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톺아보기-칼럼 썸네일형 리스트형 분노가 세상을 바꾼다 서양 최초의 웅혼한 서사시는 첫 구절부터 ‘분노’로 시작한다. "노래하소서, 여신이여! 펠레우스의 아들 아킬레우스의 분노를. 아카이오이족에게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고통을 안겨주었으며 숱한 영웅들의 굳센 혼백을 하데스에게 보내고 그들 자신은 개들과 온갖 새들의 먹이가 되게 한 그 잔혹한 분노를." 서양 문명의 원초적 가치관을 담은 호메로스의 ‘일리아스’가 그리스 영웅 아킬레우스의 분노로 기승전결을 이룬 것은 이채롭다. 그뿐만 아니라 아이스킬로스의 ‘결박한 프로메테우스’, 에우리피데스의 ‘메데이아’ 같은 고대 그리스 비극 작품에도 분노가 핵심으로 등장한다. 전쟁 정치 같은 모든 사회 갈등에 분노가 기폭제로 쓰이기 때문이리라. 사회적인 분노에는 불공정이 가장 폭발적인 뇌관으로 쓰이기 쉽다. 조 국 전 법무부장.. 더보기 일어날 일은 반드시 일어난다 영화 ‘인터스텔라’의 주인공 우주비행사 쿠퍼는 딸 이름을 ‘머피(Murphy)’라고 짓는다. 딸은 이름에 대한 불만을 아빠에게 털어놓곤 했다. 좋지 않은 일이 거푸 일어난다는 머피의 법칙이 연상되어서다. 그러자 아빠는 이렇게 받아넘긴다. "머피의 법칙은 나쁜 일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일어날 일은 반드시 일어나게 돼 있다는 말이란다." 물리학자들도 양자역학을 빌려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고 주장한다. 윤석열정부의 잇따른 인사 참사 역시 일어날 일이 일어난 것에 불과하다. 윤 대통령이 새로 임명한 정순신 국가수사본부장이 하루 만에 사퇴한 것은 상식적이지 않은 인사가 낳은 후과다. 가뜩이나 ‘검찰공화국’ 아니냐는 시선이 불편한 터에 경찰 수사독립의 상징인 국가수사본부 수장마저 대통령의 측근으로 꼽히는 검사.. 더보기 빛의 정치, 물감의 정치 세상의 모든 빛을 섞으면 흰색이 나온다고 한다. 흰빛은 세상의 모든 색을 품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국인이 오랜 옛날부터 유난스레 사랑하는 게 흰색이다. 빛은 서로 섞일수록 밝아지고, 물감색은 섞일수록 어두워진다. 빛은 섞일수록 밝아져 가산(덧셈) 혼합이라고 부르고, 물감색은 섞일수록 탁해진다고 해서 감산(뺄셈) 혼합이라고 일컫는다. 빛처럼 더할수록 좋은 것으로는 사랑 이타심 평화 인류애가 꼽힌다. 물감색의 성질을 지닌 것으로는 권력 돈 전쟁 이기심 따위가 있다. 다양성을 존중하는 민주주의도 빛의 성질을 띤다. 윤석열정권 출범 이후 한국 민주주의가 후퇴한 것을 어렵잖게 체감할 수 있다. 객관적 국제지표까지 지난주 발표됐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 부설 경제분석기관인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 더보기 ‘매슬로의 망치’와 검사 정치인 전성시대 망치를 든 사람에게는 모든 게 못으로 보인다"는 ‘망치의 법칙’은 인간의 욕구를 잘 투영한다. ‘욕구 5단계 이론’으로 유명한 미국 심리학자 에이브러햄 매슬로가 언급한 이 말은 ‘친숙한 도구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인지편향’을 뜻한다. 미국 철학자 에이브러햄 캐플런도 "어린아이에게 망치를 주면 두드릴 수 있는 모든 것을 찾아다닐 것"이라는 ‘도구의 법칙’을 제시했다. 특정 해법을 모든 분야에 적용하려고 하는 심리를 족집게처럼 짚어냈다. 나라를 경영하는 권력은 망치질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 특정 도구에 몰입하면 시야가 좁아질 확률이 높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사설에서 "망치가 있으면 모든 게 못으로 보인다. 사람의 경험이 부동산 거래로 제한돼 있으면 모든 게 임대계약 협상으로 보인다"고 부동산 재벌인 도널드 트.. 더보기 주목경제 시대의 숨은 공로자들 이보다 더 모질고 악독한 말을 하기도 어렵다. "우려먹기 장인들. 자식 팔아 장사한단 소리 나온다. 제2의 세월호냐. 나라 구하다 죽었냐." 국민의힘 소속 김미나 창원시의회 의원이 얼마 전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분들. 자식들이 날 때부터 국가에 징병되었나요?? 다 큰 자식들이 놀러 가는 것을 부모도 못 말려놓고 왜 정부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깁니까?! 언제부터 자유 대한민국 대통령이 ‘어버이 수령님’이 되었나요??" 망언의 끝판 대장을 보는 듯하다. 김성회 전 대통령실 종교다문화비서관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성 소수자들에 대한 혐오 발언으로 물러난 바로 그 사람이다.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인 김상훈 의원(대구 서구)은 공식회의에서 이렇게 말을 했다. "지난 .. 