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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톺아보기-칼럼

<아침을 열며...> 정치와 문학의 거리

2003-12-31
독일의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귄터 그라스만큼 정치참여로 치열하게 사는 사람도 찾아보기 드물다. 정치참여에 관한 한 '못 말리는'이라는 표현이 어울리지 않을까 싶다. 그는 1961년 빌리 브란트 사회민주당 총리 후보 선거전 지원 이래 40여년을 줄기차게 현실정치에 일정 부분 발을 담가왔다. 지난해 9월 총선 때는 70대 중반의 고령임에도 좌파 여당인 사민당 지원유세에 발벗고 나선 것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독일사회의 정치적 쟁점이 있는 곳엔 어김없이 그라스가 등장한다고 봐도 그리 틀리지 않는다. 그는 황석영, 김지하 등 한국의 저항 문인들이 구속됐을 당시 국제연대를 통해 석방운동을 주도하기도 했다.그라스는 작가의 정치참여를 일관되게 몸소 실천하면서도 문학이 단순히 정치의 도구로 전락하는 것에는 한사코 반대한다. 문학의 고유성과 자율성을 옹위함으로써 문학과 정치의 '이중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 그는 '참여문학'이란 말에 거부감을 느끼는 '모순된 듯한 사고'를 보여준다. 그는 '참여작가'라는 말을 '흰 백마'에 비유한다. 백마는 수식어가 붙지 않아도 하얀 색깔이라는 것이다. 그렇듯 문학 자체가 참여적 성격을 띠고 있다는 게 그라스의 주장이다.

귄터 그라스의 정치참여
이와는 달리 국내의 대표적인 정치와 문학 분리론자 가운데 한 사람인 보수 우익 문학평론가 조연현은 문학의 정치의식과잉을 염려했다. 소설가 김홍신처럼 일찌감치 정치판 속으로 뛰어든 사람이 있는가 하면 민주화운동가였던 시인 김정환 같이 '문학과 정치가 동전의 양면이기 때문에 너무 급하게 만나도 안되고 너무 무관해서도 안된다'는 생각을 가진 이들도 적지 않다. 나라 밖에서는 체코 대통령을 지낸 극작가 바츨라프 하벨같이 현실정치에 몸을 완전히 담갔지만 혼탁한 풍토에 물들지 않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페루 작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는 "문학과 정치는 양립할 수 없다"며 총리직을 거부했다가 훗날 대통령에 도전했다.

한국문단의 대조적인 두 거목인 황석영과 이문열이 정치권의 요구에 상반된 대응을 하고 나서자 한때나마 세인의 눈길들이 그곳으로 쏠리고 있다. 두 사람의 결정에 대한 가치판단은 일단 제쳐놓고서라도 정치권 안팎에서는 나란히 여야의 공천심사위원회에 참여하면 그럴듯한 그림이 그려지지 않겠느냐며 못내 아쉬워하는 호사가들이 적지 않다. 이문열 역시 거부했어야 한다고 걱정을 달고 다니는 이들도 있음은 물론이다.

그라스의 경우가 그렇듯이 우리 사회에서도 문인들의 정치참여는 진보진영이 비교적 적극적인 반면 보수진영은 소극적이었던 게 일반적 현상이었다. 그런 면에서만 보면 상대적으로 진보정당인 열린우리당의 공천심사위원 참여를 고심 끝에 거부한 황석영과 보수 우익인 한나라당의 공천심사위원회에 들어간 이문열은 거꾸로 결정을 한 셈이다. 황석영의 뒤늦은 결심과 이문열에 대한 참여거부 권유에는 여야 정당들의 정치놀음에 대한민국의 간판작가들이 이용만 당하지 않을까 하는 속내가 담겨 있음이 분명하다. "작가는 현실정치와 분명히 거리를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선언한 황석영의 해명에서는 한동안 흔들리던 머릿속이 비치기도 했다. 하지만 이문열까지 불려나오는 바람에 일이 커질 것 같은 예감이 불현듯 떠올랐음직하다. 불과 얼마전 한 중앙일간지에 실린 토론대담이 흥행 성가를 보이자 지지도가 바닥권을 헤매는 거대정당들이 군침을 흘렸던 것이다.

문단 두 거목 엇갈린 결정
두 거목의 서로 다른 결정에 대한 찬반은 제쳐놓고서라도 문단의 권위까지 이용해 진흙탕 속의 개싸움에 비견되는 정치판의 물갈이를 큰 물의없이 시도해 보려는 정당들의 몸부림과 안간힘이 눈에 선하게 읽힌다. 독일 같은 정치선진국이라면 그라스처럼 상처를 입지 않고 온전할 수 있으나 한국적 정치풍토에서 비록 공천심사위원이라는 한정된 일에서도 흠집이 나지 않을까 걱정스레 지켜 보는 이들이 적지 않은 것 같다. 이문열은 '홍위병발언'을 비롯한 정치색깔로 생채기가 났지만 그의 문학적 비중만 보면 시민운동 차원 정도의 참여라도 더 이상 흠집이 나지 않는 게 낫다는 생각이 아닌가 싶다. 그의 설명대로 나름대로 긍정적 역할이 있겠지만. 그래서 장고 끝에 나온 황석영의 결정이 조금은 나아 보인다. 정치와 문학도 창조적인 긴장관계가 요구되는 까닭을 여기에서 찾을 수 있겠다.

김학순 본사 미디어전략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