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는 국가개조론이 절실할 만큼 우리 사회의 총체적인 허점을 발가벗겨 보여줬다. 이번 사건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고 사의를 표명한 정홍원 국무총리의 기자회견에서도 켜켜이 쌓인 폐단이 자성의 목소리로 흘러나왔다. “이번 사고를 보면서 우리 사회 곳곳에 오랫동안 이어져온 다양한 비리와 잘못된 관행들이 너무도 많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이번에는 반드시 그런 적폐들이 시정되어서 더 이상 이러한 사고가 발생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정 총리가 맹성(猛省)한 비리와 나쁜 관행의 심연에는 공직사회의 무책임과 부정부패가 똬리를 틀고 있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썩은 뇌물공화국의 하나로 꼽힌다. 2013년 국제투명성기구가 조사한 부패인식지수에서 34개 회원국 중 27위를 기록했다. 세계 177개 나라 가운데서는 46위다. 최근 3년 연속 하락한 결과다.
내부 조사결과도 비슷하다. 한국행정연구원이 최근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인 1000명에게 ‘정부부문 부패실태’를 조사한 결과, 65.5%가 공무원에게 금품을 제공하는 것은 ‘보편적’이라고 답변했다. 이들은 정부부문의 부정부패가 심각한 수준이라고 털어놨다.
<침몰하는 세월호>
세월호 참사도 공직자들과 업계의 유착이 낳은 비극이라는 게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이 사건은 이른바 ‘김영란법’의 화급성을 새삼 일깨워준다.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이 제안한 ‘공직자의 청탁 수수 및 사익추구 금지법’(이하 김영란법)이 제대로 만들어져 시행됐다면 공직자들의 부정부패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데 괄목할만한 실효를 거뒀을 게 분명하다.
‘김영란법안’은 2012년 8월 김 전 위원장이 마련해 입법예고했지만, 2년 가까운 세월이 흘러서도 국회에서 잠자고 있는 실정이다. 이 법안은 ‘100만원을 초과하는 금품을 수수한 공직자는 직무 관련 여부와 상관없이 형사처벌(3년 이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 벌금형)한다’는 게 뼈대였다. 우여곡절 끝에 정홍원 총리의 중재로 확정된 정부안도 공직자들의 저항 때문에 이미 누더기처럼 돼 버렸다.
지난해 8월 국회로 넘어간 정부법안은 이름부터 ‘부정청탁 금지 및 공직자의 이해충돌 방지법’으로 둔갑했다. 원안에서 대폭 후퇴한 탓에 실효성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우려가 나온 지 오래다. 정부법안은 직무관련성 여부로 형사 단죄와 과태료 처분을 가른다. 수정안은 공직자가 업무와 관련이 있는 사람한테서 돈을 받은 경우에만 처벌하고, 그 경우에도 받은 액수의 5배 이하 과태료를 부과하는 선으로 후퇴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정홍원법안’이라는 풍자도 나온다.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
‘스폰서 문화’가 가장 발달한 것으로 소문난 법무부와 검찰의 반발이 가장 큰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지만, 실제론 모든 공무원이 달가워하지 않는다. 법무부는 ‘직무 관련성이 없는 일체의 금품수수를 공직자라는 이유만으로 일률적으로 형사처벌하는 것은 과잉금지 원칙에 위배된다’며 제동을 걸었다. 그러잖아도 온갖 비리로 따가운 질책을 받아온 검찰이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국민의 눈높이와 상식은 오래 전부터 ‘대가 없는 뒷돈은 어디에도 없다’는 명제로 바뀌었다. 직무와 관련 없는 뇌물을 봐주면 더 이상 김영란법이 아니라는 것이다. 받은 돈이 직무와 무관한 다른 이유에 따른 것이었음을 공직자가 명백히 입증할 경우 면책되도록 한다면 과잉금지 논란은 있을 수 없다. 국회가 미적거리고 있는 것은 국회의원도 이 법안의 ‘부정청탁의 금지’ 조항 대상이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김영란법 원안은 속칭 ‘관피아’의 적폐를 줄일 수 있는 효과도 크다. 이 법안은 우리 사회 전체의 건강성뿐만 아니라 박근혜 정부가 원하는 경제성장률도 현격히 높일 수 있는 이점도 많다. 부정부패를 OECD 평균수준으로만 줄여도 4%대의 경제성장률을 회복한다는 연구결과가 나와 있다.
세월호 참사 이후 대한민국 개조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 가운데 하나가 김영란법 원안 통과다. 박 대통령도 대국민 사과와 더불어 이 법안이 하루속히 원안대로 통과되도록, 반발하는 여당 지도부와 의원들을 압박해야 한다. 공직사회와 정치인들의 저항에 굴복하면 다시는 호기(好機)가 오지 않을 것이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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