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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餘滴)

[여적] 생선회 특구

2003-07-09
지구촌 어딜 둘러 보아도 한국인처럼 너나없이 '특'자를 즐기는 국민도 드물다는 사실은 이제 우리 스스로가 인정할 정도다. 설렁탕 집 차림표에 '보통'과 '특'으로 구별짓는 것은 상식이다. 병원에서는 몇달, 심지어 몇년을 기다리더라도 특진을 받아야 직성이 풀린다. 얼마나 특별한지는 모르지만 의사의 몇마디 얘기를 듣는 게 고작 3∼4분에 불과한 데도 말이다. 열차를 타면 특급도 모자라 특실에 앉아서 가야 체면이 선다. 특실 가운데도 특석이 있다면 기를 쓰고 그곳에 가야 자존심을 세운다고 여긴다. 작은 부탁을 하나 하더라도 '특별히' 해야만 잘 먹혀든다.사는 곳은 서울특별시라야 한다. 그 중에서도 강남특구가 아니면 알아주지도 않는다. 그래서 강남은 인재특구로 불리기도 한다. 거기서도 대치동은 교육특구다. 아줌마들이 애써 그곳으로 진출하려는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

조금은 차원이 다르지만 특구가 아니면 나라 전체든, 지방이든 경제가 되지 않는다고들 아우성이다. 지방자치시대가 본격화되면서 경제특구를 만들어 달라는 곳이 난립하기에 이르렀다. 우리나라 최초의 자장면 집이 있는 인천 화교촌은 이미 문화특구로 지정됐다. 화교가 발을 붙이지 못하는 유일한 나라라는 악명이 외국인 투자와 경제발전에 걸림돌이 된다는 지적이 여러차례 나온 뒤였다. 서울의 이태원이 관광특구가 된 것도 경제타령에서 비롯됐다.

우리 정부는 중국과 유사한 경제특구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으나 노동계 등의 반발로 차질을 빚자 우선 지역특구에 눈을 돌리고 있는 듯하다. 일본의 구조개혁특구를 모델로 삼아 내년부터 중앙정부차원에서 지원할 예정인 특구에는 톡톡 튀는 이름이 적지 않을 것 같다는 소식이다.

영어교육특구는 물론 나비특구, 홍길동특구, 굴비특구, 생선회특구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하다. '가장 토속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역설적인 명언을 입증해 보이겠다는 기세다. 1990년대 중반 이후 너도나도 뛰어들었다가 빚더미에 올라앉은 지방공기업 육성계획의 전철만은 밟지 말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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