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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톺아보기-칼럼

빈곤은 가난과 다르다 한 작가는 빈곤과 가난의 차이를 흥미롭게 풀었다. 끼니를 걱정해야 하면 빈곤, 끼니만 해결되면 가난이란다. 프랑스 시인이자 철학자인 샤를 페기는 빈곤과 가난이 이웃임이 틀림없지만 서로 다른 땅에 자리잡고 있다고 했다. "빈곤과 가난 사이에는 분명한 경계가 존재한다. 가난한 사람과 빈곤한 사람은 현상적인 차이가 아니라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빈곤은 모든 게 비참으로 가득 찬 경계 내부를 전적으로 지배하지만, 가난은 그 너머에서 시작해 일찍 끝이 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빈곤과 가난의 경계를 이해하면 수많은 경제적·도덕적·사회적·정치적 문제를 쉽게 정의할 수 있다고 했다. 가난은 선택할 수 있으나 빈곤은 선택할 수 없다고 한다. 영국 사회학자 피터 타운센드는 빈곤을 ‘사회참여 불능’으로 정의한다. 아시.. 더보기
맥베스의 운명, 윤석열의 길 윤석열 대통령이 권좌에 오르는 과정은 공교롭게도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비극 ‘맥베스’ 전반부를 연상시킨다. 스코틀랜드의 용맹한 장군이자 충신인 맥베스는 반란군을 진압하고 돌아오던 길에 정체불명의 세 마녀와 마주친다. 마녀들은 맥베스가 장차 왕위에 오를 것이라고 예언한다. 깜짝 놀란 맥베스는 들은 얘기를 아내에게 털어놓는다. 맥베스는 전공을 세운 자신에게 영주 작위까지 하사한 던컨 왕에게 양심의 가책을 느껴 주저한다. 야심만만한 아내는 남편의 나약함을 타박하며 왕을 살해하라고 부추긴다. 용기를 낸 맥베스는 승전을 축하하기 위해 자기 성에 들어와 잠자던 던컨 왕을 시해한 뒤 왕위에 오른다. ‘맥베스’는 실존 인물인 스코틀랜드 국왕 ‘막 베하드 막 핀들라크’가 모델이다. 윤 대통령은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 더보기
최고·최악이 혼재하는 디킨스적 현상 영미권에서는 최고의 시기이자 최악의 시기가 혼재할 때 ‘디킨스적 현상’(Dickensian quality)이란 표현을 즐겨 쓴다. 미국 투자전문 주간지 배런스가 구글 모기업 알파벳의 2019년 상반기를 평가하면서 ‘디킨스적 현상을 겪었다. 최고의 시기이자 최악의 시기였다’고 형용했다. ‘디킨스적 현상’은 빅토리아 시대의 가장 위대한 소설가로 불리는 디킨스의 작품 세계를 표징하는 말이다. 자기 이름이 그가 살던 시대와 작품으로 표현한 시대의 형용사로 쓰이는 영예를 누리는 작가는 드물다. 영국에서 윌리엄 셰익스피어와 쌍벽을 이루는 찰스 디킨스는 그런 작가이자 지식인이다. 디킨스가 살던 시절, 역사상 최고의 번영을 구가하며 세계를 지배하던 영국이었지만 그곳에도 가난에 신음하는 서민과 온기 없는 그늘이 많았다... 더보기
‘초심자 행운’이 가혹한 시험으로 처음 주식에 손을 대 재미를 좀 보면 빚까지 내 골몰하다가 낭패를 보는 사람이 숱하다. 친구를 따라가 처음 낚시를 하는 사람이 한두차례 월척을 낚으면 자기 소질이 대단한 줄 안다. 새로운 걸 처음 해볼 때 뜻밖에 전문가보다 나은 성과를 거두는 ‘초심자의 행운’은 어느 분야에나 존재한다. ‘초심자의 행운’을 맞이한 사람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은 운을 실력으로 착각하는 일이다. ‘초심자의 행운’에 자기과신과 확증편향까지 결합하면 최악의 실패를 불러온다. 행동경제학에서는 ‘초심자의 행운’을 경계해야 하는 본보기로 곧잘 거론한다. ‘초심자의 행운’을 자신에게만 있는 특별한 능력이라고 착각하는 순간 어김없이 시련이 따라오곤 한다. 베스트셀러 작가 파울루 코엘류는 소설 ‘연금술사’에서 ‘무엇인가 찾아나서는 도전은 언.. 더보기
진보 보수 4명의 총리와 일한 영국 최고 관료 헤이우드와 한덕수 총리 정파를 초월해 오랫동안 모범적인 고위 공직자로 활약한 대표적인 인물로는 한스 디트리히 겐셔 전 독일 외무장관을 첫손가락에 꼽을 만하다. 독일통일의 주역 가운데 한사람인 겐셔는 18년 동안 한자리에서 일해 ‘직업이 외무장관’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빌리 브란트, 헬무트 슈미트, 헬무트 콜 총리로 이어지는 세차례의 정권교체와 통일 직후에도 최장수 ‘외교 사령탑’은 바뀌지 않았다. ‘외교의 귀신’이란 별명까지 붙은 그는 ‘겐셔리즘’이라는 외교용어를 낳을 만큼 탁월한 역량을 체현했다. 겐셔리즘이란 외교정책과 역사의 흐름을 하나의 발전과정으로 파악해 패권과 영향력 행사 지역으로 세계를 분할하는 것을 막고 다극체제 속에서 공존하자는 취지다. 겐셔는 미국 소련 등 주변 4대 강국과 인접 9개국 어느 쪽도 적으로 만들지.. 더보기
