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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에게/시오노 나나미 “일벌과 비버는 비슷하지만 다르다. 벌은 꽃들 사이를 분주하게 다니며 모은 꿀을 여왕벌에게 갖다 바치거나 곰이나 인간에게 뺏기는 것이 고작이다. 자기용으로는 쓰지 못한다. 비버는 바쁜 것 같아도 완성된 댐의 내부는 그를 위한 보금자리가 된다. 보금자리가 완성되면 그 속에 안주하여 일하지 않게 되는 것이 비버적이지만, 적어도 보금자리만큼은 제 것이다. 일본인도 주택이 잘 완비되어 마을도 예쁘게 단장된다면 일벌이 아닌 비버라고 불리게 될지도 모르겠다. 이 점이 중요하지만 한 나라가 다른 나라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문화, 문명을 창조할 수 있는지 없는지도 이 문제와 연결된다. 나는 아들에게 이렇게 가르치고 있다. ‘그리스도 로마도, 그리고 르네상스 문명의 꽃 피렌체도 베네치아도 우선은 돈을 벌었단다. 문화,.. 더보기
서정주 시문학관과 박정희 기념 도서관 전북 고창의 작은 폐교를 고쳐 세운 미당(未堂) 서정주 시문학관은 마당의 커다란 자전거 조형물이 인상적이다. 이름하여 ‘바람의 자전거’다. ‘자화상’이라는 시에서 ‘나를 키운 건 8할이 바람이다’라는 구절의 8자를 상징한다. 자전거가 쉼 없이 굴러가야 하듯이, 영원히 쉬지 않고 움직이는 바람의 역동성을 뜻한다. 바람의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시인의 모습을 이곳을 찾는 이들과 함께 바라보기 위해 조형물을 세웠다는 설명이 곁들여져 있다. ‘바람의 자전거’보다 더 인상적인 것은 미당의 명시와 함께 전시돼 있는 친일 작품과 군부독재자 전두환 찬양시들이다. ‘헌시-반도학도 특별지원병 제군에게’ ‘오장 마쓰이 송가’(시) ‘무제’(시) ‘항공일에’(시) ‘스무살된 벗에게’(수필) ‘최체부의 군속지원’(소설) 등 모두.. 더보기
세상을 바꾼 책 이야기(7)--<자본론> 카를 마르크스 판사: 피고인의 직업은? 피고인: 프롤레타리아다. 판사: 그건 직업이 아니지 않은가? 피고인: 뭐? 직업이 아니라고? 그것은 노동으로 살아가며 정치적 권리를 박탈당한 3천만 프랑스인의 직업이다. 1832년 1월 프랑스 법정에서 나눈 판사와 피고인의 첫머리 심문 문답이다. 피고인은 프롤레타리아독재를 지지하며 폭력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체포된 급진혁명가 루이 오귀스트 블랑키였다. 프롤레타리아 세상으로 바꾸려는 열망으로 가득 찼던 플랑키는 1830년 7월혁명이래 거의 모든 혁명과 시위에 가담해 생애의 절반에 가까운 30여년을 감옥에서 보냈다. 훗날 블랑키의 사상에 공감하고 그와 깊이 교유하던 카를 마르크스라는 20대 유대계 독일 청년은 프랑스에서도 기피인물로 낙인찍혀 추방당하고 만다. 영국 런던으로 망명한 마르.. 더보기
세계 정상급 호화·특혜 국회의 변명 국가예산과 재정 문제에 가장 정통한 국회의원 가운데 한 사람이 새누리당 이한구 원내대표다. 그는 평소 국가부채와 재정위기에 대한 걱정을 많이 하는 걸로 정평이 났다. 지난주에도 신축 국회의원회관이 호화판 논란에 휩싸이자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자아비판과 함께 반성문을 썼다. “우리 국회의원 회관이 국민들 눈에 좀 지나치지 않았느냐는 비판이 많았다.” 2008년 의원회관 신축공사를 시작할 때는 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을까? 새누리당 김태원 의원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호화 지방자치단체 신축청사에 대해 호통을 쳤다. “2005년 이후 신축된 15개 지자체 청사의 평균 에너지 사용량은 전체 청사 평균의 2배였고, 직원 1인당 에너지 사용량도 평균의 1.5배에 달했다. 유리 외벽 신청사는 한여름이나 겨울철에 냉.. 더보기
우리가 아는 선비는 없다-조선을 지배한 엘리트 선비의 두 얼굴 “선비들은 양반 신분의 일원으로서 남다른 특권을 누렸다. 출세의 지름길인 문과에 응시할 자격처럼 남들이 갖지 못한 권리를 향유했고, 병역의 문제와 같이 남들이 하고 싶지 않은 의무에서 빠지는 특권도 누렸다...혹자는 (임진)왜란이라는 국난을 맞아 자발적으로 의병을 일으킨 선비들을 추앙한다. 그러나 그것은 개인적인 추앙으로 끝나야지, 의병을 예로 들어 조선 사회의 선비 전체를 추앙하는 데까지 나아가면 안 된다. 왜냐하면 한 나라의 독점적 지배층으로서 우선적으로 할 일은 의병을 일으키는 게 아니라 의병이 아예 필요 없는 튼튼한 나라를 건설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왜란이라는 초유의 국난을 경험한 후에도 양반의 군역은 예전처럼 부활해야 한다고 주장한 선비가 한 명도 없었다는 점이다. 이는 이미.. 더보기
