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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톺아보기-칼럼

또 하나의 오명 ‘사기공화국’

 대한민국의 세계 1위 불명예 사례를 꼽자면 열 손가락으로 모자랄 듯하다. 저출산, 자살률, 자녀 양육비, 1인당 명품 소비, 국내총생산(GDP)대비 가계빚 증가속도. 여기에 사기범죄 비율이 들어간다. 한국의 전체 범죄 건수 가운데 압도적 1위가 사기죄다. 4건 중 1건꼴이다. 한국의 전체 범죄에서 사기죄가 차지하는 비율은 세계 1위라고 한다. 이쯤 되면 ‘사기공화국’이라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요사이 최대 화제의 인물인 전청조씨가 구속된 것도 ‘넘사벽’ 사기행각 때문이다. 펜싱 국가대표 출신 남현희씨의 전 약혼자였던 그는 이름만 빼고 대부분 가짜로 드러났다. 놀랍기 그지없는 것은 필요에 따라 성별을 바꿨다는 점이다. 게다가 재벌 3세 행세까지 했다. 전청조씨에게 사기 피해를 본 사람은 현재까지 23명에 이르고, 피해액은 28억원으로 늘었다.


 우리 사회는 1년 전쯤 대형 전세 사기로 엄청난 홍역을 치르기 시작했다. 속칭 ‘빌라왕’들의 전세사기행각 파장은 현재진행형이다. ‘빌라왕’들의 사기 건수만 1만건에 가깝고 액수는 수조원에 달한다. 서울 인천 수원 대전까지 전국 규모의 전세사기는 마땅한 해결책도 나오지 않은 상황이다. 그동안 젊은 피해자 여럿이 목숨을 끊은 안타까운 일까지 벌어졌다.


 전세 사기 피해지원 특별법을 제정하고 정부가 다섯 차례나 대책을 발표했으나 악몽은 떨쳐버리기 쉽지 않아 보인다. 대부분 경제적 약자인 서민과 청년들의 생활 기반이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걱정거리인 저출산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사기범죄 행태는 실로 다양하다. 특히 전세 사기, 전기통신 금융(보이스피싱)사기, 가상자산(코인)사기, 보험 사기를 포함한 7대 사기범죄는 고질적인 양상을 띤다. 경찰청 집계에 따르면 사기범죄는 꾸준히 증가해 지난해 32만건을 돌파했다. 4년 전보다 20% 가까이 늘어난 수치다. 올해 들어 7월까지 발생한 악성 사기범죄도 이미 20만건을 넘어섰다.


 사기는 남을 고의로 속여 이익을 얻는 악랄한 범죄다. 사기범죄는 피해자의 생계를 위협하고 삶을 파괴해 ‘경제적 살인’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 때문에 알리기에리 단테는 ‘신곡’에서 사기꾼들이 죽어서 벌 받는 곳을 지옥의 지하 8층에 배치했을 정도다. 지하 9층까지 있는 ‘신곡’의 지옥은 아래로 내려갈수록 중죄를 지은 사람들이 갇힌다.


 한국도 2014년까지는 다른 나라처럼 절도범죄가 가장 많았다. 2015년부터 사기 사건이 절도를 앞질렀다. 유독 사기죄의 비중이 높은 데는 남을 속이고 거짓말하는 걸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회 문화 탓이 크다. 여기에다 윤리 의식보다 돈을 더 중시하는 세태도 한몫한다. 흥사단 투명사회운동본부가 발표한 ‘대한민국 청소년 및 성인 정직지수’ 조사 결과에 따르면 ‘10억원이 생긴다면 잘못을 하고 1년 정도 감옥에 들어가도 괜찮다’라는 항목에 고등학생은 57%, 20대는 53%가 긍정적으로 답했다.


 현실에서는 사기죄에 대한 가벼운 처벌 형량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수억원의 사기죄를 지어도 1~4년 실형이 고작이다. 사기죄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이 재범 사기꾼을 만드는 요인의 하나다. 전청조도 사기 등 전과 10범인 것으로 전해진다. 사기 재범자 비율은 무려 45%에 이른다. 교도소에서 잠깐 고생하면 남는 장사라는 인식이 사기범죄의 유인 요소가 된다.

                                                                                       

 

 전국적인 피라미드 다단계 사기꾼을 모티브로 한 범죄영화 ‘마스터’에서 진 회장 역을 맡은 이병헌의 대사는 씁쓸하다. "사기, 사기꾼? 푼돈 가지고 장난치는 놈들을 사람들은 사기꾼이라 부르지. 그게 억 단위가 되면 경제사범. 근데 그게 조 단위가 됐을 땐 뭐라고 부를 것 같아?"


 3년 전 전주지방법원 군산지원 재판부의 사기사건 판결문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건 사기 범행과 수천건 사기 범행의 법정형이 차이가 없게 되면서 오히려 추가적인 범행을 장려하는 결과를 낳게 됐다. 급기야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사기 범죄율 1위’ 오명을 얻기에 이르렀다." 대형 전세 사기 사건이 그랬듯이 사기 범죄의 급증은 한국 사회의 신뢰 자산을 송두리째 무너뜨렸다. 미국 정치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스탠퍼드대 교수)는 저서 ‘트러스트’에서 한 사회의 신뢰가 부를 창출하는 가장 중요한 사회적 자본이라고 역설한다. 그는 저신뢰 국가로 규정했던 한국이 여전히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고 판단한다.


 세계 각국 가치관 조사에서는 ‘대부분의 사람은 믿을 수 있다’라는 데 동의한 한국인 비율이 27%에 불과하다. 스웨덴(62%)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사기범죄에 대한 관대한 법을 현실에 맞게 고치고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할 때다. 이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국가경쟁력을 갉아먹는 정치사기꾼들의 척결이다. 국민을 현혹하고 농락하는 정치꾼이야말로 더 나쁜 사기범이나 다름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