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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톺아보기-칼럼

자유·민주를 모독하는 자유민주주의자들 그들은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같은 입으로 자유와 민주를 욕보이는 언행을 서슴지 않는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자유·민주를 수호한다는 명분 아래 횡행하는 모순을 목도해야 하는 늦가을이 스산하다. 자유주의의 첨병이자 보루로 자처하는 자유경제원이라는 단체는 국가주의의 전사가 아닌가 싶은 느낌을 준다. 자신들의 전문 분야를 뛰어넘어 자유와 민주적 가치와 역행하는 교과서 국정화의 전위대로 나선 듯하다. 보수의 새로운 아이콘이라고 불리는 전희경 자유경제원 사무총장은 역사교과서의 국정화 전도사로서 보수진영에서 인기가 하늘을 찌른다. ‘보수의 여전사’로 미화되는 전 총장은 교학사 교과서의 채택률이 1%에도 못 미치는 현상을 경제학에서 말하는 ‘시장 실패’라고 규정한다. 그래서 정부가 개입해 국정 교.. 더보기
‘올바른 역사교과서’의 더블스피크 미국영어교사협회는 해마다 사안의 본질을 흐리는 말을 가장 탁월하게 구사한 사람이나 단체에 ‘더블스피크상’을 준다. 러트거스대학 윌리엄 러츠 교수가 주도해 1974년 제정한 이 상의 첫 수상자는 캄보디아 주재 미 공군 공보담당관이던 데이비드 오퍼 대령이었다. 오퍼 대령의 수상 이유는 “기자 여러분이 계속 ‘폭격’이라고 쓰고 있는데 그건 폭격이 아니라 공중지원”이라고 견강부회한 공로다. 걸출한 역대 수상작의 하나로 미국 국방부가 ‘민간인 사상자’를 ‘부수적인 손실’이라고 둘러댄 것이 손꼽힌다. 미국 민간항공국이 ‘비행기 추락’을 ‘제어를 벗어난 지상으로의 비행’으로, 미 국무부가 세계인권현황보고서에서 ‘살해’를 ‘불법적이거나 자의적인 생명의 박탈’로 기발하게 표현한 말도 빼어난 수상작에 속한다. 로널드 레이.. 더보기
민주주의 열차의 역주행 5년 전 당시 김무성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박근혜 전 대표의 민주주의 철학 부재를 촌평할 때는 솔직히 피부에 와 닿지 않았다. 김무성 대표는 “박근혜 전 대표가 출중하고 훌륭하지만 결정적으로 부족한 점이 있다”면서 ‘민주주의에 대한 개념과 사고의 유연성 부족’을 들었다. 김 대표는 이 때문에 “훌륭한 대통령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의욕이 소진해 버렸다”고 고백했다. 그랬지만 나는, 아버지의 명예회복을 갈망하는 독재자의 딸일지언정 시대정신까지 결정적으로 거스르는 정치지도자일까 싶은 생각이 앞섰다. 게다가 ‘친박 좌장’으로 불리던 김무성 대표가 이명박 정부시절 홀로서기를 하는 과정에서 정치적 계산을 한 자락 깔고 한 발언일 것이라는 선입견에 무게가 실렸다. 그처럼 안일한 생각이 심각한 우려로 바뀌고, 김 대표의 말.. 더보기
언론 비판을 즐기는 권력기관들 해마다 연말 정기국회가 열릴 때면 실세 의원들이 거액의 자기 지역구 예산을 끼워 넣는 꼴불견 행태가 어김없이 나타난다. 여기엔 실세 의원들이 화급하지 않은 지역구 예산 잔치를 벌이는 동안 기초생활수급자 같은 밑바닥 서민들에게 꼭 필요한 국가예산 수천억 원이 뭉텅이로 잘려나가는 데 심각성이 도사리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실세 의원들이 언론으로부터 비판 받는 것을 부끄러워하기는커녕 도리어 즐기는 후진성이다. 중앙 언론에서 비판 기사를 쓰면 지역주민들이 ‘고생한 의원 나리’라고 박수를 쳐 주기 때문이다. 부정청탁이나 다름없는 쪽지 예산을 통과시킨 직후 국회 예산결산위원들이 하필이면 중남미와 아프리카의 정치 후진국으로 ‘예산심의 시스템연구’ 외유를 떠난 것은 코미디의 화룡점정(畵龍點睛)이다. 성격은 달라도 이와.. 더보기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는 ‘정상의 비정상화’다 세계 민주주의의 전범(典範)이 되고 있는 ‘자유론’을 쓴 존 스튜어트 밀은 국민 교육의 전부나 대부분을 국가가 장악하는 것을 강력하게 반대하면서 교육의 다양성을 주창했다. “전체적 국가 교육은 오직 국민을 틀에 집어넣어 서로 너무나 흡사하게 만들려는 수단에 불과하다. 국가가 국민을 정형화하는 틀은, 결국 국가권력을 장악한 우월한 세력-군주건, 승려 계급이건, 귀족 계급이건, 현재 대중의 다수파이건-이 좋아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교육이 효과와 성공을 거두면 거둘수록 국민의 정신에 대한 압제가 확립되며, 그 압제는 자연의 추세로서 국민의 육체에 대한 압제를 유발한다.” 밀이 민주주의의 토대가 된 ‘자유론’을 출간한 게 1859년이니, 조선 철종 때 통치이념인 성리학과 유교 윤리를 백성들에게 전파하기 위한 .. 더보기
