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톺아보기-칼럼

<데스크 칼럼> 우에스기 요잔의 리더십

2003-01-20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이 가장 존경하던 일본인으로 우에스기 요잔(上杉鷹山)을 꼽았다면 고개를 갸우뚱할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 등 내로라하는 전국시대의 영웅,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 같은 메이지 유신 무렵의 선구자, 마쓰시타 고노스케(松下幸之助) 같은 세계적인 경영자, 전후 초대 총리 요시다 시게루(吉田茂) 등을 제쳐놓고 하필이면 일개 번(▦)의 영주인 우에스기일까 하는 의문이 먼저 드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하긴 1960년대 초 케네디 대통령에게 질문을 던진 일본 기자들마저 "우에스기 요잔이 누구지?"하며 서로 물어보았을 정도였다니 그럴 만도 하다. 18∼19세기를 겹쳐 살았던 그가 일본에서도 최근 10여년 사이에 새삼스레 각광 받는 것은 만성적 위기를 맞고 있는 경제환경의 영향이 크다. 우리나라로 치자면 한낱 군수급에 지나지 않는 요네자와(米澤) 번의 영주 우에스기가 그토록 케네디를 감동시킨 데는 그만한 까닭이 있을 수밖에 없다.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번을 구해낸 그의 탁월한 개혁적 리더십이 그것이다.

우에스기가 일본에서 본격적인 재조명을 받기 시작한 직후 한국에서도 반짝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김영삼 정부의 출범과 때를 같이해 번역 출간된 실명소설 '불씨' 덕분이다.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이 소설을 280여질이나 사 모든 비서관과 행정관들에게 읽게 하고 손명순 여사에게까지 일독을 권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작가 도몬 후유지(童門冬二)가 "일본에 이런 인물이 있었다는 걸 혼자 생각하고 있기가 너무 아까웠다"고 집필 동기를 털어놨으니 청와대로서는 매력적인 개혁모델이었음에 틀림없다.

돌이켜 보면 YS가 칼국수를 먹으며 깨끗한 개혁을 선도하려 했던 것은 우에스기가 끼니마다 밥과 국 하나씩만 식탁에 올리도록 하며 몸소 실천한 검약정신을 본받으려 했던 게 아닌가 싶다. 스무살도 채 안 돼 영주가 된 우에스기는 당시 통치자나 무사계급으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뽕나무 심기를 스스럼없이 하면서 개혁의 불씨를 키워 나갔다. YS가 더없이 적절한 벤치마킹을 했음에도 실패한 개혁으로 귀결된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역설이 아닐 수 없다.

한때 2백만섬에 이르던 봉토가 15만섬으로 영락한 요네자와 번을 일으켜 세운 우에스기의 리더십을 제대로 본받아야 할 사람은 사실 YS보다 김대중 대통령이었다.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라는 국가파산 위기에서 나라를 구하는 중책을 맡게 된 상황은 18세기의 요네자와 번과 닮은 꼴이기 때문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소수파이게 마련인 개혁세력의 불꽃을 피워내고 용의주도하게 기득권을 혁파해 가는 우에스기의 리더십은 시행착오가 많았던 두 정권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라도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가 눈여겨볼 값어치가 충분하다. 우에스기의 개혁 성공요인은 무엇보다 국민들의 의식을 바꾸는 것과 동시에 개개인의 경제사정을 괄목할 만큼 풍부하게 만든 데서 찾아야 한다.

의식과 경제가 따로 놀지 않았다는 점은 기득권층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국민적 지지를 이끌어내는 원동력의 하나였다. 그것도 반드시 현장 중심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간과할 수 없는 성공기반이었다.

더욱 중요한 요인의 하나는 측근과 개혁주체세력의 철두철미한 관리이다. YS와 DJ가 모두 실패한 대목이자 노당선자가 끝까지 명심해야 할 부분인 셈이다. 우에스기에게도 측근관리에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개혁파 참모의 최고 선봉자인 다케마타 마사츠나의 탈선 탓이다.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던 다케마타의 궤도 이탈은 아무리 훌륭한 인재라도 마(魔)가 낄 수 있다는 것을 명증한다. 기득권 세력의 집요한 공세에 "개혁을 위해 더러는 때를 묻힐 필요가 있다"며 허물어진 다케마타를 우에스기는 측근들의 용서 간청에도 불구하고 읍참마속하는 단호함을 보였다.

개혁의 길은 멀어도 백성들의 눈에 추호의 더러움도 보이지 않는다는 소신이 더 이상의 측근비리를 막았음은 물론이다. 노당선자가 마지막으로 주목해야 할 우에스기의 개혁은 추진 엘리트를 양성하는 쿄조칸(興讓館)의 창설이다.

김학순 편집국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