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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책 이야기

세상을 바꾼 책 이야기(25)--<국가론> 플라톤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을 이보다 더 명쾌하게 총평하는 말도 없다. “모든 서양철학의 전통은 플라톤에 대한 각주에 불과하다.” 저명한 영국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의 명언이다. 미국 철학자 랠프 왈도 에머슨이 내놓은 단평의 무게도 이에 못지않다. “철학은 플라톤이고, 플라톤은 철학이다.” 서양 사상에 미친 플라톤의 영향은 그만큼 지대하다.


  플라톤은 기원전 4~5세기에 살았으면서도 30편이 넘는 저작을 남긴, 보기 드문 인물이다. 그가 직접 쓴 것으로 확인된 것만 25편에 이른다. 그의 수많은 저술 가운데 대표작으로 꼽히는 건 단연 ‘국가론’(원제 Politiea)이다. 플라톤의 이상국가론과 정의관이 담겨 있는 정수(精髓)다. ‘국가론’은 형이상학, 정치학, 심리학, 윤리학, 예술에 이르기까지 서양사상의 모든 분야에 가지를 뻗어나갔다. ‘국가론’은 인류의 공동생활체를 사상 처음 정리한 책으로 평가받는다. 인간이 ‘어떻게 모여 살아가는 게 좋은가’를 인도해 준 최초의 책인 셈이다.


  플라톤은 이 책에서 이상적인 국가를 실현하려면 이데아를 직관할 수 있는 철학자가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고 설파한다. 이른바 ‘철인정치’다. 플라톤은 국가구성원을 사람의 몸 가운데 머리, 가슴, 배로 비유했다. 머리는 통치자, 가슴은 용기와 기개를 상징하는 군인, 배는 절제가 필요한 생산자다. 머리는 이성을 추구하고, 가슴은 감정 표현을 원하며, 배는 욕구가 채워지기를 희구한다. 국가나 사람도 이것이 잘 충족되고 조화를 이룰 때 가장 이상적인 상태, 정의로운 상태라고 플라톤은 말한다.

                                                                                                 


  플라톤은 국가를 구성하는 국민을 세 부류로 설정했다. 지혜를 사랑하는 자, 이득을 사랑하는 자, 명예를 사랑하는 자가 그것이다. 국가가 멸망했을 때 그들의 행동 양태를 플라톤은 이렇게 설명한다. “이득을 사랑하는 자는 침략자에게 붙어 자신의 이익 확대를 위해 노력할 것이고, 지혜를 사랑하는 자는 자신의 개인적 능력이나 취향에 젖어 수수방관할 것이다. 반면에 명예를 사랑하는 자는 한 목숨을 가벼이 여겨 오로지 ‘백일청천 아래 부끄러움이 없는가’를 가장 귀한 가치로 삼아 목숨을 돌보지 않고 싸울 것이다.”


  플라톤은 현상의 세계는 ‘선’(善)이 아니라고 보았다. 이 때문에 오직 이데아를 바탕으로 한 이성적인 인간이 되어야 한다고 논파했다. ‘플라토닉 러브’라는 개념도 이데아론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육체를 멀리하고 이성적인 물음을 통해 진정한 사랑에 도달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이데아는 변하지 않는 진리라는 뜻이다.

 

   플라톤의 이데아론을 요약하면 이렇다. 사물에는 각기 그 이데아가 있다. 사물의 수만큼 이데아도 다양하다. 삼각형에는 삼각형의 이데아가 있고 아름다움에는 아름다움의 이데아가 있다. 이데아는 모두 완전하고 좋은 것이어서 모든 이데아는 ‘선(善)의 이데아’로 귀결된다. 이 이데아는 육체의 눈으로는 인식할 수 없고, 마음의 눈, 순수한 이성적 사유에 의해서만 인식될 수 있다. ‘선의 이데아’는 플라톤 철학의 핵심이다.


