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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이젠 정부 차례다 2004-05-05 지난 몇달동안 우리는 국회와 정치권을 원없이 타매하고 지탄했다. 구태에 찌들대로 찌든 거대야당들이 이끄는 16대 국회가 '우선멈춤'을 모르고 과속하다 자기 목이 날아가는 광경을 목도했다. 위대한 국민의 분노는 물갈이를 넘어 판갈이로 징치했다. 낡은 정치를 청산하라는 국민의 긴급명령은 여느 때와 사뭇 다른 여야 대표 회담과 다짐을 이끌어내기에 이르렀다. 아직 만족할 만한 단계는 아니지만 사상 초유의 '여야 협약'이란 형식도 만들어냈다.그러는 사이에 우리는 국회보다 월등히 힘센 골리앗 같은 정부를 잠시나마 잊고 지내다시피 했다. 정부야말로 온 국민이 부엉이처럼 눈을 부릅뜨고 감시해야 할 1순위임에도 사실상 자율에만 맡겨 두었다. 행정수반인 대통령이 탄핵소추된 상태여서 얼마간의 동정심도 실.. 더보기
<아침을 열며...> 표절의 정치 2004-03-31 총선을 앞두고 며칠 사이에 펼쳐지고 있는 정치권의 '따라하기'를 보면 언젠가 곁눈질로 읽었던 인상적인 시구가 문득 떠오른다. "하늘을 표절한 땅/낮을 표절한 밤의 송사/우리는 긴긴 어둠을 서로의 살 속에 말아 넣는다./그것들은 저희끼리 얽혀 가다가/우리 온 정신의 성감에서 만난다/끈과 단추는 모두 풀어 헤치고/우리는 서로를 표절한다./다만 기쁘도록/다만 어울리도록/그런 아침과 밤을 만나게 하는 까닭,/그것을 표절하는 남자와 여자,/자연과 인간은 표절투성이다/태초, 하늘이 나를 표절하듯/신이 나를 표절하듯."'표절'이라는 낱말이 일곱번이나 나오는 이규호(李閨豪)의 시 '만나게 하는 까닭'은 은근한 사랑을 그리면서 인간사를 표절의 역사로 묘파하는 절창이다. 기자는 요동치는 탄핵정국 속에서.. 더보기
<아침을 열며...> 인재할당제의 거울 中國科擧 2004-03-03 최근 정부가 제시한 지방인재 채용목표제에 위헌론과 역차별론을 들이대며 반대하는 이들은 중국의 과거제도 역사를 보면 한번쯤은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까 싶다. 사법고시니 행정.외무.기술고시니 하는 것들도 모두 따지고 보면 중국 과거제도가 그 원조이기 때문이다.과거제도의 발상지인 중국에서는 송나라 때부터 인재의 지역분배 논쟁이 치열했다. 당나라 때 안사(安史)의 난 이후 중국의 북방은 치명타를 입어 경제.문화가 남방에 비해 날이 갈수록 낙후된 탓이다. 오늘날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가 점점 벌어져 지역균형발전문제가 심각한 사회현안으로 떠오른 우리 현실과 흡사하다. 송나라 때 저명한 학자인 사마광(司馬光)과 구양수(歐陽脩)의 대논쟁은 오늘날까지 전해 내려오는 예화의 하나다. 사마광은 '축로취사'(.. 더보기
<아침을 열며...> 미국 시스템에 깃든 유럽정신 2004-02-04 청와대가 미국 백악관의 의자에 사람만 한국인이 앉아 있는 모양새와 크게 다를 바 없다고 하면 참여정부 사람들은 화부터 벌컥 낼지 모른다. 정부 전체의 시스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조목조목 따지고 보면 그리 자신있는 반박이 나오기 어렵다.청와대 비서실의 직제와 시스템은 레이건 행정부 1기와 거의 빼닮았다. 노무현 정부의 말썽많은 국가안전보장회의(NSC)부터 백악관 따라잡기의 선두주자다. 분야별 보좌관 제도와 홍보 시스템은 '붕어빵' 수준이다. 브리핑 제도, 취재 시스템에서 케이블과 인터넷 방송 생중계 체제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이 미국 것을 베낀 것이다. 인사보좌관과 인사 파일은 백악관 인사실과 인재자료뱅크를 본떴다. 더 들어가면 미국 행정부의 업무 매뉴얼까지 같다. 비서관들의 업무 목표와.. 더보기
<아침을 열며...> 정치와 문학의 거리 2003-12-31 독일의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귄터 그라스만큼 정치참여로 치열하게 사는 사람도 찾아보기 드물다. 정치참여에 관한 한 '못 말리는'이라는 표현이 어울리지 않을까 싶다. 그는 1961년 빌리 브란트 사회민주당 총리 후보 선거전 지원 이래 40여년을 줄기차게 현실정치에 일정 부분 발을 담가왔다. 지난해 9월 총선 때는 70대 중반의 고령임에도 좌파 여당인 사민당 지원유세에 발벗고 나선 것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독일사회의 정치적 쟁점이 있는 곳엔 어김없이 그라스가 등장한다고 봐도 그리 틀리지 않는다. 그는 황석영, 김지하 등 한국의 저항 문인들이 구속됐을 당시 국제연대를 통해 석방운동을 주도하기도 했다.그라스는 작가의 정치참여를 일관되게 몸소 실천하면서도 문학이 단순히 정치의 도구로 전락하는 .. 더보기
