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외교 협상에서도 사업가의 주특기를 영리하게 써 먹는다. 그 가운데 ‘정박효과(anchoring effect)’는 값을 흥정할 때 무시로 등장한다.


 부동산 재벌이기도 한 트럼프는 돈 많이 버는 비결을 이렇게 털어놓은 적이 있다. “내가 누군가로부터 건축 의뢰를 받으면 언제나 가격에 5000만 달러나 6000만 달러 정도를 더 붙입니다. 고객이 7500만 달러 정도의 비용이면 될 것 같다고 말하면, 나는 1억2500만 달러 정도 들 것이라고 하곤 실제로는 1억 달러에 짓습니다. 치사한 짓을 하고 있는 셈이지요. 그래도 사람들은 내가 대단한 일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정박효과’는 닻을 내린 배가 많이 움직이지 못하는 것처럼 맨 처음 제시된 숫자가 기준점 역할을 해 이후의 판단에 결정적 영향을 주는 현상을 일컫는다. 미국 미시간대에서 있었던 실험은 정박효과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학생 400명을 두 그룹으로 나눠 똑같은 물건을 판매하는 임무를 줬다. 조건은 같았다. 첫 제안을 어떻게 하느냐는 게 유일하게 다르다. A 그룹에겐 ‘첫 제안을 700달러 이상으로 하라’고 주문했다. B 그룹에게는 ‘700달러 이하로 첫 제안을 하라’고 했다. 그 결과, A 그룹 학생들은 평균 625달러에 물건을 팔았다. B 그룹 학생들의 평균 판매 가격은 425달러에 불과했다. 첫 제안이 달랐을 뿐인데 200달러의 차이가 났다.

                                                  

                      
 이렇듯 사람들은 처음 제시된 숫자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려는 성향을 지녔다. 이는 심리학자로서는 최초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행동경제학 창시자 대니얼 카너먼과 동료 심리학자 아모스 트버스키가 공동 실험을 통해 증명한 효과다.


 트럼프는 다른 나라와의 주요 협상에서 정박효과를 동원하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띈다. 계약파기 의중을 내비친 뒤 선심 쓰듯 양보하는 패턴이 이어진다. 트럼프는 한미 자유무역협정,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협상 때 한국 측을 정박효과로 윽박질렀음이 드러났다. 트럼프는 미국이 적자를 너무 많이 내고 있다는 이유를 들어 한미자유무역협정 재협상을 넘어 파기도 불사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백악관 참모들에게 협상을 깨라는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 최종 협상 결과, 미국의 최대 관심사였던 자동차 분야에서 일정 부분 권리를 한국이 양보하는 선에서 타결됐다. 미국이 한국에 무기를 대량으로 판매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간 뒤였다.


 트럼프는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협상을 앞두고서도 주한미군 철수론을 흘리며 위협했다. 한국은 최종적으로 미국이 마지노선으로 제시했던 1조1300억 원(10억 달러)보다 약간 낮은 수준인 1조300억 원을 ‘유효기간 1년’과 함께 수용할 수 밖에 없었다.

                                                                         


 트럼프는 국경을 맞대고 있는 캐나다, 멕시코에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철회를 위협하면서 자동차 부품 등의 원산지 기준을 강화하는 협정을 이끌어냈다. 트럼프 정부는 무역 부문에서 이를 대표적인 치적으로 내세우고 있을 정도다. 트럼프는 중국과의 무역협상에서도 같은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그 뿐만 아니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을 비롯한 전통적인 동맹국들에게도 미군 주둔비용 인상을 압박했다.


 트럼프는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에서도 정박효과를 기대하는 듯하다. 최근 로이터통신의 보도 내용을 보면 트럼프 대통령은 하노이에서 열린 북미정상회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완전 항복에 가까운 요구사항 문서를 제시한 것으로 밝혀졌다. 북한 핵 시설과 생화학 무기, 탄도미사일 등과 관련 시설의 완전한 해체, 북한의 핵무기와 핵물질 미국 반출, 핵 프로그램에 대한 포괄적 신고, 미국과 국제 사찰단에 완전한 접근 허용, 관련 활동과 새 시설물 건축 중지, 모든 핵 프로그램 과학자·기술자들의 상업적 활동으로의 전환이 그것이다. 트럼프는 어느 수준이면 타협할지 머릿속에 그려놓고 있을 게다.


 트럼프와 같은 전략을 먼저 구사하는 게 유리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힘의 우위라는 조건이 맞을 때 가능하다. 값을 무조건 세게 부른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왜 그만큼 얻어야 하는지에 대한 합당한 논거가 필요하다. 워싱턴을 방문해 오는 11일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 비핵화 조율에 나설 문재인 대통령은 미국의 최저 양보 수준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북한과의 중재에 나서는 전략을 세워야 할 것 같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

 


Posted by 김학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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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탈리아 혁명이론가 안토니오 그람시의 투쟁 정신인 ‘지성의 비관, 의지의 낙관’이 지금이야말로 절실해 보인다.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후 여전히 접점이 잘 보이지 않는 북한 비핵화 협상에 대한 절망감을 두고 하는 말이다.

 

 무솔리니의 파시즘에 맞서 감옥에서 싸운 그람시는 동생 카를로에게 보낸 편지에 이렇게 적었다. “나의 지성은 비관주의적이지만 나의 의지는 낙관주의적이란다. 어떤 상황이건 나는 모든 장애물을 극복하는데 내가 비축해놓은 의지력을 이끌어내기 위해 최악의 경우를 염두에 두고 있단다. 나는 절대로 환상을 가지지 않기 때문에 실망하는 일도 없어. 나는 언제나 끝없는 인내심으로 무장되어 있단다. ”

 

 ‘지성의 비관주의, 의지의 낙관주의’라는 말을 가장 먼저 쓴 사람은 그람시 석방운동에 앞장선 프랑스 작가 로맹 롤랑이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이기도 한 롤랑은 ‘안토니오 그람시: 무솔리니의 감옥에서 죽어가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제목의 팸플릿을 내면서 이 말을 썼다. 그람시가 애용하게 된 이 말은 세월이 흘러 쿠바 혁명의 아이콘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도 즐겨 쓰고, 팔레스타인계 미국인 학자 에드워드 사이드가 이스라엘과 투쟁하는 조국을 향해 주문(呪文)처럼 던지는 말이기도 했다.

