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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餘滴)

[여적] 금기 스포츠

입력 : 2006-12-01 17:57:46

이란에서 마라톤 얘기를 하면 실례다. 카타르 도하에서 열리고 있는 아시안 게임에 이란의 마라톤 선수가 출전하지 않는 것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이란은 1974년 자국의 수도 테헤란에서 아시안 게임을 개최했을 때 마라톤 종목은 아예 없앴을 정도다. 이란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마라톤을 금기로 여기는 나라다. 이란이 이처럼 마라톤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데는 뼈아픈 역사가 서려 있다. 마라톤이 근대 올림픽과 국제경기 종목으로 채택된 연원이 되는 마라톤 평원 전쟁에서 고대 이란의 페르시아제국이 아테네에 참패했던 일이 그것이다. 이란으로서는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 마라톤 전투다.

일본에서는 국기(國技)인 검도가 태평양전쟁 직후 맥아더 미군 사령부의 금지 명령을 받았다. 일제가 전쟁기간 중 검도를 전기(戰技) 종목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말살 위기까지 처했던 스포츠 검도는 미·일강화조약 체결 이후 복권됐다.

대부분의 공산국가들은 냉전 시절 야구를 금기시했다. 미국에서 만든 야구가 자본주의 스포츠라고 타매했기 때문이다. 북한은 1991년에야 평양에 야구장을 만들었다. 공산국가 가운데 일찍부터 야구를 장려한 유일한 나라는 쿠바다. 젊은 시절 메이저리그 진출을 꿈꾸었을 만큼 야구광인 피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의장이 미국의 콧대를 꺾어놓겠다는 적대의식이 강했던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에서는 탈레반 정권 아래서 모든 스포츠가 금지된 시절이 있었다. 이슬람국가에서는 아직 여성들에게 금지된 스포츠 종목이 적지 않다. 상당수 중동국가 여성들이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그동안 금기시 됐던 종목에 도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변모하는 스포츠 세태를 읽게 된다. 특히 쿠웨이트 여자 볼링 팀이 중동 국가 가운데 처음으로 아시안게임에 출전해 작은 화젯거리로 떠올랐다. 하지만 이슬람 율법에 따라 히잡 등 전통복장을 갖춰야하는 제약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한일 월드컵 축구대회 거리응원을 계기로 붉은 색 금기를 타파했던 한국이고 보면 스포츠 세계의 성역파괴 바람이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금기와 성역은 적을수록 문명 사회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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