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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餘滴)

[여적]서울의 몽마르트르

입력 : 2008-04-11 18:18:30수정 : 2008-04-11 18:19:20

가난한 화가들의 영원한 정신적 고향. 파리 시내에 유일하게 포도밭이 남아있는 곳. 여전히 예술과 낭만이 숨쉬는 몽마르트르에서 이제 그 옛날의 정수(精髓)는 희석된 것 같다. 무명 화가들의 예술정신이 먼저 떠올라야 마땅한 몽마르트르는 장사꾼들로 소란하다. 바가지 요금과 소매치기를 조심하라는 여행 소개 팁이 빠지지 않는다.

‘거리의 화가들’은 테르트르 광장에 터를 잡고 있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관광객들을 따라다니며 흥정을 시도한다. 이곳에선 한국말로 “안녕하세요”를 외치지 않으면 화가 행세를 하기 힘들다는 과장 섞인 얘기도 나온다. 빈티 나는 화가들이 남의 집 앞에 배달된 우유를 훔쳐 먹어가며 그림을 그리던 시절의 정경과는 차원이 다르다.

주위도 환락가라는 인상이 더 짙다. ‘파리의 산책자’의 지은이 레옹 폴 파르그가 세월이 흐르면 몽마르트르의 카페들이 은행 지점이나 자동차 수리점으로 변해가리라고 했던 예언이 현실이 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그래도 파리를 방문하는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다는 곳이 몽마르트르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엊그제 외국인들도 부러워하는 서울의 자산인 남산을 ‘서울의 몽마르트르’로 만들겠다고 했다. 구체적인 청사진은 펼쳐 보이지 않았지만.

그러잖아도 언제부턴가 대학로에 있는 낙산공원을 ‘서울의 몽마르트르 언덕’으로 부르기도 한다. 부근에 연극 극장과 화랑 등이 몰려있는 데다 몽마르트르 언덕과 비슷한 125m 높이여서 겉만 보면 그럴싸하다. 한강 선유도에 몽마르트르처럼 화가들이 그림을 그리거나 야외공연을 하는 공간 조성을 검토한 적도 있다. 오래 전 일이지만 화곡동 우장산 공원에는 초상화를 그려주는 화가들이 몰려 한때 서울의 몽마르트르로 불리기도 했다. 성격이 조금 다르지만 프랑스인들의 집단 거주지인 서래 마을 근처에 ‘몽마르트르 공원’이 들어서 있기도 하다.

하지만 시민들이나 관광객들이 ‘서울의 몽마르트르’로 체감하고 있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 남산을 ‘서울의 몽마르트르’로 거듭나게 하려는 뜻은 고상하고 어연번듯하나 문화와 예술이 살아 움직이는 환경의 숙성이 먼저인 듯하다. 원조 몽마르트르의 문화도 행정당국의 인위적 손길로 만들어진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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