                                                                      

 북한과 미국으로부터 간단없이 들려오는 소식은 대부분 희망적이지 않거나 혼란스럽다. 먼저 판을 깨면 위험부담이 커 북한과 미국 모두 파국을 원하지는 않는 듯하나, 북미 양측 고위 관계자들 언설은 기싸움에서 지지 않으려는 각오가 다부지다.

 

 지난 주말 북측이 개성 남북연락사무소에서 느닷없이 일방적으로 철수해 조짐이 좋지 않다. 이보다 하루 앞서 미국 재무부가 유엔의 대북 제재를 피해 북한을 도운 중국 해운회사 두 곳에 대한 제재를 전격 단행해 긴장감이 높아졌다. 미국 정부가 북한과 관련해 독자 제재를 한 것은 올 들어 처음 있는 일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대북 추가제재에 대한 철회를 전격 지시해 악화를 막은 게 그나마 다행스러운 징조의 하나다.

 

 미국과 한국의 분위기도 비관론이 더 짙다. 한국 고위인사가 워싱턴에 들러 체감한 미국 내 대북협상 분위기는 한결같이 회의적이라고 한다. 비관주의자·냉소주의자·회의주의자를 합치면 80%에 이르고, 낙관과 모르겠다는 각각 10%에 불과하다.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이후 한국 국민의 64%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가능성을 믿지 않는다는 여론 조사결과도 밝은 소식이 아니다.

                                                                      

 북한이 북미협상에 대한 불만을 남북관계와 연계하는 모습을 또 다시 보여준 것도 실망스럽다. 과거와 조금은 달라진 언행으로 신뢰를 쌓아가는 마당에 구습을 재현하면 앞으로 어떤 합의도 믿음을 주지 못한다. 미국 국내정치 상황이 비핵화 협상의 주요 변수 가운데 하나라는 게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에서 드러났다. 이 변수에 관해 북한이나 한국에서 유념하고 있는지 성찰해 보아야 한다. ‘지성의 비관주의’를 간과한 결과는 참담하다.

 

 한국 정부도 희망사항에 치우쳐 지나치게 앞서가려는 모습을 보였다. 추상적 지혜이지만, 결국 냉철한 분석과 차분한 행동만이 해답이다. 남북관계와 북미관계에는 미묘한 변수에도 돌발적인 장애물이 나타나곤 했던 역사를 되새겨보아야 한다.

 

 이제 북미 양측이 모두 솔직하게 카드를 내보인 단계에서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북미 간의 ‘포괄적 합의와 단계적 이행’이 유일한 해법이라고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그 역시 복잡한 셈법이 얽혀 있어 일괄타결이 말처럼 쉽지 않다. 미국이 비핵화 해법으로 ‘일괄타결’을 거듭 강조하면서 단계적 비핵화를 주장하는 북한과 접점 찾기가 매우 까다로워서다.

 

 그렇다고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보수진영처럼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는 것은 물론 대책도 내놓지 않고 북한의 비핵화가 불가능하다고 비판만 하는 것은 무책임하다. 무작정 제재만이 능사라며 손놓고 있는 건 ‘전략적 인내’로 포장했던 과거 미국 행정부와 다를 바 없다.

 

 비관적인 상황을 지성을 통해 치밀하게 분석하되, 낙관적인 의지를 끝까지 꺾어서는 안된다. 한반도보다 더 절망적일 수 있는 팔레스타인이 이스라엘과 싸워서 이기기 위해서는 그람시적 투쟁이 필요하다고 에드워드 사이드가 생전에 역설했듯이 말이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


Posted by 김학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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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 출신 유럽의회 의원이 2010년 3월 유럽의회 본회의장에서 유럽연합(EU)정상회의 상임의장에게 막말을 퍼부었다가 3000유로(약400만원)의 벌금을 물었다. 벌금 액수는 의정활동비 열흘치였다. 의회 정치의 선진국인 영국의 국회의원 막말금지 규정은 오래 전부터 엄격하기로 유명하다.

 

  나지르 아프매드 노동당 소속 상원의원은 2012년 파키스탄 테러범에 대해 1000만달러 현상금을 내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비난하면서 “오바마에게 1000만 파운드 현상금을 걸겠다”고 말했다가 정직 처분을 받았다.

 

  존 메이저 전 영국 총리가 자신을 공격하는 야당 의원에게 영국 정치사상 가장 모욕적인 발언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는 수위로 반격해 화제가 된 걸 한국인들이 보면 웃음이 나올 정도다. “존경하는 의원님께서 내가 낸 세금으로 제대로 교육을 받으셨는지 의심스럽습니다” 한국 정치인 기준으로 판단하면 너무나 평범한 공격임에도 영국에서는 대표적인 ‘정치모욕’ 사례로 회자된다.

                                                                                 

     
 최근엔 제러미 코빈 영국 노동당 대표가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와 유럽연합 탈퇴(브렉시트) 문제를 둘러싸고 설전을 벌이던 도중 ‘멍청한 여자’라고 한숨을 쉬며 중얼거린 입모양만으로 ‘막말 논란’이 일었다. 영국 의회는 ‘거짓말쟁이’ ‘위선자’ ‘비겁자’ ‘반역자’ ‘악한’ ‘깡패’ ‘한 입으로 두말하기’와 같은 인격모독성 표현을 금지했다. 돼지, 개, 당나귀 등 짐승의 명칭은 절대로 사용할 수 없다. 발언 수위에 따라 주의, 발언 중지, 퇴장 명령, 직무 정지까지 가능하다.


 프랑스와 독일도 흡사하다. 프랑스는 막말하는 국회의원에게 발언 금지, 회의록에 기록되는 주의, 자격정지를 포함한 견책이 뒤따른다. 독일에서도 퇴장명령, 30일간 출석 정지 같은 엄벌을 각오해야 한다.


