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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餘滴)

[여적] 지식인의 이중성 입력 : 2007-01-26 18:02:55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이 서울대 재학 시절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 혐의로 징역 1년6월을 선고받은 뒤 제출한 ‘항소이유서’ 마지막에 인용된 가슴 뭉클한 시의 한 구절이다. 이 시를 쓴 러시아 시인 니콜라이 네크라소프의 생애를 돌이켜보면 흥미롭기 그지없다. 그는 민중의 비참한 생활상을 눈물겹게 그려내는 민중시를 수도 없이 지어냈다. 특히 농민들의 슬픈 운명을 공명(共鳴)하는 시를 써 농노해방에 선구적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출판사업가로서의 그는 속물적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었다. 방탕한 여자관계, 도박, 음주, 돈에 대한 끊임없는 집착, 권력에 대한 아부가 현실적인 그.. 더보기
[여적] 문화의 차이 입력 : 2007-01-19 18:06:09 곧이곧대로 믿어야 할지 모르겠지만 일본 여성들은 남성들이 군대 얘기를 하면 대부분 흥미롭게 들어준다고 한다. 한국 여성들이 군대 얘기라면 여전히 달갑잖게 여기는 것과 사뭇 대조적이다. 한국의 어머니들이 자식들에게 1등 하라고 다그치는 것과는 달리 일본의 엄마들은 남에게 폐를 끼치지 말라고 당부하는 것을 일삼아 한다. 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다른 사회의 풍경화다. 개화기에 한 외국인이 한국의 전통 결혼 풍습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신랑을 쏘아 죽였다는 일화도 문화의 차이가 낳은 비극이다. 신랑을 거꾸로 매달아 놓고 발바닥을 때리며 뒤풀이를 하는 모습을 보고 있던 외국인이 “사형시켜야 하는 죄인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영어를 잘 알아듣지 못한 사람들이 무심결에 “예.. 더보기
[여적] 중국 권력투쟁 입력 : 2007-01-12 18:08:24 ‘타고난 책사’ ‘꾀주머니’ ‘공작정치의 달인’ ‘킹메이커’ ‘장쩌민(江澤民)의 오른팔’ ‘장쩌민의 손·귀·머리’. 쩡칭훙(曾慶紅) 중국 국가부주석에게 붙어다니는 별명만 들어도 그가 현기증 나는 권력게임에 어느 정도 달인인지 짐작하고 남는다. “루이싱원(芮杏文)은 중앙으로 올라갈 때 고급 가구를 갖고 갔지만 장쩌민은 쩡칭훙을 데려갔다.” 장쩌민이 상하이시 서기를 지낸 뒤 베이징의 중앙정치 무대로 진출할 때 화제가 되었던 이 일화도 쩡칭훙의 위상을 한마디로 표징한다. 쩡칭훙의 권력 요리솜씨를 보면 예술의 경지로 보인다. 지난해 후반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 겸 공산당 총서기가 상하이방(上海幇) 축출에 나섰을 때 쩡칭훙은 자기 편에 사정의 칼날을 겨눈 것으로 유.. 더보기
[여적] 매파와 비둘기파 입력 : 2007-01-05 18:07:22 고대 이스라엘이 로마제국을 상대로 줄기차게 독립운동을 하다가 서기 60년대 후반 중과부적(衆寡不敵)의 상황에 빠지고 만다. 그러자 유대 독립군 안에서는 결사항전해야 한다는 매파와 더 이상 싸우면 민족까지 멸망한다는 비둘기파가 치열하게 논쟁을 벌였다. 마치 병자호란이 터졌을 때 조선의 조정이 주전론자(主戰論者)와 주화론자(主和論者)로 나뉘었던 상황과 흡사했다. 독립군이 연전연패하자 결사대의 비둘기파인 한 랍비가 로마군 사령관이던 베스파시아누스를 찾아간다. 이 랍비는 쇠사슬에 묶여 사령관 앞에 끌려갔다는 주장도 있긴 하다. 어쨌든 이 랍비는 사령관이 곧 황제가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의 예언이 맞아 떨어지자 사령관은 그에게 소원 한 가지를 들어주겠다고 선심을 썼.. 더보기
[여적] 한 해의 끝자락 입력 : 2006-12-29 17:08:39 세밑의 강추위가 손돌바람처럼 살천스럽다. 헌 달력은 ‘마지막 잎새’처럼 을씨년스럽다. 가년스러운 서민들의 애옥살이가 한층 힘겨워 보인다. 지도자와 정치인들은 앵돌아진 민초들의 마음을 보듬기보다 제 몸 챙기기에 더 부산하다. 본업은 뒷전인 채 여줄가리 말싸움에나 열을 올린다. 콩팔칠팔 지껄이는 정치의 언어가 콩켸팥켸 같은 상황을 연출한다. 끝이 없는 지청구에 기가 질린다. 정치판만 보면 시간의 경계를 가늠하기 어렵다. 시간은 ‘동작 그만’ 구령을 단 한번도 따라주지 않는다. 시간은 시나브로 걸음을 옮기면서 만물의 운명을 옥죈다. 시경(詩經)도 “시작을 잘하지 못하는 사람은 없어도 끝맺음을 잘하는 사람은 드물도다”라는 영탄조의 읊조림을 담고 있는 걸 보면 회한은 .. 더보기