  플라톤은 ‘선의 이데아’를 도식적으로 설명하는 대신, 유명한 ‘동굴의 비유’로 설명을 한다. 동굴 안은 가시적인 현상의 세계를, 동굴 밖은 지성에 의해서라야 알 수 있는 실재의 세계를 각기 비유한 것이다. 동굴 속 죄수는 등 뒤에 있는 불빛에 의해 앞면 벽에 비치는 사람이나 동물의 그림자를 실재라고 여긴다. 죄수는 석방된 뒤에 불빛에 의해서 생겼던 그림자의 본체를 보게 되더라도 여전히 그림자 쪽을 진실이라고 생각한다. 죄수들이란 욕심에 절어 동굴 밖을 나갈 생각은 하지 않고 눈앞의 이익에만 목을 매는 사람을 일컫는다.


 

   가난한 철학자 디오게네스가 플라톤 철학의 핵심을 이루는 ‘이데아’ 문제를 두고 논쟁을 벌인 예화는 해학적이다. 디오게네스가 플라톤의 집에서 방을 둘러보면서 비아냥거렸다. “이 방에는 의자와 술잔이 있을 뿐, 내 눈에 의자의 ‘이데아’나 술잔의 ‘이데아’는 보이지 않는군.” 플라톤이 응수했다. “아마 그럴 것이네. 자네 정신의 눈에는 의자와 술잔이 보일 뿐, ‘이데아’까지 보일 턱이 없지.”

                                                                                              


   ‘국가론’은 인류 최초로 ‘정의(正義)란 무엇인가’를 규정한 책이기도 하다. ‘국가론’은 원래 ‘정의에 관하여’라는 제목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사실 ‘국가론’이라는 제목도 ‘정체’(政體)라고 옮겨야 맞다. 일본사람들이 ‘국가론’이라고 번역한 걸 우리가 그대로 받아들이는 바람에 굳어졌다.


  ‘국가론’ 맨 앞쪽에는 소크라테스가 정의의 개념을 놓고 소피스트들과 토론하는 장면이 나온다. 집주인 폴레마르코스가 말한다. “선한 자를 이롭게 하고 악한 자를 해롭게 하는 게 정의입니다.” 그러자 소크라테스가 반론을 제기한다. “대상이 악하다고 해서 누군가를 해롭게 하는 것이 과연 정의일까?” 그 때 소피스트인 트라시마코스가 나서 논점을 흐린다. “정의는 다스리는 자의 이익입니다. 다스리는 자가 옳다고 정한 규칙을 따르면 그것이 결국 옳은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다시 소크라테스가 나선다. “정의로운 다스림의 본질은 다스림을 받는 자들을 이롭게 하는 것이네. 또한 다스림으로 이익을 얻는다면 올바른 다스림이라고 볼 수는 없지. 정의란 각자의 소임을 다하는 것이고 이는 국가나 개인에 있어서도 동일하다는 것이지. 제화공은 구두 만드는 일에, 목수는 집 짓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정의네. 하지만 정의란 외면적인 일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 인간의 내면적인 것과 관련돼 있네. 다시 말해 자신의 내면을 잘 조절하고 지배와 복종, 협력을 마치 조화로운 음정을 통해 아름다운 선율을 이끌어내듯이 변주해내는 일이지.” 2400년 전에 벌어진 이 토론은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의 베스트셀러 ‘정의란 무엇인가’를 연상케 한다. 샌델의 ‘정의’는 ‘국가론’의 연장선상에 있다.


  ‘국가론’은 모든 청소년들에게 기하학, 수학, 수사학, 철학 등을 가르치기에 앞서 시가(詩歌)와 체육을 기본으로 교육할 것을 주창한다. 체육은 신체를 강하게 만들어 용맹의 덕을 갖게 해주고 음악은 감정을 길들여 절제의 덕을 배우도록 해 준다는 게 배경설명이다. 플라톤은 시가와 체육 수업에서도 어느 한쪽에 치우침이 없이 조화로운 수업을 하도록 권면한다. 편향된 지식과 감성이 가져올 위험성을 염려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생긴 공공교육기관이 김나시온이다. 훗날 체육관(Gymnasium)의 어원이 된 김나시온은 체육수업을 매우 중요시하는 서양의 교육제도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플라톤 자신이 레슬링 선수였다. 올림픽과 더불어 그리스 4대 제전이었던 이스트미아 경기대회에 출전해 두 차례나 우승했다고 한다. 할아버지의 이름을 따 본명이 아리스토클레스였던 그가 ‘떡 벌어진 어깨’를 뜻하는 플라톤으로 바뀐 것도 이 때문이다.
 