 유럽에 비하면 덜 엄격한 미국도 의회의원이 대통령을 비방하거나 욕설을 하면 곧바로 사과하게 하고 주의, 견책을 준다. “대통령은 위선적이다” “대통령의 법안 거부권 행사는 비겁하다”는 정도의 발언도 미국 의회의 금기어다. 조 윌슨 공화당 하원의원이 오바마 대통령에게 “당신 거짓말이야”하고 고함을 질렀다가 곧바로 공개 사과한 적이 있다. 2009년 오바마 대통령이 미 상하원 합동연설을 할 때였다. 비난이 쏟아지자 윌슨 의원은 자신의 논평이 부적절했고 대통령에게 예의를 잃었던 점을 겸허하게 사과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미 하원은 ‘부적절한 언어사용 행위에 대한 비난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조 윌슨 의원 사건을 계기로 미 의회 안에서 국가원수 모독 발언 금지 가이드라인이 추가됐다. 이런 가이드라인이 만들어진 것은 대통령에 대한 예의 못지않게 문제발언으로 말미암아 여야가 충돌하거나 대치해 회의를 진행하지 못하는 사태를 막기 위한 목적이 강하다.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의 국회연설 막말 논란 때문에 올 처음으로 어렵사리 열린 국회가 또다시 공전을 면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문재인 대통령을 “김정은 수석대변인”이라고 표현한 것은 외신보도를 인용했다 하더라도 국회의원 품위를 넘어선 정치언어다. 더불어민주당이 폐지된 국가원수모독죄를 적용해 한국당을 공격하는 것도 과잉대응이긴 하지만, 이젠 여야 정권교체 때마다 대통령에 대한 막말 공격으로 국회가 공전하는 일이 벌어지는 악순환을 끊을 때가 됐다.


 홍익표 민주당 의원이 당시 박근혜 대통령을 생경한 단어인 ‘귀태(鬼胎·태어나지 않아야 할 사람)’로 표현해 국회를 마비시키고 스스로 원내대변인직에서 물러나야 했던 악몽이 여야만 바뀌어 재현되지 않아야 한다. 한국당 전신인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이 당시 노무현 대통령을 “경제를 죽인 노가리” “등신외교” 등으로 희화화한 일, 김홍신 한나라당 의원이 김대중 대통령을 겨냥해 “공업용 미싱으로 입을 드르륵 꿰매는 게 필요하다”고 한 발언같은 막말 전력의 역사가 거울이다.


 막말 발언이 나올 때마다 국회 윤리특위에 제소해 징계를 논의하나 지금의 징계제도 자체가 유명무실하다. 민간 전문가로 윤리특위를 구성해 막말에 대한 처벌 수위를 대폭 높이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활동 실적이 아닌 막말로 유권자에게 환심을 사는 구태는 처분할 때가 지났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


Posted by 김학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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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2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 강국과 민주주의를 동시에 이룬 유일한 나라라고 자랑스럽게 여긴다. 더구나 식민지 시대를 겪은 나라로서는 대한민국이 독보적이고 경이적이라고 자평한다. 국제사회도 인정한다.


 대한민국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 이상이면서 인구 5000만 명 이상인 나라 대열에 일곱 번째로 진입했다. 2018년 총수출액도 6000억 달러로 세계 5위다. 국내총생산(GDP)은 12위를 유지하고 있다. 한국의 민주주의 지수는 167나라 가운데 21위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최근 발표한 ‘2018 민주주의 지수’에서 한국은 미국(25위), 일본(22위)보다 앞선다.


 부끄럽지 않을 한국 민주주의의 건강에 이상 신호가 짙어졌다. 30년 넘게 곡절을 겪으면서 진전시켜온 민주주의를 부정하고 파괴하는 극우 강경파의 득세 때문이다. 건강한 보수정당으로 거듭나는 계기로 삼으려던 자유한국당이 새 지도부 선출 전당대회 과정에서 민주주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현상까지 나타났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여파에서 벗어나야 살 수 있는 제1 보수야당이 외려 친박 수렁으로 더욱 깊이 빠져들고 있다.

                                                                                     


 가장 유력한 당 대표 후보부터 자기모순에 휘말렸다.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박근혜 탄핵을 사실상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한 것은 헌정질서를 부정하는 것이자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언행이다. 이는 명백한 자기 부정이기도 하다. 그는 헌법재판소 탄핵 결정 직후 대통령권한대행 자격으로 발표한 대국민담화에서 “헌재의 결정은 헌법과 법률에 따라 내려진 것이다. 대한민국은 법치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자유민주국가이다. 우리 모두가 헌재의 결정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가 새삼스레 제기한 탄핵의 절차적 하자도 국회의 탄핵소추,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이라는 헌법 절차에 따라 이뤄진 것임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극우 세력인 ‘태극기부대’를 껴안기 위해 민주주의 부정을 서슴지 않는 행위다. 최고지도자의 국정농단을 처단하고 민주주의를 되살린 주권자에 대한 모독이다. 최순실 태블릿PC 조작 가능성에 동조한 것도 마찬가지다. 법무부 장관을 지내고, ‘법치주의’를 입에 달고 살았던 그가 이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행태를 보인 것도 민주주의 손괴다. 박근혜 탄핵은 민주주의의 위대한 승리였다.


 5·18민주화운동 모독 발언은 한층 심각한 민주주의 위협 행위다. 5·18민주화운동은 법적으로는 물론 역사적, 정치적 평가까지 결론이 난 사안이다. 노태우 대통령 때인 1990년에 ‘광주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 등에 관한 법’에 따라 피해자 보상이 시작되고, 김영삼 대통령 시절인 1995년에 가해자를 단죄했다. 극우 논객의 끈질긴 ‘광주 북한군 투입’ 주장도 민주주의 정신을 훼손하려는 의도가 짙다. 24일 전국 시도지사들이 발표한 성명이 밝혔듯이 5·18 민주화운동은 대한민국 민주주의 발전에 있어 가장 빛나는 역사의 한 장면이다.

                                                                                    

 

 더욱 한심한 것은 한국당 청년최고위원에 출마한 30대 청년의 극우 언행이다. 새싹까지 타락해서다. 1987년 민주화 이래 지금까지 어떤 보수정당에서도 이런 극우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정치적 이익에 눈이 멀어 반민주주의 시대로 돌아가고 있는 듯하다. 선진국들이 모인 유럽에서 겪는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도 극우 포퓰리즘의 기승 탓이다.


 프랑스 정치철학자 알렉시 드 토크빌은 ‘미국의 민주주의’라는 명저에서 다음 세대로 전승되는 ‘마음의 습관’이 있어야 민주주의가 살아남는다고 경고했다. 품격과 절제가 미덕인 보수 정당이 퇴행 길로 접어든 것은 허탈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한국당 내부 인사의 한숨 섞인 토로처럼 끊임없는 보수 혁신과 개혁을 통한 외연을 확대해도 모자랄 판에 퇴행적 급진 우경화 현상은 보수 결집은커녕 보수 환멸을 조장하며 스스로 고립을 자초하는 길이다.


