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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餘滴)

[여적] 북핵 해결사

2003-07-24
기상천외한 우화(寓話)로 필명을 날린 프랑스 작가 마르셀 엠므의 단편소설들 가운데 단연 압권은 '해결사'다. 제목에서 연상되듯 주인공 말리코르느는 남의 빚을 대신 받아 주는 일이 직업이다. 그는 어느날 밤에 잠을 자다가 느닷없이 천국에 불려간다. "저놈은 당장 지옥에 보내야 한다"는 베드로의 강력한 건의에도 불구하고 향후 선행을 맹세한 뒤 간신히 죽음을 면한다. 개과천선해 이 세상으로 돌아온 그는 치부책에 차변.대변 대신 선행과 악행란을 만들어 잘잘못을 빠짐없이 적는다.성당 문앞에 웅크리고 앉은 거지에게 몇 푼을 던져 준 일은 선행란에, 개를 발로 찬 날은 악행란에 기록한다. 훗날 천국에 갔을 때 그는 자신있게 선행을 많이 했다고 자랑한다. 그러자 베드로가 나서서 "그리스도의 가르침에는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고 했지 않느냐"며 무안을 준다.

소설처럼 해결사에 대한 이미지는 우리 사회에서도 부정적이다. 웬만한 국어사전에 청부 폭력으로 빚을 받아주는 사람이라는 요지의 풀이만 나와 있는 것만 봐도 그렇다.

하지만 요즘엔 해결사가 지난(至難)한 골칫거리를 풀어주는 긍정적 의미로 곧잘 등장한다. 스포츠, 외교, 정치, 경제, 집단 민원, 개인 고민에 이르기까지 해결사가 없는 분야가 없다. 사람만이 해결사는 아니다. 때론 시간도 해결사가 되곤 한다.

요즘 한반도에서 가장 필요한 해결사는 북한핵 해결사다. 미국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 할 분쟁해결사 가운데 한 사람인 빌 리처드슨 뉴멕시코주 지사가 지난 1996년 "이 세상에서 가장 상대하기 어려웠던 사람이 누구였느냐"는 물음에 주저없이 "북한사람들"이라고 대답한 적이 있는 만큼 난제임에 분명하다.

그런 북핵문제의 해결사로 중국의 다이빙궈(戴秉國) 외교부 부부장이 떠오르기 시작해 국제사회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모든 국제현안에 해결사임을 자임하곤 하는 오지랖 넓은 미국과 자존심 하나만은 세계가 알아주는 북한을 오가며 엮어내는 그의 외교술이 7천만 한민족의 생존이 걸린 난제의 실마리를 풀어줄 수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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