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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餘滴)

[여적] 산천어

2003-06-16
물고기 이야기를 누구보다 정감 어린 시어로 풀어내는 시인 안정옥의 '산천어'는 다소 애처롭게 다가온다. '봄이 되면 바다로 향하는 신경통을 앓아가며/ 산천어는 또 다른 산천어를 만들고 한 때는 송어였던 기억을 잊었다/ 황금색 몸에는 눈물점 그대로 있어 누구나 그 모습 한번만이라도 보면 탐하는(중략) /사랑을 품고는 오지 않는 물고기가 있었다 오지 않는 사람이 있었다'똑같이 송어로 태어나 바다 구경 한번도 못하는 불운에다 그 흔한 떡고물조차 구경하지 못한 채 평생을 한없이 깨끗한 물에서만 살아야 하는 운명이니 그럴 만도 하다. 태어날 땐 송어와 같은 어종이지만 연어처럼 바다로 나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송어와는 달리 계곡에 남아 그대로 자라면 산천어가 되고 만다. 너무 깨끗한 물에는 고기가 살지 않는다는 속설을 비웃는 듯한 산천어는 그러잖아도 우리 곁에서 점차 찾아 보기 힘든 물고기다. 한여름에도 섭씨 20도를 넘지 않을 만큼 차고 명경지수 같은 1급수에서만 사는 귀족이어서다. 동해안 쪽 심산유곡에서 주로 살 수밖에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산천어는 김일성 주석이 생전에 송이버섯과 함께 건강식으로 즐겼다 해서 북한에선 첫손에 꼽히는 물고기다. 남한에서 '둘이 먹다가 하나가 죽어도 모른다'는 속담과 함께 울릉도 호박엿을 내놓으면 북한에서는 '둘이 먹다가 셋이 죽어도 모른다'며 산천어 국을 들이미는 데는 그만한 까닭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두만강물의 80%가 5급수로 전락하는 바람에 산천어가 급감했다는 안타까운 소식도 있다. 강원도 일대의 하천에서 산천어가 되살아난다는 희소식이 있어 다행이긴 하다.

자연에 비유하는 어법을 즐기는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주말 화젯거리로 떠올리는 바람에 산천어는 느닷없이 시정(市井)의 술안주로 등장했다. '나는 1급수에서 사는 산천어가 아니다'라는 언급이 주변인사들을 둘러싼 의혹에 대한 우회적 입장표명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것에 곧잘 비유되는 정치인은 1급수에서만 사는 산천어가 되기엔 애초부터 불가능하다는 의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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