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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톺아보기-칼럼

슈퍼스토리로 본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과 미국

 
 “달에 착륙했을 때보다 예수가 걸었던 계단을 걸을 때 더 흥분되었다” 아폴로 11호 우주선을 타고 인류 최초로 달에 발을 디딘 미국 우주비행사 닐 암스트롱은 예루살렘을 방문했을 때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6.25전쟁에도 참전했던 암스트롱은 말할 것도 없이 기독교도이다. “이것은 한 인간에게 있어서는 작은 한걸음이지만 인류 전체에 있어서는 위대한 약진이다”라고 들뜬 목소리로 달 착륙 일성을 전했던 바로 그 암스트롱과 동일인물인가 싶을 정도다. 그만큼 기독교를 믿는 서구인들이 성지인 이스라엘에 쏟는 관심은 경이롭다.

 이스라엘 정치학자인 야론 에즈라히는 이같은 현상을 ‘슈퍼스토리’(super-story)란 이론으로 설명한다. 사람들은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문화적·역사적 렌즈로 여과해 본다는 게 에즈라히의 견해다. 에즈라히는 이 렌즈를 ‘슈퍼스토리’라고 부른다. 이념의 기초가 되는 신화나 전설, 이야기 같은 슈퍼스토리는 특정 지역이나 민족의 가치관을 형성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동인(動因)이 된다. 종교는 가장 인기 있는 슈퍼 스토리 가운데 하나다. 마르크스주의 같은 이데올로기도 슈퍼스토리의 구성요소가 됨은 물론이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오른쪽)이 22일 미국 뉴욕의 유엔본부에서 마흐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수반으로부터 받은 유엔 가입 신청서를 들고 악수하고 있다.>
  
 난마처럼 얽혀있는 중동문제, 특히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문제도 슈퍼스토리를 떠올리면 그림의 구도가 어렵잖게 잡힌다. 개회 중인 올 유엔총회에서 가장 뜨거운 감자인 팔레스타인 정회원국 가입이 물거품이 될 수밖에 없어 보이는 건 미국의 반대가 결정적인 요인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이스라엘이 극력 반대하는 팔레스타인의 정회원국 자격을 승인하지 않을 것임을 거듭 분명하게 천명했다. 유엔의 정회원국이 되려면 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 등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의 거부권 행사 없이 15개 이사국 가운데 최소한 9개국의 찬성을 얻어야만 한다. 미국이 안보리에서 거부권을 행사하면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간다.

 오바마 대통령이 2년 전 카이로 연설에서 팔레스타인 국가 건설을 지지하던 입장에서 후퇴한 것은 내년 11월 대통령선거에서 유대인 유권자들의 뜻을 거스르고선 재선이 불가능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미국 내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표뿐만 아니라 선거자금에서도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 자연히 유대인의 비위를 건드리는 것은 곧 패배의 자충수를 의미한다. 오바마 자신이 독실한 기독교 신자임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기독교·가톨릭권 국가인 영국과 프랑스도 거부권을 행사하거나 기권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의 독립국 지위를 반대하는 것은 평화협정을 통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을 소망하기 때문이다. 내심으로는 팔레스타인이 독립국으로 승인받지 않기를 바라는 전략이다. 팔레스타인이 유엔 회원국 가입 신청을 낸 것은 20년 동안 이스라엘과의 평화협상에 매달렸으나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는 게 이유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직접 협상은 지난해 9월 이스라엘이 요르단 강 서안의 정착촌 건설을 재개하면서 교착상태에 빠졌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조차 현 중동평화협상 실패의 책임이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에게 있다고 비판할 정도다. 이스라엘의 협상태도에 환멸을 느낀 팔레스타인이 생존을 위해 짜낸 지혜가 유엔 가입 카드다.

 사실 팔레스타인도 미국의 거부권 행사를 예상하고 정회원국 가입보다 ‘표결권 없는 옵서버 국가’ 지위를 확보하는 차선책에 목표를 두고 있다. ‘표결권 없는 옵서버 국가’의 지위를 얻으면 유엔 산하 국제기구 회의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이스라엘을 국제형사재판소에 제소할 수 있는 등 보폭을 넓힐 수 있는 여지가 생겨서다. ‘표결권 없는 옵서버 국가’ 자격은 이스라엘 정부와의 대결에서 유익한 법적 무기가 될 수 있다. 이게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의 유엔 가입을 반대하는 주요한 이유의 하나이기도 하다. 팔레스타인이 ‘표결권 없는 옵서버 국가’를 노리는 것은 안보리가 아닌 총회에서 과반수 찬성을 얻으면 가능하다는 자신감의 소산이다.

 유감스러운 것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아브라함이라는 같은 조상을 슈퍼스토리로 공유하고 있으면서도 긍정적인 면을 살려내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스라엘의 전략에 관해서는 유대계 미국인이자 뉴욕 타임스의 저명한 칼럼니스트인 토머스 프리드먼도 얼마 전에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한 적이 있다. 역시 유대계 미국인인 제레미 리프킨이 명저 ‘공감의 시대’에서 역설한 공존의 정신을 끝내 거역한다면, 이스라엘은 국제사회에서 더욱 힘겨운 집단따돌림의 나날을 맞게 될 것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그렇지 않아도 이스라엘은 오랫동안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 왔던 이슬람권의 이집트와 터키에서 자국 대사가 추방당하는 등 최근 들어 잇달아 수난을 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집트에서는 이달 초 카이로 주재 이스라엘 대사관에 시위대가 난입해 국기를 태우고 창문을 부수는 바람에 이스라엘 대사가 본국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터키와 이스라엘은 2010년 5월 가자지구에 막무가내로 상륙하려던 터키 국적 국제구호선단에 이스라엘 특수부대가 강제로 들어가 터키인 9명을 죽인 사건 때문에 갈등을 빚어왔다. 이스라엘이 군사 작전상의 실수에 대해 사과를 하는 대신 터키는 법적 대응을 하지 않기로 실무적인 합의를 이끌어냈으나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이 합의안을 거부하는 바람에 터키 주재 이스라엘 대사가 추방당했다.

 미국의 거부권 행사가 현실화되는 순간 이슬람과의 화해를 주창했던 오바마 대통령의 이미지는 크게 퇴색될 게 분명하다. 중동에서 새로운 반미주의가 확산될 가능성도 각오해야 한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분량을 늘려 보완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