   플라톤은 이상적인 국가의 조건으로 통치자와 그를 돕는 수호자 집단의 사유재산 금지를 주장했다. 아내와 자녀까지 공동소유 대상에 포함시킬 만큼 극단적인 생각이었다. 탐욕의 원천인 사유재산과 사적 인연이 국가를 타락시킨다고 여겼다. 전 세계에 혁명의 열병을 앓게 만든 공산주의도 사상적 기원은 ‘국가론’이라고 학자들은 말한다. 공유재산제를 바탕으로 정의로운 사회공동체를 꿈꾼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 역시 플라톤의 ‘국가론’이 모델인 셈이다.


   정치가를 꿈꾼 플라톤은 스승인 소크라테스가 직접 민주주의의 중우(衆愚)정치 때문에 독배를 받아 사형당하는 모습을 지켜 본 뒤 현실 정치를 포기하고 철학과 후학 양성의 뜻을 세웠다. 플라톤은 진정으로 훌륭한 정치가 뭔지 보여주겠다는 생각에서 ‘국가론’을 썼다. 이 책이 소크라테스의 입을 빌려 대화체 형식으로 구성된 것도 스승에 대한 존경심의 발로이다. 유명한 대화체는 그가 선보인 독창적 저서 기법이다.

                                                                                               

                                                     <아테네 아카데미아 앞에 서 있는 소크라테스 상>

  
   그가 세운 교육기관 ‘아카데미아’ 정문에는 ‘기하학을 모르는 자는 들어오지 말라’는 현판이 걸려 있었다. 플라톤은 지혜를 얻기 위해 필요한 지식은 허상이 아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때문에 허상의 세계를 실재 세계로 인도해주는 학문인 수학을 중시했다. 아카데미아는 인류의 지성사에 이름을 날리게 된다. 플라톤이 42세에 세운 아카데미아는 이후 1000년이나 지속되다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에 의해 서기 529년 문을 닫는다.


   ‘국가론’은 이른바 ‘고상한 거짓말’을 필요악으로 거론했다. 국가를 통치하기 위해서는 ‘고귀한 거짓말’에 의해 국민을 교육시켜야 한다는 얘기다. 사회 조화와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일종의 신화가 필요하다는 논지다. 여기에서 지혜, 용기, 절제, 정의라는 네 가지 덕목이 규정되고 ‘선의 이데아’를 인식하는 철학적 방법론까지 전개된다.


   플라톤은 세계를 이분법적 사고로 나눴다. ‘이데아’의 세계와 ‘현상’의 세계가 그것이다. 철인 정치나 이분법 때문에 플라톤은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지금까지 숱한 학자들에게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그가 던진 국가와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사유는 여전히 넘을 수 없는 거대한 산맥으로 남아 있다.


   ‘국가론’은 한 때 비극작가를 꿈꾸기도 했던 플라톤의 유려한 글 솜씨를 엿볼 수 있는 저작이다. 프랑스 작가 프랑수와 라블레는 ‘팡타그뤼엘’이라는 책에서 “그리스어에서는 플라톤을 모방하고, 라틴어에서는 키케로를 모방해 자기 문체를 만들어내기를 바란다”고 권장한다. 그만큼 플라톤은 글쓰기에서도 탁월했다.


   ‘국가론’은 여전히 동서를 막론하고 국가지도층의 규범이 돼야할 보편적 원칙으로 받아들여진다. 최근 한국 국회도서관 대출 4위에 올라 있는 것만 봐도 알만하다. 미국의 명문고는 플라톤의 ‘국가론’을 읽고 에세이를 쓰고, 사립학교 초등생들도 이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쓸 정도다. 철학자 에머슨이 “도서관은 불타도 좋으나 플라톤의 ‘국가론’이 불타서는 안 된다”고 했던 말도 이 책의 위상을 웅변한다.

 

                                                             이 글은 월간 신동아 2013년 12월호에 실린 것입니다.