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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餘滴)

[여적] 거짓말 탐지기

2003-05-05
옛날 인도 왕이 거짓말을 하는 신하를 가려내기 위해 의심스런 사람들을 캄캄한 마구간에 들어가게 했다. 그 안에는 당나귀 한 마리가 있었다. 왕은 이렇게 말했다. "거짓말한 사람이 당나귀 꼬리를 만지면 손이 검어진다". 그 뒤 왕은 신하들에게 빠짐없이 당나귀의 꼬리를 만지도록 명령했다. 마구간을 나온 신하들 중 한 사람의 손만 깨끗했다. 왕은 손이 깨끗한 신하를 거짓말쟁이로 잡아냈다. 왕은 당나귀 꼬리에 몰래 숯칠을 해 놓았던 것이다.당나귀 꼬리는 요즘으로 치면 거짓말 탐지기였다. 거짓말 탐지기는 '현대과학의 탈을 쓴 마술'이라고 불리기도 하지만 이젠 대부분의 나라에서 과학수사 도구로 더없이 유용하게 쓰인다. 미국경찰의 박스터라는 이 분야의 전문가가 우연히 식물에도 감정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낼 만큼 거짓말 탐지기는 쓰임새가 다양해졌다.

거짓말 탐지기의 증거능력을 인정하는 미국의 중앙정보국(CIA)은 모든 직원들을 대상으로 불시에 거짓말 탐지기 테스트를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CIA와 미 연방수사국(FBI)은 직원 채용 때도 거짓말 탐지기를 통과하도록 한다. FBI가 지난 2001년 대대적인 스파이 색출작업을 위해 루이스 프리 국장이 직접 거짓말 탐지기 테스트에 응하기도 했다.

하지만 자신의 거짓말도 진실이라고 믿는 거짓말 환자에게는 탐지기도 무용지물이 되고만다. 진짜 스파이에게도 거짓말 탐지기는 통하지 않는다고 미국 과학아카데미는 털어놓았다. 실제로 스파이들은 탐지기를 빠져나가는 훈련을 받는다고 한다.

거짓말 탐지기에 의한 자백의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는 우리나라지만 거짓말 탐지기의 수사 유용성이 높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지난 2년간 피의자가 부인하는 범죄사실이 거짓말 탐지기를 통해 거짓 판정을 받아 법원에 기소된 사건 가운데 94.1%가 유죄판결을 받았다는 사실이 어제 발표됐다. 이런 결과는 미국 거짓말탐지기협회가 조사한 탐지기의 조사 정확성이 90%에 이른다는 통계와 비슷하다. 아무리 첨단과학도 100%의 정확성을 얻어내기는 힘들다는 방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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