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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톺아보기-칼럼

<데스크 칼럼>열린 정부와 알권리

2003-03-17
우리나라 언론의 취재방식과 시스템은 알게 모르게 일본을 닮아왔다. 순전히 일제시대의 잔재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겠지만 결정적인 영향을 받은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기사 취재를 대부분 출입처와 기자단에 의존하는 우리나라와 가장 흡사한 취재시스템을 가진 나라로는 일본이 유일하다는 점에서 어렵잖게 이를 유추해 볼 수 있다.'요미우리신문 80년사'에 따르면 일본에서는 이미 1882년 태정관이라는 곳에 '신문사원휴게소'가 생겨났다. 기자실의 효시인 셈이다. 1890년에는 의회의 탄생과 때를 같이해 의회출입기자단인 '공동신문구락부'가 처음 결성됐다는 기록도 나온다.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일본 국회기자회의 원조라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우리나라는 일본이 2차 세계대전 이전에 사용하던 '기샤단'(記者團)의 명칭을 그대로 본떠 쓰고 있다. 일본은 기자단이라는 이름을 기자클럽으로 바꾼 지 오래다.

이처럼 오랜 관행을 지닌 한국의 언론취재시스템이 노무현 정부의 출범과 함께 요동치기 시작했다. 청와대에 이어 언론주무부처인 문화관광부가 지난 주말 구미(歐美), 특히 미국에 가까운 취재활동방식을 도입하면서 정부와 언론이 새로운 긴장관계로 접어드는 느낌을 준다. 권력과 언론이 유착 아닌 건강한 긴장관계를 유지하도록 하겠다고 노대통령이 선언했을 때부터 본격적인 언론개혁추진은 예견됐다. 하지만 언론은 전면적이고 급격한 정부 취재시스템의 변화가 뒤따를 것으로 예상하지 못한 듯하다. 벌써부터 기존 언론계의 우려가 심상치 않은 것에서도 엿볼 수 있다.

정부의 새로운 제도에 대한 논란은 청와대 춘추관 운영에서 나타났듯이 상당기간 끊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시대의 흐름이 바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언론이라는 이유만으로 기득권과 관행이 깨지는 것을 두려워 해서는 곤란하다. 문제의 핵심과 논란의 초점은 언론 본연의 기능 가운데 하나인 국민의 알권리 제공이라는 의무에 중대한 훼손이 오느냐의 여부에 맞춰져야 한다. 새 정부가 취재시스템의 개혁을 들고나오는 명분도 궁극적으로는 국민에 대한 봉사와 권리 신장에 있다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 형식이 내용을 지배한다는 명제가 전적으로 틀리지 않다면 새로운 취재시스템이 취재의 내용변화를 가져올 게 틀림없다.

취재원의 접촉에 제한이 없던 지금까지의 방식과 제도에 공무원의 업무장애라는 문제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기자단 제도가 매체제한이라는 지적을 받아온 것도 사실이다.

이제 정부의 가장 큰 숙제는 새로운 제도가 안고 있는 정보접근권과 국민의 알권리 제한이라는 문제점을 어떤 방식으로 보완해 줄 것인지에 있다. 노대통령이 기회있을 때마다 역설하는 '오보와의 전쟁'도 새 제도가 갖는 한계와 맞닿아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오보 방지는 빼놓을 수 없는 언론의 의무임에 틀림없다. 치밀한 확인과 재검증을 거쳐 오보를 최대한 방지하는 의무가 언론인들에게 부과돼 있지만 다양한 취재원 접근은 오보를 막는 수단이기도 하다. 새 제도는 이런 점에서는 모순과 한계를 안고 있다. 모든 공무원이 취재내용을 공보관에게 양식에 맞추어 보고하도록 의무화한 것은 취재를 현저하게 위축시킬 개연성이 높다.

정보공개법을 만든 취지도 무엇이든 공개를 꺼리는 공직자들의 속성을 법제화를 통해 깨뜨려 국민의 알권리를 신장하려는 데서 출발했음을 알아야 한다. 번거로운 절차가 부과된다면 그렇잖아도 숨기고 싶어하는 공무원들의 정보공개 의지를 위축시킬 게 불을 보듯 뻔하다. 열린 정부를 지향하는 목적과는 사뭇 달리 정부의 투명성을 현저하게 떨어뜨릴 위험성도 안고 있다. 보다 많은 매체에 대한 개방은 바람직한 방향이지만 개방이 또 다른 폐쇄를 불러 개선 아닌 개악이 된다면 정부의 당초 취지가 몰라보게 윤색될 것이다. 형식은 열린 공간이지만 내용은 도리어 과거보다 폐쇄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언론쪽의 지적을 마냥 무시한다면 정부에 부메랑이 될 수 있다.

사회의 모든 분야가 수요자 중심으로 변하고 있음에도 자칫 공급자 중심이 될 소지를 남기지 않아야 할 것이다. 새로운 제도가 정착하는 과정에서 시행착오가 아예 없을 수는 없지만 불필요한 갈등과 오해는 줄이는 게 언론과 정부, 아니 국민을 피곤하지 않게 하는 길이다. 편집국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