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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톺아보기-칼럼

<데스크칼럼> 고도의 지성과 村婦의 상식 2001-11-14 국악인들은 거문고를 '백악지장'(百樂之丈)이라고 주저 없이 부른다. 거문고가 모든 국악의 으뜸이라는 것이다. 남성적 악기의 대표주자인 거문고는 그런 만큼 '천하의 고집불통'으로 불리기도 한다. 가야금이 오늘에 이르면서 다양한 개량이 가능했던 반면 거문고는 더 이상 개량이 불가능하다는 판정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김대중 대통령을 우리나라 악기에 비유하면 거문고에 해당한다고 이색적인 주장을 내놓는 사람도 있었다. 김대통령은 우리 역사상 최고 수준의 지성을 갖춘 지도자의 한 사람으로 손꼽힌다. 이는 나라 안팎에서 모두 인정하는 부분이다. 다른 한편으로 김대통령은 오기와 고집도 알아줘야 할 정도라는 세간의 평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는 정치행태나 정책, 인사를 비롯한 거의 모든 분야에서 나름.. 더보기
<데스크칼럼> '얼굴없는 전쟁'의 회색진실 2001-10-10 "진실을 감춤으로써 평화가 유지되는 곳이 판문점이다".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폐부를 찌르던 대사 가운데 하나다. 총을 겨눈 적이면서도 휴전선을 넘나들며 동족의 정을 나누다 돌발사태로 인해 사상자를 내고 마는 총격사건의 진상을 조사하던 중립국감독위원회 장교가 한 말이다. 평화를 위해서는 진실조차 감출 수 있다는 메시지가 역설적으로 들리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평화가 아닌 전쟁에서도 가장 큰 희생자는 진실이라는 경구(警句)는 상징성과 더불어 또다른 아이러니를 안겨준다. 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는 으레 패전국가나 그 국민, 무고하게 희생되는 양민일 수밖에 없다는 게 상식이고, 상처뿐인 영광 '피로스의 승리'(Pyrrhic Victory)도 사실상 패자나 다름없기는 마찬가지일 텐데 .. 더보기
<데스크칼럼>'국민정서法' 만능시대 2001-08-22 우리에겐 언제부턴가 더없이 편리한 법이 존재한다. 보이지 않는 손인 이 법은 때로는 헌법보다 무서운 지존(至尊)으로 통한다. 국민정서라는 이름의 마법(魔法)이 그것이다. 어떤 이는 "우리나라에는 실정법 위에 떼거리법이 있고 떼거리법 위에 국민정서법이 있다"며 냉소를 감추지 못한다. 실제로 언론에는 '국민정서'라는 말이 하루가 멀다고 할 만큼 자주 얼굴을 내민다.국민정서법은 결코 무시해서는 안될 정도로 중요하면서도 핑곗거리로 안성맞춤이기 일쑤다. 말썽많은 평양 8.15 통일축전을 둘러싸고는 너나할 것 없이 국민정서법을 들이댄다. 한 정부당국자는 엊그제 "참가자들의 행동에 대한 국민정서를 감안하면 어떤 형태로든 처벌이나 행정제재가 내려질 가능성이 크다"며 예의 여의봉을 들고 나섰다. 실제.. 더보기
<데스크칼럼>'전략적 모호성'의 가치 2001-06-13 요즘 시중에는 한때 떠돌았던 개그성 수수께끼가 다시 나돈다. '애매모호'를 각 나라말로 뭐라고 하느냐는 물음이 그것이다. 점잖은 자리에선 다소 머쓱할지도 모르는 인터넷 '깔깔방' 수준의 정답은 이렇다. 일본어로는 '아리까리', 프랑스어로는 '아르송다르송', 중국어로는 '갸우뚱', 아프리카말로는 '알간디모르간디'다. 마지막 순서의 독일어로는 '애매모흐'다. 중요한 것은 이런 우스개 수수께끼의 등장 배경이다. 하나의 설(說)은 올들어 부쩍 관심을 모은 '전략적 모호성'이라는 국제정치학 개념에 기초한다. 전략적 모호성은 최근 외교 무대에서는 물론 국내정치에서도 남용되는 느낌마저 준다. 일반인들에겐 그리 익숙하지 않은 전략적 모호성이라는 용어가 우리나라에서 부각되기 시작한 것은 연초 미국 조.. 더보기
<데스크칼럼>'會昌 法難' 역사적 교훈 2001-04-18 당나라 시대는 중국 역사상 불교가 가장 흥륭한 시기로 꼽힌다. 건국 시조인 고조에서부터 대부분의 황제들이 끔찍이 여긴 불교가 사실상 국교나 다름없었다. 심지어 잔학무도한 여제 측천무후(▦天武后)까지 독실한 불교신자였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국보'로 불린 현장법사(玄裝法師)도 당나라가 낳은 지존(至尊)같은 스님임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빛이 강렬하면 그림자도 그만큼 짙은 법일까. 무종 재위 시절 사상 유례없이 극렬한 불교탄압이 자행된 것은 당나라의 어두운 역사 편린으로 고스란히 전해져온다. 악명높은 '회창 법난'(會昌 法難)이 그것이다. 무종의 연호(年號)가 '회창'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무종의 폐불운동 때문에 전국에 걸쳐 4,600여 사찰이 파괴됐고 불교와 관련 있는 건축물.. 더보기