선진국에 걸맞아야 할 공직 인사기준 헝가리 대통령은 박사논문 표절 탓에 물러났다. 슈미트 팔 전 대통령은 올림픽 펜싱 금메달 2연패를 이룬 헝가리의 스포츠 영웅이었다. 벌써 9년 전의 일이다. 이보다 한달 앞서 독일 국방부장관도 박사논문 표절 의혹으로 사임했다. 독일에서는 2년 뒤 교육부장관이 또 박사학위 논문 표절 판정을 받고 사퇴하는 일이 벌어졌다. 지난해에는 독일 가정·노인·여성·청소년부장관이 박사학위 논문 표절 의혹 소용돌이 속에서 사직했다. 스웨덴 부총리는 정부 신용카드로 생필품 34만원어치를 사고 나중에 자기 돈으로 카드대금을 메꾸었다고 해명했으나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당시 모나 살린 부총리는 공휴일에 기저귀 초콜릿 식료품값을 무심코 법인카드로 지급했다. 1996년 총리직 승계를 반년 앞둔 시점이었다. 스웨덴에서는 아무리 작은.. 더보기
못 말리는 검찰 사랑 인사 한국 최고지도자 중 외국 기자로부터 국내 인사(人事) 문제점을 지적받은 이는 윤석열 대통령이 처음이 아닌가 싶다. 같은 지적도 한번이 아니다. 윤 대통령은 한미정상회담 후 공동기자회견에서 워싱턴포스트 기자로부터 남성 편중 내각 인사에 관한 질문을 받았다. 백악관 출입기자들은 외국 정상과 회담 후 공동기자회견을 할 때 대부분 미국 대통령에게만 질문을 던진다. 어쩌다 상대국가 지도자에게 질문하더라도 외교 현안에 집중된다. 윤 대통령은 최근 미국 CNN 방송과 한 인터뷰에서도 남성 편중 내각 지적을 피하지 못했다. 두차례 답변에서 윤 대통령의 곤혹스러움이 묻어났다. “예를 들어 내각의 장관이라고 하면 그 직전 위치까지 여성이 많이 올라오지 못했다. 기회를 더 적극적으로 보장할 생각이다.” “첫 내각을 구성하는.. 더보기
문제는 정파적 온정주의다 더불어민주당이 5년 만에 정권을 내준 것이 내로남불과 오만 무능 때문이었다는 데 이의를 달기 어렵다. 조 국·윤미향 사태로 표징되는 ‘내로남불’은 온정주의와 정파·진영의 결합이 낳은 적폐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청와대 비서실에 걸렸던 액자 ‘대인춘풍 지기추상’(待人春風 持己秋霜)이 조롱의 대상이 된 사례가 한두번이 아니다. ‘남에게는 부드럽게, 자신에겐 엄격하게’라는 뜻이지만, 문 전 대통령과 정권 사람들은 그 반대였다. 남에게는 엄격하고 자신에게는 온정주의로 대했다. 20대 여성인 박지현 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이 가장 큰 목소리로 외치고 있는 단어가 ‘온정주의 타파’인 것도 이 때문이다. 최강욱 의원 성희롱 발언, 박완주 의원 성비위 사건, 김원이 의원 성폭력 2차가해 의혹 등 잇단 물의로 곤혹스러워.. 더보기
‘그들만의 리그’ 특권고위층 인사청문회는 한국 사회의 불편한 진실을 비추는 거울이 됐다. 거울에 비치는 고위층의 맨얼굴은 날이 갈수록 추한 모습만 드러낸 돋을새김 같다. 정권이 바뀌어도 진보 보수 가릴 것 없이 ‘그들만의 리그’는 온존한 생명력을 뽐낸다. 인사청문회 때마다 절망하다 체념하는 분위기까지 엿보인다. 도덕성 기준이 뚜렷이 퇴보했기 때문이다. 김대중정부의 국무총리 후보자 2명이 연이어 낙마한 결정적인 사유는 위장전입이었다. 노무현정부의 교육부장관 조기 사퇴는 논문 중복 제출 때문이었다. 이제 병역의혹 탈세 부동산투기 위장전입 연구부정 같은 일은 웬만하면 그러려니 한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지지율은 정권교체당해 떠나는 대통령보다 낮다. 공정과 상식의 깃발 덕분에 당선했으면서 취임도 하기 전에 약속을 깨트린 게 주된 이유의 .. 더보기
100년 전과 꼭 닮은 음울한 지구촌 꼭 100년 전인 1922년 하버드대 두 동창생의 기념비적인 시와 저작이 나와 세상의 눈길을 끌었다. T.S. 엘리엇의 장편시 ‘황무지’와 월터 리프먼의 ‘여론’이 그것이다. 시대상황을 대변하는 두 작품 모두 지금 현실에 대입해도 맞아떨어진다. ‘황무지’의 유명한 첫 구절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은 100년이 지난 우리에게 그대로 다가와있다. 황무지는 1000만명의 사망자를 낸 1차세계대전과 곧이어 수천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스페인독감 팬데믹이 초래한 서구 문명의 절망을 은유적으로 절규한다. 3년 차에 접어든 코로나19 팬데믹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는 지구촌을 100년 전과 다름없는 황무지로 이끌고 있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터키 작가 오르한 파묵은 팬데믹에 전쟁까지 겹친 지금 "중세가 다시 도래..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