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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톺아보기-칼럼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도 못 막는 대통령

 사람의 자질은 위기 때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트바로티’로 불리는 가수 김호중이 인기 정상에서 추락한 것도 ‘영점’에 가까운 위기대처능력 때문이다. 그가 음주운전을 하다 사고를 낸 뒤 뺑소니 혐의로 끝내 구속된 일은 잇단 거짓말과 뒤늦은 실토가 불러온 참사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다’는 속담에 딱 어울리는 사례다.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 2주년 지지율이 민주화 이후 대통령 가운데 가장 낮은 것(24%)도 위기대처능력이 떨어지는 영향이 크다. 윤 대통령이 취임 초기부터 지금까지 논란과 문제를 낳고도 제대로 풀지 못하는 일이 수두룩하다. ‘문제를 꼬이게 만드는 선수 같다’는 얘기가 나올 법하다.


 취임 4개월 무렵 뉴욕 유엔본부 방문 때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48초 대화’를 마친 뒤 일으킨 ‘비속어 파문’이 윤 대통령의 첫번째 폭탄으로 꼽힌다. 윤 대통령이 “국회에서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은 X팔려서 어떡하나?”라고 말했다는 첫 방송 보도는 ‘바이든’ ‘날리면’ 논란을 낳은 이후 1년 8개월 동안 미결상태로 남아 있다. 

 

  이 사건은 윤 대통령이 솔직히 시인하고 사과했으면 ‘촌극’으로 끝날 수 있는 일이었다. 발생 15시간이 지난 뒤에야 김은혜 대통령실 홍보수석이 “승인 안 해주고 날리면 X팔려서 어떡하나”라고 해명하면서 사안은 커지기 시작했다. 문화방송(MBC) 취재진의 대통령 전용기 탑승 불허, 소송전 비화, 언론탄압 논란에 이르기까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주 69시간 근무제’는 윤 대통령의 유체이탈화법이라는 비판까지 불러일으켰던 사안이다. 지난해 3월 고용노동부가 윤 대통령의 재가를 얻어 발표하자 반발이 거셌다. ‘일이 많을 때는 주 69시간까지 몰아서 일하고, 적을 때는 충분한 휴식을 취하자’는 취지라고 해명했지만 책상물림 정책이라는 힐난을 받았다. 이후 윤 대통령이 전면 재검토 의지를 밝혀 철회됐다. 윤석열정부의 3대 개혁 공약 가운데 하나인 ‘노동개혁’은 저출생 문제와도 직결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다. ‘주 69시간 근무제’는 윤 대통령이 후보 시절 발언 때문에 여파가 더욱 컸다. 그는 “일주일에 120시간 일하고도 마음껏 쉴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해 땅에 발은 붙이고 다니느냐는 핀잔을 들었다.


 이태원 참사 처리만 해도 호미로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일이었다. 윤 대통령은 참사 발생 직후 “책임은 있는 사람에게 딱딱 물어야 한다”는 말로 국민의 속을 뒤집어 놓았다. 재난안전관리 총괄 책임을 맡고 있는 이상민 행정안전부장관 경질 요구를 거부한 발언이었다. 이 장관은 윤 대통령이 애지중지하는 고교 대학 후배다. 그 뒤 철저한 진상 규명은 물론 윗선 문책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참사는 점점 커져 정치쟁점화했다.


 대통령이 밀어붙인 연구개발 예산 축소,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정책은 나라를 골병들게 했다. 과학기술계의 ‘이권 카르텔’이라며 나라의 미래가 걸린 연구개발 예산을 싹둑 잘라 연구의 맥이 끊긴 곳이 많다. 온 나라가 아우성치자 이번엔 “연구개발 계획은 예비타당성 조사를 폐지하라”고 뜨거운 물을 질러버렸다. 카르텔이 나눠먹기를 하라는 뜻인지 되묻는다. 법원이 의대 증원에 손을 들어줬지만 의대 교수들은 확정이 아니라고 반발한다. 전공의들이 복귀하지 않으면 전문의 공보의 군의관 배출에도 차질이 생긴다.

                                                                                       


 ‘만 5세 초등학교 입학’ 학제 개편안, 수능 ‘킬러 문항’ 폐지 등도 거센 역풍을 불렀다. 배우자 김건희 여사 명품 가방 수수 의혹과 주가조작 수사 문제도 마찬가지다. ‘김건희 여사 특검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하고, 검찰 조사를 앞두고 검찰 인사를 단행한 것은 국민적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가장 결정적인 일은 해병대 채 상병 사망 사건이다. 채 상병 문제는 이렇게 커질 사안이 아니었다. 해병대 수사단장 박정훈 대령을 ‘집단항명 수괴’로 몰아세우고, 피의자인 이종섭 전 국방부장관을 호주대사로 보내면서 사태를 키웠다. 윤 대통령은 실로 오랜만에 연 기자회견에서 ‘격노설’ 질문에 의도적으로 동문서답하고, ‘채 상병 특검법’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자신을 향한 수사를 피하려고 거부권을 사유화했다고 해도 할 말이 없게 됐다. 국민 10명 중 7명이 찬성하는 ‘특검’은 잠시 피하면 되는 소나기와 다르다.


 오판은 속히 인정하고 바로잡아야 한다. 위기관리 때 네 가지 기본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위기커뮤니케이션 교과서는 가르친다. 첫째, 완벽함보다는 속도가 먼저다. 둘째, 진정한 사과를 해야 한다. 셋째,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해야 한다. 넷째, 거짓말은 절대로 해선 안 된다. 민심과 진실에 맞서 이기는 권력자는 없다.

                                                                                                                                이 글은 내일신문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