 민주주의 기반이 튼튼한 사회에서는 극우세력이 일부에 지나지 않으면 그리 큰 문제가 될 게 없다. 그렇지만 제1 보수야당이 지난날 찾아볼 수 없었던 극우로 기우는 것은 지금까지 이룩한 민주주의를 위협할만하다. 합리적 보수가 극우와 결별하지 않으면 위험하다. ‘보수주의는 중도·실용·현실주의에 입각했을 땐 융성했지만 보복주의에 집착함으로써 스스로 변방으로 밀려나고 만다’고 갈파한 뉴욕 타임스 서평편집자 샘 태넌하우스의 경구를 흘려들어선 안 된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


Posted by 김학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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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들어 대한민국은 ‘네이밍법’ 나라 같다. 정식 이름이 따로 있지만, 홍보 효과나 주목도가 높다는 이유로 특정인의 이름을 딴 네이밍법이 늘어나고 있다. 그것도 무고하고 억울한 누군가의 죽음이 선행돼야 법이 생기는 나라처럼 됐다. ‘김용균법’, ‘윤창호법’, ‘임세원법(안)’이 그렇다.


 우리는 이미 오래 전부터 ‘태완이법’ ‘최진실법’ ‘신해철법’ ‘유병언법’ 같은 특정인 사후 네이밍법을 여럿 가졌다. 특정 인물의 이름을 딴 법은 대개 세 부류로 나뉜다. 발의한 사람의 이름을 붙인 법, 가해자의 이름을 붙인 법, 피해자의 이름을 붙인 법이다. 줄 잇는 특정인 사후 입법은 달라진 사회 인식이 반영된 것이긴 하지만, 위험 사회에 무심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지난 연말 가까스로 국회를 통과한 ‘김용균법’은 김 씨의 죽음이 일으킨 사회적 공분 때문에 가능했다. 위험의 외주화를 방지하는 이 법안은 지난해 12월 태안화력발전소 협력업체 소속의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24) 씨가 운송설비 점검을 하다가 사고로 숨지는 비극 이후 본격적인 논의가 이뤄졌다. 사후에 드러난 열약한 작업 환경은 동정심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여론의 힘이 집결된 것은 비극적인 이름이 언론을 통해 확산하고 어머니 김미숙 씨가 자식의 억울한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발 벗고 나선 덕분이었다.


 기득권층을 대변하는 보수 야당과 보수 언론은 이 사건을 외면했다. 보수 언론은 초기 한동안 단 한 줄도 보도하지 않았고, 보수 야당도 관심 밖에 두었다. 이에 앞선 서울 지하철 구의역 스크린도어 정비업체 직원 김 모(19) 군 사망사고 때 이미 대책이 마련됐어야 했으나, 보수 정치인들이 특히 소극적이었다.

                                                                                  


 음주 운전으로 인명 피해를 낸 운전자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높이는 ‘윤창호법’은 만취 운전자가 몰던 차에 치여 숨진 군 장병의 목숨을 제물로 삼았다. ‘윤창호법’은 윤 씨의 친구들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린 글이 아니었으면 만들어지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청원 사흘 만에 공감자 수가 20만 명을 넘어섰고, 친구들은 ‘윤창호법’을 발의하기 위해 국회를 분주히 드나들어야 했다.

 서울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임세원 씨의 죽음 이후로도 관련법 제정이 적극 추진되고 있다. ‘임세원법안’은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숨진 의사와 같은 사고의 재발방지를 위한 장치다. 보건복지부는 투철한 의료 정신을 지닌 의사의 사후에야 진료 현장의 안전실태 파악에 나섰다.


 장기미제 살인 사건에 대한 공소시효를 없애는 ‘태완이법’도 6살이던 김태완 군의 죽음에서 비롯됐다. 1999년 5월 6살이던 김 군은 대구시 동구 효목동 골목길에서 신원을 알 수 없는 범인이 던진 황산에 맞아 숨졌다.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2015년 살인죄의 공소 시효를 폐지하는 내용이 담긴 ‘태완이법’이 오랜 산고 끝에야 확정됐다.


 ‘신해철법’은 허무하게 세상을 떠난 가수 신해철의 의료사고 결과물이었다. 의료 사고로 숨지거나 한 달 이상 의식불명 상태에 놓인 환자나 보호자가 의료분쟁 조정을 신청하면 병원의 동의가 없어도 조정 절차에 들어갈 수 있게 됐다.

                                                                                         


 ‘최진실법’은 부모가 이혼한 상태에서 한쪽이 사망하면 다른 한쪽에게 자동으로 친권이 넘어가던 제도를 폐지했다. 이 법안이 발의된 계기는 2008년 배우 최진실이 사망하면서 자녀의 친권이 전 남편인 조성민에게 넘어가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조성민은 이미 친권 포기 상태였다.


 ‘유병언법’은 2014년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범죄수익을 은닉한 제삼자에게 숨겨놓은 재산도 추징할 수 있게 했다. ‘유병언법’이 없었다면 세월호 사고 수습 비용 6000억 원 중 5000억 원을 국민 세금으로 부담해야 했다. 결국 재산 추징에 실패했지만, 제도는 마련된 셈이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한국 사람은 억울하게 죽어서 법을 남긴다’는 냉소적인 패러디가 폐부를 찌른다. 누군가가 죽어야만, 그것도 곡절과 진통 끝에 가까스로 대책을 마련하는 사회는 분명 정상이 아니다. 누구나 안전하게 일하면서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드는 게 정부와 정치인의 책무다. 무고한 죽음을 사전에 완벽하게 예방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여러 차례 경고등이 켜졌음에도 방치한 직무유기는 비난으로만 넘어갈 수 없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


Posted by 김학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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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남미 국가에서 미국 하버드대에 유학을 온 가난한 여학생이 있었다. 그는 강의실 청소를 하며 학비를 벌었다. 함께 수업을 듣던 부잣집 남학생이 이 여학생에게 성희롱을 일삼았다. 두 학생은 윤리학 과목을 두 번씩이나 함께 수강했다. 그 남학생은 공부도 잘해 늘 A+를 받았다. 여학생은 마음의 상처를 이겨내지 못하고 끝내 학업을 중도 포기하고 말았다.

