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03-28 |
김대중 전 대통령의 셋째아들 홍걸씨에게 용돈 명목 등으로 9억원을 주었다고 폭로했던 최규선씨가 돈의 대가성을 부인하면서 이렇게 해명했다. "나에게 9억원은 아무 것도 아니다. 골목대장이 동네 꼬마에게 딱지 빌려주듯 준 돈이다"골목대장이 어린이들의 딱지치기나 병정놀이와 함께 떠올려진다면 낭만적 추억거리가 되겠지만 어른들, 특히 정치인들에게 옮겨 놓으면 한결같이 비아냥으로 표변하고 만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측근들을 자택 앞에 줄세우고 골목성명을 발표해 골목대장이라는 별명을 얻었던 일을 우리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풍경으로 간직하고 있다. 엊그제 김희상 청와대 국방보좌관이 이라크전쟁 파병 결정의 당위성을 설명하면서 골목대장론을 펼쳐 눈길을 끌었다. "골목이 조용해지려면 강한 골목대장이 나오는 것이 좋을 수 있다". 초강대국이 존재해야 도리어 세계질서와 평화가 유지될 수 있다는 국제정치학자들의 패권안정론을 알기 쉽게 풀이한 것이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국제사회에서 나쁜 의미의 골목대장(bully)이라는 별칭을 얻고 있다. 김보좌관이 이 사실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은 아니겠지만 절묘하게 맞아떨어지고 있는 상황인 것만은 분명하다. 부시의 2001년 6월 유럽 나들이 때 독일신문 도이체 차이퉁은 그에게 '골목대장'이라는 딱지를 붙여주었다. 때마침 미국 래리 클라크 감독의 '골목대장'이라는 영화가 화제가 되고 있을 무렵이었다. 영국 국민의 절반 가량도 최근 미국과 부시를 '약자를 괴롭히는 골목대장'이라고 생각한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헤게모니이론의 창시자인 안토니오 그람시는 자발적 동의와 강제력의 지배가 균형을 이룰 때만이 헤게모니를 유지할 수 있다고 설파했다. 도덕적인 헤게모니를 행사하는 리더십을 가져야만 진정한 패권국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미국이 애써 잊으려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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