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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유럽 경제위기의 지경학(地經學) 서구 문화의 모체이자 세계를 호령했던 남유럽국가들이 어쩌다 천덕꾸러기 돼지(PIGS) 취급을 받는 지경에 이르렀는지 연민의 정까지 느껴진다.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등 지중해권 국가들이 만성재정적자와 감당하기 힘든 국가채무, 높은 실업률로 말미암아 오래전부터 세계경제의 애물단지 수준을 넘어 ‘공공의 적’이 됐다. 2008년 7월 시사주간지 뉴스위크가 ‘왜 돼지(PIGS)는 날지 못하나’라는 기사에서 새로운 조어를 만들어낸 이후 미국의 투자기관과 언론을 필두로 세계는 이들 나라에 모멸의 딱지를 붙이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태풍의 눈에 자리한 이탈리아와 그리스가 상환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빚더미에 올라앉자 끝내 두 나라 모두 최고지도자가 사퇴하고 말았다. 세계 금융시장이 흔들리고 유로존 국가.. 더보기
한나라당, 디지털 노마드당이 되겠다고? 한나라당은 영락없는 구식 형광등이다. 재밌는 얘기를 들어도 남들이 다 웃고 난 뒤라야 비로소 웃기 시작한다. 선거판이 오래 전부터 ‘세대 대결’로 변했다는 걸 알면서도 20세기식 이념대결과 정치적 허무주의에 기대보려는 네거티브 방식으로 맞선다. 그것도 한두 번이 아니라 늘 그렇다. 참패한 선거결과를 되돌아보며 복기(復棋)할 때마다 그걸 아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거렸다가도 그 다음 선거에선 ‘전과 동’이라고 외친다. 이번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세대 대결로 결판났듯이, 불과 여섯 달 전에 치른 4·27 분당을 재선거만해도 수도권의 만년 여당 지역구에서 한나라당이 진 것도 문제의 세대 대결 양상 때문이었다. 50대 이상 연령층은 한나라당 후보를, 40대 이하 전 연령층에서는 민주당 후보를 지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더보기
[책과 삶] 목민심서 영역본/ 미슐랭 그린 가이드 한국편/ 송광사 새벽예불 CD ■ 목민심서 영역본(Admonitions on Governing the People)--버클리대 출판부 조선시대 실학자이자 문신이었던 정약용의 최대 역작 ‘목민심서’는 한국 최고의 고전 가운데 하나다. 이 책은 한 여론 조사에서 한국 국민 필독서 1위로 뽑힌 적이 있다. ‘목민심서’는 한마디로 지방행정의 지침서다. 백성을 다스리는 지방행정관이 지녀야할 마음가짐과 지켜야 할 준칙, 덕목을 담고 있다. 정약용은 민생을 중심에 둔 정치제도의 개혁과 지방행정의 개선을 도모하려는 의지에서 이 책을 썼다. 풍부한 사실과 논리를 바탕으로 당시의 실상과 관행을 파고들며, 구체적이고 분석적으로 병폐의 원인을 찾고 치유책을 제시한다. 그의 따뜻한 애민 정신, 청렴하고 검소한 선비의 자세, 자세하고 치밀한 행정 방안, 치열.. 더보기
전세계의 분노가 정당한 이유--"바람은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극복하는 것" ‘상위 1%가 다스리는 세계는 잘못 가고 있다. 99%를 차지하는 사람들이 불평등을 종식해야 한다.’ 지난 주말 전 세계 82개 나라, 1500여개 도시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열린 ‘반(反)월가’ 시위와 구호를 보면서 ‘꼬리감는원숭이의 분노’가 문득 떠올랐다. 미국 에모리대 여키스영장류연구소에서 갈색 꼬리감는원숭이를 대상으로 실시한 실험 결과는 동물조차 같은 일을 하고 차별적인 보상을 받으면 불만을 나타내고 항의하는 평등과 정의 의식을 지니고 있다는 경제학적 숙제를 남겼다. 연구원들은 원숭이들에게 돌을 돈이라고 생각하고 거래하는 방법을 가르쳤다. 그 뒤 그 돌을 먹을 것과 바꾸어주는 실험을 했다. 다섯 마리의 꼬리감는원숭이들이 돌을 실험자에게 건넬 때마다 과자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훈련시켰다. .. 더보기
한국의 초상화/ 못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 ■ 한국의 초상화(영문판 제목·Great Korean Portraits)--조선미/돌베개 조선시대 사람들은 ‘터럭 한 올이라도 틀리면 그 사람이 아니다’라는 마음가짐으로 초상화를 그렸다고 한다. 그래야만 대상 인물의 외형과 내면을 ‘있는 그대로’ 표현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당시 한국인들은 초상화가 단순한 예술작품이 아니라 조상이나 선현 그 자체로 여겼다. 전란이나 천재지변이 일어나면 초상화와 신주를 가장 먼저 챙기게 된 것도 그런 까닭이 있어서다. 조선의 초상화에서는 렘브란트나 반 고흐의 자화상, 일본의 도쿠가와 이에야스 상 등에서 보이는 것과 같은 내적 정서나 개별적 성정이 표출되지 않는다. 조선미 성균관대 예술학부 교수 겸 박물관장이 쓴 이 책(Great Korean Portraits)은 고.. 더보기
