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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餘滴)

[여적] 한 해의 끝자락

입력 : 2006-12-29 17:08:39

세밑의 강추위가 손돌바람처럼 살천스럽다. 헌 달력은 ‘마지막 잎새’처럼 을씨년스럽다. 가년스러운 서민들의 애옥살이가 한층 힘겨워 보인다. 지도자와 정치인들은 앵돌아진 민초들의 마음을 보듬기보다 제 몸 챙기기에 더 부산하다.

본업은 뒷전인 채 여줄가리 말싸움에나 열을 올린다. 콩팔칠팔 지껄이는 정치의 언어가 콩켸팥켸 같은 상황을 연출한다. 끝이 없는 지청구에 기가 질린다. 정치판만 보면 시간의 경계를 가늠하기 어렵다. 시간은 ‘동작 그만’ 구령을 단 한번도 따라주지 않는다. 시간은 시나브로 걸음을 옮기면서 만물의 운명을 옥죈다.

시경(詩經)도 “시작을 잘하지 못하는 사람은 없어도 끝맺음을 잘하는 사람은 드물도다”라는 영탄조의 읊조림을 담고 있는 걸 보면 회한은 누구에게나 제어하기 어려운 숙제인 모양이다. 그래서 세모는 만인을 위한 성찰의 시간이다. 공자(孔子)도 어느 해인가 실의에 찬 세모를 맞아 장삼이사처럼 그저 범상한 탄식을 했다니 시간은 성속(聖俗)을 가리지 않는 듯하다. “세월은 덧없이 강물처럼 흘러가는구나.”

언젠가 ‘좋은 생각’이란 잡지에서 읽은 ‘나무의 송년사’가 살갑게 다가오는 순간이다. 나무의 얘기가 곧 우리의 얘기이기도 해서다.

“새싹이 돋고 꽃이 필 때/키가 자라고 잎이 커질 때/그 때는 모든 게 순탄하리라 믿었습니다/따뜻한 햇살 아래/부드러운 바람 맞으며 새소리 듣고 자라면/좋은 열매만 많이 맺을 줄 알았습니다/어느 날 가뭄이 들어 목이 말랐습니다/어느 날은 장마로 몸이 물에 잠겼습니다/어느 날은 태풍이 불어와 가지를 부러뜨렸고/어느 날은 추위로 잎을 모두 떨구어야 했습니다/온 몸이 상처투성이고 성한 잎, 온전한 열매 하나 없습니다/하지만 아무도 나를 보며 슬퍼하지 마십시오/나의 지난 한 해는 최선을 다했기에/충분히 아름다웠습니다/다시 새해가 오면 나는 또 꽃을 피우고/잎을 펴고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상처와 아픔을 알지만.”

인간이 스스로 만든 세월의 매듭이지만 새해 새로이 떠오르는 태양에 희원을 걸어보자, 새 달력을 걸 채비도 하면서. 미래는 우리의 영원한 현주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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