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분류 전체보기

세상을 바꾼 책 이야기(27)--<무엇을 할 것인가?> 니콜라이 레닌 19세기 중반 차르 체제의 러시아는 수많은 사회적 모순으로 요동치고 있었다. 이 때 한 편의 연애소설이 젊은이들의 가슴을 뒤흔들어 놓았다. 니콜라이 체르니셰프스키의 소설 ‘무엇을 할 것인가’는 로맨스를 주제로 하고 있지만 새로운 시대의 자유와 혁명을 읊조리고 있었다. 사회적 반향은 실로 엄청났다. 시대와 삶에 질문을 던지던 청년들은 안정된 집을 박차고 나와 소설 등장인물들의 행동 방식을 모방했다. 이 소설은 젊은 지식인들에게 사랑과 혁명, 진보와 인간애의 새로운 전형을 보여줬다. 이 때문에 알렉산드르 푸슈킨의 ‘대위의 딸’, 막심 고리키의 ‘어머니’와 더불어 러시아 혁명 문학사의 걸작으로 꼽힌다. 생의 대부분을 감옥에서 보낸 인민주의 혁명가 체르니셰프스키는 이 소설도 옥중에서 탈고했다. 혁명을 꿈꾸던 청.. 더보기
개와 늑대의 시간 프랑스인들이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고 일컫는 말은 선거 때 종종 등장한다. 후보자와 공약이 자기와 같은 편인지 판단하기 모호함을 비유하는 상징으로 안성맞춤이어서다. 해가 설핏 기울고 땅거미가 질 무렵이면, 언덕 너머 다가오는 짐승이 개인지 늑대인지 잘 분간하기 어렵다. 프랑스 사람들은 그게 내가 기르던 개인지 나를 해치러 오는 늑대인지 쉽게 가늠할 수 없는 황혼을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고 곧잘 은유한다. 기발하고 시적인 이 묘사는 플라톤이 소크라테스와 소피스트를 각각 개와 늑대에 비유한 것을 떠올리게 한다. 지혜로운 철학자인 소크라테스의 변증법과 소피스트의 궤변을 식별하는 게 어렵듯이 개와 늑대를 알아보는 일도 간단치 않다고 플라톤은 ‘대화편’에서 털어놓았다. 소크라테스와 소피스트는 닮았으나 소크라테.. 더보기
박근혜와 옹정제 박근혜 대통령이 새해 기자회견에서 “(퇴근 후) 보고서 보는 시간이 제일 많다”고 한 말을 듣고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청나라 옹정 황제였다. 옹정제야말로 ‘보고서 통치의 대명사’다. 옹정은 밥 먹을 때조차 보고서를 곁에 둘 정도였다고 한다. 그는 민심과 비밀정보를 파악하기 위해 모든 지방 관리들로부터 ‘주접’(奏摺)이라 일컫는 민정 보고서(상주문·上奏文)를 받았다. 보고서는 하루 평균 20∼30건, 많게는 60∼70건에 이르렀다. 하루에 8만자를 읽고 8천자씩 업무지시를 한 셈이다. 옹정제는 이 보고서를 읽고 답글을 쓰는 데 밤 시간을 거의 다 보냈다. 제위 13년 내내 새벽 4시부터 자정까지 하루 20시간 한결같이 일하면서 초인적인 정력을 과시했다. 역사상 전무후무하다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옹정은 자.. 더보기
세상을 바꾼 책 이야기(26)--<나의 투쟁> 아돌프 히틀러 “아우슈비츠 이후 시를 쓰는 것은 야만적이다.”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중심인물인 독일 철학자 테오도르 아도르노의 이 명언만큼 아우슈비츠(폴란드 지명 오시비엥침) 수용소의 참극을 잘 웅변하는 말도 찾기 어렵다. 일부 문학인이 우리말로 번역하면서 “아우슈비츠 이후 서정시를 쓰는 것은 야만적이다”라고 비약시킨 이 말(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시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를 연상한 의도적인 오역이라는 견해도 있다)은, ‘아우슈비츠의 참상을 떠올려보면 더 이상 시가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는 회의(懷疑)와 비탄의 동의어다. 한 신학자는 아도르노의 말을 비틀어 “아우슈비츠 이후에도 신학이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아돌프 히틀러’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아우슈비츠다. 히틀러가 이끈 나치 독일은 이곳에서 250만.. 더보기
‘안녕들’이 못마땅한 사람들 역사의 물줄기는 종종 사소한 것처럼 보이는 일 하나 때문에 바뀌곤 한다. 튀니지의 ‘재스민 혁명’은 2010년 12월 스물여섯 살의 청년 노점상 무함마드 부아지지의 분실자살이 촉발했다. 그의 분신자살은 ‘아랍의 봄’을 점화해 혁명의 물결을 리비아, 이집트, 예멘, 시리아를 거쳐 터키까지 확산시켰다. 1차 세계 대전도 세르비아 출신의 대학생 가브릴로 프린치프가 사라예보를 친선 방문했던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를 암살하는 사건에서 비롯됐다. 혁명적 현상은 이미 임계점에 도달해 작은 성냥불 하나에도 활활 타오를 뿐이다. 대학을 졸업한 뒤에도 마땅한 일자리가 없던 부아지지는 경찰의 노점상 과잉단속에 항의하며 분신자살을 기도했다. 이 사건은 억압받던 시민의 공분을 이끌어내면서 장기 독재정권을 붕괴시키는 재스민 혁명.. 더보기