슈퍼스토리로 본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과 미국 “달에 착륙했을 때보다 예수가 걸었던 계단을 걸을 때 더 흥분되었다” 아폴로 11호 우주선을 타고 인류 최초로 달에 발을 디딘 미국 우주비행사 닐 암스트롱은 예루살렘을 방문했을 때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6.25전쟁에도 참전했던 암스트롱은 말할 것도 없이 기독교도이다. “이것은 한 인간에게 있어서는 작은 한걸음이지만 인류 전체에 있어서는 위대한 약진이다”라고 들뜬 목소리로 달 착륙 일성을 전했던 바로 그 암스트롱과 동일인물인가 싶을 정도다. 그만큼 기독교를 믿는 서구인들이 성지인 이스라엘에 쏟는 관심은 경이롭다. 이스라엘 정치학자인 야론 에즈라히는 이같은 현상을 ‘슈퍼스토리’(super-story)란 이론으로 설명한다. 사람들은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문화적·역사적 렌즈로 여과해 본다는 게 에즈.. 더보기
박원순의 반면교사·정면교사 서울시장 도전장을 낸 박원순 변호사는 스스로 ‘소셜 디자이너’(social designer)라고 부른다. 실제로 소셜 디자이너라는 말은 그에게 썩 잘 어울린다는 느낌을 준다. 단지 진보적 시민운동 1세대의 희망봉이어서만이 아니다. 인생역정이나 그가 최근까지 상임이사를 맡아 운영해왔던 ‘희망제작소’도 소셜 디자이너라는 이름에 걸맞은 듯하다. ‘아시아의 노벨상’으로 일컬어지는 막사이사이상(공공봉사 부문)을 받은 것은 이같은 세평을 추인하는 요식의 하나일 수 있다. 그런 박원순에게 서울시장 도전은 그의 표현대로 ‘두렵지만 기대가 되는, 가보지 않은 길’이다. 현재까지는 안철수 바람까지 얹혀 순항 중이다. 그렇지만 앞으로 그가 건너야 할 바다는 마냥 만만하지는 않을 것이다. 출사표를 공식적으로 던지면 응전세력은.. 더보기
추석에 읽을만한 책들 추석 명절에 귀성을 포기하고 집에서 보내는 이들에게 독서는 연휴를 보내는 가장 알찬 방법이다. 추석 연휴는 평소 시간이 없어 읽지 못했던 책들을 비교적 여유롭게 읽을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때마침 책읽기에 좋은 가을바람이 불기 시작해 더욱 안성맞춤이다. 연휴 기간에 읽어볼 만한 책 몇 권을 골라봤다. ■ 한국의 차 문화 천년 1, 2…정약용·김정희·초의선사 외/돌베개 차향(茶香)이 물씬 풍겨나는 사람이라면 필시 멋과 여유가 배어있으리라. 그윽하고 청아한 격조는 더 말할 것도 없겠다. 유유자적 차중선(茶中仙)의 경지는 우리네 옛 선비 문화가 궁극적으로 지향한 길이다. 낙락장송의 그림자가 드리운 초암(草庵)이나 선비의 문방에서 차를 달이는 화경청적(和敬淸寂)이야말로 지고의 경지다. 차는 넓은 것에는.. 더보기
우즈베키스탄의 세종대왕, 울루그베그---실크로드 여행(2) "진정한 여행의 발견은 새로운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갖는 것이다." --마르셀 푸루스트 실크로드의 중심 도시이자 티무르 제국의 수도였던 사마르칸트에는 우즈베키스탄의 세종대왕격인 울루그베그의 유산이 무수히 남아 있다. 울루그베그와 세종대왕은 닮은 점이 숱하게 많다. 우선 두 제왕은 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같은 시대를 살았던 것부터 닮은 꼴이다. 울루그베그(1394~1449)는 세종대왕(1397~1450)이 그렇듯이 빼어난 학자적 군주였다. 정치보다 학문에 더 큰 비중을 두었던 울루그베그는 자신이 세운 메드레세(이슬람 국가의 고등교육기관)에 “학문을 연마하는 것은 모든 무슬림의 의무이다”라고 기록해 강력한 교육의지를 펼쳐보였다. 세종대왕 당시의 집현전과 비교할 수 있을 듯하다. 울.. 더보기
같은 삶 다른 삶--고려인 김병화와 황만금---실크로드 여행 (1) “여행은 서서 하는 독서이고 독서는 앉아서 하는 여행이다.” “여행이란 우리가 사는 장소를 바꾸어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각과 편견을 바꾸어 준다.” 8월 하순 중앙아시아의 실크로드 중심국가 우즈베키스탄을 여행하면서 보고 들은 감동적인 일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고려인들의 삶이다. 쌍벽을 이루는 김병화(1905~1974)와 황만금(1921∼1997)은 고려인 1세대의 전설적인 영웅이다. 단순히 소련 정부가 수여하는 ‘노력영웅’ 칭호를 받아서만이 아니다. 두 사람은 소련의 독재자 스탈린이 러시아 연해주 일대의 고려인 17만여 명을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강제 이주시킨 이후 필설로 다할 수 없는 피눈물을 극복하고 기적을 일궈낸 지도자이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나란히 소련의 최고 훈장을 받고 ‘노력영웅’..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