 

  그는 자퇴하면서 이런 말을 남겼다. “공부만으로 개인은 변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착하고 올바른 사람이 되려고 꾸준히 노력하지 않는다면, 선(善)을 아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신학자인 댈러스 윌라드의 명저 ‘하나님의 모략’ 서문에 나오는 일화다. 옳고 그름에 대한 가치가 실제 삶이 아니라 관념으로만 머물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를 보여주는 적실한 사례다.


 윤리 위반이 공직자일 경우 파장은 훨씬 커질 수밖에 없다. 목포 문화재거리 차명 투기의혹에 휩싸인 손혜원 의원과 재판 민원 의혹을 받고 있는 서영교 의원은 불법·위법 여부와 상관없이 공직자 윤리 위반 혐의가 치명적인 수준이다. 손 의원은 복합적인 면에서 공직자 윤리 위반 혐의가 짙다. 우선 목포 부동산 매입 과정에서 공직자 윤리법의 백지신탁 규정을 위반했다는 논란이 불거졌다.

                                                                      

 

  그가 대표를 지낸 크로스포인트 인터내셔널의 주식을 백지신탁해서 이해충돌의 여지를 없앤 듯하지만, 실제로는 남편을 통해 이 법인 명의로 부동산을 매입했기 때문이다. 가족·인척·지인의 이득과 국회의원의 공적 권한이 연결돼 있어서다. 공직자윤리법 2조의 이해충돌 방지 의무를 위반했다는 지적을 받는 이유다. 애초 큰 논란거리였던 부동산 투기 여부는 외려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역사공간 인근 부동산을 팔아 시세 차익을 실현하지 않았으며, 국비나 지방비를 지원받지도 않았으니 이해충돌이 아니라는 게 손 의원 논리다. 앞으로 이를 박물관에 기증할 계획이어서 이익이 발생할 가능성도 없어 선의(善意)라고 주장하지만 공인으로서 공사를 구분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더불어민주당 동료였던 금태섭 의원이 “손 의원의 공직자 윤리는 다른 것 같아 당황스럽다”고 할 정도다. 더 큰 문제는 시종일관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당당한 태도다. 손 의원은 국가보훈처장을 국회 의원회관으로 불러 부친의 독립유공자 선정을 논의해 결국 유공자로 선정되도록 한 의혹도 받는다. 이 역시 사실상 이해충돌방지 위반 성격이 농후하다.  


 민주당 서영교 의원 재판 민원 의혹이 비난받는 이유는 국회 파견 판사에게 강제추행 미수 혐의로 기소된 지인의 아들에 대해 선처를 요구한 사실이 검찰 수사결과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 사건의 심각성은 설명이 필요 없을 만큼 크다. 손혜원, 서영교 의원의 윤리와 부도덕 논란은 본인들은 물론 3년차에 접어든 문재인 정부에 적지 않은 타격을 주고 있다.

                                                                               


 인사청문회 논란 끝에 지난달 28일 취임한 김상환 대법관의 윤리의식은 진보가 무엇인지 의심이 들게 한다. 그는 과거 불법 위장 전입을 세 차례나 했다. 그런 그가 위장 전입을 한 피고인에게 징역형을 선고한 사실이 밝혀졌다. 자신은 그래도 괜찮고 자신에게 재판을 받는 사람은 유죄라는 이중 잣대다. 그럼에도 자기반성은 없었다. 진보성향인 그는 취임 일성으로 “사법부가 국민 신뢰를 찾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흡사한 문제점을 지녔던 대법관과 헌법재판관들이 이번 정부에서도 여럿 있었으나 자신의 문제에 대해 반성하는 말이라도 했다. 김상환 대법관과 똑같은 위장 전입으로 청문회에서 곤욕을 치른 이은애 헌법재판관은 취임사에서 “저의 부족함이 부끄러웠다”고 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회장을 지낸 김선수 대법관 역시 취임사에서 “저의 경력들이 편향성 있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저와 다른 견해도 경청하겠다”고 자세를 낮췄다.


 공직자에게 일반 시민이나 다른 직업인에게 요구되는 것보다 더 높은 윤리 규범이 뒤따르는 것은 세금으로 급여를 받고 봉사하는 직업인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의 고위직 인사 가운데 용납하기 어려운, 치명적인 윤리위반 사례를 지닌 인물들이 보수 정권 때 못지않게 많은 것은 촛불 시민을 서글프게 한다. 적폐 청산이라는 시대의 명령을 어기는 반역이나 다름없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커녕 보통 시민보다 못한 공직자 윤리의식은 사회진보의 걸림돌 같은 존재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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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대인 랍비가 고리대금업을 한 혐의로 종교재판소 감옥에 갇힌다. 절망에 빠져 힘겹게 버티던 랍비는 어느 날 저녁 감옥 밖으로 나갈 수 있는 탈출구를 발견한다. 다시 자유의 몸으로 살 수 있다는 희망이 잔뜩 부푼다. 온몸에 생기가 돌고 삶의 의욕으로 충만했다. 그는 상상하기 시작한다. 밤새 도망쳐서 산속에 숨어들 수만 있다면 살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삶을 만끽하는 모습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을 때 누군가 뒤에서 그를 껴안았다. 종교재판소 소장이었다.

 

  랍비는 눈알이 튀어나올 것만 같은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중얼거린다. “이 운명의 저녁은 미리 준비된 고문이었다. 바로 희망이라는 이름의 고문.” 19세기 프랑스 작가 비예르 드 릴라당의 단편소설 ‘희망고문’은 형용모순적인 신조어를 지구촌에 퍼뜨렸다. 이렇듯 ‘희망고문’은 절망적인 결과만 기다리는 상황 속에서 주어진 작은 희망으로 말미암아 더 고통스럽게 되는 형편을 일컫는다.