세상을 바꾼 책 이야기(25)--<국가론> 플라톤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을 이보다 더 명쾌하게 총평하는 말도 없다. “모든 서양철학의 전통은 플라톤에 대한 각주에 불과하다.” 저명한 영국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의 명언이다. 미국 철학자 랠프 왈도 에머슨이 내놓은 단평의 무게도 이에 못지않다. “철학은 플라톤이고, 플라톤은 철학이다.” 서양 사상에 미친 플라톤의 영향은 그만큼 지대하다. 플라톤은 기원전 4~5세기에 살았으면서도 30편이 넘는 저작을 남긴, 보기 드문 인물이다. 그가 직접 쓴 것으로 확인된 것만 25편에 이른다. 그의 수많은 저술 가운데 대표작으로 꼽히는 건 단연 ‘국가론’(원제 Politiea)이다. 플라톤의 이상국가론과 정의관이 담겨 있는 정수(精髓)다. ‘국가론’은 형이상학, 정치학, 심리학, 윤리학, 예술에 이르기.. 더보기
이자스민 의원을 옹호하는 이유 한국은 터키가 ‘칸카르데쉬’(피로 맺어진 형제)라고 부르는 유일한 나라다. 터키는 6·25전쟁 때 미국 다음으로 많은 군인을 파견해 한국을 도왔기 때문이다. 터키는 1개 여단 1만4936명을 파병해 전사·실종자 896명, 부상자 2,147명을 낳았다. 반면에 한국은 오랫동안 터키의 은혜를 사실상 잊고 지냈다. 1982년 케난 에브렌 대통령이 터키 국가원수로는 사상 처음 한국을 방문했을 때 우리나라의 환영 분위기는 그들의 기대에 못 미쳤다. 1986년 투르구트 외잘 총리가 방한했을 때도 그리 달라지지 않았다. 결정적으로 터키인들에게 서운한 감정을 심어준 것은 1988년 서울올림픽 때였다. 터키 선수단이 입장할 때 관중들의 호응은 생각보다 밋밋했다. 이와는 달리, 소련 선수단이 입장하자 스탠드에선 일제히 기.. 더보기
세상을 바꾼 책 이야기(24)--<인구론> 토머스 로버트 맬서스 인구 과잉이 촉발한 지구촌 위기를 그린 영화와 소설이 전세계에서 주목받고 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설국열차’는 계급투쟁을 그렸지만, 한정된 자원 속에서 인류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적정인구를 유지하는 게 필수조건이라는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다빈치 코드’의 작가 댄 브라운의 신작소설 ‘인페르노’는 주인공인 유전공학자 조브리스트의 입을 빌려 “인류를 멸망에 이르게 하는 진짜 질병은 인구 과잉”이라고 주장한다. 이들 영화와 소설은 영국 경제학자 토머스 로버트 맬서스의 문제작 ‘인구론’(원제 An Essay on the Principle of Population)에 바탕을 두고 있다. ‘설국열차’는 열차의 주인 윌포드의 입을 통해 맬서스의 음울한 디스토피아를 적나라하게 묘사했다. 자원이 제한된 열차 안에.. 더보기
정권의 품격 얼마 전 핀란드 방문 후 내놓은 정홍원 국무총리의 대국민 담화문은 여러 면에서 씁쓰레했다. 그 가운데 핀란드와 한국의 정치상황을 비교한 부분은 ‘적반하장’(賊反荷杖) ‘객반위주’(客反爲主) 같은 사자성어들을 떠올리게 한다. “핀란드 방문 기회에 핀란드 국회의장으로부터 여야 합동으로 미래위원회를 구성해 30년 후 국가 미래를 논의한다는 말을 듣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한 정 총리의 담화는 야당을 겨냥한 훈계로 들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대목은 정 총리 자신을 포함해 정부와 새누리당에게 돌아가야 할 회초리다. 국가의 미래를 소홀히 한 채 30~40년 전으로 회귀하고 있는 건 바로 자신들이어서다. 핀란드 출신 방송인이자 번역가인 따루 살미넨 씨의 촌철살인 한마디가 이를 잘 방증한다. ‘미녀들의 수다’란 .. 더보기
진실의 여러 얼굴 진실은 하나지만 나타날 땐 여러 얼굴을 지니곤 한다. 약간 화장하는 정도를 넘어 가면을 쓴 얼굴을 드러낼 때도 없지 않다. 보는 이의 입장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불교 법화경은 이를 ‘일수사견’(一水四見)이라는 말로 가르친다. 같은 물을 두고 하늘에 사는 천인(天人)은 보석으로 장식된 연못으로 보고, 인간은 그냥 물로 보며, 아귀는 피고름으로 보고, 물고기는 자신의 보금자리로 여긴다는 뜻이다. 전설적인 일본 영화감독 구로사와 아키라의 걸작 ‘라쇼몽’(羅生門)도 똑같은 사건을 4개의 다른 시선으로 ‘진실의 여러 얼굴’을 보여준다. 1950년 흑백으로 처음 제작된 뒤 여러 나라에서 리메이크된 ‘라쇼몽’의 플롯은 단순하다. 사무라이가 말을 타고 아내와 함께 녹음이 우거진 숲속을 지나간다. 그늘에서 낮잠을 자..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