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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기자와 애국심 2003-04-02 미국 애틀랜타에 있는 CNN 본사에는 '전설적인 종군기자' 피터 아네트가 1991년 걸프전 때 바그다드에서 입었던 점퍼와 화염에 그슬린 모자가 신주 모시듯 전시돼 있다. 시청자들이 CNN 하면 걸프전과 아네트를 먼저 떠올리니 그럴 만도 하다. 그 이전까지 1%에 불과하던 CNN의 시청률이 걸프전을 통해 무려 11%로 껑충 뛰어 대박을 터뜨렸고 그 한복판에 아네트가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걸프전 당시 아네트가 기사를 보내던 알 라시드 호텔까지도 세계적인 명물이 돼 있다. 로비에는 조지 W 부시 현 대통령의 아버지 얼굴이 큼지막하게 그려져 있어 이곳에 묵는 사람은 누구나 그 얼굴을 밟지 않고서는 들어갈 수 없다. 일흔을 바라보는 아네트(68)는 거의 한평생을 전장에서 살았다. 60년대 베트.. 더보기
<여적>골목대장 2003-03-28 김대중 전 대통령의 셋째아들 홍걸씨에게 용돈 명목 등으로 9억원을 주었다고 폭로했던 최규선씨가 돈의 대가성을 부인하면서 이렇게 해명했다. "나에게 9억원은 아무 것도 아니다. 골목대장이 동네 꼬마에게 딱지 빌려주듯 준 돈이다"골목대장이 어린이들의 딱지치기나 병정놀이와 함께 떠올려진다면 낭만적 추억거리가 되겠지만 어른들, 특히 정치인들에게 옮겨 놓으면 한결같이 비아냥으로 표변하고 만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측근들을 자택 앞에 줄세우고 골목성명을 발표해 골목대장이라는 별명을 얻었던 일을 우리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풍경으로 간직하고 있다. 엊그제 김희상 청와대 국방보좌관이 이라크전쟁 파병 결정의 당위성을 설명하면서 골목대장론을 펼쳐 눈길을 끌었다. "골목이 조용해지려면 강한 골목대장이 나오.. 더보기
[여적] 전쟁과 소녀 2003-03-24 전쟁이 참혹과 잔인의 극치라면 소녀는 가냘픔과 순수의 대명사다. 극단(極端)의 대척점에 자리한 전쟁과 소녀가 어우러지면 어김없이 전 인류의 최루탄으로 변한다.주목받는 프랑스 작가 기용 게로의 소설 '어느 전쟁 영웅의 당연한 죽음'도 바로 전쟁과 소녀가 겹쳐 떠오르는 이미지 때문에 폭력성을 돋보이게 하는 수작으로 꼽힌다. 작가는 프랑스 병사에게 집안이 유린당한 베트남 소녀를 만나게 된 주인공이 그녀의 복수를 도와주는 줄거리를 설정해 전쟁의 어두운 그림자를 고발한다. 현실세계에서는 문학이나 예술세계의 감동을 성큼 뛰어넘는다. 1999년 '코소보의 안네 프랑크'로 일컬어졌던 알바니아계 16세 소녀 아도나의 e메일 편지가 대표적인 실례의 하나다. 아도나는 동갑내기인 미국 버클리 고교생 피네간..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