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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톺아보기-칼럼

<데스크칼럼> 정치언어 살생부라도 만들자

2002-10-14
극단적으로 '정치=말'이라는 등식이 성립한다면 한국의 정치개혁은 말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점을 다시 한번 절감하는 요즘이다. 그렇잖아도 한국이 정치판에서 말이 가장 거친 나라 가운데 하나로 정평이 나 있지만 연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벌어지는 추태를 보면 마치 욕설 경연대회장 같다. 국민의 대표를 뽑는 기준이 쌍스런 말을 잘하는 사람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다. 최근엔 대선을 앞두어선지 정당의 국회 운영 책임을 맡고 있는 원내총무들이 의원들의 발언을 자제시키기는커녕 한술 더 뜨는 경향까지 보인다.정치권에서는 국회 밖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어떻게 하면 말의 자극성을 높일까 궁리하는 데 여념이 없는 듯하다. 정당의 대변인들이 지금까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여러 차례 신사협정을 맺고 품격있는 논평을 다짐해 왔지만 2∼3일도 지나지 않아 공염불처럼 돼 버리곤 했다.

게다가 우리네 정당의 부대변인이라는 자리는 '설상가설'(舌上加說)격이 됐다. 부대변인들의 성명은 한층 더 민망스럽다. 대변인이 발표하기엔 체면상 낯간지러우면 부대변인을 앞세우는 사례가 흔한 탓이다. 이들이 기능적인 필요성보다 경력관리나 자리 마련 같은 부수적인 효과를 겨냥해 임명된다는 경우가 흔하다 보니 이른바 '밥값'을 하느라 상대당과 후보를 향해 온갖 몹쓸 표현도 서슴지 않은 지 오래다.

이제 '정치언어 살생부' 같은 것이라도 만들어 사용금지용어를 목록으로 정해 놓고 이를 어기면 엄중한 윤리적 벌칙을 내리는 고단위 처방도 검토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자정(自淨)기능이 먹혀들지 않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려면 강제성이라도 동원해야 정치혐오증의 수위를 낮출 수 있을 것이다.

전세계에서 가장 유서깊고 '만국 의회의 어머니'로 불리는 영국 의회를 벤치마킹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영국 의회는 아예 의회에서 사용할 수 없는 언어 명세서를 만들어놓았다.

가장 금기시하는 용어는 '거짓말쟁이'이다. 이런 말을 입밖에 내면 반칙으로 주의를 받게 되고 곧바로 취소한 뒤 사과하지 않으면 제재를 받는다. 가장 흔히 쓰이는 '거짓말쟁이'의 대용어(代用語)는 '정직성의 부족함'이라는 완곡한 표현이다. '바보'라는 말도 사용할 수 없다. 이밖에 강아지, 돼지, 악당, 당나귀, 위선자, 비겁자, 바리새인, 부패분자, 천한 자, 반역자 등도 사용할 수 없는 용어임은 물론이다. 심지어 '비둘기'란 말도 1948년부터 동료의원에게 비유할 수 없게 되었다. 요즘 우리 국회에서 난무하는 비속어들에 비하면 너무 점잖다고 할 낱말까지 금기(禁忌)언어인 셈이다. 양아치, 또라이, 미친 XX, X같은 놈들, 정신병자 같은 XX 등 뒷골목 세계에서나 들을 수 있는 낯뜨거운 말들이 우리 국회에선 아무런 제지없이 통용되고 있다.

영국 의회에서는 만약 내규와 의장의 지시를 어기면 의회의 상징인 빅 벤 시계탑의 지하실에 일정시간 감금된다. 하지만 1880년 찰스 브랜드로 의원이 지하실의 마지막 손님이었을 만큼 오랫동안 의회의 격조가 깨지지 않고 있다.

박관용 국회의장의 제안대로 본회의 대정부질문을 일문일답식으로 하는 원칙을 정당들이 수용하는 것도 국회의원의 언어순화에 다소나마 도움이 될 것이다. 국회에서 지역구 유권자들을 의식한 장광설과 사자후가 필요한 시대는 지나갔다. 민의의 전당에는 품격높은 말의 성찬(盛饌)이 차려져야 한다.

대통령후보들도 정당 대변인제도 폐지를 이번 대선 공약으로 반드시 내걸도록 하면 좋을 듯하다. 무소속인 정몽준의원이 이미 신당창당 때 대변인을 두지 않기로 약속한 만큼 한나라당과 민주당만 동의하면 문제는 어렵지 않게 해결될 것이다. 대변인제도 폐지가 정치언어 순화의 필요충분조건은 아니지만 최소한 필요조건에는 해당된다. 정당이 자발적으로 대변인제도를 없애지 않으면 시민단체들이라도 나서 줄기차게 폐지운동을 벌일 필요가 있다.

다람쥐 쳇바퀴 도는 것과 같은 다짐의 악순환이 이젠 끊어져야 할 때가 됐다. 정치혐오증을 부추기는 주범 가운데 하나가 정치인의 저질언어라는 사실을 절박하게 느끼면서도 방치한다면 직무유기나 다름없다. 정치언어 순화는 돈이 드는 개혁과제도 아니다. 의지의 문제일 뿐이다. hskim@kyunghyang.com
김학순 / 편집국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