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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와 옹정제 박근혜 대통령이 새해 기자회견에서 “(퇴근 후) 보고서 보는 시간이 제일 많다”고 한 말을 듣고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청나라 옹정 황제였다. 옹정제야말로 ‘보고서 통치의 대명사’다. 옹정은 밥 먹을 때조차 보고서를 곁에 둘 정도였다고 한다. 그는 민심과 비밀정보를 파악하기 위해 모든 지방 관리들로부터 ‘주접’(奏摺)이라 일컫는 민정 보고서(상주문·上奏文)를 받았다. 보고서는 하루 평균 20∼30건, 많게는 60∼70건에 이르렀다. 하루에 8만자를 읽고 8천자씩 업무지시를 한 셈이다. 옹정제는 이 보고서를 읽고 답글을 쓰는 데 밤 시간을 거의 다 보냈다. 제위 13년 내내 새벽 4시부터 자정까지 하루 20시간 한결같이 일하면서 초인적인 정력을 과시했다. 역사상 전무후무하다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옹정은 자.. 더보기
세상을 바꾼 책 이야기(26)--<나의 투쟁> 아돌프 히틀러 “아우슈비츠 이후 시를 쓰는 것은 야만적이다.”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중심인물인 독일 철학자 테오도르 아도르노의 이 명언만큼 아우슈비츠(폴란드 지명 오시비엥침) 수용소의 참극을 잘 웅변하는 말도 찾기 어렵다. 일부 문학인이 우리말로 번역하면서 “아우슈비츠 이후 서정시를 쓰는 것은 야만적이다”라고 비약시킨 이 말(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시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를 연상한 의도적인 오역이라는 견해도 있다)은, ‘아우슈비츠의 참상을 떠올려보면 더 이상 시가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는 회의(懷疑)와 비탄의 동의어다. 한 신학자는 아도르노의 말을 비틀어 “아우슈비츠 이후에도 신학이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아돌프 히틀러’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아우슈비츠다. 히틀러가 이끈 나치 독일은 이곳에서 250만.. 더보기
‘안녕들’이 못마땅한 사람들 역사의 물줄기는 종종 사소한 것처럼 보이는 일 하나 때문에 바뀌곤 한다. 튀니지의 ‘재스민 혁명’은 2010년 12월 스물여섯 살의 청년 노점상 무함마드 부아지지의 분실자살이 촉발했다. 그의 분신자살은 ‘아랍의 봄’을 점화해 혁명의 물결을 리비아, 이집트, 예멘, 시리아를 거쳐 터키까지 확산시켰다. 1차 세계 대전도 세르비아 출신의 대학생 가브릴로 프린치프가 사라예보를 친선 방문했던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를 암살하는 사건에서 비롯됐다. 혁명적 현상은 이미 임계점에 도달해 작은 성냥불 하나에도 활활 타오를 뿐이다. 대학을 졸업한 뒤에도 마땅한 일자리가 없던 부아지지는 경찰의 노점상 과잉단속에 항의하며 분신자살을 기도했다. 이 사건은 억압받던 시민의 공분을 이끌어내면서 장기 독재정권을 붕괴시키는 재스민 혁명..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