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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餘滴)

[여적] 지식인의 이중성

입력 : 2007-01-26 18:02:55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이 서울대 재학 시절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 혐의로 징역 1년6월을 선고받은 뒤 제출한 ‘항소이유서’ 마지막에 인용된 가슴 뭉클한 시의 한 구절이다.

이 시를 쓴 러시아 시인 니콜라이 네크라소프의 생애를 돌이켜보면 흥미롭기 그지없다. 그는 민중의 비참한 생활상을 눈물겹게 그려내는 민중시를 수도 없이 지어냈다. 특히 농민들의 슬픈 운명을 공명(共鳴)하는 시를 써 농노해방에 선구적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출판사업가로서의 그는 속물적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었다. 방탕한 여자관계, 도박, 음주, 돈에 대한 끊임없는 집착, 권력에 대한 아부가 현실적인 그의 모습이었다. 시인과 사업가로서 보여준 야누스적인 얼굴로 말미암아 그는 당대 사람들로부터 사랑과 미움, 존경과 냉대를 한 몸에 받았다.

이밖에도 역사상 위대한 인물이지만 모순된 삶을 산 사람들이 적잖다. 영국 언론인 폴 존슨이 쓴 ‘지식인의 두 얼굴’에 의하면, 계몽주의 사상가 장 자크 루소는 대표작 ‘에밀’에서 보여주듯 양육에 관한 교육이론으로 교육철학의 한 획을 그었다는 예찬을 받지만 막상 자기 자식들은 모두 고아원에 보냈다. 여성 해방의 주창자로 알려진 헨리크 입센은 개인적으로 여성 해방에 관심이 없을뿐더러 외려 여성은 인간으로도 취급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대표작 ‘인형의 집’도 시류를 따라 출세하기 위해 쓴 글이었다는 것이다. 노동해방을 부르짖었던 카를 마르크스는 정작 자신의 가정부에게 한 푼의 임금도 주지 않고 45년 간이나 착취했으며, 러시아의 문호 레프 톨스토이는 사창가를 드나들면서도 여성과의 교제를 사회악이라고 여겼다고 한다.

이필상 고려대 총장의 논문 표절 의혹이 속속 제기되는 걸 보면서 위대한 지식인들의 이중성을 다시금 연상케 된다. 존경받는 시민운동가에다 명성 높은 교육자이기에 더욱 충격과 동시에 연민의 정마저 들게 한다. 누구나 때로는 두 얼굴을 가질 개연성이 있지만 지식인의 위선은 한결 배반의 슬픔을 더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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