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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餘滴)

[여적] 부시맨의 귀향

입력 : 2006-12-15 18:02:41

아프리카의 부시맨은 독특한 생활 철학을 지녔다. 동작이 굼뜬 사슴이나 토끼 같은 동물은 절대로 사냥하지 않는다. 노인들에게 사냥할 기회를 주기 위해서다. 야생 열매를 딸 때는 반드시 씨앗이 될 만큼 남겨둔다. 벌집이 꿀을 딸 정도로 크지 않으면 건드리지 않는다. 물을 마시러 오는 동물들을 위해 우물 근처에는 절대 덫을 놓지 않는다. 아프리카 남부 칼라하리 사막 주변에 살던 부시맨들과 생활한 적이 있는 한 인류학자가 관찰한 결과다.

부시맨은 2만 여년 동안 문명과 격리되어 석기시대의 삶을 지속해 왔다. 지금까지 조금도 발전하지 않았다는 것은 기적에 가깝다. 부족 전체합의제는 부시맨을 원시상태로 잡아둔 원인 가운데 하나다. 찰스 다윈은 이를 ‘세상의 가장 이상적인 정치제도’로 여겼다. 지도자를 뽑지 않고 강요되지 않은 전체합의제는 민주주의의 극치이긴 하지만 적이 쳐들어와도 합의를 이뤄내지 못해 패망을 거듭할 수밖에 없었다.

식민지 시절부터 유럽인들은 그런 부시맨을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았다. 스페인 바뇰레스의 자연사 박물관에 100년 가까이 전시돼 온 부시맨의 박제를 철거한 것도 불과 10년 전인 1997년의 일이다. 인권 침해라는 세계적인 비난이 끊이지 않자 마지못해 받아들였다.

남아프리카공화국 금광 도시인 클레를스도르프에 가면 전시관 안에서 타조알 껍데기로 만든 구슬을 꿰고 있는 부시맨을 볼 수 있다. 전시관 옆 우리에서는 사자가 고기를 뜯고, 새끼 하이에나가 장난치고 있는 사이에서 부시맨은 인간동물이 되어 관광객을 맞고 있는 것이다. 영원한 고향인 칼라하리 사막 지역에 삶의 터전을 마련하기 위한 기금을 조성하기 위해서다.

부시맨들이 남아공 정부의 이주정책에 의해 삶의 보금자리에서 쫓겨났다가 법원의 판결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됐다고 한다. 영화 ‘블러드 다이아몬드’의 주인공 리어나도 디캐프리오에게 지원을 요청하는 등 눈물겨운 투쟁의 성과다. 부시맨은 조상대대로 살던 곳에서 고유의 삶을 누릴 권리를 인정받은 것이다. 문명의 진보 여부로 차별하는 것은 문명의 척도이기도 한 인권과 거리가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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