 관점에서 추진했다. 스스로 “감히 페미니스트라고 자처한다”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 그런 그가 지방정부 가운데 최초로 성평등위원회를 설치한 것도 전혀 이상할 게 없다. 모든 예산에 성인지적 시각을 반영하고, 성평등 관련 조례를 제정했다. 2019년 1월에는 성평등 문제를 보좌하는 ‘젠더특보’를 시장실 직속으로 신설하기도 했다.

                                                                          

   
 놀라운 반전에는 이처럼 여성 인권을 역설하고 실천해온 자신의 삶이 송두리째 부정될 수 있다는 중압감이 작용하지 않았을까 싶다. 추측에 불과할 뿐이지만, 삶의 마지막 장면에서 성추행 고소 사건이 불거졌기 때문이다. 그의 발자취가 부정적 이미지로만 덧칠되는 것은 안타깝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와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추행 사건에 이은 지방정부 수장의 의혹이어서 부가적인 파장과 정치적 논란을 낳는다. 올곧게 살아왔다고 여긴 박 시장마저 성적 가해자로 지목되면서 남성 고위공직자의 ‘성인지 감수성’이 또다시 숙제를 남겼다.


 전직 비서였던 여성이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 혐의’로 고소한 일로 말미암아 흔히 일컫는 ‘권력형 위력’에 초점이 모인다. 절대적 인사권을 가진 지방자치단체장의 위상과 잇단 성추행 사건이 결코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 꾸준히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성범죄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졌음에도 지자체장들의 잇따른 일탈이 막강한 권력에서 비롯된다는 진단은 정치권 모두가 새겨들어야 한다. 공교롭게도 진보 진영으로 분류되는 인사들이 잇달아 연루되는 현상에 대한 성찰은 필수불가결하다.

                                                                      


 한국의 50~60대 남성들, 특히 갑의 위치에 있는 이들이 사회적 빨간불을 심각하게 내면화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부쩍 유행어처럼 등장한 ‘성인지 감수성’이라는 용어를 귀담아듣지 않거나 무슨 의미인지 모르는 이들이 적지 않다. 권한이 막강한 모든 선출직 공직자에게 ‘성인지 감수성’을 높일 수 있는 ‘성평등과 인권교육’을 필수과목으로 지정해 봄직하다. 이미 대학에서는 몇년 전부터 누구든 ‘성평등과 인권교육’을 해마다 반드시 이수하고 정해진 시험 점수를 받아야 한다. 성평등 인권교육 프로그램을 보면 기성세대들이 체감하지 못하는 현실까지 생생하게 감전된다.


 시대변화는 개인의 도덕성과 윤리의식에만 맡겨 놓을 단계를 넘어섰다. 정부나 정당에서 부적절한 성적 언행을 눈감아주는 행태도 중지돼야 한다. 상징적인 인물이 추문에 휘말리면 피해자를 비난하는 2차 피해가 확산하는 현상도 본질을 흐리는 요인의 하나다.

 

  일부에서 “여성 비서를 고용하지 말자”면서 ‘펜스룰’(Pence Rule)을 들먹이는 것도 편견을 부추긴다. ‘펜스룰’은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 하원의원 시절 “아내를 제외한 여성과 단둘이 식사를 하지 않고, 아내 없이는 술자리에 가지 않는다”고 천명한 데서 유래했다. 성인지 감수성 결여의 피해자는 여성과 남성을 가리지 않는 세상이 됐다. 성별과 관계없이 모두가 평등하게 일할 수 있는 여건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여성과 무작정 거리를 두려는 것은 또 다른 차별이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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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류가 출현하기 오래 전 공룡은 지구상의 최고 포식자이자 지배자였다. 4.15 총선으로 정치권의 공룡이 된 더불어민주당은 21대 국회 초반부터 무한질주 욕망을 제어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개헌을 빼곤 뭐든지 할 수 있는 무소불위의 힘을 지녀 ‘거칠 것 없다’는 걸 실증하려는 듯하다.


 공룡 민주당은 53년 만에 단독 국회 개원을 강행한 데 이어 눈엣가시 같은 검찰총장 몰아내기의 이빨을 드러내 보였다. 윤석열 검찰총장 내치기에는 설 훈 최고위원이 지난 19일 먼저 총대를 멨다. “제가 윤석열이라고 하면 벌써 그만뒀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버티고 있겠느냐”는 설 최고위원의 언설은 민주당 지도부 최초의 노골적인 사퇴요구다. 설 최고위원은 윤 총장 임명 당시에는 “(윤 후보자가) 돈이나 권력에 굴할 사람이 아니다. 검찰총장으로서 적임자다”라고 했다.