더보기 체리피킹 정치의 유혹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이 대공황을 극복하고 위대한 지도자로 우뚝 선 데에는 통계의 비결이 숨어있다. 당시만 해도 통계·조사기법이 발달하지 않아 대부분 정책이 주먹구구식이었다. 대공황으로 말미암아 한꺼번에 쏟아지는 실업자가 100만명인지, 1000만명인지 누구도 가늠할 수 없었다. 실업자수는 심지어 2500만명까지 추정되고 있었다. 답답한 마음에 미국 연방의회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전수조사를 정부에 권고했다. 미국 인구가 1억3000만명이나 돼 전수조사를 하더라도 빅데이터를 집계하는 일 자체가 거의 불가능했다. 루스벨트 대통령의 지시를 받은 통계학자들이 24.9%라는 실업률을 근접하게 알아낸 방법은 표본조사였다. 통계학자들은 임의로 뽑은 전체인구의 0.5%를 대상으로 조사하고 분석했다. 세계 .. 더보기 허슬 컬쳐, 조용한 사직, 주52시간제 개편 김민재 한국 국가대표 축구선수는 민첩한 허슬 플레이(hustle play)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그에게 ‘괴물 수비수’라는 별명이 붙은 것도 재빠른 뒷공간 커버와 허슬 플레이 덕분이다.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김하성 선수도 경기 흐름을 바꾸는 허슬 플레이로 감독에게 "다른 선수에게 많은 영감을 주는 선수"라는 극찬을 받는다. 스포츠의 허슬 플레이가 일터에서는 열정적으로 일하는 ‘허슬 컬쳐’로 변주된다. 개인 생활보다 회사 업무를 중시하고 열심히 일하는 생활양식과 이를 높이 사는 문화다. 이는 한국에서도 50대 이후 세대의 성공한 직장인들에게서 어렵잖게 찾아볼 수 있는 라이프스타일이다. ‘일벌레’나 ‘워커홀릭’(일중독)으로 불리는 사람들의 전형이 그것이다. 허슬 컬쳐는 원래 현.. 더보기 ‘선택적 정직’이 낳는 지도자의 위기 네덜란드 국민화가 렘브란트 반 레인은 남달리 자화상을 많이 그린 것으로 유명하다. 그가 캔버스에 그린 것만 50~60점, 종이 판화 데생까지 더하면 100여점에 달한다. 렘브란트의 자화상은 숫자나 작품성보다 정직성 때문에 높은 평가를 받는다. ‘자화상의 교과서’로 불리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사실 그의 외모는 잘생긴 게 아니다. 렘브란트가 20대 때 그린 ‘황금 고리줄을 두른 자화상’에는 젊음의 패기와 자신감이 넘쳐난다. 이와 달리 말년의 자화상들은 초라한 노인의 모습을 가감없이 보여준다. 모든 것을 잃고 희망마저 포기한 듯한 얼굴은 안쓰럽다. 한 미술평론가는 렘브란트가 쉰네 살 때 그린 ‘이젤 앞에서의 자화상’을 보고 ‘무자비할 정도로 너무나 무정한 기록’이라고 평했다. ‘예술은 거짓이다’라고 했던 철.. 더보기 ‘미래’ 간판 걸고 ‘과거’ 상품 파는 새 정권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금언은 예수가 처음 한 말이어서 한결 무게가 실린다. 이 잠언에는 과학이 담겼다.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포도주를 양의 가죽으로 만든 부대에 담았다. 이때 낡은 부대에 새 포도주를 오래 담아 두면 발효과정에서 독한 가스가 생겨나 부대가 터져버린다. 오래된 가죽부대 안에 당분이 묻어 가죽이 딱딱해지기 때문이다. 새 가죽부대는 포도주가 발효하는 만큼 늘어난다. 이 과정에서 좋은 술이 만들어진다. ‘새 부대’는 흔히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새 인물과 정신을 상징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나라의 미래를 위해 열심히 일하겠다고 다짐하곤 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주 국무회의에서도 "나라의 미래에 대한 계획을 청년들과 함께 만든다는 각오로 소통해달라"고 주문했다. 그런 약속과.. 더보기 ‘빅블러’와 ‘붉은 여왕’을 동시에 보는 시대 빵집 파리바게뜨에서는 ‘정통 자장면’을 가정간편식으로 판다. 세계 최대 커피체인 스타벅스에는 은행보다 많은 돈이 예치된다.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업체 아마존은 업종과 온라인·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포식한다. 올해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에는 임파서블 버거(식물성 버거)가 출품됐다. 네이버 카카오 같은 포털 빅테크기업은 금융업에 손을 뻗쳤다. 이처럼 모든 분야에서 경계가 허물어지는 ‘빅블러’(Big Blur) 현상이 가속하고 있다. 디지털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는 데다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면서 ‘빅블러’(경계융화)를 촉매한다. 미국 미래학자 스탠 데이비스와 크리스토퍼 메이어는 ‘블러: 연결경제에서의 변화 속도’라는 공저(1999년)에서 혁신적인 기술발전에 따라 기존의 경계가 무너.. 더보기 이전 1 2 3 4 5 6 7 8 ··· 4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