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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의 우열은 없다 단지 환경이 다를 뿐 입력 : 2008-05-02 17:23:49ㅣ수정 : 2008-05-02 17:23:55 ‘전작주의’란 신조어를 만든 애서가 조희봉은 존경하지만 일면식도 없는 소설가 이윤기를 주례로 모실 정도였다. 조희봉은 이윤기 자신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저서와 번역서를 모두 읽고 소중히 보관하는 정성의 극치를 보여준다. 전작주의란 한 작가의 모든 작품을 모아 읽고, 그 의미를 해석해냄으로써 그 작가와 작품 세계를 온전히 자신의 세계로 받아들이고자 하는 것을 뜻한다. 그는 ‘전작주의자의 꿈-어느 헌책수집가의 세상 건너는 법’(함께읽는책)이라는 저서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전작이란 어느 한 작가의 모든 작품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그 의미를 좀더 확장시켜 보면 그 작품들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는 다른 작품들까지도 포괄한다. .. 더보기
[여적]박경리 입력 : 2008-04-25 18:09:23ㅣ수정 : 2008-04-25 18:09:28 ‘주홍글씨’ ‘큰 바위 얼굴’의 작가 너새니얼 호손은 언젠가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에서 소설가가 되기로 한 까닭을 이렇게 썼다. “변호사가 되려고 생각해 보니 늘 누군가가 다투기를 바라야 하고, 의사가 되어 볼까 싶어도 다른 사람이 아프기만 기다려야 하니 사람이 할 짓이 아니네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 아무런 거리낌이 없는 소설이나 쓰며 살아가야겠습니다.” 중국 작가 루쉰은 일본에서 의학을 공부하다가 고국으로 돌아간 뒤 신체의 병을 고치는 의사가 되는 것보다 중국인의 병든 정신을 고쳐 주는 일이 더 급하다는 걸 깨닫고 소설가가 되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프랑스의 저명한 소설가 미셸 투르니에가 문학에 투신한 이유는 선.. 더보기
佛원로작가의 직관·유머 흐르는 산문 입력 : 2008-04-25 17:21:25ㅣ수정 : 2008-04-25 17:21:31 소설 이외에 잡문을 일절 쓰지 않았음은 물론 후학들에게도 늘 그걸 당부하곤 했던 황순원의 눈으로 보면 아들 동규는 불효자나 다름없다. 시인 황동규는 시보다 산문이 더 쓰기 좋다고 털어놓은 적이 있으니 말이다. 황동규는 실제로 아버지와 다른 문학을 하고 싶어 산문을 쓴다고 했다. 황순원의 시각으로는 ‘루쉰의 잡문은 문학인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에 대해 확신에 찬 목소리로 긍정한 중국 원로학자 우엔량쥔도 도무지 마뜩치 않을 게 틀림없다. 쉽고도 재미있는 산문은 여전히 귀한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시인 황인숙은 쓰고 싶지 않은 잡문을 생계 때문에 쓰는 시인의 비애를 산문 아닌 짧은 시로 읊었다. “마감 닥친 쪽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