 새해만 되면 정치인들은 ‘희망고문’이란 공수표를 발행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경제’라는 단어를 35번, ‘성장’이란 낱말을 29번이나 동원하면서 경제살리기에 대한 희망을 부풀렸다. 문 대통령이 국민에게 가장 큰 희망고문을 안긴 것은 일자리다. 그가 취임 이후 가장 먼저 한 게 집무실에 일자리 상황판을 만든 것이었다. 그럼에도 지난해 취업자 증가폭은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저 기록을 냈다. 실업률도 17년 만에 최고치였다. 심각한 취업난에 젊은이들이 직장 구하기를 아예 포기하고 있다. 절반 이상의 청년들이 취업이 안 될 것 같은 불안감에 구직활동을 중단한다.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전원 정규직화도 대표적인 ‘희망고문’ 영역의 하나로 남아 있다. 문 대통령이 취임 후 첫 현장 방문지로 인천국제공항공사를 찾아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천명했다.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첫 단추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높았다. 하지만 전환비율은 여전히 낮은 상태다. 처우 개선은 진전이 없거나 오히려 후퇴했다는 평가도 나올 정도다. 비정규직 제로라는 ‘도그마’에 빠져 목표 달성에만 치우친 결과다. 취업과 정규직이라는 지나친 희망은 20대에게 외려 고문으로 작용하기에 이르렀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정기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 때 “소득주도 성장 등으로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 시대를 열겠다”고 장밋빛 희망의 등불을 건넸다. 그러자 1인당 GDP 4만 달러는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희망고문일 뿐이라는 냉정한 논평이 나왔다. 심지어 정부가 의욕적으로 내세운 빅데이터, 블록체인, 공유경제, 인공지능(AI), 수소경제 같은 혁신성장 분야도 개혁 장애물에 걸려 숫자만 나열한 ‘희망고문’이 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선거 때 공약은 대부분 ‘희망고문’ 형태로 똬리를 틀고 있다. 지난 대선 때 모든 후보가 연동형비례대표제 도입을 공약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2015년 정치관계법 개정 의견으로 가장 이상적인 이 제도를 제안했다. 정치개혁의 상징처럼 자리 잡았던 연동형비례대표제는 좌초위기에 빠졌다.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 이제 와서 이런저런 핑계를 들이대며 논점을 흐리고 있어서다. 두 거대정당의 변심은 ‘더불어한국당’이라는 냉소적인 조어를 낳았다. 문 대통령도 신년 기자회견에서 정치개혁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지난 2년 동안 정치개혁은 고사하고 검찰개혁, 재벌개혁, 노동개혁, 교육개혁 같은 게 하나라도 법적으로나 제도적으로 이뤄진 게 사실상 없다. 여야를 가릴 것 없이 정치권이 맹성해야 할 부분이다.

 개성공단 기업인들도 지난 주 “문재인 정부에 대한 신뢰로 지난 3년 간 희망고문을 견뎌왔는데 더는 버티기 힘들다”며 “개성공단 점검을 위한 방북을 승인해 달라”고 강하게 요구했다. 북한과 미국의 손에게 달린 문제이지만, 이들도 희망고문을 호소한다. 국민들에게 “기다려달라”는 말은 ‘희망고문’의 다른 표현이다.

 

  희망이 아예 없다면 모든 기대를 접고 깔끔히 손을 뗄 수 있다. 약자에게 ‘희망고문’은 가장 이기적이고 비겁한 갑질이 될지도 모른다. 프리드리히 니체도 모든 악 중에서 희망을 가장 나쁜 것이라고 역설적으로 규정하면서 인간의 고통을 연장시키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들었다. 말로 먹고 산다는 게 정치인이라지만 희망을 고문으로 만드는 일은 죄악이나 다름없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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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혁·개방 40돌을 맞은 중국의 다짐 가운데 영구적 패권 포기 선언은 국제사회가 주시하는 대목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주 기념식에서 “어떤 수준으로 발전하더라도 영원히 패권을 추구하지 않는다”고 선포했다. 미국을 겨냥한 발언이라는 것쯤은 국제정치의 상식적 판단으로도 가능하다.

 

  시 주석은 “자국의 의지를 타국에 강요하거나, 다른 나라 내정에 간섭하거나, 강자라며 약자를 깔보는 것을 반대한다”고 구체적인 설명도 덧붙였다. 중국의 패권주의 배격은 새삼스러운 게 아니지만, 이번엔 ‘영원히’를 추가해 강도를 높인 게 눈길을 끈다. 시 주석은 2014년 한 인터뷰에서 “중국은 패권을 추구하는 DNA가 없다”고까지 주장했다.


 지금이야 패권 추구 포기를 언급하기에 이르렀지만, ‘패권’이란 말은 중국이 옛 소련과 미국의 세계 지배와 제국주의적 대외정책을 비난하면서 통용되기 시작했다. 1968년 8월 중국 신화사 통신이 옛 소련의 체코슬로바키아 침공을 비난하면서 ‘패권주의’라고 꼬집었다.

                                                               

        

  덩샤오핑은 1974년 유엔 연설에서 “중국은 결코 패권을 부르짖지 않을 것이다. 만일 중국이 다른 나라를 탄압하거나 착취한다면 전 세계, 특히 개발도상국들은 중국을 ‘사회제국주의’라는 이름으로 타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1975년 1월 제정된 중국의 신헌법에도 ‘초강대국의 패권주의에 반대해야 한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이후 역대 중국 지도자들은 패권주의 반대노선을 직접 언급해 왔지만, 세계 2대 강대국으로 부상하면서 중국의 말과 행동이 달라졌다는 의심을 받기에 충분하다. 중국의 패권주의를 직접 체감하는 이웃 나라들은 중국의 이중성을 비판한다.


 중국이 인접 국가들을 힘으로 위협한 사례는 한두 번이 아니다. 베트남, 필리핀 같은 동남아 국가들은 남중국해를 둘러싸고 중국의 패권주의적 압박에 끊임없이 곤욕을 치르고 있다. 그럼에도 중국은 이를 견강부회 식으로 부인한다. 개혁·개방 40주년에 때맞춘 중국 관영언론의 논평은 시 주석의 패권주의 포기를 의아하게 한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자매지인 환구시보는 “난사군도에서 군사력 확장은 국제법에 부합하며 방어 무기 배치는 남을 괴롭히는 게 아니라 주변국을 최대한 배려한 조치”라고 주장했다.


 미국이 북한 미사일을 방어하기 위해 한국에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를 배치했을 때 중국의 경제 보복은 미국이 아닌 한국을 겨냥했다. 중국은 롯데 제품을 비롯한 한국 상품 불매 운동, 단체관광 금지 조치를 내렸으나, 막상 미국에는 아무런 보복조치도 하지 않았다. 최근 캐나다가 미국의 요청으로 멍완저우 화웨이 부회장을 체포하자 중국은 자국에서 활동 중이던 캐나다인 2명을 구금하고, 캐나다 구스 점퍼 불매운동으로 보복하고 있다. 미국에 대한 보복조치가 없는 것은 사드 배치 때와 같다. 패권주의를 비판해온 중국이 스스로 패권국을 자처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행태다.

