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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餘滴)

[여적] 부정(父情)

입력 : 2006-12-08 18:06:02

기후학자인 잭 홀 박사는 남극에서 빙하를 탐사하다 언젠가는 기상이변이 올 것이라는 사실을 직감하고 국제회의에서 경고한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그의 말을 무시한다. 얼마 뒤 보란 듯이 홍수, 해일, 태풍, 토네이도 등 온갖 재해가 전세계를 덮친다.

때마침 뉴욕 퀴즈대회에 참가하러 간 아들 샘을 구하기 위한 아버지의 숨막히는 결투가 시작된다. 아들은 돌변하는 이상기후를 기이하게 여겨 지대가 높은 도서관으로 피신하고, 아버지에게 사력을 다해 전화를 건다. 아버지는 아들을 구하려 하지만 백악관 브리핑 때문에 발목이 잡히고 만다. 결국 세계지도의 반을 금으로 그어놓고 그 위의 사람들을 모두 아래로 대피시키라는 말을 남기고 떠난다.

사투 끝에 아버지 홀은 아들을 구해낸다. 아버지의 사랑을 진한 감동으로 느낄 수 있는 영화 ‘투모로우’의 명장면이다. 아들을 구하러 사지로 뛰어드는 아버지의 가족사랑에 눈시울을 붉히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게다.

1988년 아르메니아 대지진 때의 실화는 한결 실감나게 다가온다. 진도 6.9의 강진은 사망자만 2만5천여명을 헤아리게 했다. 아비규환 속에 한 아버지가 폭삭 내려 앉은 학교 건물 더미를 정신없이 파 내려갔다. 구조대원들은 이미 늦었으니 포기하라고 극구 달랬다. 그 순간 아버지는 무심코 아들과 했던 약속을 잊을 수가 없었다. “아빠가 너에게 필요할 때는 반드시 곁에서 지켜주겠다.” 아버지는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 무려 38시간 동안 기진맥진하며 잔해를 파헤쳤다. 하늘도 감동했는지 마침내 기적이 찾아왔다. 잔해 속에서 들려오는 아들의 목소리에 아버지는 눈물범벅이 됐다.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 비친 드라마 같은 얘기는 비극 속에서 피어난 한 떨기 꽃같이 아름다운 동화였다.

폭설에 갇힌 가족을 살리려 눈 속을 헤매다 끝내 숨진 채 발견된 재미교포 가장의 영웅적인 비극은 두 이야기와는 견줄 수 없는 아픔으로 세계인들을 울리고 있다. 사진으로 지구촌에 퍼진 생전의 미소는 콧날을 한번 더 찡하게 만든다. 부성애(父性愛)라면 어떤 동물도 따를 수 없다는 ‘가시고기’ 같은 가족사랑이 겹쳐지는 연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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