 윤석열 압박에는 김종민 김용민 신동근 의원 같은 민주당 국회 법사위원들도 가세했다. 한명숙 전 국무총리 진정 사건 처리 과정에서 윤 총장이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지시를 어기고 재배당한 것을 빌미로 삼았다. 법사위가 열리면 윤석열을 가장 먼저 부르겠다는 언명도 가만히 두지 않겠다는 으름장과 같다. 앞서 황희석 열린민주당 최고위원도 비슷한 주장을 펴며 지원사격에 나섰다. 더불어시민당 공동대표를 지낸 우희종 서울대 교수는 더 적나라하다. 그는 “눈치가 없는 것인지, 불필요한 자존심인지”라며 사퇴를 다그쳤다.

                                                                         


 내년 7월까지 보장된 검찰총장의 임기가 여권에는 참기 어려운 1년 같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일 살아있는 권력 측근들에게 거침없이 칼날을 들이댄 미국 연방 뉴욕 남부지검장을 끝내 내친 게 응원 깃발로 다가올지도 모른다.
 민주당이 윤 총장을 찍어내려는 것은 신속한 검찰개혁 의지와 맞물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검찰개혁 과제 가운데 하나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출범을 순조롭게 하려면 걸림돌 같은 윤 총장의 퇴진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정권에 불리한 수사에 나서자 박근혜정권이 채동욱 검찰총장 찍어내기에 나선 때를 연상케 한다.


 윤석열을 강제로 도중하차시키는 것은 문재인정부에 부메랑이 되기 쉽다. 득보다 실이 크다는 뜻이다. 이미 인사로 윤 총장의 손발을 잘라낸 상태라 검찰은 머리카락 잘린 삼손과 다름없다. 그나마 윤석열의 이름만으로도 문재인정부의 도덕성을 지켜준다는 상징성을 지닌다. 힘 빠진 보수야당은 윤석열이 사퇴하면 조국사태, 윤미향 회계부정 의혹,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등이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고 공세를 편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야당이 법사위원장을 맡아오던 관행을 깨고 민주당이 가져온 속내가 다른 곳에 있다는 관측이 많다. 정권 말기 불거질 권력형 비리를 미리 관리하려는 게 아니냐는 의심마저 나오는 정황이 있기 때문이다. 역대 대통령들은 임기말 혈육이 검찰수사를 받았으나 모두 감수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둘째 아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세 아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친형이 검찰수사로 처벌을 받았지만 검찰총장을 건드리지 못했다. 문재인정부는 대통령 혈육이 아닌 우군 비리 수사도 견디지 못한다는 따가운 시선이 사라지지 않는다.

                                                                          


 1948년 제헌국회 이후 처음인 국회의장단 단독 선출에 이어 여야합의 없이 상임위원을 배정하고 상임위원장 선출을 강행한 일도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일하는 국회’를 더 늦출 수 없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민주주의가 빠진 민주당’이라는 비판에 항목 하나를 더 추가한 꼴이다.


 고위공직자 비리를 더 공정하게 수사하고 처벌하기 위해 설치한다는 공수처도 살아있는 권력에 면죄부를 주고, 검찰과 법관들에게는 재갈을 물리려 한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언행들이 이어진다. 진보진영의 원로들이 요즘 부쩍 경고의 목소리를 내는 까닭을 흘려들어선 안된다.


 쪼그라든 보수야당은 공룡 여당의 발목을 잡고 싶어도 동물국회로 돌아가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 선거에 대패한 보수야당이 발목을 잡을 수도 없어 공룡 여당의 무한책임만 남았다. 최근 출간된 ‘완전히 새로운 공룡의 역사’의 인기 저자 스티브 브루사테는 “공룡의 진화와 멸종 연대기는 인류를 비추는 거울이며 기억해야 할 교훈이 있다면 ‘겸손’이다”라고 했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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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뉴욕주에 살았던 원주민 이로쿼이 부족 연맹은 중요 정책을 결정할 때마다 7세대 후손을 기준으로 삼았다. 한 세대를 30년으로 잡으면 7세대는 210년이다. 먼 장래를 내다보는 계획을 일컫는 백년대계와 비교해도 차원이 다르다. 지금의 결정이 향후 7세대 후손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를 먼저 검토해야 한다는 ‘7세대 원칙’(Seventh Generation Principle)은 이로쿼이 연맹의 독특한 지혜로 회자한다.


 이로쿼이 연맹 헌법은 미국 헌법에 지대한 철학적 영향을 미쳤다. ‘모든 사람은 평등한 권리를 갖는다’는 미국 헌법의 무계급사회 개념은 유럽에서 유입됐을 것이라는 선입견과 달리 이로쿼이에서 본떴다고 한다. 이로쿼이 헌법은 남녀노소, 지위고하, 심지어 동식물을 막론하고 모든 생명의 평등을 주창한 게 특징 가운데 하나다.


