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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톺아보기-칼럼

대통령의 국어 실력과 영어 남용

 윤석열 대통령의 국어실력은 학력에 비하면 떨어져 보인다. 윤 대통령은 그 사실을 스스로 에둘러 털어놓기도 했다. 그는 다문화가정 학생들 앞에서 "학교 다닐 때 국어공부를 못했다"고 고백했다. 한국어 공부가 어렵다는 대안교육시설의 학생들에게 격려 차원에서 한 말이기는 하지만 "국어가 재미없었다"라고 실토한 적도 있다.


 윤 대통령의 국어실력은 몇차례 드러났다. 윤 대통령은 정치참여 선언을 앞두고 ‘김대중도서관’을 찾아 방명록에 글을 남겼다. 그는 이때 ‘정보화 기반과 인권의 가치로 대한민국의 새 지평선을 여신 김대중 대통령님의 성찰과 가르침을 깊이 새기겠습니다’라고 썼다. 여기서 그는 ‘지평선’과 ‘지평’ ‘성찰’과 ‘통찰’의 차이를 구별하지 못했다. 그리 어려운 낱말도 아니다.


 지평선(地平線)은 ‘편평한 대지의 끝과 하늘이 맞닿아 경계를 이루는 선’을 뜻한다. ‘사물의 전망이나 가능성 따위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 지평(地平)이다. 성찰(省察)은 ‘자기의 마음을 반성하고 살핌’이라는 뜻풀이를 지녔다. 여기서는 ‘예리한 관찰력으로 사물을 꿰뚫어 봄’이라는 뜻의 통찰(洞察)을 써야 알맞다.


 국립5.18민주묘지를 참배했을 때도 논란의 여지가 있는 방명록 글을 썼다. ‘민주와 인권의 오월 정신 반듯이 세우겠습니다.’ 이 문장에는 몇 가지 어색한 부분이 있다. 우선 목적격 토씨 ‘을’을 생략하면 자연스럽지 않다. 또 ‘오월 정신 반듯이 세우겠습니다’라고 한 것은 오월 정신이 바르지 않다는 걸 전제로 한다. ‘민주와 인권을 일깨워준 오월정신을 반드시 지키겠습니다’라고 써야 더 적절하다.

                                                                                                 

 윤 대통령의 글이 문장 자체로는 틀렸다고 할 수 없다고 국립국어원도 유권해석을 내리긴 했다. 하지만 그 당시 상황이 ‘반드시’ 지키는 것이 맞는지 ‘반듯이’ 세우는 것이 옳은지는 정치적 논란으로 비화할 수 있어 국립국어원도 해석을 애써 피했다.


 윤 대통령이 영어 단어를 너무 많이 섞어 쓰는 화법도 자주 구설에 오른다. “거버먼트 인게이지먼트(government engagement)가 바로 레귤레이션(regulation)이다. 마켓(market)에 대해서 정부는 어떻게 레귤레이션 할 거냐.” “더 적극적으로, 더 아주 어그레시브(aggressive)하게 뛰어봅시다.” 비상경제민생회의 겸 국민경제자문회의에서 나온 윤 대통령의 마무리 발언 가운데 일부다. ‘거버먼트 인게이지먼트’는 ’정부 관여‘로 쓰면 된다. ’레귤레이션‘을 ’규제‘라는 단어로 바꾸면 전달력이 떨어질까? ’어그레시브‘를 대체할만한 ‘공격적으로’ ‘적극적으로’ 같은 우리말 표현이 많다.


 윤 대통령의 영어남용은 습관적인 듯하다. 그는 검찰 출신 인사편중 논란에 대해 “미국 같은 선진국일수록 거번먼트 어토니(government attorney)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정·관계에 아주 폭넓게 진출하고 있다. 그게 법치국가 아니겠나”라고 했다. 이런 말도 했다. “모든 국가 정책을 팔리시 믹스(policy mix)를 해가지고 일자리 창출에 전부 맞출 생각이고….” 국무회의에서는 새해 국정운영 방향을 제시하며 “체인지 싱킹(change thinking)”이라는 영어를 썼다.


 윤 대통령의 영어남용이 잦자 수년 전 싸늘한 비판을 받은 국내 자동차회사의 지하철 광고 문구를 떠올리게 한다는 글도 올라왔다. '머스큘러하고 텐션이 있는 보디라인을 살려주는 퍼펙트한 써클 쉐입, 버닝하는 열정을 보여주면서 잔근육 같은 디테일이 살아 숨쉬는 템테이셔널, 클리어한 뷰를 보여주면서도 단단하고 탄력 있게 벌크업….'


 윤 대통령의 국어오염·영어남용 말투는 최근 “드라마틱하게 엑시트하겠다”는 유행어를 남기고 불명예스럽게 퇴장한 김 행 여성가족부장관 후보자까지 다시 불러낸다.

                                                                                                 

 윤 대통령이 용산 집무실 주변 시민공원 조성 계획을 소개하면서 “내셔널 메모리얼 파크로 이름을 지으면 좋겠다. 영어로 내셔널 메모리얼 파크라고 하면 멋있는데 국립추모공원이라고 하면 멋이 없어서 우리나라 이름으로는 무엇으로 해야 할지 모르겠다”라고 해 입길에 올랐다. 윤 대통령이 영어에 강박관념이 있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뒤따랐다.


 가뜩이나 윤 대통령은 반말을 자주 하는 나쁜 습관까지 비판을 받는다. 이런 언어습관은 공감 능력의 결여에서 비롯된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윤 대통령은 한글날에 즈음해 국립한글박물관을 깜짝 방문했다. 그는 한글의 우수성을 높이 평가하면서 한글박물관을 찾은 학생들에게 “앞으로도 한글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당부했다. 이 당부는 국어실력에 의문부호가 붙고 영어남용으로 한국어를 오염시키는 자신에게 향해야 더 어울린다. 언어는 단순히 감정과 정보를 나누는 수단에 그치지 않는다. 모국어에 대한 애정과 자존감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는 지도자에게 올바른 말과 글은 더없이 소중하다.

 

                                                                                                                             이 글은 내일신문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