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8-05-30 18:11:01ㅣ수정 : 2008-05-30 18:11:05
신지식의 최전선(전 4권)
조효제·최혜실 외 | 한길사
격동의 20세기가 저물어갈 무렵 ‘학문적 전투 보고서’를 자처하는 ‘지식의 최전선’이란 책이 첫선을 보였을 때 ‘기획의 승리’라는 상찬이 끊이지 않았다. 문(文)을 무(武)의 언어로 재단하는 역설이 다소 괴이쩍지만 뷔페식으로 풍성하게 차린 지식의 성찬이 입맛을 돋웠기 때문이다. 새천년 첫해인 2000년 1월1일부터 프랑스에서 ‘모든 국민을 지식인으로’라는 깃발 아래 제법 거창한 강연 프로그램이 1년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이어지자 이 책의 기획의도는 한결 돋보였다.
프랑스 정부의 2000년위원회가 기획한 ‘모든 지식의 대학’이란 제목의 이 프로그램은 366개의 주제에 관해 366명의 석학들이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1시간30분 동안 강의와 토론을 하는 시민 교양강좌였다. 이 프로그램은 21세기 대중적인 지식혁명을 위해 프랑스 정부가 내놓은 야심작이었다. 강사진은 노벨상 수상자인 프랑수아 자코브, 작가 피에르 상소 등 세계적 석학들이 주류를 이뤘다. 텔레비전과 인터넷, 일간 신문을 통해 중계되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수준 높은 교양과 지식의 총합이라는 품평을 받았음은 물론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강연 내용을 ‘네오아카데미아 총서’로 발간하기도 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더 새롭고 더 창조적인 발상들’을 담은 이 ‘지식의 최전선’이 진화해 거듭났다. 한길사의 역작인 ‘신지식의 최전선’은 대표 필자들의 설명대로 1999년 발간된 ‘지식의 최전선’과 2002년 펴낸 ‘월경하는 지식의 모험자들’을 지적으로 계승한 후손인 셈이다. ‘지식의 최전선’이 당시 학문의 현주소를 총체적으로 조망하면서도 미시적 해부를 곁들인 책이라면, ‘월경하는 지식의 모험자들’은 지식과 예술의 최전선에서 자유롭게 경계를 넘나든 당대 지식인들의 삶과 사상을 조명한 것이다.
‘신지식의 최전선’은 엄밀히 따지면 이 두 책의 개정판이지만 30~40%의 글이 추가되거나 변화한 현실에 맞춰 대폭 개작이 이뤄져 새로운 작품이라고 해도 별 무리는 아닐 듯하다. 강산이 변할 정도의 세월이니 최전선이라면 지식세계도 수많은 변화가 불가피한 게 분명하다.
내용물뿐만 아니라 외양도 전혀 새로운 모습이다. 두꺼운 한 권으로 나왔던 기존 판본의 형태가 모두 네 권의 연작으로 완전 탈바꿈했다. 현대 학문의 근본적 연속성과 영구적 친화성을 동시에 보여준 온고지신과 환골탈태라는 자평이 낯간지럽지 않아 보인다.
방대한 ‘지성의 지도제작’에 참여한 저자만 총 92명에 달하며 119가지 주제를 아우른다. 각 권은 인문, 문화, 사회, 과학 영역을 나눠 다룬다.
‘변하는 세상, 인문학의 가로지르기’란 제목이 달린 1권은 인문학에 대한 근본적 물음, 인간을 향하는 가장 깊은 사유의 철학, 역사학의 미래, 인류학과 문화지리학, ‘여성’이라는 아이콘의 구체성과 전복성, 새로운 문화담론을 만드는 종교학 등을 포괄한다.
2권 ‘문화와 예술, 경계는 없다’에서는 컴퓨터 공학과 그래픽 디자인의 결합, 건축에서의 포스트모더니즘, 디지털 시대의 스토리텔링, 세계화와 문화 다양성, 문화 혼성과 현대미술, 예측할 수 없는 예술가들의 발상, 새 세상을 예언하는 스크린 등을 만날 수 있다.