<아침을 열며...> '종남산 지름길'과 총선 2003-12-10 중국 고사 '종남산 지름길'은 출세와 영달의 첩경을 상징한다. 종남산은 당나라 수도였던 장안(長安) 남서쪽 교외에 자리잡고 있는 명산 중의 명산이다. 종남첩경(終南捷徑)은 깊디깊은 산중에 은거하면서 이름값을 올린 뒤 높은 벼슬자리를 차지하는 우회전술을 쓰는 선비들이 많았던 데서 유래한다. 종남산은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비단병풍처럼 둘러싸 신비감을 자아내기에 안성맞춤이어서 은둔자들에게 자연스레 인기가 높았다. 중국에서는 은둔자가 현인으로 여겨졌고, 깊이 은거할수록 명성의 높이는 그에 비례하는 경향마저 있었다.종남산 지름길에 관해서는 재미있는 일화가 전해진다. 당나라 현종 때 노장용(盧藏用)은 진사 시험에 급제한 뒤에도 쉽게 임용되지 않아 초조한 나날을 보냈다. 당나라에서는 과거급제가 곧.. 더보기
[여적] 평양 구경 2003-09-17 "뭇 물줄기 모였으니 강 이름이 대동이라, 해맑고 굼실굼실, 번쩍여 출렁출렁, 깨끗하긴 흰 비단을 깐 듯, 해맑기는 청동 거울 같은데, 양편 언덕 수양버들은 온종일 춤을 추며, 질펀한 모래벌판, 넓은 들에 날아 우는 기러기들, 푸른 매가 성(城)을 둘러 사면이 드높은 데, 굽어보면 가랑비에 누역을 쓴 어옹(漁翁)들, 멀리 들으면 석양녘에 피리 부는 목동들, 그림으로도 그릴 수 없고 노래로도 다할 수 없네"'보한집'으로 문명(文名)을 드날린 고려 무신정권시대의 개혁적 지식인 최자(崔滋)는 당시 서경이었던 평양을 필설로 다 묘파하기 어렵다며 이처럼 안타까워했다. 고려때 문인 조위(趙瑋)가 읊은 '평양 8경'은 시정(詩情)이 듬뿍듬뿍 묻어난다. 을밀대의 봄경치(密臺賞春), 부벽루와 대동강물.. 더보기
[여적] 옷의 기원 2003-08-21 소설가 웰레스의 '노벨상'이라는 작품에는 민족에 따라 가장 수치스럽게 여기는 신체 부위가 다르다는 사실을 설명하는 대목이 나온다. '만약 벌거벗은 스웨덴.프랑스.미국 여성이 길에서 사람을 만나면 맨 먼저 손으로 치부를 가릴 것이며, 아랍 여성이라면 얼굴을, 중국 여성이었다면 발을, 사모아 여성이면 예외없이 배꼽을 가장 먼저 가릴 것이다'원시종족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이런 사실을 창세기 신화에서 옷의 기원을 찾으려는 주장이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근거로 삼는다. 아담과 이브가 뱀의 유혹으로 지혜의 나무 열매를 먹은 뒤 나신을 부끄럽게 생각한 나머지 나뭇잎으로 치부를 가리게 됐다는 성서의 기록을 사실로 믿지 않는 학설은 적지 않다. 몇 가지 실례를 보자. 브라질 무구라의 여성들은 '사이아'란 .. 더보기
[여적] 모유 먹이기 2003-08-06 몽골족의 시조는 개의 젖을 먹고 자랐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그래선지 몽골족의 조상 짐승은 개다. 우리 민족의 곰에 해당한다. 전설과는 달리 칭기즈칸은 갓난아이 때 말젖을 주로 먹었다는 속설이 전해진다. 몽골인들이 말젖을 일상적으로 즐기는 것과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고구려를 건국한 주몽이 어려서부터 좋은 말을 구별할 수 있었던 게 말젖으로 양육된 덕이라는 구전도 있다.로마 건국신화의 주인공인 로물루스와 레무스는 늑대의 젖을 빨며 컸다. 이탈리아에서 늑대의 젖을 물고 있는 쌍둥이 그림이나 동상을 쉬이 찾아볼 수 있는 것도 이런 신화가 바탕에 깔렸다. 인류가 동물의 젖을 짜먹기 시작한 것은 이미 1백만년 전인 홍적세 때부터다. 아기에게 동물의 젖, 특히 우유를 본격적으로 먹이기 시작한 것.. 더보기
<경향의 눈>'카드모스의 승리'와 北核 2003-07-29 미국은 이라크전쟁 초반 바그다드의 방공망을 초토화하고 지상군을 투입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 적군의 저항이 만만찮은 상황에 이르자 '피로스의 승리'(Pyrrhic Victory)를 떠올렸다. 베트남전의 재판(再版)이 되거나 이기더라도 '상처뿐인 승리'가 될 수 있다는 초조감이었다. 악몽같은 전황은 미군 수뇌부는 물론 세계의 군사전문가들과 언론의 예단까지 가세하면서 현실화되는 듯했다. '피로스의 승리'는 고대 군사강국 에피로스가 기원전 279년 로마군과 아드리아해 부근에서 벌인 혈전에서 엄청난 희생을 치른 끝에 얻어낸 승전보 이후 고사성어로 정착된 것이다. "이런 승리를 한번 더 거두었다간 우리나라가 망한다"고 피로스 왕이 자신의 운명을 예견하듯이 했다는 말은 오늘날엔 그의 상징이..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