[여적] 엽기독재자 입력 : 2006-12-22 18:02:05 이름조차 생소한 나라 투르크메니스탄에 대한 한국인들, 특히 스포츠 팬들의 유일한 기억은 축구경기에서의 아물기 어려운 상처로 남아 있을 게다. 한국 대표팀이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에서 세계 랭킹 100위권의 약체 투르크메니스탄에 2대 3으로 역전패했던 악몽이 그것이다. 당시 대표팀은 최용수, 이동국, 최성용, 유상철, 김병지 등 최정예 멤버로 짜여 있었다. 허정무 감독은 투르크메니스탄에 이어 태국에도 져 8강에서 탈락하는 바람에 이를 잊지 않기 위해 ‘패전기념 시계’를 사서 찼을 정도다. 인구 6백만 명의 투르크메니스탄은 석유 매장량 세계 5위, 가스와 광물자원 매장량이 각각 3위다. 세계에서 기름 값이 가장 싼 것은 너무나 당연한 지도 모른다. 값싼 석유 .. 더보기
[여적] 부시맨의 귀향 입력 : 2006-12-15 18:02:41 아프리카의 부시맨은 독특한 생활 철학을 지녔다. 동작이 굼뜬 사슴이나 토끼 같은 동물은 절대로 사냥하지 않는다. 노인들에게 사냥할 기회를 주기 위해서다. 야생 열매를 딸 때는 반드시 씨앗이 될 만큼 남겨둔다. 벌집이 꿀을 딸 정도로 크지 않으면 건드리지 않는다. 물을 마시러 오는 동물들을 위해 우물 근처에는 절대 덫을 놓지 않는다. 아프리카 남부 칼라하리 사막 주변에 살던 부시맨들과 생활한 적이 있는 한 인류학자가 관찰한 결과다. 부시맨은 2만 여년 동안 문명과 격리되어 석기시대의 삶을 지속해 왔다. 지금까지 조금도 발전하지 않았다는 것은 기적에 가깝다. 부족 전체합의제는 부시맨을 원시상태로 잡아둔 원인 가운데 하나다. 찰스 다윈은 이를 ‘세상의 가장 이상적인.. 더보기
[여적] 부정(父情) 입력 : 2006-12-08 18:06:02 기후학자인 잭 홀 박사는 남극에서 빙하를 탐사하다 언젠가는 기상이변이 올 것이라는 사실을 직감하고 국제회의에서 경고한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그의 말을 무시한다. 얼마 뒤 보란 듯이 홍수, 해일, 태풍, 토네이도 등 온갖 재해가 전세계를 덮친다. 때마침 뉴욕 퀴즈대회에 참가하러 간 아들 샘을 구하기 위한 아버지의 숨막히는 결투가 시작된다. 아들은 돌변하는 이상기후를 기이하게 여겨 지대가 높은 도서관으로 피신하고, 아버지에게 사력을 다해 전화를 건다. 아버지는 아들을 구하려 하지만 백악관 브리핑 때문에 발목이 잡히고 만다. 결국 세계지도의 반을 금으로 그어놓고 그 위의 사람들을 모두 아래로 대피시키라는 말을 남기고 떠난다. 사투 끝에 아버지 홀은 아들을 구해낸.. 더보기
[여적] 금기 스포츠 입력 : 2006-12-01 17:57:46 이란에서 마라톤 얘기를 하면 실례다. 카타르 도하에서 열리고 있는 아시안 게임에 이란의 마라톤 선수가 출전하지 않는 것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이란은 1974년 자국의 수도 테헤란에서 아시안 게임을 개최했을 때 마라톤 종목은 아예 없앴을 정도다. 이란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마라톤을 금기로 여기는 나라다. 이란이 이처럼 마라톤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데는 뼈아픈 역사가 서려 있다. 마라톤이 근대 올림픽과 국제경기 종목으로 채택된 연원이 되는 마라톤 평원 전쟁에서 고대 이란의 페르시아제국이 아테네에 참패했던 일이 그것이다. 이란으로서는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 마라톤 전투다. 일본에서는 국기(國技)인 검도가 태평양전쟁 직후 맥아더 미군 사령부의 금지 명령.. 더보기
[여적] 화이트칼라 범죄 입력 : 2006-11-24 18:01:37 미국 워싱턴에서 회사원으로 일하던 폴 펠드먼은 회사에 무인 빵 판매대를 설치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불현듯 떠올렸다. 그는 매주 금요일 무인판매대에 베이글과 수금함을 함께 갖다놓았다. 수금률은 95%에 육박했다. 예상을 뛰어넘는 대금 회수율에 고무된 펠드먼은 아예 회사를 그만두고 베이글 무인 판매전선에 뛰어들었다. 머지않아 인근 140여개 회사 휴게실에 만든 무인판매대의 수입이 과거 연봉을 능가하게 됐다. 그러는 동안 그는 흥미로운 체험을 했다.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일수록 양심불량자가 더 많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펠드먼이 몇 년 동안 빼놓지 않고 무인 판매를 계속한 어떤 회사는 3개층을 사용하는 곳이었다. 맨 위층은 임원급 고위간부들만 근무하는 사무실이었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