‘사회공동체, 열린 세계를 향하여’란 제목의 3권은 세계화의 운명, 참여와 공생의 사회생태학, 미디어와 문화로 소통하는 동북아공동체, 복지국가 위기론, 대중민주주의와 정당체제, 이질적인 경제주체들의 상호작용 등이 펼쳐진다.
4권 ‘나노에서 우주까지, 과학이 만드는 길’에서는 주류로부터 탈출하는 과학의 새로운 흐름, 마음의 신비를 해명하는 뇌, 포스트모던형 정신의학, 인간이 꿈꾸는 우주, 나노의 극미세계, 인간의 육신적 한계와 생로병사의 비밀 등을 과학의 렌즈로 들여다본다.
각 권 모두 400쪽이 넘는 분량이어서 부담스러울지 모르나 지적 담론이 흔히 빠지기 쉬운 엘리트주의를 벗어나 최대한 대중의 언어로 소통하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대학 강단의 학자, 광고평론가, 영화평론가, 전시기획자 등 다양한 필자가 사실적이고 생동감 있게 현상을 소묘하고 해설한다. 필자들도 한결같이 ‘학문적 전투’에 매우 활발히 참여하고 있는 투사들로 꾸려진 것 같다. 당대의 학문과 지식의 최전선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전령사로 보아도 좋으리라. 글 하나하나를 톺아보면 모든 학문의 자양분이 될 수 있는 기본적 교양과 직업적 성격의 응용학문으로 대별된다. 역점을 앞부분에 두고 있음은 물론이다.
쉽지 않은 작업이었음에도 일관성을 지켜내면서 퍼즐 조각을 유기적으로 통합해 낸 노력도 높이 사줄 만하다. 매권 말미에 첨부한 ‘개념풀이와 인물소개’는 첨단지식의 백과사전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각 글에 관련된 더 읽을 만한 책과 자료들, 가볼 만한 인터넷 사이트는 고객 만족의 극대화를 겨냥한 서비스 정신의 발로로 여겨진다.
뷔페식 상차림은 전문 음식점과 비교하면 나름의 약점이 있지만 이런 종류의 책에서 다양성과 전문성·심층성을 동시에 기대하는 것은 과다한 욕심이 아닐까. 필자들의 글솜씨에도 다소 편차가 있긴 하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는 네티즌들에게는 지식의 거름종이 역할을 좋이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양한 분야에 대한 관심의 폭을 넓히고, 가까이 두고 틈틈이 지적 욕구를 충족시키기에도 안성맞춤이다. 이 책에 제시된 담론들은 완료형이 아닌 현재진행형이어서 언젠가 새로운 진화를 기다릴 수밖에 없겠다. 각권 1만6000원
조효제·최혜실 외 | 한길사
경계를 넘나들면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더 새롭고 더 창조적인 발상은 완료형이 아닌 현재진행형이다. <일러스트 | 박훈규>
프랑스 정부의 2000년위원회가 기획한 ‘모든 지식의 대학’이란 제목의 이 프로그램은 366개의 주제에 관해 366명의 석학들이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1시간30분 동안 강의와 토론을 하는 시민 교양강좌였다. 이 프로그램은 21세기 대중적인 지식혁명을 위해 프랑스 정부가 내놓은 야심작이었다. 강사진은 노벨상 수상자인 프랑수아 자코브, 작가 피에르 상소 등 세계적 석학들이 주류를 이뤘다. 텔레비전과 인터넷, 일간 신문을 통해 중계되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수준 높은 교양과 지식의 총합이라는 품평을 받았음은 물론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강연 내용을 ‘네오아카데미아 총서’로 발간하기도 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더 새롭고 더 창조적인 발상들’을 담은 이 ‘지식의 최전선’이 진화해 거듭났다. 한길사의 역작인 ‘신지식의 최전선’은 대표 필자들의 설명대로 1999년 발간된 ‘지식의 최전선’과 2002년 펴낸 ‘월경하는 지식의 모험자들’을 지적으로 계승한 후손인 셈이다. ‘지식의 최전선’이 당시 학문의 현주소를 총체적으로 조망하면서도 미시적 해부를 곁들인 책이라면, ‘월경하는 지식의 모험자들’은 지식과 예술의 최전선에서 자유롭게 경계를 넘나든 당대 지식인들의 삶과 사상을 조명한 것이다.
