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적(餘滴)

[여적]성화 봉송

입력 : 2008-03-28 17:39:34수정 : 2008-03-28 17:40:38

서양 철학의 탄생지 그리스와 동양 철학의 발상지 중국은 공교로운 공통점을 지녔다. 고대 그리스 철학의 비조인 ‘소크라테스-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와 중국 철학의 거대한 뿌리인 ‘공자-맹자-순자’의 흐름이 빼닮았다. 당시로서는 학문적 교류의 흔적을 찾아보기 힘든 두 지역이 이처럼 흡사한 게 경이롭게 비친다.

김수중 경희대 철학과 교수의 분석은 한층 흥미롭다. 양대 산맥의 기둥인 소크라테스와 공자는 스승과 제자들이 나눈 대화 형태로 사상의 토대를 정립한 점이 꼭같다. 플라톤과 맹자는 각기 스승의 전통을 이어받아 이상적인 철학의 뼈대를 세운 게 흡사하다. 아리스토텔레스와 순자는 이상에 치우친 스승들의 생각을 나란히 현실 속으로 끌어내려 체계화 작업을 벌였다.

올림픽 개최지가 2004년 그리스의 아테네에서 2008년 중국의 베이징으로 넘어간 것은 두 나라의 유사한 철학 흐름에 비춰보면 우연의 일치이지만 이채롭다. 게다가 아테네에서 채화된 올림픽 성화가 베이징으로 봉송되는 과정까지 겹쳐져 더욱 현묘하다.

그리스 43개 도시, 유럽, 아메리카, 아프리카, 중동, 동남아, 오세아니아, 동북아를 거쳐 중국 전역을 순회하는 성화 봉송 행사는 130여일 동안 약 13만7000㎞의 대장정이다. 하지만 성화 봉송은 채화 단계부터 시위로 몸살을 앓더니 줄곧 심상찮은 조짐을 보이고 있다. ‘국경 없는 기자회’ 회원들이 채화 행사장에 뛰어들어 “인권을 짓밟는 나라에서 올림픽을 열 수 없다”며 시위를 벌이는가 하면, 티베트인들도 행사장 주변에서 성화의 티베트 경유 반대 투쟁을 벌였다. ‘국경 없는 기자회’와 티베트인들은 성화 봉송로를 따라 중국의 야만적 탄압에 항의하는 다양한 시위를 이어가겠다고 선언하고 나섰다. 우리나라에서도 성화봉송 주자로 선정된 한 시민이 “티베트를 탄압하는 중국을 위해 뛰고 싶지 않다”며 보이콧을 천명하고, 촛불시위 동참자들도 늘어나는 추세다.

올림픽 성화 봉송은 지구촌에 평화, 전통, 인류애와 같은 올림픽 정신을 전하는 행사이기도 하다. 베이징올림픽조직위원회가 ‘화해(和諧)의 여정’이라고 이름 지은 성화봉송 대장정은 ‘불화의 여정’으로 얼룩질 게 뻔해졌다. 문명의 태동지 중국에 야만의 상징이 덧칠되는 시간이다.

'여적(餘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적]서울의 몽마르트르  (0) 2008.04.11
[여적]시 외우기 벌(罰)  (0) 2008.04.04
[여적]석유 메이저  (0) 2008.03.21
[여적]워비곤 호수 효과  (0) 2008.03.14
[여적]장바구니  (0) 2008.03.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