 미국 독립선언서를 기초한 토머스 제퍼슨과 벤저민 프랭클린은 견제와 균형의 원리, 선출된 대표를 갖는 것이 이로쿼이족의 민주정부 모델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회고록에 썼다. 특히 프랭클린은 이로쿼이족 특유의 ‘공동주택’에 오래 머물면서 이들의 생활상에 감명을 받아 미국 헌법을 만들 때 참고했다고 한다. 미국이 여러 주를 연합한다는 발상도 모호크 카유가 세네카 오네이다 오논다가 투스카로라 등 6개 부족으로 이뤄진 이로쿼이 연맹으로부터 빌려왔다고 미국 독립의 아버지들은 기록했다. 이로쿼이가 연맹이었기 때문에 이를 잘 운영하려면 지혜로운 규율과 법이 필요했다.

                                                                     


 이로쿼이 연맹은 믿기 어려울 만큼 세련된 정치체제를 지녔다. 부족 전체 일을 관장하는 평의회, 부족들의 연맹을 관장하는 대의회가 존재했다. 의회의 구성원들은 모두 민주적인 절차로 뽑혔다. 모계사회인 이 부족은 남성 추장 해임 여부를 결정하는 권한을 여성이 가졌다. 정치는 남성들이 했지만 거부권과 탄핵권은 여성들이 가진 셈이다. 연맹에는 여성과 남성, 2개의 젠더가 아니라 3~5개의 젠더가 있었다고 한다.


 이로쿼이 정신에 비하면 한국의 현실은 미래세대에 빚 남기기와 짐 떠넘기기 경쟁을 하는 듯하다. 임기 5년의 정권쟁취와 지키기만 골몰하는 게 한국 정치권의 참모습 같다. 21대 총선에서 돈의 위력을 실감한 여야가 너나없이 돈 쓸 일만 궁리하고 후손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갈 나랏빚 문제는 그리 걱정하지 않는 분위기다. 외려 국가채무비율이 다른 선진국에 비하면 아직 건전하다면서 더 많이 쓰는 걸 부추긴다.


 일찍이 지자체 단체장들이 제기했고 총선에서 참패한 보수야당이 맞장구치는 기본소득 논의는 언젠가는 검토해야 할 정책이긴 하다. 하지만 돈이 나올 곳에 관한 얘기는 전혀 없다. 국민 주머니에서 나올 세금을 대폭 올리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보다 더 잘사는 선진국들이 몰라서 먼저 도입하지 않는 건 아니다. 세금인상만큼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도 없다. 미국의 조지 W. 부시(아버지 부시) 전 대통령은 재임 기간 중 어떤 형태의 증세도 하지 않겠다고 공약했다가 이를 어겨 흔치 않게 재선에 실패하고 말았다.

                                                                              


 7일 발표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는 한국의 구조적 재정수지가 그리스에 이어 두번째로 빠르게 나빠지고 있다는 경종을 울렸다. 한 나라의 재정건전성을 측정하는 관리재정수지도 2001년 관련 통계가 작성된 이후 역대 최대 적자 규모인 112조원을 기록할 전망이다. 코로나19 영향으로 불가피한 면이 있으나 효율적인 나랏돈 쓰기가 절실함을 보여준다.


 국민이 부담해야 하는 공무원·군인연금 부채만 해도 정권마다 폭탄 돌리기에만 급급할 뿐 미래세대의 부담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불과 4년 만에 200조원 넘게 불어나 940조원을 넘어섰으나 선거 표 계산에만 신경을 곤두세운다. 저출산으로 인구가 급격히 줄어드는 것과 반비례해 공무원·군인연금 지급액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에 따라 2022년까지 공무원 17만4000명이 증원되면 설상가상이다. 하지만 정치인들은 자신의 임기 중이나 다음 선거 때까지만 국민의 환심을 사면 그만이라고 생각한다.


 미래세대에 빚을 무더기로 떠넘기는 것은 무책임을 넘어 죄를 짓는 일이다. 무슨 일을 하든 210년 뒤의 후손들에게 피해가 될지를 먼저 생각했다는 이로쿼이 부족의 혜안을 몇분의 일만 생각해도 좋겠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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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최대의 자선기금 단체이자 공동모금회의 원조(元祖)인 유나이티드 웨이(United Way)는 133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모범 공익단체이지만 대표 비리 혐의로 한때 엄청난 아픔을 겪었다. 1990년대 초반 윌리엄 아라모니(William Aramony) 회장의 공금 유용, 호화 씀씀이, 고액 연봉 등이 탄로가 나 미국 사회가 발칵 뒤집혔다.


