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장 도전장을 낸 박원순 변호사는 스스로 ‘소셜 디자이너’(social designer)라고 부른다. 실제로 소셜 디자이너라는 말은 그에게 썩 잘 어울린다는 느낌을 준다. 단지 진보적 시민운동 1세대의 희망봉이어서만이 아니다. 인생역정이나 그가 최근까지 상임이사를 맡아 운영해왔던 ‘희망제작소’도 소셜 디자이너라는 이름에 걸맞은 듯하다. ‘아시아의 노벨상’으로 일컬어지는 막사이사이상(공공봉사 부문)을 받은 것은 이같은 세평을 추인하는 요식의 하나일 수 있다.
그런 박원순에게 서울시장 도전은 그의 표현대로 ‘두렵지만 기대가 되는, 가보지 않은 길’이다. 현재까지는 안철수 바람까지 얹혀 순항 중이다. 그렇지만 앞으로 그가 건너야 할 바다는 마냥 만만하지는 않을 것이다. 출사표를 공식적으로 던지면 응전세력은 현미경을 들이대고, 덫을 놓기도 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라 안팎을 둘러보면 그에겐 정면교사보다 반면교사가 훨씬 많다. 중국 문화혁명기에 마오쩌둥이 처음 사용한 반면교사란 말이 ‘그래서는 안 된다’는 교훈이라면, 정면교사는 본받을 만한 모범 사례다.
【도쿄=AP/뉴시스】사임한 간 나오토 전 일본 총리가 관저를 떠나면서 직원들로부터
작별의 꽃다발을 받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선거과정에서 가장 경계해야할 반면교사의 이미지는 시민운동가 출신의 전임 일본 총리 간 나오토다. 국민들의 기대를 모았던 간 전 총리는 ‘현실 정치의 벽’을 넘지 못하고 불명예퇴진한 대표적인 사례로 지구촌에 각인됐다. 정책 실천력의 부족, 리더십 부재,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태의 위기관리 실패 등이 주요 원인이다. 그는 당초 ‘낡은 정치’를 뛰어넘어 새롭고 깨끗한 정치로 일본 정치사를 새로 쓸 것이라는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정치명문가의 아버지나 조상 덕으로 최고 지도자 반열에 오른 총리들과는 달리 평범한 가정 출신에다 시민운동가 경험이라는 신선함이 가미된 터여서 더욱 그랬다.
방글라데시 빈곤퇴치운동가였던 무하마드 유누스도 반면교사의 하나가 될 수 있겠다. 그라민 은행을 설립해 애옥살이의 영세민들에게 소액 대출을 통한 삶의 희망을 심은 것이 인정받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유누스는 현실정치 무대로 뛰어 오르려는 순간 기득권 세력으로부터 발목을 잡히는 불행을 맞았다. 그는 2007년 2월 그라민은행과의 오랜 관계를 청산하고 ‘시민의 힘’(나고릭 샤크티)이라는 정당을 만들어 신선한 정치문화를 선보이겠다는 목표를 천명했다. 유누스는 “이 나라 정치에 새 바람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새 정당을 출범시킴으로써 정치에 입문하려는 내 결심은 확고하다”며 결연한 의지를 보였다. 방글라데시의 두 주요 정당인 아우아미 연맹과 방글라데시 국제당 간의 심각한 충돌 상황 속에서였다. 하지만 그의 대중적 인기를 시샘한 구세력에게 미운털이 박히기 시작했다. 유누스는 불과 석 달여 만에 꿈을 접어야 했다. 후원 부족을 이유로 창당을 포기하고 말았다. 유누스는 결국 올 들어 그라민은행 총재 자리에서도 불명예스럽게 물러나야 했다.
미국의 윌리엄 존슨 전 로체스터 시장은 정면 교사에 속한다. 존슨은 지역 시민운동가 출신으로 가장 성공한 지방자치 롤모델의 하나다. 그는 뉴욕 주에서 세 번째로 크지만 죽어가는 도시였던 로체스터를 ‘민관 협치’라는 새로운 주민자치 모델인 NBN(Neighbors Building Neighborhoods)운동을 이끌어 국제적으로 각광을 받는 성공사례로 일궈낸 것으로 유명하다. 3선 시장인 존슨은 1994년부터 12년 동안 주민참여형 모델로 로체스터 시를 다시 활력이 넘치는 도시로 재탄생시켰다. 존슨이 로체스터의 변화를 이끈 원동력은 시민 우선의 행정을 위해 이전까지의 행정의 패러다임인 하향식 의사결정방식을 주민이 변화를 선도하는 상향식 의사결정방식으로 바꿔 정책에 시민을 적극적으로 참여시킨 일이다.
우리는 각 분야의 표상 같은 인물들의 현실정치 참여 도전사에서 안타까운 실패 사례를 수없이 보아왔다. 박원순의 성공여부는 시민운동가의 현실정치참여에 또 다른 시금석이 될 개연성이 높다. 그가 ‘희망제작소’라는 이름에 걸맞은 희망을 엮어내지 못하면 수많은 새싹들에겐 열망이 절망으로 변할지도 모른다. 그는 향후 선거과정에서 정책적으로 준비된 시장후보라는 내공과 희망의 리더십으로 유권자들과 진솔하게 소통하고 설득해야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을 보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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