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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생선회 특구 2003-07-09 지구촌 어딜 둘러 보아도 한국인처럼 너나없이 '특'자를 즐기는 국민도 드물다는 사실은 이제 우리 스스로가 인정할 정도다. 설렁탕 집 차림표에 '보통'과 '특'으로 구별짓는 것은 상식이다. 병원에서는 몇달, 심지어 몇년을 기다리더라도 특진을 받아야 직성이 풀린다. 얼마나 특별한지는 모르지만 의사의 몇마디 얘기를 듣는 게 고작 3∼4분에 불과한 데도 말이다. 열차를 타면 특급도 모자라 특실에 앉아서 가야 체면이 선다. 특실 가운데도 특석이 있다면 기를 쓰고 그곳에 가야 자존심을 세운다고 여긴다. 작은 부탁을 하나 하더라도 '특별히' 해야만 잘 먹혀든다.사는 곳은 서울특별시라야 한다. 그 중에서도 강남특구가 아니면 알아주지도 않는다. 그래서 강남은 인재특구로 불리기도 한다. 거기서도 대치동.. 더보기
[여적] 산천어 2003-06-16 물고기 이야기를 누구보다 정감 어린 시어로 풀어내는 시인 안정옥의 '산천어'는 다소 애처롭게 다가온다. '봄이 되면 바다로 향하는 신경통을 앓아가며/ 산천어는 또 다른 산천어를 만들고 한 때는 송어였던 기억을 잊었다/ 황금색 몸에는 눈물점 그대로 있어 누구나 그 모습 한번만이라도 보면 탐하는(중략) /사랑을 품고는 오지 않는 물고기가 있었다 오지 않는 사람이 있었다'똑같이 송어로 태어나 바다 구경 한번도 못하는 불운에다 그 흔한 떡고물조차 구경하지 못한 채 평생을 한없이 깨끗한 물에서만 살아야 하는 운명이니 그럴 만도 하다. 태어날 땐 송어와 같은 어종이지만 연어처럼 바다로 나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송어와는 달리 계곡에 남아 그대로 자라면 산천어가 되고 만다. 너무 깨끗한 물에는 고기가.. 더보기
[여적] 가죽 수갑 2003-06-13 미국 샌프란시스코만 앞에 있는 자그마한 섬 알카트라즈는 전략적으로 더없이 뛰어난 요새였다. 이곳은 캘리포니아의 황금 수송 요충지이기도 했다. 알카트라즈는 미국의 악명높은 죄수들을 수감했던 곳이면서 인권침해로도 최악을 자랑했던 형무소로 명성이 자자하다. 금주법과 대공황으로 범죄가 기승을 부리자 미 연방수사국(FBI)은 '범죄와의 전쟁'에 나선다. 당시 알카트라즈 감옥에 투옥된 죄수들은 이름만 들어도 고개가 끄덕여질 정도로 쟁쟁한 인물들이다. 알 카포네, 존 딜링거, 앨빈 크리피 카푸스, 베이비 페이스 넬슨, 보니 파커, 클라이드 바로 등등.이곳은 탈옥성공 확률 0%를 자랑한다. 간수의 살해, 죄수들의 비인간적 취급, 자살, 자해 등의 감방 비화가 공개되면서 1962년 폐쇄될 때까지 29.. 더보기
[여적] 수상 거부 2003-06-11 독설가로 명성이 자자했던 프랑스 화가 에드가 드가에겐 이런 일화가 따라다닌다. 한 동료 화가가 제자의 '활쏘는 사냥꾼'이라는 그림을 보여주면서 "참 잘 겨누고 있지요"라고 말하자 드가는 "상(賞)을 겨누고 있군 그래"라며 쏘아붙였다. 상 욕심으로 가득 찬 예술가들의 심보를 비꼰 것이다.하지만 영예롭기 그지없는 상조차 서슴없이 물리치는 이들이 심심찮게 심금을 울린다. 재미 화교 여학생이 전국 최우수 고교생에게 주는 대통령상을 거부한 사건이 중국에서 화제를 불러 일으킨 적이 있다. 미국 최고 명문의 하나인 필립고교를 최우등으로 졸업하게 된 왕위안(王淵)은 빌 클린턴 대통령이 수여하는 상을 거부한 것이다. 미국 국적자만 받는 상이어서 미국 국적을 취득할 계획이 있다고 백악관에 통보하면 그만.. 더보기
<경향의 눈>브레이크없는 日 우경화 2003-06-10 서양물건 가운데 일본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게 '총'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 같다. 1543년 9월23일 포르투갈 상인들이 탄 배가 태풍 때문에 가고시마의 다네가시마 섬으로 밀려왔을 때였다. 이 총은 개량종으로 다시 태어나 50년 후 임진왜란의 결정타가 됐다. 당시의 총 2정은 지금도 다네가시마 종합개발센터에 소중하게 보관되어 있다.美묵인 아래 과거청산 미적지근 첫 박래품(舶來品)인 총이 일본 군국주의의 밑거름이 됐다고 한다면 논리의 비약일까. 미국과의 태평양전쟁도 따지고 보면 총칼의 위력을 과신한 일본의 군사적 모험주의가 낳은 셈이다. 1941년 8월 미국 현지의 첩보활동을 마치고 귀국한 한 일본군 대령은 육군 참모총장에게 미국이 일본에 비해 철강 생산능력에서 .. 더보기