 아라모니는 1954년 유나이티드 웨이 평직원으로 출발해 1970년부터 1992년까지 22년간 최고경영자로 재직하면서 창의적이고 카리스마 넘치는 리더십을 발휘했다는 호평을 받고 있었다. 1990년 무렵 아라모니가 부인과 이혼한 뒤 10대 여자친구와 호화여행을 다니며 씀씀이가 헤프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급기야 유나이티드 웨이 이사회와 언론에 투서가 들어가 비리혐의가 본격적으로 불거졌으나 아라모니는 사실을 극구 부인했다.


 하지만 미국 연방 수사기관이 나서 아라모니가 두명의 직원과 짜고 71차례에 걸쳐 100만달러를 불법 유용하고 자금을 세탁한 혐의를 밝혀냈다. 아라모니가 젊은 연인과 비행기 일등석을 타고 런던 이집트 등지로 호화 여행을 일삼았고, 여자친구에게 8만달러 상당의 선물까지 준 것으로 드러났다. 아라모니의 연봉은 46만달러(약 5억원)가 넘었다.

 

   아라모니는 결국 버지니아 지방법원에서 회계부정 사기음모 자금세탁 등 23개 혐의로 징역 7년형을 선고받고 연방교도소에서 수형생활을 했다. 30만달러의 추징금도 뒤따랐다. 아라모니를 겨냥한 가장 큰 비판은 공금과 사비를 구분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유나이티드 웨이의 모금 활동은 최대 위기를 맞았다. 그후 유나이티드 웨이는 10여년 동안 운영방식과 지배구조를 바꾸고 윤리강령도 정비하는 등 뼈를 깎는 쇄신 노력으로 신뢰를 되찾았다. 평직원에서 성장한 브라이언 갤러거 회장이 2002년 새 리더가 된 이후 40여 개국에 1800개 지부를 두는 유나이티드 웨이 월드와이드 조직으로 거듭났다.


 유나이티드 웨이를 롤모델 삼아 1998년 설립된 한국 사회복지공동모금회도 10년 전 공금을 흥청망청 낭비하는 비리 때문에 회장, 이사 전원, 사무총장까지 사퇴한 일이 벌어졌다. 보건복지부 감사 결과 ‘사랑의 열매’로 상징되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7억원이 넘는 돈을 부당하게 집행하고, 다른 공공기관 직원들보다 임금을 세배나 많이 올려 도덕적 해이가 만연한 사실이 드러났다. 업무용 카드를 단란주점과 나이트클럽 같은 곳에서 유흥비로 써 질타를 받았다. 이 때문에 2010년 ‘사랑의 온도탑’ 모금액이 사상 처음 100도 미만으로 끝났다. 그 뒤 투명한 단체로 새롭게 태어나 신뢰를 회복하고 모금활동도 정상을 되찾았다.


 21대 국회의원 비례대표로 당선한 윤미향 전 정의기억연대(정의연) 이사장을 겨냥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92) 인권운동가의 기자회견으로 불거진 의혹은 당사자의 거듭된 해명에도 의심이 걷힐 줄 모른다. 구체적 물증으로 증명하지 않는 한 설득이 어려운 상황에 이르렀다.

                                                                   


 윤 당선자와 정의연의 의혹은 단순한 회계 부적절성을 넘어 횡령과 배임 의혹으로 번졌다. 안성 위안부 할머니 쉼터 매입과 매각 과정, 윤 당선자 아버지 관리자 채용, 개인 아파트 구입자금, 국고보조금과 기부금의 공시 누락, 개인계좌 기부금 모금 등 밝혀져야 할 돈의 규모는 10억원대를 훌쩍 넘어선다. 해명 과정의 잇따른 말 바꾸기는 불신의 폭을 더욱 넓혔다.


 사회적으로 선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예상외로 무책임한 일탈 행위를 많이 한다는 연구결과가 ‘도덕적 면허효과’(moral licensing effect)다. 윤 당선자도 도덕적 면허효과 함정에 빠졌을 수 있다. 이제 정의연의 활동을 지지하고 돕는 것과 잘잘못을 가리는 것은 별개의 문제가 됐다.


 기부활동이 왕성한 미국에는 남이 준 돈을 사용하는 데에는 더 큰 책임이 따른다는 사회적 동의가 존재한다. 기부에 의존하는 공공단체들이 회계에 더 투명해야 하는 까닭이다. 윤 전 이사장이 벌여온 30년간의 정의로운 활동이 폄훼되지 않아야 하지만, 도덕적 책임이 있다면 분명하게 져야 한다. 그렇지만 정의연의 일본군 위안부 인권운동을 왜곡하거나 방해하려는 시도는 단연코 막아야 한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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