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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톺아보기-칼럼

<아침을 열며...> 미국 시스템에 깃든 유럽정신

2004-02-04

청와대가 미국 백악관의 의자에 사람만 한국인이 앉아 있는 모양새와 크게 다를 바 없다고 하면 참여정부 사람들은 화부터 벌컥 낼지 모른다. 정부 전체의 시스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조목조목 따지고 보면 그리 자신있는 반박이 나오기 어렵다.청와대 비서실의 직제와 시스템은 레이건 행정부 1기와 거의 빼닮았다. 노무현 정부의 말썽많은 국가안전보장회의(NSC)부터 백악관 따라잡기의 선두주자다. 분야별 보좌관 제도와 홍보 시스템은 '붕어빵' 수준이다. 브리핑 제도, 취재 시스템에서 케이블과 인터넷 방송 생중계 체제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이 미국 것을 베낀 것이다. 인사보좌관과 인사 파일은 백악관 인사실과 인재자료뱅크를 본떴다. 더 들어가면 미국 행정부의 업무 매뉴얼까지 같다. 비서관들의 업무 목표와 임무, 소관사항, 직무요령은 언어만 다르다고 해도 무리가 아닐 게다.

방송사측과의 견해차로 성사되진 않았지만 심지어 백악관식 대통령 라디오 주례연설까지 기획했을 정도다. 각종 위원회를 두어 정부의 핵심과제를 연구하고 정책조정을 하는 체제 역시 미국 행정부를 벤치마킹한 것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우리 정부형태가 기본적으로 미국식 대통령제에다 의원내각제 형식을 가미한 것이지만 참여정부에 접어들어 정부시스템은 확연히 미국색으로 덧칠한 셈이다.

정부시스템 미국색 덧칠
여기에다 핵심 정책용어까지 온통 미국말 투성이다. 로드맵, 코드 같은 온갖 열쇠말이 영어로 춤을 춘다. 반미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비미(非美)인 것만은 분명한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가 정서와는 달리 그토록 미국 시스템에 집착하고 있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역설이다. 여기마저 '욕하면서 배운다'는 속담을 동원한다면 지나친 견강부회라는 비난을 감수해야 할까.

섣부른 백악관 따라하기의 중간 결산은 상처투성이와 그로 인한 누더기 인사뿐이다. 정권 초기의 실패와 그 유형은 클린턴 행정부와 닮은 꼴이다. 지난해 이맘 때쯤 이미 클린턴의 실패를 그대로 답습하는 징조를 예견하는 칼럼을 쓴 적이 있지만 시행착오의 실제상황은 예상보다 훨씬 이른 6개월도 되기 전에 오고 말았다. 실패의 질은 클린턴 정부보다 훨씬 심각하다.

이처럼 참담한 귀결은 정권 핵심인사들이 자인하기 싫어하는 아마추어리즘에도 원인이 있지만 시스템과 마인드가 따로 노는 탓도 적지 않다. 시스템은 미국식으로 꾸몄으면서도 운영하는 사람들의 생각은 유럽식이 지배적이다. 참여 정부의 주요 정책참모들은 유럽에서 공부를 했거나 미국에서 유학을 했더라도 유럽식 정책에 한층 매력을 느끼는 이들이 많다.

사실 미국은 정부의 개입을 최소화하는 '작은 정부'를 채택하고 있는 반면 유럽은 대부분 정부가 정책에 적극 개입하는 '큰 정부'를 선호한다. 같은 뿌리의 서구형 자본주의지만 경쟁력 강화를 위한 기업 위주의 시장경제 모델인 미국형과 조화로운 사회를 지향하는 복지사회 위주의 유럽형 모델 가운데 한국 토양에 맞는 게 어떤 것이냐는 끝없는 논란은 우리 사회의 이념 논쟁과 맥을 같이 한다.

사회의 주름살을 없애는 처방약으로 미국 보톡스형이 좋으냐 유럽 디스포트형이 더 나으냐 하는 선택지 같다. 노무현 대통령이 대선과정에서 보톡스를 사용한 적이 있다고 한 고백은 사안의 본질과 상관없이 상징성을 갖는다. 미국을 달갑잖게 여기면서도 미국식을 따르는 역설처럼 보인다.

일관성 잃은 인사에 혼란
미국식 대통령제에 유럽식 의원내각제 형식을 가미한 것 자체부터 미국형과 유럽형의 혼합이 아니냐는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이른바 '제3의 길'은 다른 시스템과 정신의 기계적 접목이 결코 아니다. 시스템과 운영 마인드가 별개인 것은 철학의 빈곤과 연관될 수 있다.

미국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가졌다면 보다 철저해야 한다. 이도 저도 아니면 지지층의 비난을 무릅쓰고 그 반대라도 될 각오가 돼 있어야 한다. 일관성을 잃은 혼란은 최근의 잇단 인사에서도 감지된다. 일부 각료인사에서는 미국 마인드를 가진 사람들로 채워 가는 느낌을 주다가도 다른 인사에서는 그 반대로 나타나곤 해 종잡을 수 없다. 시스템과 정신이 다른 모순을 그대로 끌고 가다가는 일부 교수들이 명명한 '우왕좌왕'이란 사자성어가 정권이 끝날 때까지 고쳐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김학순 본사 미디어전략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