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톺아보기-칼럼

뺄셈정치 속의 통일대박론 

 문득 가정법 질문 하나가 뇌리를 스쳐간다. 남북 통일이 이뤄지면 우리는 15년 안에 북한 출신 대통령(최고지도자)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공산주의 독재체제의 동독 출신 정치인을 총리로 선택한 독일처럼 말이다. 통일의 낌새도 보이지 않는 터에 부질없는 생각이라고 타박할지 모르지만, 중요한 물음인 것만은 틀림없다. 이는 한 나라의 관용성 척도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동독 출신인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통일독일의 최고지도자 자리에 오른 것은 통독 후 15년만의 일이다. 메르켈 총리는 이미 통독 10년째 되던 2000년부터 보수야당이던 기독교민주당 당수를 맡아왔다.


   최근 독일을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에게 충고한 메르켈 총리의 한마디는 매우 시사적이다. “(통일 과정에서) 전혀 다른 삶을 살아왔던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 사람들을 열린 마음으로 대해야 합니다. 그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하는 박근혜 대통령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총리>


   박 대통령은 통일 독일의 모습을 보면서 통일 한국의 비전을 세우겠다고 화답했지만, 현실을 보면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다. 독일에서 공부한 북한 전문가 브라이언 마이어스 동서대 교수가 얼마 전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밝힌 전망은 남한 보수층의 사고와 엄청난 격차를 보여준다. “대다수 북한주민은 통일 이후도 김일성의 신화에 여전히 충성을 바칠 것이고, 그의 동상(銅像)도 그대로 유지하려 할 것이다. 한반도 북부에서는 그들만의 정당도 등장할 것이다.”


   민주화운동을 상징하는 노래인 ‘임을 위한 행진곡’의 5·18 공식 기념곡 지정이 무산될 위기에 처하고, 유신체제와 전두환 군사독재를 옹호하는 듯한 보수진영의 행태를 보면 우려를 떨쳐버리기 어렵다. 그러잖아도 우리 사회는 이명박·박근혜 정부 이후 민주화와 국민통합 지수가 개선되기는커녕 외려 후퇴하고 있다. 최근 동아일보의 여론조사결과, 한국 사회가 해결해야 할 최우선 과제는 사회통합인 것으로 나타났다.


   스파르타와 아테네 같은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들이 쇠망의 길을 걸은 반면, 로마가 대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던 것은 ‘관용의 차이’가 낳은 결과다. 소수정예의 용맹 하나로 버티던 스파르타는 순혈주의를 앞세운 뺄셈정치 탓에 몰락하고 말았다. 한때 성인 남자 시민권자가 8000명이던 스파르타는 100년 뒤 결정적인 레욱트라 전투 당시 시민권자가 1000명으로 줄어 있었다. 스파르타도 초창기 외국인에게 문호를 개방한 게 강국으로 부상하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전성기부터 폐쇄성을 드러냈다. 배타적인 정책 때문에 하층민이나 중산층이 상류층으로 진입할 수 있는 사다리도 사라졌다.


   최초의 민주정치를 실현했다는 아테네도 양친 모두 아테네 시민권자가 아니면 그 자녀들이 시민권을 얻을 수 없는 사회였다. 이 같은 폐쇄성은 아테네를 신흥 로마에 뒤쳐지게 만든 가장 큰 원인이 됐다. 고대 그리스의 대표적인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도 마케도니아 출신이라는 이유 하나로 평생 아테네 시민권을 받지 못했다. 결국 아테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인 마케도니아 왕 알렉산드로스에게 멸망한다.


   이와는 달리 로마 제국건설의 으뜸 요소는 잘 알려진 대로 관용정책이 꼽힌다. 식민지 출신 노예의 자녀들이 시민권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물론 공직에도 어렵잖게 오를 수 있었다. 원로원 의원의 3분의 2를 속주·식민지 출신이 차지하고, 아프리카 속주 출신 황제와 식민지 스페인 출신 황제가 탄생할 수 있었던 것도 이 같은 개방성과 관용 때문이다.

                                                                                               

                                                            <월드컵축구대회 예선경기 남북한 대결 응원단 자료사진>

 
  우리는 어떤가. 국민대통합을 공약으로 내걸고 정권을 잡은 대통령은 지역적 편가르기와 이념적 순혈주의를 주무기로 삼고 있다. 정부와 공공부분은 더 말할 것도 없고, 민간부문까지 친정부성향이어야 말단자리라도 얻을 수 있는 폐쇄성이 만연한다.

 

   정권은 출범 1년이 넘었지만 종북타령으로 지지율을 관리하고 보수층 결집을 유인하는 실정이다. 통일의 역군이 돼야할 탈북자들은 대부분 사회적 왕따상태다. 지방선거에서도 정치꾼들은 갈등을 득표전략으로 삼는다. 집권층은 다양성을 바탕으로 한 개방의 문화가 국가발전의 필수불가결한 요소임을 늘 입으로만 들먹인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