집요한 ‘건국절’ 주장, 이제 접어라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건국절’ 논란과 관련해 지난주 주목할 만한 사실이 더 보태졌다. 남북한의 군사적 긴장이 최고조에 달한데다 단발적인 여론조사 결과여서 진보적인 언론조차 거의 다루지 않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뜻 깊은 광복 70주년 경축사에서 ‘건국 67주년’이라고 몰역사적인 발언을한데 이어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까지 건국절 제정을 새삼 언급한 직후에 나온 것이어서 의미가 적지 않다. 여론조사기관인 리얼미터가 지난주 발표한 대한민국 건국 시점에 대한 국민인식 조사 결과, 3분의 2에 가까운 64%의 국민이 3·1운동과 임시정부가 수립된 1919년이라고 응답했다. 남한정부가 수립된 1948년이라는 응답은 21%에 불과했다. 1919년 임시정부수립이라는 응답이 모든 지역과 연령층에서 큰 편중 없이 압도적으.. 더보기
포용적 국가라야 도약한다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라는 책은 광복 70주년을 맞은 대한민국이 나아가야할 방향을 확연하게 시사해 준다. 대런 애쓰모글루 MIT 경제학과 교수와 제임스 로빈슨 하버드대 정치학과 교수가 함께 쓴 이 책은 포용적 정치·경제제도를 갖춘 나라만이 국민 전체가 번영의 길을 걸을 수 있다는 걸 흥미로운 사례를 들어 보여준다. ‘노갈레스’라는 도시와 남북한이 대표적인 실례로 꼽힌다. 원래 하나의 도시였던 노갈레스는 남북한처럼 미국 땅과 멕시코 땅으로 갈라졌다. 멕시코 영토였던 노갈레스는 1853년 미국이 멕시코로부터 현재의 애리조나 주와 뉴멕시코 남서부를 사들이면서 미국 땅과 멕시코 땅으로 나눠지고 말았다. 두 도시의 주민은 남북한처럼 조상과 문화가 같다. 하지만 두 도시는 지금 사뭇 달라졌다. 미국 쪽에 속한 애.. 더보기
믿게 해야 믿는다 국가정보원 ‘민간인 불법해킹 의혹’ 사건의 핵심은 신뢰의 문제다. 사건의 본질은 진실게임이지만, 실체를 규명하기 어려운 조건 속에서 경기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여론조사 결과, 우리 국민 10명 가운데 6명은 국정원의 불법해킹 의혹 해명을 믿지 않는다고 털어놓았다. 국정원장은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이탈리아 보안업체의 해킹 프로그램 구입 사실을 시인했으나 민간 사찰용이 아닌 북한 공작원 감청용이라고 해명했다. 진실규명 작업은 만만치 않아 보인다. 우선 모든 게 오늘 오후 발표하는 국정원의 자체 조사 결과와 제출자료에 달려 있을 뿐 외부의 검증 수단이 현실적으로 마땅하지 않다. 국회 차원의 진상조사가 오늘부터 시작되고, 검찰 수사도 초읽기에 들어갔지만 애초부터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벌이는 축구 경기와 흡.. 더보기
케티 코티와 네덜란드, 그리고 일본 해마다 6월말과 7월초면 네덜란드에서는 ‘케티 코티’(Keti Koti)라는 말이 어김없이 인터넷 인기검색어에 오른다. 올해도 예외가 아니었다. 7월1일이 네덜란드가 식민지로 지배했던 남미 수리남의 ‘케티 코티 국경일’이어서다. 이날이 되면 수리남은 물론 2009년부터 네덜란드 전역에서 ‘케티 코티 페스티벌’이 다채롭게 펼쳐진다. 이날은 수리남인들의 노예해방일이다. ‘케티’는 ‘사슬’, ‘코티’는 ‘끊다’는 뜻이다. ‘케티 코티’라는 말이 상징하듯 여기에는 식민지 수리남의 슬픈 역사가 서려 있다. 악명 높은 네덜란드 농장주 부인에게 잔혹하게 희생된 흑인 노예여성 ‘알리다’의 일화는 치를 떨게 만든다. 18세기 후반 대형 플랜테이션 경영주 스토커트 프레데릭의 부인이었던 수잔나 뒤플레시는 미모가 빼어난 미혼.. 더보기
낮은 자세 안 보이는 국가 리더십 단비가 내린 바로 다음날 일찌감치 대통령이 가뭄피해 현장을 찾은 모습은 다소 어색해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은 일요일인 어제 오전 최대 가뭄피해지역 가운데 하나인 강화도를 찾아 농민들을 격려했다. 공교롭게도 전날 강화도를 포함한 수도권에는 상당량의 비가 내렸다. 오전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의 양은 프로야구 야간경기가 취소될 정도였다. 강화도 역시 해갈이 될 만큼 충분하지는 않았지만, 지역에 따라 수도권의 다른 곳에 버금가는 강수량을 보였다. 30년 만에 닥친 최악의 가뭄인데다 어제 내린 비가 부족한 양이라니 최고지도자가 농사 현장을 방문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이 광경은 큰 사건이 터질 때마다 한 박자씩 늦는 대통령의 언행을 다시 떠오르게 한다. 한 농민의 말이 흥미롭다. “대통령께서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