데스크칼럼>政爭만 흐르는 '슬픈 역사' 2001-02-21 미국의 조지 워싱턴 초대 대통령과 토머스 제퍼슨 3대 대통령은 흥미로운 공통점이 많다. 양념같은 화젯거리는 두 사람 모두 돈많은 과부와 결혼한 사실이다. 우연의 일치이겠지만 부인들의 이름이 마사인 것도 재미있다. 워싱턴의 부인은 마사 커티스, 제퍼슨의 아내는 마사 스켈턴이었다. 건국의 아버지들로 일컬어지는 이들의 빼놓을 수 없는 공통분모 가운데 하나는 미국의 오늘을 있게 한 선견지명이다. 땅에 대한 집념이 누구보다 강했던 이들의 웅지명략(雄志明略)과 슬기는 후세 사람들이 비로소 평가한다. 이들에게서 몇가지 도덕적 흠집이 드러나고 있지만 치적을 결정적으로 뒤엎을 정도는 아닌 듯하다.워싱턴은 미국의 영토를 넓혀간 선구적인 지도자의 한 사람으로 손꼽힌다. 그는 개인적으로도 기회만 닿으면 땅.. 더보기
<데스크칼럼>권력경영 제47법칙 2001-01-10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는 아무래도 '권력을 경영하는 48법칙'(로버트 그린.주스트 엘퍼스 공저) 가운데 47번째 법칙을 위반했을 개연성이 크다. 서문에서부터 '권력은 기본적으로 도덕과 관계가 없는 게임'이라고 정곡을 찌르고 들어가는 저자들의 47번째 법칙은 '목표를 달성하면 멈출줄 알아야 한다'고 강한 경고음을 발한다.이총재가 이끄는 한나라당은 권력게임이라는 측면에서만 보면 계속되는 정부.여당의 악수(惡手)에 몰아붙이기만 하다가 기상천외한 역공을 당한 형국이다. 실제로 김대중 대통령과 민주당이 자민련에 '국회의원 꿔주기'라는 역사상 유례가 없는 기발한 잔꾀를 동원하고 DJP공조를 복원하게 된 것을 한나라당의 밀어붙이기에서 빌미를 찾고 있다. 거대 야당의 집요한 정치공세가 개혁정책을 좌초.. 더보기
데스크칼럼>혁명을 떠올리는 세태 2000-11-22 엊그제 경향닷컴에 한 네티즌이 올린 글은 과격하다 못해 섬뜩하기까지 하다. '요즘은 혁명이라도 일어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는 제목 아래 쓴 이 글은 서민들의 마음을 가감없이 대변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온라인의 글들이 익명성 때문에 무뢰에다 무례까지 서슴지 않은 경우가 적지 않아 때로는 오프라인에 옮겨 놓기엔 적절하지 않지만 이 글은 요즘 세태를 축약한 것 같아 논란의 여지를 감수하며 네티즌 용어까지 그대로 일부 인용해 봤다."우리 사회가 넘 엉망이다. 배부른 것들은 계속 배부르고… 아니 더 이상 가난해 질 수도 없으니. 의료계의 밥그릇 싸움에 아파도 치료도 못받았고, 정치판의 눈꼴스러운 개싸움에 나라는 엉망이고… 외국넘들 돈 빌려다가 지들 배××나 채우고, 그리고 부실해지면.. 더보기
<데스크칼럼>'협상학 F학점 국가' 2000-10-11 너무나 역설적이지만 주고 받는 것이 원칙인 협상에서 양보는 최대의 적이자 금기사항이다. 협상 전문가들은 당신의 교과서에서 '선의의 양보'란 항목을 아예 빼어버리라고 극언할 정도다. 선의의 양보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흔히 이런 이유를 댄다. 첫째, 내가 몇가지 먼저 양보함으로써 상대방을 부드럽게 만든다. 둘째, 협상은 진전되어야 하기 때문에 누군가가 먼저 양보를 해야만 한다. 하지만 선의의 양보는 상대방을 부드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 강경하게 만든다. 최초의 요구를 너무 적게 하고 양보를 지나치게 빨리 하면 외려 합의도달 가능성이 적어지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는 사실은 협상학의 상식이다. 이는 상대방이 상응하는 양보를 하기는커녕 더 많은 양보를 기대하는 추적현상 때문이다. 양보가 나쁜 .. 더보기
<데스크칼럼>곧은 길 굽은 길 2000-09-06 협상학의 기본전제가 되는 '주고 받기'에 관한 실험조사 가운데 흥미로운 것이 있다. 일정기간 동안 같은 사람들 사이에서 사용된 'give and take'의 빈도를 측정한 것이다. 그 결과 give가 2,184번이었던 반면 take는 무려 7,000번이었다. 인간의 이기심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이런 실험결과에 비춰보면 남북정상회담 이후 줄을 잇는 양측의 각종 협상에서 남측이 지나치게 주기만 하고 받는 것은 없다는 비판이 적지 않은 것은 당연한지도 모른다. 비슷하게 주고 받더라도 속으론 미흡하다는 생각을 갖게 마련인 게 사람들의 심리이기 때문이다.지난 주말의 한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전국민의 73%가 남북관계는 남한의 일방적인 양보에 기초하고 있다고 여긴다. 남측이 장소, 일정,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