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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의 순결 짓밟는 ‘뇌물’ 입력 : 2008-04-18 17:25:11ㅣ수정 : 2008-04-18 17:25:16 ‘20년간 80억냥 뇌물 갈취, 집 2000여채, 논밭 1억6000만평, 개인 금고 10곳, 전당포 10곳.’ 청나라 건륭제(乾隆帝) 때의 권신이자 뇌물수수의 지존이라 할 만한 ‘화신(和)’이 평생 동안 뇌물로 일군 재산 명세서다. ‘화신’의 수뢰 총액은 청나라 전체의 10년 세금을 능가하는 거액이다. 화신은 가히 ‘탐관오리의 화신’이다. 화신이 죽고 나자 가경제(嘉慶帝)가 배불리 먹고 살았다는 희화적인 얘기가 나돌 정도였다고 한다. 인민일보(人民日報)가 2006년 1월 발표한 지난 1000년 동안의 중국 부자 순위에서 2위를 차지한 게 화신이다. 특유의 관시(關係)문화를 중시하는 중국에서는 지금도 뇌물이 경제의 발.. 더보기
[여적]서울의 몽마르트르 입력 : 2008-04-11 18:18:30ㅣ수정 : 2008-04-11 18:19:20 가난한 화가들의 영원한 정신적 고향. 파리 시내에 유일하게 포도밭이 남아있는 곳. 여전히 예술과 낭만이 숨쉬는 몽마르트르에서 이제 그 옛날의 정수(精髓)는 희석된 것 같다. 무명 화가들의 예술정신이 먼저 떠올라야 마땅한 몽마르트르는 장사꾼들로 소란하다. 바가지 요금과 소매치기를 조심하라는 여행 소개 팁이 빠지지 않는다. ‘거리의 화가들’은 테르트르 광장에 터를 잡고 있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관광객들을 따라다니며 흥정을 시도한다. 이곳에선 한국말로 “안녕하세요”를 외치지 않으면 화가 행세를 하기 힘들다는 과장 섞인 얘기도 나온다. 빈티 나는 화가들이 남의 집 앞에 배달된 우유를 훔쳐 먹어가며 그림을 그리던 시절의 정.. 더보기
기부, 희생 아닌 ‘창의적 이기주의’ 입력 : 2008-04-11 17:41:57ㅣ수정 : 2008-04-11 17:42:48 과부의 두 렙돈과 빈자일등(貧者一燈). 지난 주말 신분을 밝히길 거부한 60대 할머니가 아무런 연고도 없는 연세대에 찾아와 1억원을 장학금으로 내놓았다는 소식을 들으며 가장 먼저 떠오른 단상의 편린이다. 예수가 부자들의 많은 돈보다 가난한 과부의 두 렙돈 헌금을 더 귀하게 여겼다는 마가복음의 ‘말씀’과 부자의 만 등보다 가난한 사람의 한 등이 낫다는 현우경(賢愚經) 빈녀난타품(貧女難陀品)의 ‘법언’은 맥을 같이 한다. 두 일화에 대해서는 다소 다른 해석도 있긴 하지만 가난한 이들의 작은 정성이 한결 값지다는 공통점은 분명하다. 엄밀하게 말하면 60대 할머니가 기부한 돈은 ‘과부의 두 렙돈’이나 ‘빈자일등’에 비유할 .. 더보기
[책과 삶]어떻게 독일 대중이 ‘히틀러 국민’이 돼갔나 입력 : 2008-04-04 17:34:38ㅣ수정 : 2008-04-04 17:35:55 ㆍ합창단·동호회 등 조직을 통한 국민의 ‘자발적 복종’과정 해부 ▲대중의 국민화…조지 L. 모스 | 소나무 “아돌프 히틀러 당신은 우리의 위대한 지도자이시니, 당신의 이름은 적들을 떨게 하나이다. 당신의 왕국에 임하옵시고, 당신의 뜻만이 이 땅 위에서 법칙이 되게 하소서. 우리로 하여금 날마다 당신의 음성을 듣게 하옵시며, 또한 우리의 삶을 투신하여 복종하길 원하옵는 당신. 지도자의 지위를 통해 우리에게 명령하소서. 구세주 히틀러여, 이를 언약하나이다.” ‘주기도문’을 본뜬 이 ‘히틀러를 위한 기도문’을 나치 지배하의 독일 국민들이 지극정성으로 외웠다는 사실은 놀랍기 그지없다. 광기어린 파시즘의 표상이 눈앞에 선연하.. 더보기
[여적]시 외우기 벌(罰) 입력 : 2008-04-04 17:50:41ㅣ수정 : 2008-04-04 17:51:59 조선시대 관리들은 지각과 결근이 잦았다. 1년에 쉬는 날도 기껏해야 보름에서 20일 정도에 불과했다. 당시엔 일요일이란 개념도 없었던 데다 격무에 시달리다 보니 근태(勤怠)를 제대로 지키지 않았던 것 같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성종 13년(1482) 1월4일 왕이 결근하는 관리들에 관한 대책을 신하들과 의논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조정과 관의 일에 지장이 많아지자 신료들과 협의한 것이다. 김승경(金升卿)이 이렇게 아뢰었다. “국법에 해가 길 때는 묘시(오전 7시쯤)에 출근해 유시(오후 7시쯤)에 퇴근하고, 해가 짧을 때에는 진시(오전 9시쯤)에 출근해 신시(오후 5시쯤)에 퇴근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관리들을 조사해 보.. 더보기