‘신지식의 최전선’은 엄밀히 따지면 이 두 책의 개정판이지만 30~40%의 글이 추가되거나 변화한 현실에 맞춰 대폭 개작이 이뤄져 새로운 작품이라고 해도 별 무리는 아닐 듯하다. 강산이 변할 정도의 세월이니 최전선이라면 지식세계도 수많은 변화가 불가피한 게 분명하다.
방대한 ‘지성의 지도제작’에 참여한 저자만 총 92명에 달하며 119가지 주제를 아우른다. 각 권은 인문, 문화, 사회, 과학 영역을 나눠 다룬다.
‘변하는 세상, 인문학의 가로지르기’란 제목이 달린 1권은 인문학에 대한 근본적 물음, 인간을 향하는 가장 깊은 사유의 철학, 역사학의 미래, 인류학과 문화지리학, ‘여성’이라는 아이콘의 구체성과 전복성, 새로운 문화담론을 만드는 종교학 등을 포괄한다.
2권 ‘문화와 예술, 경계는 없다’에서는 컴퓨터 공학과 그래픽 디자인의 결합, 건축에서의 포스트모더니즘, 디지털 시대의 스토리텔링, 세계화와 문화 다양성, 문화 혼성과 현대미술, 예측할 수 없는 예술가들의 발상, 새 세상을 예언하는 스크린 등을 만날 수 있다.
‘사회공동체, 열린 세계를 향하여’란 제목의 3권은 세계화의 운명, 참여와 공생의 사회생태학, 미디어와 문화로 소통하는 동북아공동체, 복지국가 위기론, 대중민주주의와 정당체제, 이질적인 경제주체들의 상호작용 등이 펼쳐진다.
4권 ‘나노에서 우주까지, 과학이 만드는 길’에서는 주류로부터 탈출하는 과학의 새로운 흐름, 마음의 신비를 해명하는 뇌, 포스트모던형 정신의학, 인간이 꿈꾸는 우주, 나노의 극미세계, 인간의 육신적 한계와 생로병사의 비밀 등을 과학의 렌즈로 들여다본다.
각 권 모두 400쪽이 넘는 분량이어서 부담스러울지 모르나 지적 담론이 흔히 빠지기 쉬운 엘리트주의를 벗어나 최대한 대중의 언어로 소통하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대학 강단의 학자, 광고평론가, 영화평론가, 전시기획자 등 다양한 필자가 사실적이고 생동감 있게 현상을 소묘하고 해설한다. 필자들도 한결같이 ‘학문적 전투’에 매우 활발히 참여하고 있는 투사들로 꾸려진 것 같다. 당대의 학문과 지식의 최전선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전령사로 보아도 좋으리라. 글 하나하나를 톺아보면 모든 학문의 자양분이 될 수 있는 기본적 교양과 직업적 성격의 응용학문으로 대별된다. 역점을 앞부분에 두고 있음은 물론이다.
쉽지 않은 작업이었음에도 일관성을 지켜내면서 퍼즐 조각을 유기적으로 통합해 낸 노력도 높이 사줄 만하다. 매권 말미에 첨부한 ‘개념풀이와 인물소개’는 첨단지식의 백과사전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각 글에 관련된 더 읽을 만한 책과 자료들, 가볼 만한 인터넷 사이트는 고객 만족의 극대화를 겨냥한 서비스 정신의 발로로 여겨진다.
뷔페식 상차림은 전문 음식점과 비교하면 나름의 약점이 있지만 이런 종류의 책에서 다양성과 전문성·심층성을 동시에 기대하는 것은 과다한 욕심이 아닐까. 필자들의 글솜씨에도 다소 편차가 있긴 하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는 네티즌들에게는 지식의 거름종이 역할을 좋이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양한 분야에 대한 관심의 폭을 넓히고, 가까이 두고 틈틈이 지적 욕구를 충족시키기에도 안성맞춤이다. 이 책에 제시된 담론들은 완료형이 아닌 현재진행형이어서 언젠가 새로운 진화를 기다릴 수밖에 없겠다. 각권 1만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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