편작보다 형들처럼 우리 사회는 늘 파국을 맞은 뒤에야 숙명처럼 뒷수습에 나서는 일이 유별나게 많다. 무슨 일이든 상처가 문드러지고 곪아터져야만 그제야 치유에 나선다. 멀리는 IMF 외환위기가 그랬고, 가까이는 저축은행 퇴출사건, 학교 폭력 문제, 한진중공업 사태, 쌍용자동차 사태, 각종 부정부패 사건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일들이 그렇다. 그럴 때면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명의인 편작(扁鵲)의 일화가 생각나곤 한다. 편작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의사인 두 형이 있었다고 한다. 어느 날 위나라 왕이 편작에게 물었다. “그대 형제들 가운데 누가 가장 실력이 뛰어난가?” 편작이 대답했다. “큰 형이 가장 뛰어나고, 그 다음은 둘째 형이며, 제가 가장 하수입니다.” 죽은 사람도 살려낸다는 편작이 삼형제 가운데 가장 떨어진다니 왕은 의.. 더보기
세상을 바꾼 책 이야기(6)--<국부론> 애덤 스미스 지난 1월초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는 200여 년 전에 세상을 떠난 애덤 스미스가 ‘세계 자본가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실어 시선을 모았다. 세계경제를 이끌어가는 사람들의 모임인 다보스 포럼 연차총회를 눈앞에 앞두고서였다. 실제 글쓴이는 영국 투자그룹 칼라일의 공동 창업자인 데이비드 루벤스타인이었다. “여러 나라가 흔들리고, 시위는 흥분되고, 실업률은 오르고, 적자는 늘어만 가니 자본주의 장점들은 의문을 받고 있구려. 내 지난 수백 년간 지켜본 바 자본주의를 앞으로 수백 년 더 지속시키기 위해, 아니면 적어도 지난해보다 올해 더 잘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생각이 떠올라 펜을 들었소... 자본주의가 완벽한 것이 아니라는 것은 내가 자본주의가 단지 다른 대체물보다 더 낫다고 했을 뿐이라고 한 것에서도.. 더보기
외길 인생(1)-최완수 간송미술관 연구실장 간송미술관(澗松美術館) 한국민족미술연구소 2층 연구실의 시간은 80여 년 전에 정지돼 있는 듯 한 느낌을 준다. 대부분 1930년대에 지어졌던 그대로다. 이탈리아 대리석 계단이 그렇고, 타일 바닥, 커튼 장식도 의구하다. 게다가 낡은 탁자와 서가, 누렇게 변색한 고서가 빼곡히 들어찬 서재는 조선의 선비정신이 꿈틀거리는 듯하다. 다른 젊은 연구원들과 한 방에서 별 다를 게 없는 책상에 앉아 연구하는 최완수(崔完秀) 연구실장의 고아한 모습은 바로 옛 선비의 그것과 다를 바 없다. 방문객에게 직접 녹차를 끓여 따라주는 정성도 마찬가지다. 이 시대의 마지막 선비 그는 학(鶴)같은 사람이다. 희다 못해 옅은 쪽빛을 띤 한복 두루마기 차림의 그를 보면 영락없이 학을 연상하게 된다. 단아하고 기품이 넘치는 학은 고고.. 더보기
차기 대권의 정·반·합 변증법 노무현 정부 후반 아이돌그룹 동방신기가 ‘O!정반합’이란 철학적인 제목과 가사의 노래로 한 때를 풍미한 적이 있다. 끊임없이 진화하고 발전하는 사회의 모습이 곧 정반합이며, ‘O’은 원을 상징한다. 이 노래는 사회가 지속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선 단순히 ‘반’을 위한 ‘반’이 아니라 ‘합’을 위한 ‘반’이 돼야 한다는 명제를 내걸었다. 정반합이 헤겔의 변증법 논리에서 따온 것임은 물론이다. 가사도 사회를 향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한걸음 물러서 지금 이 시대를 돌아본다면/ 원리도, 원칙도, 절대 진리도 없는 것/ 시대 안의 그대 모습은 언제나 반(反)이었나/ 현실에 없는 이상은 이상형일 뿐 “O”/ 이제 난 두려워, 반대만을 위한 반대/ 끝도 없이 표류하게 되는 걸/ 나 이제 찾는 건, 합(合)을 위한 노.. 더보기
이미지와 환상/다니엘 부어스틴·사계절 가상공간이 현실공간을 지배하고, 만들어진 이미지가 진짜 현실을 압도한지 오래다. 진본보다 모사나 축약이 더 융숭한 대접을 받고, 실물보다 이미지가 내로라하는 시대다. 유권자는 이미지로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뽑는다. 스타 제조업자가 키워낸 유명 연예인이 막상 역사에 남을 일을 한 영웅보다 한결 더 숭배된다. 사람들은 속는 걸 뻔히 알면서도 광고에 현혹되어 상품을 산다. 영혼의 비타민이 되는 책보다 만들어진 베스트셀러가 더욱 활개를 친다. 이미지에 속았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도 그리 문제를 삼지 않는다. 이렇듯 본말이 전도된 사회현상을 한 역사학자는 이미 50년 전에 간파했다. 미국 의회도서관장을 지낸 역사학자 다니엘 부어스틴은 이미지와 환상이 지배하는 미국 사회를 신랄하게 꼬집었다. 환상이 현실보다 더 진짜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