일관된 평화를 갈구하다 입력 : 2008-04-04 17:12:14ㅣ수정 : 2008-04-04 17:13:31 평화는 무조건 다 좋은 것인가? 이 물음이 한없이 절절할 때가 있다. 힘 센 ‘갑’은 총칼을 휘둘러 목숨을 앗아가는 일이 다반사인데도 약한 ‘을’은 언제나 말로만 억울함을 호소해야 하는 경우엔 심리적 유혹이 다가오곤 한다.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나 미국 흑인 지도자 마틴 루터 킹 목사 같은 이는 죽는 순간까지 유혹을 뿌리쳤지만 장삼이사(張三李四)들에겐 쉬운 일이 아니다. 하긴 고대 로마의 정치가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는 정의로운 전쟁보다 나쁜 평화를 더 좋아한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다. 키케로의 명언은 오늘날 평화주의자들이 가장 즐기는 말의 하나가 됐다. 노르웨이의 평화학 창시자 요한 갈퉁도 평화를 위해 무력과 전.. 더보기
[여적]성화 봉송 입력 : 2008-03-28 17:39:34ㅣ수정 : 2008-03-28 17:40:38 서양 철학의 탄생지 그리스와 동양 철학의 발상지 중국은 공교로운 공통점을 지녔다. 고대 그리스 철학의 비조인 ‘소크라테스-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와 중국 철학의 거대한 뿌리인 ‘공자-맹자-순자’의 흐름이 빼닮았다. 당시로서는 학문적 교류의 흔적을 찾아보기 힘든 두 지역이 이처럼 흡사한 게 경이롭게 비친다. 김수중 경희대 철학과 교수의 분석은 한층 흥미롭다. 양대 산맥의 기둥인 소크라테스와 공자는 스승과 제자들이 나눈 대화 형태로 사상의 토대를 정립한 점이 꼭같다. 플라톤과 맹자는 각기 스승의 전통을 이어받아 이상적인 철학의 뼈대를 세운 게 흡사하다. 아리스토텔레스와 순자는 이상에 치우친 스승들의 생각을 나란히 현실 속.. 더보기
‘소명있는 직업정치인’ 보고싶다 입력 : 2008-03-28 17:05:38ㅣ수정 : 2008-03-28 17:06:42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같은 천재에게도 어렵기 그지없는 물리학보다 더 어려운 게 있었나 보다. 정치가 바로 그것이다. 정치는 아인슈타인에게 적성이 맞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 그가 실토했듯이 아무나 쉬이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독일 통일의 첫 위업을 달성한 ‘철혈 재상’ 오토 폰 비스마르크도 정치는 배울 수 있는 학문이 아니라 기술이라고 경험담을 털어놨다. 웬만한 각오가 없으면 멀찍이 떨어져 있는 편이 낫다는 충고를 잊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정치인이라는 직업이 대표적인 ‘비정규직’이라고 애교서린 엄살을 부리는 사람도 있지만, 겪어본 이들은 국회의원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직업이라고 한결같이 고백하는 걸 보면 마약성분이 들.. 더보기
[책과 삶]‘지성의 스펙트럼’ 합스부르크 왕조 입력 : 2008-03-21 16:49:25ㅣ수정 : 2008-03-21 16:50:16 ▲제국의 종말 지성의 탄생…윌리엄 존스턴 | 글항아리 600년을 이어온 합스부르크 제국이 마지막 호흡을 가쁘게 헐떡이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에서도 유례없이 웅숭깊고 다양한 문화와 지성의 스펙트럼을 배태하고 있었다. 시나브로 다음 세대의 정신사를 풍성하게 수놓을 채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소설 ‘베르길리우스의 죽음’의 작가 헤르만 브로흐는 흔히 ‘세기말’로 일컫는 1848~1918년, 합스부르크 왕조의 문화 중심이었던 오스트리아 빈을 ‘즐거운 종말’이란 개념어로 규정한다. ‘즐거운 종말’은 종종 ‘벨 에포크(좋았던 시절)’로 부르는 시기다. 미국 문화사학자 칼 쇼르스케가 그의 퓰리처상 수상작 ‘세기말 비엔나’.. 더보기
[여적]석유 메이저 입력 : 2008-03-21 17:40:50ㅣ수정 : 2008-03-21 17:41:42 유명인의 갑작스러운 죽음에는 으레 음모론이 뒤따르곤 한다. 존 F. 케네디 대통령, 다이애나 왕세자비, 말콤 X, 아돌프 히틀러를 비롯해 하고많은 저명인사들의 자·타살이 그렇듯이 이탈리아의 실업가 엔리코 마테이(1906~1962)의 죽음도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으로 남아 있다. 국영 에너지회사 ENI의 초대 총재이자 이탈리아 경제 기적에 가장 큰 공헌자이기도 했던 마테이는 1962년 10월27일 전용기를 타고 시실리를 떠나 밀라노로 가는 도중 비행기가 폭발하는 바람에 죽고 말았다. 정력적으로 일하던 쉰여섯 살의 마테이가 사망한 것은 우연한 사고로 보였지만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당시 석유 메이저 회사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