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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餘滴)

[여적] 화이트칼라 범죄

입력 : 2006-11-24 18:01:37

미국 워싱턴에서 회사원으로 일하던 폴 펠드먼은 회사에 무인 빵 판매대를 설치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불현듯 떠올렸다. 그는 매주 금요일 무인판매대에 베이글과 수금함을 함께 갖다놓았다. 수금률은 95%에 육박했다. 예상을 뛰어넘는 대금 회수율에 고무된 펠드먼은 아예 회사를 그만두고 베이글 무인 판매전선에 뛰어들었다. 머지않아 인근 140여개 회사 휴게실에 만든 무인판매대의 수입이 과거 연봉을 능가하게 됐다.

그러는 동안 그는 흥미로운 체험을 했다.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일수록 양심불량자가 더 많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펠드먼이 몇 년 동안 빼놓지 않고 무인 판매를 계속한 어떤 회사는 3개층을 사용하는 곳이었다. 맨 위층은 임원급 고위간부들만 근무하는 사무실이었으며, 나머지 2개층은 일선 직원들이 일하는 공간이었다. 공교롭게도 임원들이 근무하는 층의 무인판매대 수금률이 눈에 띌 만큼 낮았다.

‘괴짜 경제학’의 저자 스티븐 레빗은 이를 화이트칼라 범죄와 연결지어 해석한다. 펠드먼의 체험적 조사결과가 오랫동안 화이트칼라 범죄행위의 근거를 찾지 못하던 학계에 분석의 창을 제공했다고 레빗은 판단하고 있다. ‘화이트칼라 범죄’ 개념은 이미 1939년에 등장했지만 학계에서는 한동안 진전된 연구결과물을 내놓지 못하고 있었다. 현대 범죄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E H 서덜랜드는 미국 사회학회장 취임 논문에서 ‘화이트칼라 범죄’라는 용어와 함께 그 심각성을 처음으로 일깨웠다.

화이트칼라 범죄는 강·절도와 달리 가시적인 피해자가 없는 경우가 흔해 ‘피해자 없는 범죄’라는 안일한 인식이 적지 않다. 하지만 지위나 권한을 남용해 사리사욕을 채우는 화이트칼라 범죄는 그때마다 ‘무전유죄 유전무죄’라는 논란을 낳곤 한다. ‘바다이야기’ 사건, 외환은행 헐값 매각 같은 화이트칼라 범죄 수사도 기관이기주의 논란 못지않게 지나치게 가벼운 처벌과 부실수사라는 비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법부 수장까지 나서 화이트칼라 범죄 엄단을 외쳐대지만 가석방, 사면·복권 남용 등이 더해져 공염불이 되는 경우가 잦다. 화이트칼라 범죄 엄벌은 백년하청이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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