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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餘滴)

[여적] 등대 100년

2003-05-30
인류 최초의 등대로 알려진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파로스 등대가 세계 7대 불가사의의 하나로 꼽히는 까닭은 높이가 무려 135m에 이르는 데다 위쪽으로 올라갈수록 넓어지는 건축형태 때문이다. 학설이 분분하지만 둥글게 만들어진 꼭대기에는 커다란 화덕이 있어 항상 불을 지폈고, 그 뒤에는 거대한 반사경이 있어 강력한 빛을 멀리 보냈다는 설이 유력하다. 파로스 등대는 단순히 항로 표지의 구실만 한 것이 아니라 300개 이상의 방을 가지고 있어 대규모 군병력을 주둔시킬 수 있는 성곽이기도 했다.파로스 등대가 기원전 280년쯤에 만들어질 정도로 서양에서는 등대의 역사가 길지만 우리나라는 100년에 불과하다. 1903년 6월1일 인천 팔미도에 처음 세웠다. 그것도 일본의 압력에 의해 만들어야만 했던 슬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서구 열강과 일본 선박들의 입출항이 잦아지면서 안전항해를 위해 필요하다는 이유로 등대 건설 압박이 국고가 넉넉하지 않은 조선 조정에 밀려왔다.

외압에 의해 태어난 팔미도 등대는 아픈 추억만 있는 것은 아니다. 6.25 전쟁 당시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에서 공신 역할을 한다. 미군 첩보부대 켈로 부대원들이 작전개시 전에 팔미도 등대를 먼저 접수, 공격신호를 보냈던 것이다.

등대는 암흑 속을 항해하는 배들의 이정표만 되는 것이 아니라 삶의 길잡이이기도 하다. 일찍이 근대시의 선구자인 김억(金億)이 '등대'를 읊조렸고, 버지니아 울프와 헨릭 센키에비치가 '등대로'와 '등대지기'를 소설로 엮어냈듯이 단골 문학소재에서 빠지지 않았던 것만 봐도 그렇다. 양희은의 '등대지기'에서 보듯 등대는 우리나라 대중가요 노랫말에서 7번째 빈도를 차지할 정도다.

등대는 고독의 상징이지만 희망이기도 하다. 도서관은 '지성의 등대'가 되고 명동성당은 '민주화의 등대'로 기억된다. 아프리카 최남단 희망봉에 세워진 등대가 세계인의 희망을 표징하듯이 바다가 있고 배가 있는 한, 더불어 인생이 있는 한 등대는 언제까지나 사람들과 애환을 함께 나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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