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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餘滴)

[여적] 엽기독재자

입력 : 2006-12-22 18:02:05

이름조차 생소한 나라 투르크메니스탄에 대한 한국인들, 특히 스포츠 팬들의 유일한 기억은 축구경기에서의 아물기 어려운 상처로 남아 있을 게다. 한국 대표팀이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에서 세계 랭킹 100위권의 약체 투르크메니스탄에 2대 3으로 역전패했던 악몽이 그것이다. 당시 대표팀은 최용수, 이동국, 최성용, 유상철, 김병지 등 최정예 멤버로 짜여 있었다. 허정무 감독은 투르크메니스탄에 이어 태국에도 져 8강에서 탈락하는 바람에 이를 잊지 않기 위해 ‘패전기념 시계’를 사서 찼을 정도다.

인구 6백만 명의 투르크메니스탄은 석유 매장량 세계 5위, 가스와 광물자원 매장량이 각각 3위다. 세계에서 기름 값이 가장 싼 것은 너무나 당연한 지도 모른다. 값싼 석유 덕분에 국내선 항공료 역시 햄버거 하나 값이면 충분하다. 가스나 전기 같은 공공요금은 물론 전화료, 대중교통요금까지 무료다. 이런 복지정책만 보면 이보다 더 살기 좋은 이상향이 있을까 싶다. 실제로 공무원들은 “우리는 유토피아에 살고 있다”고 선전한다.

하지만 이루 형언하기 어려울 만큼 엽기적인 독재자 탓에 투르크메니스탄 국민들은 마치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 같은 나라에 사는 듯했다. 1985년 이후 무려 21년 동안 ‘살아 있는 신’으로 군림해 온 사파르무라트 니야조프 대통령 때문에 국민 전체가 ‘니야조프 교도’여야 했다. 그의 어록집을 코란보다 더 잘 외워야 하니 ‘위대한 선지자’요, ‘투르크멘의 아버지’로 불리고도 남는다. 건물마다 그의 사진이 걸리지 않은 곳이 없고, 초대형 전광판엔 그의 어록들로 빼곡하다. 텔레비전을 켜면 오른쪽 위에 그의 얼굴이 가장 먼저 떠올라 끌 때까지 결코 사라지는 일이 없다. 더 비극적인 것은 그의 입에서 말이 떨어지면 곧바로 해외토픽이 될 정도로 기행(奇行)을 서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인구 60만 명인 수도 아슈하바트에는 경찰만 10만 명에 달해 삼엄한 감시망을 벗어날 수 없다.

희대의 ‘엽기 독재자’ 니야조프가 엊그제 66세로 돌연사해 투르크메니스탄의 앞날을 점치기 힘들게 됐다. 게다가 이 나라의 원유 확보를 위한 각국의 경쟁은 점입가경이 될 수 밖에 없을 게 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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