[여적] 여왕 50년 2003-06-04 한 영국 교민이 이런 감회를 토로한 적이 있다. "내가 영국에 오랫동안 살면서 한국인임이 가장 자랑스러웠던 일은 몇 년 전 삼성전자가 현지 공장기공식을 할 때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테이프커팅을 하는 장면이었다". 한 때는 '해가 지지 않는 나라'였던 영국의 여왕이 한국 기업의 공장 기공식에 참석할 정도로 우리 국력이 커졌다는 자긍심의 발로(發露)이다. 달리 보면 더없이 치열한 경제전쟁시대를 상징하는 일이자 영국도 어쩔 수 없이 해가 지는 걸 보며 사는 나라가 됐다는 방증인 셈이다.엘리자베스 2세는 대영제국의 영화(榮華)를 구가하던 엘리자베스 1세 때와 견주면 사뭇 대조적이다. 45년에 걸친 엘리자베스 1세의 치세는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무찌르는 기개가 넘쳐났고, 인도와도 바꾸지 않겠다.. 더보기
[여적] 등대 100년 2003-05-30 인류 최초의 등대로 알려진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파로스 등대가 세계 7대 불가사의의 하나로 꼽히는 까닭은 높이가 무려 135m에 이르는 데다 위쪽으로 올라갈수록 넓어지는 건축형태 때문이다. 학설이 분분하지만 둥글게 만들어진 꼭대기에는 커다란 화덕이 있어 항상 불을 지폈고, 그 뒤에는 거대한 반사경이 있어 강력한 빛을 멀리 보냈다는 설이 유력하다. 파로스 등대는 단순히 항로 표지의 구실만 한 것이 아니라 300개 이상의 방을 가지고 있어 대규모 군병력을 주둔시킬 수 있는 성곽이기도 했다.파로스 등대가 기원전 280년쯤에 만들어질 정도로 서양에서는 등대의 역사가 길지만 우리나라는 100년에 불과하다. 1903년 6월1일 인천 팔미도에 처음 세웠다. 그것도 일본의 압력에 의해 만들어야만 했.. 더보기
[여적 작문기사 2003-05-13 미국의 유력 일간지 보스턴 글러브는 1998년 6월 퓰리처상 논평부문 최종 후보까지 올랐던 유능한 칼럼니스트를 전격 해고하는 아픔과 치욕을 겪어야 했다. 패트리샤 스미스라는 흑인 여성 언론인이 4개의 칼럼에 등장한 인물과 인용문을 모두 조작한 것으로 자체 조사결과 드러났기 때문이다.그러자 미국 언론계는 일제히 1981년 워싱턴 포스트의 '지미의 세계'라는 조작기사 파문을 악몽처럼 떠올렸다. 제닛 쿡이라는 여기자는 '지미'라는 이름의 흑인소년의 실상을 통해 청소년 마약 중독실태를 너무나 실감나게 고발하는 기사를 써 퓰리처상까지 받았다. 하지만 나중에 완벽한 조작기사로 들통나는 바람에 수상 취소와 함께 즉각 해고됐음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공교롭게도 워싱턴 포스트의 여기자 역시 흑인이었.. 더보기
[여적] 거짓말 탐지기 2003-05-05 옛날 인도 왕이 거짓말을 하는 신하를 가려내기 위해 의심스런 사람들을 캄캄한 마구간에 들어가게 했다. 그 안에는 당나귀 한 마리가 있었다. 왕은 이렇게 말했다. "거짓말한 사람이 당나귀 꼬리를 만지면 손이 검어진다". 그 뒤 왕은 신하들에게 빠짐없이 당나귀의 꼬리를 만지도록 명령했다. 마구간을 나온 신하들 중 한 사람의 손만 깨끗했다. 왕은 손이 깨끗한 신하를 거짓말쟁이로 잡아냈다. 왕은 당나귀 꼬리에 몰래 숯칠을 해 놓았던 것이다.당나귀 꼬리는 요즘으로 치면 거짓말 탐지기였다. 거짓말 탐지기는 '현대과학의 탈을 쓴 마술'이라고 불리기도 하지만 이젠 대부분의 나라에서 과학수사 도구로 더없이 유용하게 쓰인다. 미국경찰의 박스터라는 이 분야의 전문가가 우연히 식물에도 감정이 있다는 사실을.. 더보기
[여적] 과학자의 망명 2003-04-22 "자신의 조국이 달콤하게 느껴지는 사람은 아직 어린아이와 같다. 타국이 다 조국처럼 느껴지는 사람은 이미 성숙한 사람이다. 세계가 다 타국처럼 느껴지는 사람이야말로 완성된 인간이다"'오리엔탈리즘'의 저자 에드워드 사이드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는 망명 생활 속에서 예술과 학문이 꽃피는 까닭을 이런 명언으로 묘파한다. 팔레스타인 출신의 망명자이기도 한 그가 변경인(邊境人)으로서 뼈저리게 체화한 담론을 함축하고 있는 듯하다. 과학의 최고 경지 가운데서 탄생한 핵무기도 공교롭게 망명자와 이들을 둘러싼 경쟁이 직결돼 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에게 원자폭탄을 개발하라고 건의한 앨버트 아인슈타인은 독일에서 망명한 유대인이며, 최초의 핵무기 개발계획인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한 과학자들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