                                                                           


 ‘동북공정’을 통한 고구려 역사지우기에서도 중국의 패권주의는 이미 드러났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시진핑 주석이 ‘한국은 중국의 일부였다’는 인식도 표출했다. 중국어선의 불법조업이 기승을 부려 해양경찰이 단속하는 과정에서 목숨을 잃거나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데도 중국은 폭력적인 법 집행이라며 외려 한국을 비난하는 사례도 흔하다. 적반하장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시진핑은 다른 나라 특사들과 면담할 때는 그들을 옆자리에 앉히면서도 유독 한국 특사들은 홍콩 행정청장이 앉는 낮은 자리에 앉히는 무례를 의도적으로 과시한다. 조공관계 시절의 동아시아 패권주의가 잠재의식으로 자리 잡고 있음을 은연중에 보여준다. 중국은 한국에 치욕스러울 정도로 비이성적인 힘자랑을 한 사례는 열거하기 힘들만큼 많다. 


 서남공정, 서북공정도 동북공정과 같은 맥락이다. 시진핑이 ‘중국몽(中國夢)’ 선언과 더불어 야심차게 추진 중인 ‘일대일로(육상 해상 실크로드)’ 건설 과정에서도 패권주의 냄새가 곧잘 풍겨 나온다.  


 중국이 나라 간의 문제를 낡은 시대처럼 힘의 논리로 해결하려는 나라라는 인식은 국제사회에 깊이 뿌리 박혔다. 중국은 미국 중심의 질서를 깨고, 스스로 패권국가가 되는 새로운 국제질서를 구축하려 한다는 의구심을 불식시키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미국을 향해 영구 패권 포기를 선언할 게 아니라 이웃 나라들에게 먼저 약속해야 한다. 선언보다 더 중요한 일은 언행일치다.

 

                                                                     이 글은 내일신문 컬럼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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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 노회찬 의원이 즐겨 쓰던 ‘투명인간’이란 말은 공상과학소설에서 유래했다. 현대 공상과학소설의 창시자로 불리는 영국 소설가 허버트 조지 웰스는 1897년 ‘투명인간’이란 제목의 소설을 발표한다. 투명인간(The Invisible Man)은 다른 사람에게 보이지 않는 상태의 인간을 뜻한다.


 투명인간이 되려면 신체의 굴절률이 공기의 굴절률과 같아야 한다. 소설의 주인공 그리핀 박사는 굴절률을 같게 만드는 데 성공한다. 투명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선 한겨울에도 옷을 입어서는 안 된다. 필요에 따라 존재를 드러내려면 옷을 입거나 붕대로 몸을 감는 방법 밖에 없다.

 

   그리핀 박사는 연구에 몰두해 투명인간이 되었으나, 보통 인간보다 못한 존재가 되고 말았다. 과학적으로 따져 봐도 투명인간처럼 불쌍한 사람도 없다. 우선 투명 인간은 보지 못한다. 끼니를 잇는 것도 쉽지 않다. 투명한 모습으로 외출하려면 먼저 위장이 깨끗이 비었는가를 확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노회찬 전 의원의 ‘투명인간’은 2012년 진보정의당 출범 때 당 대표 수락연설에서 처음 소환됐다. “6411번 버스는 매일 새벽, 같은 시각, 같은 정류소에서, 같은 사람이 탑니다...이 분들은 이름이 있지만 그 이름으로 불리지 않습니다. 그냥 아주머니, 청소하는 미화원일 뿐입니다. 한 달에 85만원을 받는 이 분들은 투명인간입니다. 존재하되 우리가 존재를 느끼지 못하고 함께 살아가는 분들입니다.” 6411번 버스는 이제 투명인간들의 상징이 됐다.


 그런 노 전 의원이 지난 10일 70주년 세계인권선언기념일을 맞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으며 다시 한 번 호명됐다. 동지였던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일평생 우리 사회 ‘투명인간’ 시민들과 삶을 함께 했다”고 그를 기렸다.


 바로 다음날인 11일 한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는 죽어서도 투명인간 취급을 받았다. 스물네 살의 이 청년은 태안 화력발전소 석탄운송 컨베이어 벨트에 끼여 아무도 보지 못하는 사이에 숨졌다. 더욱 안타까운 건 발견될 때까지 여러 시간 방치돼 있었다는 사실이다.

 

  사고가 난 태안 화력발전소에서는 최근 3년간 4명이 사고로 숨졌는데도 정부로부터 무재해 사업장으로 인증을 받았다고 한다. 하청, 협력업체 노동자의 사망 사고였기 때문이다. 원청회사인 발전소가 재해 방지에 노력한 공로로 정부로부터 5년간 산재보험료 22억여 원을 감면받았다는 역설적인 얘기를 듣고 보면 어처구니가 없다.


 2012~2016년 발전소 노동자들이 다치거나 죽은 346건의 사고 가운데 97%가 하청노동자 몫이었다는 통계도 나와 있다. 악명 높은 ‘죽음의 외주화’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정규직 안 해도 괜찮으니 죽지만 않았으면 좋겠다”고 절박하게 호소한다는 소식도 들린다.

                                                                

  비슷한 사고가 날 때마다 더 이상 사회적 약자들에게 위험을 떠넘겨서는 안 된다며 정치권은 대책을 쏟아냈지만, 말뿐이었다. 2년 전 구의 전철역 스크린도어에서 19살 청년이 전동차에 치어 숨진 직후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 ‘위험 외주화 방지 7법’ 같은 법안을 내놓았으나 기업활동 위축을 이유로 끝내 유야무야되고 말았다.


 지난달 9일 7명이 사망하고 11명이 부상한 서울 종로 국일고시원 화재 생존 피해자들도 ‘더 이상 투명인간 취급받지 말자’고 나섰다고 한다. 거주자 대부분이 50~70대 생계형 일용직 노동자여서 서로 친분도 없을뿐더러 대책기구도 따로 없어서다. 이곳 화재 사망자 7명 가운데 4명은 빈소도 없이 세상과 하직한 투명인간이다. 장애인, 저임금 노동자, 서민, 노인, 여성들의 상당수는 투명인간으로 살아간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투명인간들의 힘으로 굴러간다.


 정치인들은 심지어 잠잘 때도 사회적 약자를 생각한다고 떠벌인다. 한 야당 국회의원은 한때 누리집(홈페이지)에 ‘사회적 약자들을 가슴에 품고 처절한 진정성으로 노력하겠습니다’라고 썼지만, 막상 지역구 장애인 특수학교 신설을 반대해 반발을 불러일으킨 적이 있다. 최저임금 시급을 1만 원으로 올리면 나라가 망한다더니 본인들 연봉(세비)은 2년 연속 소리도 없이 올렸느냐는 타박을 들은 게 우리네 국회의원들이다.


 국회사무처가 업무 공간이 부족하다면서 청소 노동자들의 휴게실을 비워달라고 하자 노 전 의원은 “만약 일이 잘 안 되면 정의당 사무실을 같이 쓰자”고 했을 정도다. 투명인간들의 꿈은 노회찬 같은 정치인을 또 만나는 것이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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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흥행은 사회 분위기와 직결될 때가 흔하다. 블록버스터가 아닌 음악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가 11월 비수기에 최고 흥행을 이어가는 것도 사회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개봉 25일 만에 400만 관객을 돌파한 이 영화가 역대 뮤지컬 영화 흥행작인 ‘레미제라블’(592만 명)이나 ‘미녀와 야수’(513만 명)를 넘어설 가능성도 엿보인다고 한다.


 1970~80년대를 풍미했던 영국 록그룹 퀸의 음악 세계를 다룬 이 영화가 퀸을 회억하는 40~50대가 아닌 20~30대 젊은 관객이 반 이상을 차지하는 게 특이하다. 여기에는 흡입력 높은 노래를 비롯한 복합적인 요인이 있겠지만, 젊은 세대의 불만을 카타르시스하는 요소가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많다.

 

  ‘보헤미안 랩소디’의 가사는 ‘나는 더 이상 어떻게 할 수가 없어’ ‘나는 죽고 싶지 않아’ 같은 절박한 언어를 담고 있다. 노래는 ‘너 열심히 했어’ ‘어떤 어려움도 극복하고 너 자신을 믿으면서 나아가자’ 같은 용기를 북돋워 주는 내용도 버무려져 있다.


 때마침 24일이 퀸의 전설적인 보컬 프레디 머큐리의 27주기(周忌)여서 관객동원에 상승작용을 한 듯하다. 영화 속에서도 머큐리가 죽어가고 있는 모습이 나온다. 퀸이라는 밴드의 차별성에 관한 머큐리의 영화 속 대답이 현실의 젊은이들과 소통한다. “우리는 부적응자를 위해 연주하는 부적응자들입니다. 세상에서 외면당하는 사람들, 어디엔가 속하지 못하고 마음 쉴 곳 없는 사람들, 그들을 위한 밴드입니다.”
                                                                     

 

 ‘보헤미안 랩소디’ 열풍은 최근 여론조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핵심지지 연령층이던 20대에서 지지율이 급락한 원인을 떠올리게 한다. 올해 초만 해도 80%대를 유지하던 20대 지지율이 11월 둘째주엔 54.5%로 27% 이상 떨어졌다. 다른 세대에 비해 20대 지지도 하락세가 두드러지자 청와대와 민주당은 비상이 걸릴 수밖에 없다. 최근 열린 민주당 대학생위원회 발대식에서 의원들이 20대 지지율 하락의 원인으로 실업·고용 문제와 경제난을 꼽은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하지만 20대 지지율 하락은 흔히 거론하는 청년실업에 대한 실망감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20대의 성향이 독특하다는 사실을 고려해야 한다. 20대는 50~60대에 비해 권위주의에 대한 반감이 강하고 진보성향이 뚜렷하다. 그러면서도 개인주의와 자유주의 경향이 강하고 개방적인 편이다. 반면에 30~40대보다는 좌파 성향이 덜하고 때론 보수적이기도 하다. 민족주의 경향도 상대적으로 도드라지지 않다. 20대는 동성결혼, 낙태, 안락사 같은 사회적 이슈에서 개방적인 반면, 난민 수용 반대여론이 가장 높은 세대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다른 세대에 비해 ‘기회의 평등’ ‘과정의 공정’을 중시하는 듯하다. 이는 문 대통령이 강조하는 덕목과 일치한다. 이 같은 성향은 올 초 평창 동계올림픽 남북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추진 때 극명하게 드러났다. 20대는 단일팀이 한반도 평화를 증진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남한 선수들의 기회 박탈로 받아들였다. 평창올림픽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데 이어 한반도 평화무드가 전개되면서 분노가 누그러지긴 했지만, 민족주의에는 여전히 관심이 낮다.

                                                                                  

    

 ‘고용세습’으로 일컬어지는 채용비리 문제도 20대가 민감하게 반응하는 ‘기회의 불평등’ ‘과정의 불공정’ 대표적 사례로 꼽는다. 공공기관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일괄 전환하는 과정에서 정규직 임용시험을 준비하는 청년들이 손해를 보고 있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민간기업의 문제이지만 울산 현대자동차 협력사 노조의 자녀·친인척 고용세습 의혹 역시 20대를 화나게 만든다. 일자리 부족 문제 못지않게 그 과정에서 생기는 불합리성을 더 매섭게 추궁한다.


 20대 지지율 하락의 또 다른 원인은 남성 지지층의 집중 이탈이다. 어릴 때부터 여자 동료들에게 치여 살아왔다고 여기는 20대 남성들은 페미니즘 이슈에 민감한 경향을 보인다. 문재인정부가 일방적으로 여성 편을 들고 있다는 생각으로 가득하다. 이는 ‘선의의 역설’로 읽힌다. 약자인 여성에 대한 배려가 공정성 문제와 기득권의 상실로 치환되는 경우다.


 단순히 국정 지지율 회복 차원을 넘어 미래를 책임질 20대의 불만을 제대로 판독해 내고 희망을 주는 정치와 정책이 절실하다. 역사상 자녀세대가 부모세대보다 못사는 첫 세대가 현재의 20대가 될 것이라는 음울한 전망이 나오고 있어서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


Posted by 김학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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